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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거 저런거/이것저것

간첩 원정화

by 구석구석 2022. 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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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국가안전보위부 소속 직파 여간첩 원정화 

1974년 함경북도 청진시에서 태어났다.
1988년 함북 부령군 고무산여자고등중학교 4학년 때 학업성적이 우수하여 '이중 영예 붉은기 휘장'을 받기도 했다.

*남파 공작원을 기르는 특수부대에서 열다섯 살이던 1989년부터 훈련을 받던 원정화는 3년 뒤 머리 부상을 당해 의병제대했다.

*그 후 백화점에서 물건을 훔쳐 교화소에 수감됐고 풀려난 후에도 또다시 아연 5t을 훔쳤다.
경제 상황이 좋지 않던 북한에서는 아연을 1㎏만 훔쳐도 총살되는 상황이어서 원정화는 당국에 적발되자 탈북을 감행했다.

*이후 친척의 도움으로 절도 사건을 무마한 뒤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의 공작원으로 포섭돼 다시금 남파 공작원의 길에 들어섰다. 2001년 말 조선족으로 위장해 남한에 잠입했으며 입국 직후 국가정보원에 탈북자라고 허위 자수를 한 후 본격적으로 지령 수행에 착수했다.

*입국 당시 임신 7개월이었던 원정화는 2002년 1월 딸을 낳았는데 아이의 아버지는 중국에서 잠시 동거했던 한국인 사업가였다. 출산 후 경기 시흥시에 대북 수산물무역업체를 차려 2002년 말부터 4년간 중국을 14차례나 드나들며 북한 측으로부터 '지령'을 받았다. 황장엽 씨의 소재를 알려주고 남한의 국가 주요시설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은 물론 대북 관련 정보를 수집하는 요원 2명을 살해하는 것도 그의 임무였다. 이를 위해 북측으로부터 `독침'을 받아두기도 했지만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06935.html

*원정화는 국내로 잠입했을 때 또 남한의 최모씨와 위장결혼을 했으나 얼마 뒤 이혼, 최씨에게 딸의 양육비를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원정화는 이후 경찰관을 만나 교제하기도 했고, 군 장교들에게 접근해 내연관계를 맺으며 군사기밀을 빼돌렸다.

*2005년 9월에는 결혼정보업체를 통해 소개받은 김모 소령을 소개받아 사귀었고, 북측 지령을 받아 김 소령을 중국으로 유인하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김 소령이 “현역 군인이 함부로 해외에 갈 수 없다”며 중국행을 거부해 결국 유인시도는 무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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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정화는 2006년 11월 군부대 안보강연을 하면서 만난 7살 연하의 정훈장교 황모(27)대위에게도 접근했다. 두 사람은 실제 애인관계로 발전했다. 여간첩 성로비의 덫에 걸린 황 대위는 2007년 9월 원정화가 보위부 공작원이라는 사실을 알았으나 신고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밝혀졌다. 황 대위는 원정화가 간첩임을 알고도 군에서 안보 강연을 하는 탈북자 명단을 빼내 원정화에게 건네줬다. 또 자신도 군 안보 강연자로 나서 50여 차례나 강연을 하는 등 `두 얼굴'을 철저하게 감췄다. 그러나 번번이 주요 지령 완수에 실패했고 정작 자신이 살해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에 휩싸여 살고 있는 집에 자물쇠를 무려 4개나 설치한 뒤 3년 전부터는 신경안정제를 복용하기도 했다.

*원정화는 또 애인 황대위와 일본으로 도피할 계획까지 세우기도 했다. 일본 내 탈북자의 소재를 파악하라는 지령을 받고 일본에 간 원정화는 현지 영주권을 얻기 위해 일본 남자와 세차례 선을 봤다.
원정화는 영주권을 얻은 뒤 황 대위를 일본으로 오게 해 조총련에 가입시킨 다음 북한에 데려 가려고 했다.

http://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8/27/2008082701256.html

*일본에서 귀국 직후인 2008년 7월 15일 대한민국의 군경합동 사법당국에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체포되었다. 이와 동시에, 계부 김동순과 한국군 내의 협력자들도 체포되었다. 이 사건으로 황 대위는 파면으로 인한 불명예 퇴역과 동시에 구속 수감되었다.

*그녀는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제1심 재판에서 전향서를 제출하면서 간첩활동을 한 것에 대해 후회한다고 적었다.
수원지방법원은 원정화에게 검찰 구형과 동일한 징역 5년을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원정화의 계부 김동순은 간첩으로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다며 법원으로부터 1심(2009년 2월), 2심(2010년 7월)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김동순은 지난 2003년 12월부터 2006년 1월까지 중국에서 냉동 문어와 옻, 고사리 등 9억7000여만원어치의 북한산 농수산물과 북한 작가의 그림 40여 점(6500달러 상당)을 원정화에게 제공해 공작자금을 마련하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1974년 조선노동당에 가입해 당원증을 발급받은 뒤, 2000년 북한을 떠날 때까지 매달 월급의 2%를 당비로 납부했다고 합수부는 밝혔다.

