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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거 저런거/이것저것

이스터섬 모아이석상 Statues of Easter Island

by 구석구석 2022. 9.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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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新7대불가사의6

       이스터 섬의 인물 석상(Statues of Easter Island) 모아이(Moai)

남미 대륙에서 3700km나 떨어진 이스터 섬은 1722년 4월6일 네덜란드의 야곱 로헤벤 선장이 부활절 아침에 발견했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그곳에 사는 원주민은 ‘큰 섬에 사는 사람’이란 뜻으로 라파누이라 부른다.

광막한 남태평양 한구석에 있어서 잘 보이지도 않는 이 조그만 화산도를 사람들은 '세계의 배꼽' 또는 '하늘을 올려다보는 눈'이라고 불렀다.

섬이래야 제주도 크기의 10분의 1정도이고 해안선의 길이도 60km밖에 안 되며, 주민은 칠레 본토에서 나온 공무원까지 합해 2800명 남짓인데도 세계적인 명소가 됐다. 이곳에 있는 모아이(Moai)라 부르는 특이한 인물석상 때문이다. 모아이는 해안선을 따라 여러 곳에 1000여 개가 흩어져 있는데, 대개 바다를 등지고 있다.

1960년에 아키비아후(제단) 위에 복원해 놓은 이 7개의 석상들은 이스터섬의 가장 유명한 유적이지만 최대 규모의 것으로는 탕아리키에 있는 15개의 석상을 꼽는다. 이 섬의 주민들 은 석상을 세우는 일에 매우 열심이었는데 이를 둘러싸고 씨족들간에 치열한 경쟁이 벌어 졌던 것으로 보인다. 

‘아우’라 부르는 사각의 제단 위에 올려져 있는 모아이는 높이가 4∼8m에 이르고, 무게는 20t을 넘는 게 대부분이다. 그중에서 가장 큰 것은 무게가 90t이고 키는 10m나 된다. 생긴 모양 또한 예사롭지 않다. 이마는 앞으로 툭 튀어나왔고 매부리코에다 입술은 얇고 입은 꼭 다물고 있다. 잘 기른 턱수염에 귀는 어깨에 닿을 정도로 길다. 두 팔은 양 허리에 붙어 있고, 두 손은 배꼽 아래에서 맞잡고 있다. 머리 위에는 검은 몸통과는 달리 붉은색 모자가 씌워져 있다. 어디를 보나 영락없는 백인의 모습이다. 170cm 내외의 키에 몽골리안의 용모, 그리고 검은 머리카락의 원주민 라파누이와는 전혀 닮지 않았다.

섬 한쪽 끝에 자리잡은 라노라라쿠에는 만들었다가 세우려던 곳으로 미처 옮기지 못한 채 버려진 듯한 모아이가 수도 없이 흩어져 있다. 이는 어느 날 갑자기 모아이 제작이 중단됐음을 말해주는 물증일 터. 그것도 외부의 어떤 요인에 의해서. 그렇다면 전쟁이 그런 결과를 만든 것은 아닐까. 

또 하나 궁금한 것은 모아이의 귀가 왜 그토록 길게 만들어졌느냐는 점이다. 이스터 섬과 함께 모아이의 존재를 서방세계에 널리 알린 노르웨이의 인류학자이자 해양학자인 토르 헤이에르달은 “긴 귀는 귀족 또는 지배 계급임을 알리는, 다시 말해서 고귀한 신분임을 증명하는 표시 내지는 상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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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터 섬의 모아이

이스터 섬은 남태평양 폴리네시아의 동쪽 끝에 위치한 조그마한 화산섬으로 넓이가 약 166㎢이고, 칠레(1888년 이후 칠레의 영토가 됨) 앞바다 3800㎞에 위치하고 있다.
남위 27도, 서경 109분에 있고, 아열대의 온화한 기후의 섬이다.

'이스터 섬'의 이름은 이 섬의 발견자인 네덜란드 제독 로헤벤이 1722년 4월 5일, 즉 이스터(부활절) 날에 발견한 것에서 유래한다. 섬사람들은 이스터 섬을 '라파누이(큰섬)' 또는 '테피트오테헤누아(세계의 배꼽)'라고 부르고 있다.

