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의 도시 '엘도라도'
'엘도라도'란 스페인어로 '금가루를 칠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원래는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 근처에 살고 있는 인디언(칩차족) 마을의 추장을 지칭하는 말로써, 그들은 1년에 한 번씩 추장의 몸에 금가루를 바르고, 뗏목에 황금 보물을 싣고, 그들이 섬기는 호수(구아타비타) 속의 신을 찾아 호수 한 가운데에서 보물을 물속에 던지고, 호수 물로 추장 몸의 금가루를 씻어내는 풍습이 있었다.
16세기 페루와 멕시코를 정복한 스페인인들은 이 신비스런 이야기를 듣고 이 추장을 엘도라도(=황금인간)라 불렀다. 그런데 이야기가 와전되어 엘도라도가 '황금의 도시'로 변했다.
일반적으로 엘도라도는 황금의 도시, 황금의 땅, 신비의 땅, 행운의 땅으로 여겨진다.
1536년 케사다는 전설의 황금의 도시 엘도라도를 찾아 500명의 군인과 85마리의 말, 수 명의 신부들을 이끌고 콜롬비아 보고타 고원의 칩차족 마을에 도착했다. 케사다와 그 일행은 마을을 약탈하고 원주민들을 고문하여 신비로운 풍습에 대한 이야기와 구아타비타 호수의 위치를 알아내었다.
해발 2,700m에 있는 구아타비타 호수엔 인디언들의 촌락만 있고 황금인간은 없었다. 호수 속에 잠긴 황금을 건질 방법이 없었던 케사다는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1580년 보고타 출신의 스페인인 세풀베다는 호수의 준설허가를 받고 8,000명의 인디언을 동원하여 호수의 벽에 배수로를 만들고 물을 빼는 작업을 시작하였다. 많은 어려움 끝에 배수로는 완성되고 물이 쏟아져 나가 수심이 20m나 낮아져 몇 가지 에메랄드와 황금이 발견 되었다. 그러나 안전시설이 완벽하지 못하여 배수로는 무너지고 황금은 다시 호수에 잠기게 되었다.
페루에서 '엘도라도' 유적 발견
페루 동부 원시림지대에서 가옥, 사원, 매장지 등이 완벽히 남아있는 고대 유적이 발견됐다고 페루 일간지 엘 코메르시오가 2000년 6월 2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65평방km 가량의 이 유적은 산 마르틴주에 위치해 있으며 미국 고고학자인 진 서버이와 다른 페루 고고학자 4명에 의해 발굴되고 있다고 전했다. 발굴조사단은 이 도시가 16세기 스페인 탐험가들이 언급했던 엘도라도(황금도시)일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당시 스페인 탐험대들은 8세기 무렵부터 이 지역에 정착한 원주민 차차포야스인들이 15세기말 잉카인들에게 정복되기 전까지 이룬 이 지역의 발달된 문화를 묘사했었으나 그 뒤 유적의 위치가 확인되지 않아왔다.
발굴조사단은 약탈을 우려해 이 유적이 사포소아강 연안에 있다고만 밝혔다.
/ 자료 이상언
엘 도라도
플라톤의 「대화」에 헬라클레스의 기둥(지브롤터) 밖 대해에 아틀란티스라는 황금섬이 있다는 말이 나온다. 황금과 주옥이 자갈처럼 깔려있는 지상낙원으로 행복에 겨운 주민들이 오만해져 신을 믿지 않다가 노여움을 사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했다. 이 기록을 믿고 많은 고고학자와 텀험가들이 대서양 바다 속을 뒤졌지만 신의 노여움이 덜 풀렸는지 아틀란티스는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다.
수중 황금향이 아틀란티스라면 지상 황금향은 엘도라도다. 남미 안데스 산맥의 어딘가에 있을 엘도라도는 1513년 스페인 정복자들에 의해 전파된 것으로 표고 2600m 고원 어딘가에 있는 태양숭배를 하는 인디오 마을이다.황금을 태양신의 금속으로 숭앙하여 황금의 장식물로 온몸을 장식하고, 세간살이가 모조리 황금이며, 건축물에는 금박칠을 했다. 이들을 외적으로부터 보호하는 성스런 호수의 여신에게 황금의 공물을 바치는데 온몸에 칠한 금박을 이 호숫물로 씻고 소중한 금부치를 호수에 던져야만 보호를 받게 된다하여 이 호수의 모래는 금가루이고, 금붙이로 바닥이 산을 이루었다고도 소문이 났다.
