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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 안보/육군

29여단 한강대대 3.23완전작전

by 구석구석 2024. 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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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 29여단 황금박쥐

1대대 붉은박쥐 / 2대대 푸른박쥐 / 3대대 검은박쥐

9사단은 철원에 주둔했으나 수도사단의 맹호부대, 해병2여단 청룡부대와 함께 전투사단으로 월남전에 파병되어 1971년 귀국할즈음 닉슨독트린이 발표되어 주한미군의 이동으로 공백이 생긴 고양에 주둔하게 되었다.

한강과 임진강 강안(江岸) 경계 임무를 맡아 강을 따라 침투하는 적군에 맞서 수도권을 사수하는 최후의 보루 역할을 하고 있는 백마부대는 6·25전쟁과 베트남 전쟁에 연속 참전한 실전부대로도 잘 알려져 있다. 

ㅁ 2대대 한강대대 

본부 5중대 6중대 7중대 8중대로 편제되어 있으며 파주출판단지 내부에 위치해 있다. 뒷산인 심학산에 올라가면 날씨 좋은 날에는 북한 개풍이 보인다. 29여단 예하 대대 중 유일하게 파주시에 대대본부가 있다.

29여단의 강안 경계 임무를 수행하는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으며, 그런 만큼 여단 내에서도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쓰는 부대에 속한다. 간부들에게도 예외는 아니라서 29여단에 들어온 갓 임관한 장교들 중 장기복무를 생각하는 이들은 대부분 2대대로의 전입을 희망하는 편이다.

신경을 많이 쓰는 부대인만큼 시설도 꽤 좋은 편이며, 특히 식당 밥이 맛있기로 소문이 자자하다. 실제로 2대대 취사장에 가보면 기본적으로 나오는 밥, 반찬 외에 간식거리도 굉장히 많고 심지어 누텔라나 사제 과일잼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ㅁ 육군9보병사단 3·23 완전작전

제2의 황중해·김범규 되어
서릿발 같은 작전기강 완전섬멸 역사 잇는다

불과 몇 m 앞 무장공비 현장 사살
교육훈련 내용 따라 경계근무 성과
소초명에 육군 첫 현역 부사관 이름
왕복 3시간, 남북 10㎞ 범위 경계
경계 대비태세·정신전력교육 강화
‘최후의 보루 사수’ 긴장 늦추지 않아

경계 임무를 맡은 내가 있는 곳의 불과 몇 m 앞까지 적이 다가온 상황. 어느 누가 당황하지 않고 정확하게 방아쇠를 당겨 상대를 제압할 수 있을까. 그러나 ‘적은 반드시 우리 앞으로 온다’는 교육훈련 내용에 따라 늘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은 덕분에 완전작전의 성과를 역사의 한 페이지에 남긴 부대가 있다. ‘완전작전의 재구성’ 다섯 번째 차례로 육군9보병사단의 3·23 완전작전이 있었던 1980년 그날로 돌아가 보자. 글=배지열/사진=조종원 기자

1980년 3·23 완전작전 현장에서 육군9보병사단 한강대대 장병들이 경계 임무를 하고 있다. 이들의 오른쪽 배경에 '무장간첩 완전섬멸 기념' 문구가 적힌 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제압하다
새벽 한강으로 침투한 무장공비 전원 사살

1980년 3월 23일 새벽 2시50분. 칠흑 같은 밤하늘에서는 진눈깨비가 내리고 있었다. 전날 밤 9시40분 초소 근무에 투입된 육군9보병사단 황중해 당시 일병과 후임 김범규 이병은 한강 철책 점검 및 주변 경계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그들의 시야에 미상의 물체가 발견됐다. 전방에 2명, 후방에 1명이 역삼각형 형태로 초소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한강 침투로를 개척하고 지형을 확인하려는 적이 출현한 것이었다.

황 일병은 김 이병에게 구산리 소초로 복귀해 상황을 전파하라고 지시하고, 적이 가까이 올 때까지 숨죽여 기다렸다. 사격으로 제압할 수 있는 거리에 적이 다다르자, 황 일병은 곧바로 사격해 1명을 사살했다.

나머지 2명이 둑방 밑으로 도주하려던 찰나, 김 이병의 말을 듣고 현장에 도착한 소초원들이 집중 사격하기 시작했다. 소초 전 병력을 작전지역에 투입하는 A형 근무에 돌입한 이후 1명을 추가로 제압했다. 이후 상급부대에서 조명탄과 병력을 지원해 마지막 1명도 사살하면서 상황이 종료됐다.

아군 피해는 전혀 없이 적 3명을 사살한 완전작전이었다. 현장에서 직접 적을 발견하고 사살한 황 일병과 김 이병은 2계급 특진에 충무무공훈장, 1년간 정기휴가까지 받았다. 소대장 등 간부들도 각각 1계급 특진에 화랑무공훈장, 대통령표창과 최대 3개월의 정기휴가 및 포상금까지 받으면서 유공자로 이름을 올렸다.

김범규 초소에서 전방 경계 중인 장병들의 모습.

되새기다
영광의 이름 ‘황중해와 김범규’

“적이 온다는 낌새라도 있었다면 듣고 대비했을 텐데 전혀 그런 게 없었습니다. 그래도 일사불란하게 대응했기 때문에 적을 모두 제압할 수 있었죠.”

황중해 예비역 육군상사는 1980년 3월 23일을 이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행운도 따르는 상황이었다. 경계호와 소초를 연결하던 인터폰이 고장 나는 바람에 김 이병이 직접 상황을 알리러 가야 하는 위기도 있었지만, 마침 근무 교대를 앞두고 많은 인원이 깨어 있던 시간이라 빠르게 대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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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대조를 제외하고도 내무실에 있던 소대원들이 총과 실탄을 받아서 뛰쳐나왔습니다. 악천후인 데다가 옷도 제대로 못 갖춰 입고 나왔지만, 그렇게 움직였기 때문에 완전작전이 가능했습니다.”