이 조그마한 섬에 유명하게 된 이유는 '모아이(Moai)'라고 불리는 거대한 석상들이 여기저기 서 있기 때문이다. 이 거대한 석상들은 다리가 없고 몸통만 있는 위풍당당하면서도 거북스러운 모습에 머리는 어울리지않게 크고 턱은 힘차게 앞으로 뻗고 귀는 괴상할 정도로 길다.

지금까지 이런 거대한 석상들이 약 1000개 가량 발견되었는데 키가 3.5-4.5m에 달하고 무게가 20t쯤 되는 것이 많다. 그 중에서 가장 큰 것은 무게가 90t이고 키는 10m나 된다.
대부분 서기 400∼1680년 사이에 만들어졌고 11세기경 가장 많이 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1722년 처음으로 이곳을 발견한 네덜란드 제독 야코프 로헤벤은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섬에 키가 10m가 넘는 거대한 군인들이 섬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매우 놀랐다.
제독은 침착하게 배를 섬에 접근 시켜 거대한 군인들이 단순한 석상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제독이 상륙한 다음날 여러 가지 색을 몸에 칠한 원주민의 환영을 받았다.
그들은 보통 키에 붉은 머리의 백인이었다.

1968년 스위스인 다니켄은 주민들과 밀접한 대화를 나눈 결과 이스터 섬에 있는 거석들의 진상을 알아냈다고 발표했다. 그의 말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외계의 지적 생물체가 거석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다니켄은 원주민들이 돌로 된 연장만으로 조각할 수 없을 정도로 거석의 질이 단단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더욱이 거석의 규모가 너무 크고 많았다.

원주민의 숫자가 많지 않았고, 거석을 옮기기 위해 사용했을 통나무를 만들 숲이 주위에 없었다. 이스터 섬의 천연적인 환경은 이런 거석들을 만들기에 부적합하다는 것이다.

다니켄의 책은 세인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그 영향으로 비슷한 류의 책들이 수 없이 발간됐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외계인의 작품이라는 모아이를 보기 위해 이스터 섬을 방문했다. 초호화 유람선의 일정에 이스터 섬이 단골메뉴로 포함됐다.
그러나 이스터섬을 체계적으로 연구 한 학자들은 외계인이 모아이를 만들었다는 설명은 한마디로 책을 팔기 위한 장사속이라고 일축했다. 모아이는 신비에 가득찬 유물이 아니라 이스터섬 주민들이 만들어낸 작품이라는 것이다.

‘이스터섬 명물’ 모아이 석상 수백개, 산불에 훼손 “복구 불가” / 사진=AFP 연합뉴스

모아이

광막한 남태평양 한구석에 있어서 잘 보이지도 않는 이 조그만 화산도를 사람들은 "세계의 배꼽" 또는 "하늘을 올려다보는 눈"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지구상에서 가장 외롭게 고립되 어 있는 이섬의 주민들은 번영하는 복잡한 사회를 이룩했으며, 그 엄청난 크기 때문에 과학 자들도 경탄해 마지않는 거대한 석상들을 섬안에 세워놓았다. 현대과학은 섬 주민들이 이 거대한 석상을 어떻게 제작, 운반했는지를 밝혀 주었다. 그러나 왜 만들었는지는 아직 수수 께끼다. 폴리네시아인들은 뛰어난 항해가들이었다. 그들은 선체가 이중으로 된 커다란 카누를 타고 동남아에서 와서 마침내 이스터섬에 도달했다. 여기서 일부는 페루까지 진출하여 무역을 했는지도 모른다.

광막한 태평양에 떠 있는 조그만 삼각형의 화산도 이스터섬(Easter Island)은 세계 최대 수수께끼 중의 하나다. 광범하게 흩어져 있는 풀리네시아제도의 동쪽 끝에 위치한 이 섬은 피 트케언섬에서 동쪽으로 1600km, 그리고 1888년부터 이 섬의 소유국이 된 서쪽의 칠레로부 터는 3700km 떨어져 있다.

