깎아지른 협곡, 한탄강 겨울 트레킹
눈이 내려 쌓이고 꽁꽁 얼어버린 한탄강을 따라 걷는 겨울 트레킹. 물길의 노랫소리와 용암이 만들어 낸 절경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기회다.
2억 3000만 년 전 대륙 충돌의 중심부에 놓인 한탄강의 지질이 27만 년 전 용암의 바다에 쌓였다가 다시 침식하며 만들어진 고석과 단애지대의 풍경들이다. 오래된 시간을 거친 자연의 경이로움을 가까이에서 느끼기에는 그래서 한 겨울이 좋다.
오늘도 그 구간을 지나야 한다. 십 년 전인가, 매섭게 추운 날씨가 이어진 후 한탄강 협곡 트레킹에 나섰다. 그때도 지금처럼 눈이 하얗게 협곡을 덮었다. 두껍게 언 가장자리를 따라 걷다가 강 한가운데를 조심스럽게 한발 한발 건너는데 얼음 밑이 시퍼렇게 보인다. 벌컥 두려움이 앞섰다.
배낭을 벗어 밧줄에 묶어 얼음 위로 끌며 살며시 미끄러지듯 걷는다. 어디선가 얼음장 밑으로 공기층이 이동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혹시 빠지더라도 배낭이 밧줄에 달려 있으니 누군가는 구해주리라는 믿음의 안도를 갖고 무사히 강을 건너긴 했지만, 지금도 시퍼렇게 얼어있던 강물이 생각난다.
54만년 전 화산 폭발 뒤 새로운 물길 탄생
지금은 철원군에서 10월에 물 위 구간 중 일부 위험구간에 부교를 설치했다가 3월에 거둔다. 그래서 한 해 중 절반은 물 위를 걸을 수 있게 됐다. 물윗길은 태봉대교-송대소-은하수교-마당바위-승일교-뒷강-고석정-합수지-순담계곡까지다. 8km 이어지는 한탄강 협곡을 걷는 길로 물위의 부교와 가장자리를 걷는 트레킹이다. 태봉대교-송대소, 순담계곡-고석정 구간은 부교가 설치돼있어 강 한가운데를 걸으며 안전하게 한탄강 협곡의 비경을 감상할 수 있다.
주상절리의 비경은 송대소 부근에서 활발하게 보인다. 한탄강 물줄기가 심하게 꺾이는 곳에 있어 강의 양 벽에 물의 침식작용이 일어나 높이 30m의 수직 현무암 절벽, 다양한 주상절리 등이 노출되었다. 기둥 모양의 주상절리뿐 아니라 부채꼴 모양과 민들레꽃 모양의 주상절리를 만나볼 수 있다.
현무암 절벽과 하얀 눈얼음 위에 강물을 따라 곡선으로 놓인 부교는 끝없이 걷고 싶은 충동을 불러일으킨다. 길이 끝나는 곳에 또 어떤 길이 기다리고 있을까. 호기심과 설레는 마음으로 걷다 보면 한탄강 협곡을 흐르며 차곡차곡 쌓인 오래된 시간들을 만난다.
수직의 협곡을 잇는 은하수교를 지나 여울소리를 들으며 걷다 보면 아름답게 서 있는 아치형 다리가 보인다. 승일교다. 1948년 8월부터 공산당 치하에서 철원 및 김화지역 주민들이 노력공작대라는 명목 하에 총동원되어 다리를 시공해 오다가 6·25 한국전쟁으로 공사가 중단됐다. 그 후 1958년 우리 정부에 의해 완공됐다.
승일교라는 이름이 이승만 대통령과 김일성 주석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왔다고 하는 설이 있었다. 또는 육이오 때 한탄강을 넘어 북진하다가 장렬하게 산화한 박승일(朴昇日) 연대장의 공적을 기리면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이는 1985년 승일교 입구에 기념비를 세우면서 현재 정설로 굳어졌다.
물길은 그곳을 돌아 고석정으로 향한다. 정자 앞의 고석바위는 높이 약 15m의 화강암 바위다. 철원 땅이 용암으로 덮이기 이전에 있던 기반암으로 약 1억 1000만 년 전(백악기 중기)에 지하에서 형성된 화강암이다.
이것은 오랜 기간의 작용에 의해 지표에 드러났다고 한다. 이후 약 54만 년 전에서부터 약 12만 년 전 사이에 일어난 화산활동에 의하여 현무암 용암류에 뒤덮였다. 이어 한탄강의 침식작용으로 새로운 물길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지표에 다시 드러나게 되었다. 기암 단애의 고석정 주변을 강물이 서서히 흐르며 휘감아 돈다. 햇빛이 협곡 사이로 아스라이 비춘다.
고석정에서 부교가 놓인 협곡을 따라 2km 정도 걸으면 한탄강 물줄기가 이룬 계곡 중 가장 아름답다는 순담계곡을 만난다. 물윗길의 마지막 지점이며 주상절리 잔도길이 시작되는 곳이다. 순담계곡은 물살이 오랜 세월 화강암 바위를 부드럽게 깎아내려 기묘하게 우뚝 선 기암절벽의 벼랑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서 있다. 하얀 모래밭과 어울려 그야말로 선경이다.
