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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서울 한강

서울 종로-계동 재동초교주변

by 구석구석 2011. 6.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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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서동 206-2 관상감 관천대

사적 제296호 / 1982년 3월 26일 지정 

문화재청 042-481-4650

 

안국 3호선 3번출구 도보 3분거리 (창덕궁옆 현대사옥앞)

 

조선시대 기상대나 천문대인 관상감이 있던 자리에 설치한 것으로, 흔히 소간의대(小簡儀臺)나 ‘별을 관측하는 대’ 라는 뜻에서 첨성대(瞻星臺)라고 불렀다. 세종 16년(1434)에 설치된 서운관의 관측대로서, 서운관은 천문, 지리, 측후, 물시계와 관련된 일을 관장하는 곳이었다. 서운관은 조선 세조 12년(1466)에 관상감, 고종 31년 (1894)에 관상소, 1907년에 측후소로 바뀌어 현대식 시설을 갖추기 시작할 때까지 업무를 수행했던 곳이다. 


관천대는 다듬은 돌을 높이 4.2m, 가로 2.8m, 세로 2.5m 크기로 만들었고, 그 위에 직사각형의 돌로 난간을 둘러 놓았다. 그리고 지금은 없어졌지만 원래는 대 위로 올라가는 돌계단이 있었다. 경주에 있는 신라의 첨성대, 개성 만월대의 고려 첨성대, 서울 창경궁 내의 관천대와 더불어 우리나라 천문 관측역사의 발전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이다.

 

 

계동 130 인촌고택

현대사옥을 지나 중앙고등학교를 방향 오른편 대동정보산업고로 꺾어지는 골목에 있다. 

 

3·1운동을 막전막후에서 지원한 인촌 김성수 선생의 고택. 종교계 대표들이 모여 거사를 논의했다. 당시 중앙고보의 주인이었던 김성수가 서울에 올라와 살던 집으로, 1919년 2월 11일 최남선의 편지를 받고 급거 상경한 이승훈이 현상윤의 중개로 중앙고보 교장 송진우와 역사적인 만남을 가진 장소이다.
인촌 김성수 선생은 일제시대 3·1운동의 산실인 보성전문학교를 운영했다. 1951년 2대 부통령에 취임하였으나 이승만(李承晩) 독재에 반대하여 이듬해 5월 사임하였다.

 

계동 140-17 아리랑하우스 010-2002-8657 www.ariranghouse.com

객실 수 _3개 객실 요금 _평일 30만원, 주말 35만원(기본 10명 기준)

북촌 한옥마을에 위치한 아리랑하우스는 많은 게스트 하우스들 가운데서도 큰 인기를 얻어 최근 2호점을 오픈했다. 미국에 사는 친척이 사둔 한옥이 일 년에 한두 번만 사용되고 계속 비어 있는 것이 안타까워 지인들을 대상으로 대여하기 시작한 것이 2009년, 1호점의 시작이었다. 별다른 홍보 없이 알음알음 찾아오는 사람들에게만 공개하던 것이 블로그에 소개되고 외국 호텔 사이트에 등록되면서 점차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그 인기에 힘입어 2011년 3월 2호점을 오픈했다.

 

아리랑하우스의 가장 큰 매력은 한옥 한 채를 통째로 빌릴 수 있다는 점. 게스트 하우스야 많지만 방 하나가 아닌 집 전체를 빌릴 수 있는 곳은 아리랑하우스가 유일하다. 프라이빗하게 장기간 머물고 싶어 하는 외국인들이 주로 찾아오는 것은 물론, 마당에서 바비큐 파티도 즐길 수 있어 국내의 젊은 사람들도 자주 찾는다.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없고 인원 제한 등 제약이 많은 호텔에 비해 훨씬 자유롭기 때문에 특별한 추억을 남길 수 있는 새로운 파티 장소로 떠오르고 있는 것.

 

집주인이 애정을 갖고 직접 고른 소품들과 벽지도 눈여겨볼 것. 이곳을 찾는 외국인들이 감탄하는 한글 벽지에는 김소월의 산유화가 적혀 있다.