김동순은 1945년 인천에서 태어난 직후 부모를 따라 월북했으며, 평양미술대학 조각과를 나와 1975년 6월 왕재산대기념비(일명 빨치산 공적비)와 혁명박물관 건설 공사 등으로 공적을 인정받아 국기훈장(2급)을 받았다. 김동순의 처는 현재 함경북도 회령에서 목욕탕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아버지는 북한 해군 중좌로 제대한 후 청진수산사업소 설비부 기사장으로 근무했고, 형은 김일성종합대학을 나온 뒤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일하다 1964년부터 연락이 두절됐다고 한다. 또 그의 이복누나의 딸이 최고인민회의 김영남 상임위원장의 셋째 아들과 결혼했는데 이들 부부는 한때 오스트리아 대사관 외교관으로 근무했다고 합수부는 밝혔다.

원정화는 정부로부터 탈북자 정착금과 생계비로 총 9천여만원을 받았으며 이 가운데 5천500여만원 정도를 북한 청진에 있는 동생의 사업자금으로 대준 것으로 조사됐다. 꼬리가 밟혀 적발되자 그는 그동안의 간첩활동에 환멸을 느낀 탓인지 수사기관의 조사에 비교적 협조적인 태도를 보였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2D&mid=sec&sid1=100&sid2=268&oid=001&aid=0002315587

*한편 북한측은 2010년 4월 조선중앙방송을 통해 원정화 사건을 남측의 날조극이라고 주장한 바 있으며, 이보다 앞선 2008년 9월 조평통(祖平統) 담화를 통해서도 비슷한 주장을 한 바 있다. 특히 조평통 담화는 원정화를 '범죄자', '인간추물'이라 원색적으로 비난하였다.

http://www.yonhapnews.co.kr/politics/2010/04/24/0511000000AKR20100424075100014.HTML?audio=Y

▲1989∼1992 = 원정화 남파공작 훈련. 부상으로 감정제대(의병제대)
▲1998 = 보위부 공작원으로 포섭된 뒤 중국으로 파견
▲1999∼2001 = 연길ㆍ훈춘 등 재중 보위부에서 탈북자ㆍ남한사업가 등 100여명 납치 관여
▲2001.10 = 재중 북한 보위부로부터 남한침투 지령을 받고 조선족으로 위장한 뒤 위장결혼으로 남한 잠입
▲2001.9∼2006.12 = 재중 보위부로부터 수회에 걸쳐 6만달러 공작금 수령
▲2001.10∼11 = 양주ㆍ서울 등 미군기지 6곳 사진촬영
▲2001. 11 = 국정원에 탈북자로 위장자수
▲2002.10∼2006.12 = 14차례 중국으로 출국, 재중 보위부를 방문해 국내활동 상황 보고 및 지령수령
▲2003 = 대북정보요원의 활동내역 파악 및 중국 유인, 남한정보기관과 연계된 남한사업가 포섭
▲2004 = 대북정보요원 2명 살해
▲2005 = 국정원ㆍ하나원ㆍ대성공사 위치 파악, 군장교 포섭 후 군사기밀 탐지 및 중국유인 관여
▲2005. 5∼9 = 경기지방 경찰청ㆍ국군기무사령부 내사 착수
▲2006 = 황장엽 위치 파악,남한 비전향 장기수.부대위치.군장교 인적사항 파악,군 안보강연, 안보강연 탈북자 파악
▲2007. 7 = 황모 대위, 원정화가 재중 보위부에 팩스로 보고한 서류를 폐기하는 것을 도움
▲2007. 9 = 황모 대위, 원정화가 보위부 공작원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미신고 ▲2008. 5 = 황모 대위, 원정화에게 군 안보 강사로 활동하는 탈북자 명단 제공
▲2008. 7.15 = 경기지방경찰청ㆍ국군기무사령부 여간첩 원정화 체포
▲2008. 7.17 = 원정화 `위장 탈북 및 남파' 자백, 구속
▲2008. 7.22 = 수원지검ㆍ경기지방경찰청ㆍ국군기무사령부ㆍ국정원 경기지부 합동수사체제 가동
▲2008. 7.24 = 합동수사체제, 원정화로부터 남파간첩 김모씨ㆍ황 대위 혐의에 대한 진술 확보
▲2008. 7.27 = 원정화 양아버지 김모씨, 황 대위 체포
▲2008. 7.29 = 김모씨, 황 대위 구속
▲2008. 8.27 = 원정화 구속기소, 황 대위 구속기소

 

ㅇ뉴스타파의 여간첩 원정화 조작의 증거들

https://youtu.be/oTY84KNNWWU

경기경찰청에서 보안수사대장으로 근무했던 OOO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는 지난 2008년 발표된 ‘여간첩 원정화 사건’의 최초 수사책임자였다. 자신이 참여한 사건이지만, 그는 이 사건이 조작됐다고 지난 10년간 주장해 왔다. 뉴스타파는 OOO씨와 함께 지난 3년 동안 원정화 사건의 감춰진 진실을 추적했다. 이 과정에서 사건이 공안 기관들에 의해 조직적으로 조작됐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다수의 증언과 증거들을 확보했다. 뉴스타파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하나다. 사법체계가 송두리째 농단된 사건이라는 의혹이 상당 부분 확인된 이상, 이제는 국가가 스스로 사건의 진실을 밝혀야 할 때라는 것이다.