지구상에서 가장 고립되어 있는 절해의 고도 이스터섬은 폴리네시아의 다른 섬들과도 망망 대해를 사이에 두고 격리되어 있다. 해저 화산의 폭발로 생겨난 이 섬도 한때는 다른 섬들 처럼 비옥했던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식물과 동물의 서식이 모두 보잘 것 없어서 파충류도 없고 빵나무도 없으며 또 하천도 없다. 이곳 화산호에는 골풀이 무성하게 자라지만 수목은 별로 없다. 바위투성이의 계곡에는 마른 풀들이 뒤엉켜 노란바위를 덮고 있으며 양떼와 야 생마들이 돌아다니며, 또한 거대한 석상들이 이곳 풍경을 압도하고 있다.

1960년에 아키비아후(제단) 위에 복원해 놓은 이 7개의 석상들은 이스터섬의 가장 유명한 유적이지만 최대 규모의 것으로는 탕아리키에 있는 15개의 석상을 꼽는다. 이 섬의 주민들 은 석상을 세우는 일에 매우 열심이었는데 이를 둘러싸고 씨족들간에 치열한 경쟁이 벌어 졌던 것으로 보인다.

이 거대한 석상들이 바로 모아이(moai)다. 다리가 없고 몸통만 있는 위풍당당하면서도 거북 스러운 모습에 머리는 어울리지않게 크고 턱은 힘차게 앞으로 뻗고 귀는 괴상할 정도로 길 다. 지금까지 이런 거대한 석상들이 약 1000개 가량 발견되었는데 키가 3.5-4.5m에 달하고 무게가 20t쯤 되는 것이 많다.

그중에서 가장 큰 것은 무게가 90t이고 키는 10m나 된다. 그러나 더한층 우리의 상상력을 사로잡는 것이 이 거대한 석상들의 신체적 측면이 아니라 그 석상들이 이곳에 있다는 사실 그 자체다. 이 거대한 걸리버들은 면적이 120km2밖에 안 되는 이 작은 섬나라에서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이 엄청나게 큰 바위들을 다듬 은 사람들은 어디로 갔는가? 이 큰 거석상들을 운반하고 세우는데 사용한 목재들은 어디서 구했을까? 무엇보다도 석상들이 왜 이처럼 많이, 이처럼 크게 만들었고, 도대체 무슨 목적으 로 만들었단 말인가?

칠레 라파누이 시당국은 6일(현지시간) 이스터섬에서 지난 3일 발생한 산불로 피해를 입은 모아이 석상 일부의 모습을 공개했다. / 사진=AFP 연합뉴스

인간이 거주하는 가장 외딴 섬…남미대륙서 4,000km 떨어진 ‘세상의 중심’

갑작스런 돌풍과 함께 비행기가 한 쪽으로 기울어지자 란칠레 보잉 767에 탑승한 사람들 사이에 걱정스런 한숨이 흘러나왔다. 비행기가 여러 번 요동치더니 마침내 마타베리 공항에 거칠게 착륙했다. 11월이어서인지 관광객이 거의 없다. 활주로를 촉촉히 적시고 있는 이슬비와 안데스 산맥에서 불어오는 따뜻한 바람이 나를 반겼다. 산티아고 공항에서 출발한 후 3,780km를 날아 마침내 이곳에 도착한 것이다.

이스터 섬은 오래 전부터 이곳 사람들에게 ‘세상의 중심’이라는 의미의 떼 삐또 오떼 에누아(Te-Pito-O-Te-Henua), 또는 ‘천국을 바라보는 눈’이라는 의미의 마따 끼 떼 라니 (Mata-Ki-Te-Rani)라고 불렸다. 거대한 대양의 한 가운데 떠 있는 바위섬인 이스터 섬은 가장 가까이 위치한 섬이 태평양을 가로질러 4,000km나 떨어져있는 타히티일 정도로 외진 곳이다. 길이 24km, 면적 12㎢인 이 섬은 하늘과 바다 사이에 위치한 외로운 작은 바위섬이다.

네덜란드 출신의 선원 제이콥 데 로게벤이 남미 대륙과 타히티 사이에 작은 화산 섬을 발견한 것은 1722년 이스터 데이 즉 부활절이었다. 서양인에 의해 이 섬이 발견된 날은 이 섬의 원주민들에게 있어서 재앙의 시작이었다. 이후로 이스터 섬의 역사는 단지 비극의 연속이었고, 20세기 중반에 이르러서야 이 섬이 지닌 문화적인 의의를 인정받으며 다시 명성을 얻어가고 있다.

