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영등포구 당산로 124 2층 (당산동3가) / 수라 ☎ 02 3667 7711
시간이 갈수록 전골 같은 음식을 자주 먹지 않게 된다. 점심을 먹어도 각자 한 그릇씩 나오는 메뉴가 편하다. 가스불을 올리고 불 조절을 하고 국자로 퍼서 음식을 나누고, 이 모든 과정이 번거롭게 느껴질 때가 많다.
혼자 밥 먹는 일도 흔해졌다. 기계적으로 젓가락질하며 눈으로는 휴대폰만 바라보다 점심시간이 끝나버리기도 한다. 영등포구청역 바로 옆 골목, 건물 2층에 있는 ‘수라’라는 집은 가게 이름 옆에 붙은 첫 번째 메뉴가 바로 만두전골이었다.
테이블은 말끔하게 닦여 윤이 났는데 음식이 나오기 전이었지만 이미 어떤 맛인지 짐작이 갔다. 하늘색 셔츠에 니트 조끼를 걸쳐 입은 주인장은 머리를 단정하게 넘기고 카운터에 서서 점심 예약 명부를 천천히 들여다봤다.
만둣국, 손칼국수 같은 1인 메뉴도 있었다. 그러나 주인장이 굳이 대표로 써놓은 메뉴를 먹어보는 편이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메뉴를 고르는 원칙은 첫째가 남들이 많이 먹는 것, 둘째가 주인장이 추천하는 것이다.
주문을 하고 찬을 받는 사이 사람들이 하나둘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예약된 테이블을 빼놓고 나면 오전 11시가 조금 넘어 만석이 되었다. 심심하게 맛을 낸 감자 샐러드를 먹으며 음식을 기다렸다.
요즘 전골 요리는 주문을 받자마자 조리 전 상태로 손님상에 올리는 게 보통이다. 주방에서 조리하는 시간도 아끼고 손님 입장에서도 조급증이 덜 난다. 이 집은 애초에 손님이 바로 먹을 수 있도록 끓여 나왔다.
덕분에 시간이 조금 걸렸지만 보글보글 끓고 있는 만두전골을 보자 그 지루함은 금세 가셨다.
커다란 만두가 냄비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배추로 맛을 내고 당근과 미나리로 색을 맞췄다. 소뼈를 고아 뽑은 사골 육수의 뽀얀 빛깔은 냄새를 맡지 않아도 그 농도를 알 수 있었다.
만두를 국자로 퍼서 한입 베어 물었다. 애호박, 배추, 두부, 고기를 갈아 넣은 만두소는 파란 하늘에 뜬 하얀 구름을 베어 먹은 것처럼 맛이 깔끔하고 담백했다. 만두를 먹고 코로 숨을 쉬면 채소에서 비롯된 순한 단맛이 느껴졌다.
치맛자락을 넓게 펴고 곱게 앉은 듯 만두 모양은 어그러진 구석 없이 단정하여 먹는 이도 저절로 허리를 펴고 자세를 바르게 하는 것이었다.
국물도 한 숟가락 먹어보니 간이 딱 부러져서 맛에 빈틈이 없었다. 먹는 사람은 그저 올바로 수저를 잡고 먹는 데 집중하면 됐다.
만두를 먹는 사이 나온 녹두전 역시 기름에 튀기듯 구워 기름진 맛이 과하거나 혹은 속이 덜 익어 무르지 않았다. 적당히 섞은 고기는 간간이 씹혔고 녹두의 과하지 않은 고소한 향이 먹는 내내 입안을 채웠다. 국물이 졸아들 즈음에는 종업원이 어느새 와서 육수를 다시 부어 넣었다.
칼국수 사리는 주방에서 한소끔 삶아 식혀 냈다. 보통 덧가루가 묻어 국물에 넣으면 농도가 변하고 지저분해지는데 이 집은 그럴 일이 없었다.
반투명한 상아색에 탄성이 단단한 면은 어느 것도 소홀하지 않는 이 집 주인장의 성격을 닮아 있는 것 같았다. 자작하게 졸아든 국물을 걷어내고 볶음밥까지 해 먹으니 식사가 끝이 났다.
/ 출처 : 조선일보 2024 정동현음식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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