기무사 조사 영상 최초 공개

광주에서 택시운전을 하는 황주용 씨는 원정화 사건의 피해자 중 한명으로 보여진다. 2008년 당시 육군 중위였던 그는 원정화 사건으로 구속돼 3년 6개월간 복역했다. 애인이었던 원정화가 간첩임을 알면서도 신고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황 씨 가족은 최근 청와대에 탄원서를 냈다. 당시 기무사 수사관들의 회유와 협박에 못이겨 허위 자백을 했다는 내용이다. 뉴스타파가 처음으로 공개하는 당시 기무사의 황 씨에 대한 조사 영상에는 수사관들과 정체가 공개되지 않는 인물에 의한 회유와 협박으로 보이는 심문과 황 씨가 이에 굴복해 혐의를 인정해 가는 과정이 그대로 담겨 있다.

여간첩 원정화 사건에 대해서는 그간 수많은 의혹들이 제기돼 왔다. 원 씨가 간첩이라는 유죄 판단 근거들 하나하나가 진실이 아니거나 조작됐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원 씨가 14살부터 간첩교육을 받은 북한 보위부 요원이라거나, 중국에 거주하며 탈북자와 한국인 사업가 등 100여 명을 북송시키거나 납치했다는 내용, 탈북 이후 3번에 걸쳐 북한에 들어가 보위부의 지령과 공작금을 받았다는 내용 등도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특히 원정화가 ‘김정일 장군의 전사’로 자신에게 지령을 내리는 사람이라고 지목했던 의붓아버지가 대법원에서 무죄 선고를 받은 뒤 논란은 더욱 커졌다.

▲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원정화, 김동순, OOO, 황주용

3년여 추적… 조작 의혹을 뒷받침하는 증거들

뉴스타파는 지난 2014년 중국 연길에서 원정화 사건의 핵심 인물인 여동생 김희영(가명) 씨를 만나 2박 3일간 취재했다. 당시 김 씨는 북한을 탈출해 중국에 머물고 있었다. 원정화 판결문에 따르면, 동생인 김 씨는 북한 보위부 간부로 원정화가 탈북 이후 세 번에 걸쳐 북한을 방문해 보위부의 지령을 받을 때마다 동행했고, 공작금을 전달한 인물이다.

뉴스타파는 김 씨와 한 영상 인터뷰를 최초로 공개한다. 김 씨는 인터뷰에서 자신에 대한 설명이 모두 거짓이라고 주장했다. 자신은 보위부와 아무 관련이 없고, 언니인 원정화도 보위부 요원이 아니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수사 기록과 판결문에 나오는 언니에 대한 다른 기록들도 대부분 사실이 아니라고 말했다. 원정화 사건 당시 김 씨는 기록에만 등장할 뿐 조사는 이뤄질 수 없었다. 따라서 원정화 사건의 핵심 인물의 증언이라는 점에서 이 영상 인터뷰는 진실을 규명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 뉴스타파가 영상을 공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김 씨의 인터뷰 내용은 원정화 본인의 고백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 원정화는 공개적으로는 자신이 간첩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의붓아버지를 만나서는 전혀 다른 얘기를 했다. 원정화는 2014년 초, 5년 간의 수감생활을 끝내고 출소한 후 자신이 보위부 고위 간부라고 진술했던 의붓아버지를 찾아가 사죄하며 자신이 간첩으로 조작됐다며 그 과정을 상세하게 털어 놓았다. 당시 의붓아버지는 원정화 본인의 동의 하에 이 내용을 녹음 파일로 남겼다. 뉴스타파는 이 기록 속에 진실이 있다고 판단, 역시 이를 공개한다.

원정화 사건은 이명박 정권에서 발표된 ‘탈북자 간첩 사건’의 원조로 평가 받는다. 이후 발표되는 탈북자 간첩 사건들은 원정화 사건과 판박이처럼 닮아 있다. 이 가운데 일부 사건은 이미 조작 간첩 사건으로 밝혀져 법원에서 무죄가 선고된 상태다. “간첩을 잡은 게 아니라 만들었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오는 이유다. 그런 점에서, 원정화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작업은 지난 정부에서 벌어진 10여 건의 간첩 사건을 둘러싼 조작 의혹을 규명하는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다.


취재: 한상진 신동윤 강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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