수수께끼 같은 문명

십대 시절, 아버지의 서재에 꽂혀있는 오래된 책 속에서 신비한 ‘모아이’ 사진을 보았던 기억이 난다. 나는 항상 잃어버린 문명에 매혹 당했다. 이러한 주제의 책들은 미지의 것들에 대한 나의 열망을 한층 더 증폭시켰다. 나의 집을 둘러쌓고 있는 바다를 보며 나는 항상 수평선 저 너머로 여행할 수 있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이스터 섬에 도착한 날 저녁 라노카우(Rano Kau) 분화구의 가장자리에 앉아서 미지의 세계를 찾아 끊임없이 여행할 수 있는 내가 얼마나 행운아인가에 관해 생각해보았다.

오늘날까지도 이스터 섬에 살았던 고대 원주민들에 대해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그들은 스스로를 라파누이(Rapa-Nui)라 불렀고, 약 1,600여 년 전 마키스 섬에서 이곳으로 이주했다는 사실만이 알려져 있다. 이들은 롱고롱고(Rongorongo)라 불리는 문자를 발전시켰는데, 이 문자로 쓰여진 글들은 아직도 해독되지 못하고 있다. 10세기부터 이들은 아후(Ahu)라 불리는 성스러운 제단 위에 거대한 모아이(Moai) 상을 세워서 조상들을 숭배하기 시작했다. 이 수수께기 같은 문명은 17세기 섬의 인구가 무려 15,000명에 이르렀을 때 그 전성기를 누렸다고 한다.

갑작스러운 인구 증가 때문이었는지 이스터 섬에서는 이 때부터 부족간의 전쟁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이 때문에 모아이 상들이 파괴되고, 섬 전체의 사회 구조가 흔들리게 되었다. 부족간의 전쟁 후 그나마 남아있던 라파누이 전통의 문화는 유럽인들이 이 섬을 발견하고 발을 디딘 이후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페루에서 온 노예 상인들과 프랑스인 카톨릭 선교사들의 끊임없는 습격이 라파누이 문화에 종지부를 찍게 하고 말았다.

신비한 매력을 간직한 채 세상 끝에 숨어있는 이 이스터 섬에는 현재 2,000여 명의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다. 그들은 각종 미디어로 인한 세계화, 인터넷과 시장경제 등의 현대화 물결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훌륭한 역사적 문화적 유산을 유지하려고 애쓰고 있다.

움직이지 않는 거인의 무덤

나는 자신의 집을 게스트하우스로 개조한 페드로 알란의 집에 짐을 풀었다. 거대한 모아이 상에 대해 알려진 바가 없는 현실에 대해 페드로는 “우리 이스터 섬의 사람들은 완전히 기억을 잃었나 봐”라고 말하며 한숨 지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이스터 섬의 수도이자 작은 마을인 항가로아(Hanga Roa)로 내려갔다. 섬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곳에 살고 있다. 섬의 유일한 항구도 이곳에 위치해 있는데, 쿡 선장의 배가 1722년 닻을 내렸던 곳이어서 ‘쿡의 만(Cook’s Bay)’라고 불린다. 교회 앞에 독립을 원하는 민족주의자들의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다. 이스터 섬 사람들은 그들의 섬을 칠레 정부로부터 되찾아 독립하고자 한다.

페드로의 사륜구동차를 빌려서 섬을 돌아다니며 이 섬이 간직한 미스터리를 탐험해 나가고자 한다. 제일 먼저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이 섬이 간직한 아름다운 색채다. 바다는 짙은 푸른 색이고, 태평양의 강력한 파도가 밀려와 검은 절벽에 부딪히며 새하얀 무늬를 만들어낸다. 사실 파도가 너무 높아 이곳에서 수영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이스터 섬은 2백만 년 전에 화산의 분출로 인해 그 지형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화산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색 먼지투성이 길을 따라가며 나는 곧 라노라라쿠(Rano Raraku) 화산 입구에 도착했다. 이스터 섬 곳곳에 서있는 모아이 상의 주요 채석장이었던 화산 분화구가 지금은 모아이 상의 묘지가 되고 말았다. 돌로 만든 거인은 다양한 방법으로 만들어져 서로 다른 표정으로 그곳에 누워있다. 몇몇 얼굴은 반만 조각이 된 채로 누워 있고, 한 쪽으로는 수많은 모아이 상이 부서져 있는데, 이는 운반 과정에서 파괴된 듯하다.

