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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제주시

제주시 수산리 수산봉

by 구석구석 2022.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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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 애월읍 수산리 산 1-1 / 수산봉

마을 어르신들이 설명하는 설촌의 역사는 700여년 전으로 추정하고 있다. 고려 삼별초가 제주에 들어와 항파두리성을 쌓을 때, 주변 마을 주민들을 동원해 부역을 시켰다는 기록으로 보아 그 주변마을의 실체가 그렇다는 것이다. 기록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수산리가 얼마나 유서 깊은 마을인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가 있다. 

수산곰솔이다. 천연기념물 441호, 400년 전 어느 집 뜰 안에 심었으나 집이 없어진 후에 강씨 선조가 관리했다고 전한다. 수산리 주민들은 마을을 수호하는 수호목이라 믿고 잘 보존해 왔다. 눈이 내려서 덮이면 형상이 백곰 같다고 해서 곰솔이라고 불렀다고 전한다. 장마철에 저수지 수위가 올라가면 늘어진 가지가 물메 닿아서 마치 수산봉에 사는 곰이 물을 마시러 내려온 형상이다. 

제주시내가 다 보인다. 바로 앞에 보이는 수산저수지

물메오름 아래 방대한 수량을 가진 수산저수지는 쓰라린 역사가 잠겨있는 곳이다. 원래 이곳에는 70세대 정도가 옹기종기 모여서 정겹게 살아가던 마을이 있었던 곳이다. 1957년 3월, 중앙정부의 탁상행정은 식량증산을 목적으로 한 농업용저수지를 만들기로 결정한다. 속칭 답다니내를 막고 저수지 공사를 시작해 1960년 12월에 준공했다. 원뱅디에 거주하던 마을 사람들을 비롯해 수산리 주민들의 격렬한 반대에도 당시 자유당정부는 공권력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야비한 수단을 가지고 해당 주민들을 겁박해 반강제로 몰수했다. 마을 어르신들의 회고에 의하면 강하게 항거하는 농민들을 협박하기 위해 4·3 당시의 행적을 물으며 '국가시책에 반대하면 빨갱이 아니냐?'고 윽박지를 땐, 그 트라우마에서 오는 공포감에 도장을 찍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수산저수지 수면에 비친 수산봉을 바라보노라면 피눈물을 흘리며 절규하는 할망들과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섬 제주의 유일한 수몰마을의 역사. 반강제적으로 건설했다는 것이 사실임에도 법적으로 행정적으로 아무 문제없다고 하고 있다.

/자료 - 글 : 한라일보 20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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