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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제주시

서귀포 온평리해안도로 연혼포 혼인지

by 구석구석 2022. 1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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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평리 연혼포

▲ 황루알 바닷가에 서 있으면 성산 일출봉과 섭지코지가 오롯이 바다위에 떠 있습니다.

 연혼포는 서귀포에서 일출봉으로 향하는 해안도로변에 있다. 연혼포는 '결혼으로 이끌어 들인 포구'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제주의 동쪽마을 온평리 끝에 있다. 포구의 아름다움은 바다냄새 듬뿍 풍기는 맛이 있겠지만, 연혼포 포구는 달랐다. 

찾는 사람이 없어 너무 한적할 정도. 간혹 오징어를 파는 아주머니가 길가에서 행상을 하고 있을 뿐이다. 표지판이 없어 해안도로를 달리다가도 그저 스쳐 지나갈 우려를 낳기도 한다.

▲ 달랑 표지석 하나가 전부인 연혼포는 '삼성혈관련유적지'라는 표지석이 현실과 신화를 넘나듭니다.

연혼포, 아직도 신화 속에 잠들어 있다

신화 속 등장인물인 3공주가 처음 제주 땅에 발을 디뎠을 때도 이만큼 고요했을까? 성산일출봉이 훤히 내다보이는 연혼포는 달랑 석비 하나가 전부다. 그리고 그 석비 옆에는 '삼공주 관련 유적지'라고만 적혀 있었다.

▲ 썰물때 바닷가로 내려가면 의자모양의 돌과 말발굽 모양의 돌 형상을 볼 수 있습니다.

파도소리를 듣고 있는 석비는 그 신비를 더했다. 하지만 석비 주변은 쓰레기가 너저분하게 널려있을 뿐 신화의 신비는 간 곳이 없다. 바닷가로 내려가 보았다. 멀리 보이는 수평선, 그리고 돌무덤 속에는 우마의 발자국과 3공주가 앉았다던 의자 모양의 돌이 아직도 현실 속에 존재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태고 속을 다녀온 기분이다. 자주색 목함을 타고 온 3공주의 흔적은 아무 곳에도 없다. 그저 신화는 신기루 같은 이야기일 뿐. 하지만 온평리 연혼포에서 멀리 수평선을 바라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 섬사람들의 바다동경과 그리움에 대한 피안사상, "제주여성의 모태는 해신이었을까?"

삼성혈 모흥혈에서 탄생한 삼신인과 바다 건너에서 들어온 삼공주의 비밀은 신화 속에만 존재한다. 그러나 신화를 재조명하는 것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몫이 아닌가 싶다. 고요 속에 잠들어 있는 서귀포시 온평리 연혼포구, 그리고 3공주가 목함을 타고 들어온 황루알, 신화의 발상지로 다시 깨어나면 어떨까?  

/ 자료 - 오마이뉴스 김강임기자

 

제주도 삼성신화의 전설이 깃든 곳 - 혼인지 

혼인지는 제주도 삼성신화의 주인공인 삼신인과 벽랑국에서 왔다고 전해지는 삼공주가 혼례를 올렸다는 전설이 깃든 신비스런 곳이다.

성산읍 온평리의 마을 서쪽 지경의 숲에는 자연적으로 생성된 500평 정도의 큰 연못이 하나 있다. 그리고 그 남편에는 현무암재의 비(碑)가 하나 세워져 있다. 이곳이 혼인지로, 전설에 의하면 삼성신화에 등장하는 삼신인(三神人)과 삼공주(三公主)가 혼인하였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아득한 옛날 모흥이라고 하는 곳에서 고을나, 양을나, 부을나 라는 삼신인이 솟아 나왔다. 이들은 수렵과 어로를 통해서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다. 하루는 한라산에 올라가 멀리 바라보니 동쪽 바다 위에서 오색 찬란한 목함이 떠 내려와 해안가에 머물렀다.

삼신인이 내려가서 목함을 열어 보았더니. 그 안에는 알 모양으로 된 둥근 옥함이 있고 관대를 하고 자의를 입은 사자(使者)가 있었다. 사자가 나와 옥함을 열어 본 즉, 그 안에 청의를 입은 15∼16세 가량의 삼공주와 우마 및 오곡의 종자가 있었다.

사자가 세 신인에게 말하기를 “나는 동해 벽랑국의 사자로 우리 임금께서 이 삼녀를 낳아 장성하게 되자 배필을 구하지 못함을 안타깝게 여기던 중 서해 높은 산에 세 신인이 있어 장차 나라를 세우고자 하나 마땅한 배필이 없다 하시고, 이에 신(臣)에게 명하여 세 공주를 모시고 오게 하였으니, 마땅히 배필로 삼아 대업을 이루소서”하고는 홀연히 구름을 타고 사라져 버렸다.
세 신인은 나이 순에 따라 세 공주를 각각 배필로 정하고, 이들을 맞아 이 곳 혼인지에서 혼례를 올리고 그 함 속에서 나온 송아지·망아지를 기르고 오곡의 씨앗을 뿌려 태평한 생활을 누렸고다.
이로부터 농경과 목축 생활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당시 세 공주가 담긴 목함이 발견된 곳은 속칭 ‘쾌성개’이며 도착한 해안을 ‘황루알’이라 하는데 지금도 황루알에는 삼인이 바닷가에서 처음 디딘 발자욱이 암반에 아련히 남아 있다고 한다.
또 삼신인이 삼공주를 맞아들인 해안을 연혼포라 하는데 온평리 해안도로를 따라 걷다보면 연혼포라 새겨진 표지석이 눈에 들어온다. 

/ 자료 - 사이버제주

 

해안도로를 끼고 달리다 온평리 지경에 당도하면 해안쪽에 세워진 환해장성 입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여기서 걸어서 5분 정도거리 바닷가에 연혼포 비석이 있다. 황노알은 삼선녀가 상륙하던 무렵의 황금빛 노을을 뜻한다고 한다.

왜구 등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된 제주도 특유의 해안성벽도 이곳 해안도로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 성은 고려 원종 11년(1270년) 김수, 고여림 장군 등이 삼별초의 입도에 대비하여 해안선 300여리에 축성된 성의 일부로 현재 온평리 해안가에는 약 2km 정도 그 모습이 남아있다. 당시 성산포를 중심으로 서귀포까지 이르는 곳곳에 해안성곽이 축성됐었으나 원형이 제대로 보존된 곳은 없다. 대부분 반파 또는 유실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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