가장 놀라운 사실은 채석장 가장 아래 지점에 몇몇 모아이 상들은 턱과 코만을 들어올린 채 얼굴이 땅 속에 반 묻혀있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돌로 된 모아이 상의 묘지는 정말 경이롭다. 백여 개의 모아이 상들은 미완성으로 남아있고, 이곳의 많은 모아이 상들은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겨졌다. 나는 항상 사람들이 어떻게 이 거대한 모아이 상들을 멀리 떨어진 곳까지 옮길 수 있었을까 궁금하게 여겼다. 가장 큰 모아이 상은 라노라라쿠에 위치해 있는데, 높이 21m에 100톤이 넘는다고 하니 놀랍기 그지없다. 도대체 왜 모아이 상 만드는 것을 중단한 것일까?

눈부신 파도와 아름다운 해변

붉은 먼지가 나의 콧구멍과 귓속을 가득 채웠다. 지금 나는 아우 통가리키(Au Tongariki)를 향하고 있다. 1960년 칠레에서 발생한 강력한 지진은 큰 파도를 야기시켜 이스터 섬의 통가리키 해변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이 거센 파도가 무려 30톤이 넘는 모아이 상 15개를 떠내려가게 했다고 하니 그 파도의 세기를 짐작할 만하다. 1992년 칠레 출신 고고학자 클라우디오 크리스티노에 의해 복구사업이 착수되었는데, 그 작업만 5년이 걸렸다고 한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 섬의 사람들이 거대한 모아이 상을 어떻게 운반했는지를 상상하기란 힘든 일이다. 얼굴을 아래로 한 채 누어있는 ‘파로’는 운반된 모아이 상 중 가장 거대한 상으로, 무게 82톤에 높이 10m에 이른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이 거대한 파로를 운반하는 데 500여 명이 동원되었다는 것을 어디선가 읽은 기억이 있다.

잠깐 쉬었다 가고자 자리를 잡았다. 구름에 가린 수줍은 햇살이 나무가 거의 없는 황량한 경치에 잠깐 동안이지만 멋진 음영을 만들어 준다. 아나케나(Anakena) 해변은 잠시 동안 쉬어가기에는 가장 이상적인 장소가 아닐까 싶다. 이곳은 이스터 섬에서 가장 폴리네시아적인 아름다운 경치를 지닌 곳으로, 하얀 모래 위에 줄지어 서있는 야자수와 따뜻한 태평양 바닷물의 푸른 빛은 진정한 천국을 연상시킨다. 이러한 멋진 배경 저 너머로 여섯 개의 모아이 상만이 이곳이 폴리네시아의 섬이 아니라 이스터 섬이라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다.

 

자꾸만 가고 싶은 이스터 섬

내가 이스터 섬에서 제일 좋아하는 장소이자 어제 저녁 너무나도 멋진 일몰을 즐겼던 라노카우 화산으로 향했다. 이 화산의 분화구 가장자리에는 오롱고(Orongo)라 불리는 곳이 있는데, 이는 새의 신인 마케마케를 위한 곳이기 때문에 성스러운 장소로 여겨지고 있다. 7월에는 제비갈매기가 오롱고에서 조금 떨어진 모투누이(Motu Nui) 섬에 둥지를 틀기 위해 날아오고, 이 섬의 노인들은 이 새가 낳은 최초의 알을 얻기 위해 시합을 한다. 거대한 절벽 위에서 상어가 득실거리는 바다로 뛰어내려 수영하는 시합에서의 승자는 버드맨(Bird Man)이라고 불리며 새의 신이 환생한 것으로 여겨져 한 해 동안 존경 받는 인물이 된다.

거대한 붉은 태양이 이글거리며 바다 속에 몸을 담그다가 잠겨 사라지고 만다. 어둠이 깔리자 곳곳에 서있는 거대한 모아이 상들이 나에게 무언가를 속삭이는 듯하다. 이 섬을 내일 떠나야 한다는 생각을 하자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러나 나는 언젠가 이곳에 다시 돌아올 것을 알고 있다. 이스터 섬은 언제나 나를 부르고 있으니까.  

/ 글 알랭 베르디에 / 번역 최재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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