이미 1530년대에 독일과 스페인이 엘도라도를 찾고자 자금의 콜롬비아에 수십차례 탐험대를 보냈는데 미로에 빠져 돌아오지 않거나 대원들이 인디오에 살해당하는 등 실패를 거듭했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 엘도라도가 오르자 탐험은 과열하여 적어도 1백 수십차례 탐험이 진행돼 온 것으로 기록돼 있다. 그로써 황금의 호수는 실재한 구아다비타호수로 판명됐으며, 인근 동굴 속에서 정교한 순금제의 뗏목조각품이 발견되고 호수 바닥흙에서 약간의 금과 에메랄드가 발견되기도 했다. 개화기 외국인의 견문기에 한국은 길바닥에 금이 노출돼도 캐지 않는 나라라 하여 「동양의 엘도라도」로 부르기까지 했던 것으로 미루어 남미의 엘도라도도 과장됐을 수도 있다.
그 엘도라도로 추정되는 황금도시를 페루 동부의 정글 속에서 미국과 페루 고고학자들이 발견했다고 AP가 보도했다. 문헌상으로는 확률이 높은데 황금과는 거리가 있어 엘도라도의 꿈은 꿈으로 남아있을 것 같다는 것이다.
/ 조선일보, 이규태코너
마노아(Manoa)라는 황금도시
아마존에는 엘도라도와 파이치치 말고도 황금 도시가 또 있다. 페루에 예부터 전해오는 전설 가운데,남아메리카 한가운데 아마존 밀림에서 아마존 강을 따라 페루로 왔다가 잉카군에게 쫓겨간 챙카족 이야기가 있다. 그 부족의 수도가 마노아(Manoa)라는 황금도시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75년 전 온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포셋 탐험대 사건이 있다. ‘잃어버린 옛 도시’를 찾으러 아마존 밀림으로 들어갔다가 사라진 20세기 탐험 사상 최대의 미스터리이다.
1920년 가을. 영국의 육군 대령이자 이름 난 탐험가인 코로넬 퍼시 포셋의 집에 한 친구가 찾아왔다. 친구가 내민 작은 물건을 무심코 받아든 포셋은 진저리를 치며 그것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원시인 같은 모습을 새긴 그 자그마한 석상을 손에 쥐자 갑자기 전류가 흐른 듯이 찌릿하며 온몸이 떨렸던 것이다. 석상 높이는 기껏 25㎝. 가슴에는 이상한 글자 같은 것이 새겨져 있었다.
포셋이 알 만한 사람을 모두 찾아다녀 보았지만 그 석상에 관해 무슨 말이든 해줄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이상한 조각. 포셋은 문득 그것이 먼 옛날의 수수께끼 왕국에서 만들어졌을지 모른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얼마 뒤 그는 덴마크의 룬트 박사가 쓴 남아메리카 지리학 보고서에서 흥미 있는 기록을 찾아냈다.
‘…까마득한 옛날 지구의 대륙들이 모두 바다에 잠겼을 때 브라질 지역만 기적같이 남아 있었다. 그러므로 아마존 분지는 제일 오래된 원시 대륙이라고 할 수 있다.…’
1921년 6월 포셋은 브라질로 건너가 여러 가지 기록을 조사했다. 어느 날 그는 도서관의 서고에서 케케묵은 책을 발견했다. ‘알바레스의 브라질 탐험’이었다.
‘1516년 포르투갈의 알바레스가 폭풍에 휘말렸다가 기적같이 살아났다. 그가 상륙한 곳은 브라질의 사라도르였다. 그는 바닷가에서 야만인에게 붙잡혔으나,추장의 딸과 결혼함으로써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세월이 흘러 그의 아들 무리베카가 아마존 깊숙한 곳에서 엄청난 금광을 발견했다.