수직의 암벽에 길이 생겼다. 주상절리길은 절벽과 절벽에 잔도가 놓여 순담계곡-단층교-구리소-한여울교-화강암교-샘소-2번홀교-동주황벽-현무암교-쌍자라바위교-너른바위-드르니마을까지 걷는 3.5km의 잔도길이다. 수직의 절벽 옆으로 잔도가 설치돼있어 한탄강의 지질을 바로 옆에서 관찰할 수 있다.
잔도를 걷다 밑을 보면 계곡의 물줄기와 절벽의 바위들이 아찔하다. 단단한 화강암이 지층의 충격으로 이동한 단층의 절벽길을 따라 걷기도 한다. 한탄강의 여울이 가마솥 끓는 물소리 같다는 구리소에서 강물의 소리도 들어본다.
그러다 맑은 연녹색으로 흐르는 물이 넓은 암반을 흐르는 지점에 눈이 간다. 유심히 쳐다보다 마치 거인의 큰 발자국처럼 보이는 돌게구멍을 만난다. 화강암지대의 하천바닥에 물이 빨리 흐를 때 자갈 등에 의해 암반에 구멍이 생기고 자갈들이 그 속에서 계속 마모작용을 하여 생긴 포트홀이다.
현무암 절벽・연녹색 물이 아래로 까마득
건너편으로는 수평으로 이루어진 화강암의 절편들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수평절리교를 지나 샘소전망쉼터에 이른다. 건너편의 화강암과 현무암이 반원을 이루며 기묘한 바위 틈새로 샘물이 흐른다는 샘소다. 이끼가 많은 화강암으로 이루어져 햇빛이 잘 들지 않는 바위그늘교의 계단을 잠시 오르다 보면 건너편 현무암 단애 위로는 넓은 평원이 보인다. 스카이라인 위로 마치 수반 위에 올려놓은 듯 금학산과 덕령산의 능선들이 보인다. 물빛이 쪽빛이라는 쪽빛소에는 깊은 고요와 함께 하얀 눈 세상이다.
쪽빛소 쉼터에서 계단을 내려가니 2번홀교라는 둥그런 모양의 잔도 철교를 만난다. 주상절리길 위의 평원은 한탄강CC골프장이다. 골프장 2번홀에서 가끔 날아오는 골프공이 있어 보호망을 다리위에 둥그렇게 씌워 만들었다고 한다. 지질과는 아무 연관 없이 물고기를 잡는 어항으로 들어가는 모양으로 협곡에 이어진 안전교다.
한탄강 스카이전망대에 이르면 강화유리로 만들어진 반원형의 전망대가 허공에 떠 있다. 현무암의 절벽들과 연녹색의 물이 아래로 까마득하고 건너편으로는 주상절리의 절벽이 수직으로 펼쳐진다. 햇빛을 받으면 황토빛이 되니 동주황벽(東州黃壁)이라고 했다. 동주는 철원의 옛 이름이다.
쌍자라바위교에는 밝은색의 화강암 위에 어두운 현무암 주상절리가 급경사를 이루고 있다. 화강암의 틈새로 흘러 들어온 마그마의 흔적이다. 물 건너편에 자라 모양이 있다는데 보는 각도에 따라 모양이 다르다. 절벽의 소나무 한 그루가 휘어질 듯 햇빛을 찾아 매달려 있다.
강물은 쌍자라바위 앞에서 잠깐 멈추어 하얀 얼음평원을 이루다 너른바위를 지나며 주상절리 아래로 빠르게 흘러간다. 절벽 단애의 잔도길을 오르며 민출랑쉼터를 지나 드르니 전망대로 오른다. 궁예가 왕건에게 쫓겨 잠시 들른 마을이라 하여 드르니라 부른다.
강의 건너편은 수직절벽 위로 평원을 이루며 금학산의 능선이 희뿌옇게 보인다. 강물은 주상절리를 돌고 돌아 지금도 새로운 지형을 만들며 흐른다. 물도 시간의 여행자다. 한탄강은 2020년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세계지질공원으로 인증을 받았다.
여행 팁
한탄강 물윗길은 태봉대교-순담계곡 8km로 입장료는 성인 1만 원이다. 주상절리길도 순담계곡-드르니게이트 3.5km의 잔도길로 입장료 1만 원을 받는다. 각각 입장료의 50%를 철원사랑상품권을 준다. 두 곳을 한 번에 걸으면 한 곳의 입장료를 50% 추가 할인해준다.
주말에는 셔틀버스가 운행된다. 평일 자가용을 가져간다면 물윗길의 시작점인 태봉대교나 순담계곡, 주상절리 마지막 지점인 드르니 게이트쪽에 차를 세워두고 반대편까지 걸은 뒤 택시를 타고 되돌아가면 편하다. 매주 화요일은 휴무다.
/ 한국아파트신문 2023 이성영
철원 순담계곡 주상절리 한탄강레포츠 고석정 (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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