1979년 4월 사단 신병교육대에 입대한 황 예비역 상사는 “교관들이 ‘이 지역은 간첩이 출몰하는 지역이라, 경계근무를 잘 서면 꼭 잡을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했던 기억이 있다”고 덧붙였다.

완전작전을 달성한 이후 장병과 부대를 향한 격려와 칭찬이 곳곳에서 쏟아졌다. 국방일보에 작전 내용이 보도됐고, 상급부대 간부들도 현장에 방문해 노고를 치하했다. 평소에는 민간인 출입금지구역이던 둑방길에 적으로부터 노획한 장비를 정렬해 두고, 지나가는 지역 주민이 직접 볼 수 있도록 했다.

사단은 이후 강둑을 따라 철책을 설치해 경계를 강화했다. 이전에는 강에서 육상까지 곧바로 오갈 수 있었지만, 완전작전 이후 대비태세를 더욱 철저히 했다. 통신선 개통상태를 유지하고, 조명 지원 대기태세도 확립하는 계기가 됐다.

황중해와 김범규라는 이름은 지금도 부대에 남아 그때의 영광을 되새기는 계기가 되고 있다.

사단은 2002년 5월 황중해 상사의 공적을 기리고자 기존 ‘구산리 소초’를 ‘황중해 소초’로 명명했다. 당시 황 상사가 복무 중이었기 때문에 이는 육군 최초로 현역 부사관의 이름을 붙인 사례로 역사에 남았다. 당시 작전을 수행한 초소는 현재 ‘김범규 초소’로 불린다.

황 예비역 상사는 완전작전 이후 부사관으로 신분을 바꾸고 사단 작전지역에서 꾸준하게 군 생활을 한 후 군복을 벗었다. 그는 자신이 적을 제압했던 곳에서 복무하는 후배 장병들이 자랑스럽다. 밤낮으로 국토와 국민, 나라를 지키는 이들이 그저 무탈하게 지냈으면 한다는 게 그의 마지막 바람.

“그때는 국가에 충성하는 게 우선이었는데, 지금은 장병들이 그저 건강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그게 부모님께 효도하는 길이고, 나아가 국가에 충성하는 거죠. 제가 복무하던 때에서 시간이 오래 지난 만큼 그렇게 변화하는 게 당연한 겁니다.”

황중해 소초에서 완전작전 내용을 교육하는 모습.

계승하다
원칙 따라 적 대응, 완전작전을 재현

‘무장간첩 완전섬멸 기념’. 차들이 쌩쌩 달리는 자유로 바로 옆에 위치한 비석에 새겨진 문구다. 1996년 4월에 이곳에 자리 잡은 이 기념탑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초소가 김범규 초소다. 한강 물줄기를 따라 세워진 철책에는 열영상감시장비(TOD)와 과학화 감시장비가 설치돼 빈틈없는 경계태세를 뒷받침하고 있다.

44년 전 완전작전이 완성된 이곳은 현재 9사단 한강대대가 경계를 맡고 있다. 대대가 생활하고 있는 소초의 이름이 다름 아닌 ‘황중해 소초’.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복도 한쪽을 가득 메운 3·23 완전작전의 기록이 눈길을 끌었다. 지금도 전입해 오는 장병들을 대상으로 완전작전을 활용한 정신전력교육이 꾸준하게 진행되고 있다.

임무수행지역으로 향하는 통로 입구에 적힌 ‘서릿발 같은 작전기강’이라는 문구에서 완전작전의 역사를 이으려는 장병들의 의지가 느껴졌다.

대대가 맡은 경계지역은 남북으로 길게 이어진 약 10㎞ 범위로 양쪽 끝까지 도보로 왕복 3시간이 걸릴 정도로 넓다. 상대적으로 후방 지역이지만, 그만큼 ‘최후의 보루’라는 인식 아래 전 소초원이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

이들을 이끄는 김도연(상사) 소초장의 의지부터 남다르다. 그는 이곳과 남다른 인연이 있다. 2011년 이곳에서 분대장으로 복무했던 경험을 되살려 2022년 5월 소초 배치를 자원했다. 김 소초장은 지난해 이곳을 방문한 황 예비역 상사와의 만남을 뜻깊게 간직하고 있다.

김 소초장은 “선배님께서는 작전의 중요성만큼이나 평소 마음가짐을 강조하셨고, 본인도 그때 교육을 잘 받았기 때문에 움직일 수 있었다고 하셨다”며 “소초 장병들에게도 군 생활의 큰 추억이자 교훈을 얻는 기회였다”고 말했다.

최근 북한의 도발 위협이 커지면서 최전방 부대의 분위기가 바뀐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평소처럼 대응하는 게 최선이라는 김 소초장.

“적이 도발할 수는 있지만, 우리의 ‘즉·강·끝’ 원칙에 따라 대응하면 적은 오히려 무서워할 거라고 장병들에게 이야기합니다. ‘내가 근무하는 곳이 가장 중요한 곳’이라는 생각으로 교육훈련 대로만 움직이면, 적이 언제 어디서 도발해도 우리가 완전작전을 재현할 수 있을 거라 확신합니다.”

▼ 1980년 3·23 완전작전 현장에서 육군9보병사단 한강대대 장병들이 경계 임무를 하고 있다. 이들의 오른쪽 배경에 ‘무장간첩 완전섬멸 기념’ 문구가 적힌 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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