무리베카의 아들 디아스 때에 이르러 금광 소문은 포르투갈에까지 퍼졌다. 포르투갈 왕은 온갖 수단을 써서 금광을 빼앗으려 했으나,디아스는 끝내 금광 있는 곳을 대지 않고 죽었다. 왕은 금광을 찾으려고 두번이나 탐험대를 보냈으나 3,000명 중에 살아 돌아온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포셋은 또 다른 책을 찾아냈다. 그것은 ‘옛 도시의 유적에 관한 보고서’라는 제목이 붙은,1753년에 만든 책이었다.
‘1743년 포르투갈의 프란시스코가 디아스의 금광을 찾으러 브라질에 건너왔다. 5년 동안 중부 브라질을 헤매던 탐험대는 어느날 높은 벼랑에 서게 되었다. 그들의 눈 아래에는 놀랍게도 어마어마한 도시가 펼쳐져 있었다. 탐험대가 성 안으로 들어가보니 그 큰 도시에는 단 한 사람의 그림자도 없었다.
특이한 것은 궁전으로 보이는 건물벽이 온통 알 수 없는 글자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프란시스코는 그 글자들을 베껴 부랴부랴 그곳을 빠져나왔다.
포르투갈로 돌아온 프란시스코는 1,400명의 탐험대를 만들어 다시 버려진 도시로 갔다. 그런데 믿을 수 없게도 그 많은 탐험대원이 밀림에서 자취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남은 것은 프란시스코가 처음에 베껴온 수수께끼 같은 문자뿐이었다.
보고서에는 그 알 수 없는 글자들이 나와 있었다. 그것을 본 포셋은 너무나 놀라 한동안 넋을 잃고 말았다. 프란시스코가 사라진 도시에서 베껴 왔다는 그 글자들은 바로 포셋이 얼마전 친구로부터 얻은 석상의 가슴에 새겨진 글자와 똑같았다. 포셋은 서둘러 브라질 정부에 발굴 허가를 신청했다. 그러자 브라질 관리는 손을 저으며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그 도시는 유령도시입니다. 우리 정부도 78년 전에 그 보고서를 보고 탐험대를 보냈는데 살아 돌아온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포셋의 마음은 더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탐험대를 만들어 리우데자네이루를 떠났다. 그가 아마존의 한 샛강을 뗏목으로 거슬러올라 아마존 분지로 접어들 무렵 신문에 그 사실이 보도됐다.
포셋은 훌륭한 탐험가이자 측량기사였으므로 누구도 그가 성공하리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포셋은 한 이름없는 폭포에서 그가 탄 뗏목이 떨어지는 바람에 겨우 목숨만 건져 돌아왔다. 그런데 성과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돌아오는 길에 어느 마을에서 밀림 속에 사람이 살지 않는 도시가 있다는 말을 들었던 것이다.
1925년 3월 포셋은 두번째 탐험에 나섰다. 대원 30명과 말 20마리가 동원된 꽤 큰 탐험대였다. 그는 아마존 강의 갈래인 타파조스와 싱구 강 상류의 마투그로수라고 불리는 대밀림 한복판에 잃어버린 도시가 있다고 생각했다. 포셋이 쿠야바를 떠난 지 두 달쯤 되었을 때다.탐험대원 가운데 토박이 인디오들이 더 못 가겠다고 우겼다.그들은 옛 도시를 탐험하면 악마로부터 저주를 받는다며 막무가내로 버텼다.포셋은 할 수 없이 열사람을 돌려보내며 그들 편에 편지를 보냈다.
‘나는 지금 남위 11도 43분,서경 54도 53분을 지나고 있습니다.모든 일이 별 탈 없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어느 탐험보다도 큰 사명감을 느끼고 있으므로 기어코 옛 도시를 찾고 돌아가겠습니다.기쁜 소식을 기대하십시오. 1925년 5월25일 포셋.’
이 편지가 포셋이 문명 세계에 전한 마지막 소식이 되었다.그 뒤로 포셋 탐험대를 본 사람은 없다.영국 신문들이 이 사건을 크게 다루고,브라질 정부가 수색대를 다섯 차례나 보냈지만,감쪽같이 사라진 탐험대는 어디에도 자취를 남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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