 

덕분에 주말이면 도심 속에서 한옥의 정취를 즐겨보려는 20~30대 젊은 파티 피플들의 예약이 줄을 잇는다. 한옥에 대한 애정이 남다른 집주인 김자은씨는 한옥의 특성상 문창살 하나만 부서져도 보수하기가 힘든 만큼 한옥에 묵기로 결정한 사람들이라면 세월이 쌓인 공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와 문화를 지키고자 하는 주인 의식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계동81 봉산게스트하우스 02-766-6649 www.bongsanhouse.com

입실 오후 1시, 퇴실 다음 날 오전 11시 객실 요금 _5만~11만원(조식 포함)

 

서울 최대의 한옥 밀집 지역인 북촌 한옥마을의 계동길, 나지막한 담장을 따라 안쪽으로 10여 분 들어가면 자개로 장식한 대문이 달린 한옥 한 채가 눈길을 끈다. 과학기술대학 시각디자인과 나성숙 교수가 2010년 5월 문을 연 봉산게스트하우스. 시각디자인을 전공한 그녀가 전통으로까지 영역을 확장한 건 7년 전이다. 우리의 전통문화와 그 가치에 매료된 그녀는 한옥, 옻칠 등 우리의 것에 대해 하나씩 배워나가기 시작했다.

1.이곳에 머무는 사람 중 원하는 사람은 나성숙 교수의 작업실인 봉산재에서 옻칠 체험을 할 수 있다. 1일 옻칠 체험 비용은 2만원.  2.7개의 방에는 집주인의 취향이 담긴 가구들이 놓여 있다. 3. 목화솜으로 만든 한국 전통 침구가 놓여 있는 방 풍경. 4.봉산게스트하우스 전경. 마당에는 티 타임을 즐길 수 있는 테이블이 놓여 있다.

전통에 대한 관심의 연장선상에서 구입한 이곳 봉산게스트하우스는 문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비워 있는 날이 거의 없을 만큼 반응이 좋다. 이곳의 차별점은 체험을 넘어 옻칠 등의 전통문화 수업을 제대로 받을 수 있다는 점. 봉산게스트하우스와는 별도로 계동 입구에 위치한 아담한 크기의 한옥 봉산재는 나성숙 교수의 작업실이자 동네 사랑방인데, 게스트 하우스에 머무는 사람들에겐 언제나 문이 열려 있다. 옻칠과 한지 공예 등의 문화 체험은 외국인뿐 아니라 전통문화에 관심 있는 내국인들까지도 매료시키기 충분하다. 옻칠박물관, 자수박물관 등 주변에 볼거리가 많다는 점도 큰 장점.

 

계동 98번지 락고재 02-742-3410~1 http://www.rkj.co.kr/(한/영/일)

지하철 3호선 안국역 2번 출구로 나와 300m 직진한다. 가회동사무소 길 건너편 골목으로 들어가 100m.(재동초등학교 후문) 대나무 숲으로 조성된 입구가 보인다/24시간 /추석과설 휴무

 

 

락고재는 전통 한옥에서 숙박을 하면서 전통 음식, 음악, 춤 등을 경험할 수 있는 전통문화 체험장소이다. 중앙 마당을 중심으로 ㅁ자형으로 구성된 락고재는 과거 양반들의 풍류를 그대로 옮겨 놓았다. 기와담장, 정자, 연못, 장독대, 굴뚝은 물론 한옥 사이사이 곁들여진 소나무, 대나무가 자연미를 더해 전통미를 살렸다. 또한 한국의 전통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데, 전통음식과 다도는 물론 대금, 판소리 등의 국악공연도 관람할 수 있다. 단, 락고재는 5-9인이 집 전체를 통째로 빌려 사용하며, 가격은 호텔급과 비슷하다.

 

안방 및 건넌방은 2인기준으로 250,000원이며 별채는 4인기준하여 450,000원이며 여기에는 아침과 저녁식사, 찜찔방 가격이 포함되어 있다. 식사는 메뉴에 따라 15,000~50,000원이다. 공연은 20~30분간 하는데 가야금병창 1인에 200,000원~250,000원이며 판소리고수 1인이 포함되면 400,000원~500,000원임.

숙박예약은 일주일 전에, 식사예약은 2일전에 해야함

 

 

 

자랑스런한국음식점 가회점 궁연 02-3673-1104 www.goongyeon.com

가회동 170-3/12:00 ~ 15:00 / 17:30 ~ 21:00/대표메뉴-진어만찬 9만2천원/예약제

안국역 사거리에서 우회전 후, 헌법 재판소지나 100m 직진, 재동 초등학교 사거리에서 직진 후 150m 전방 좌측 북촌미술관옆에 위치  

 

‘궁궐의 잔치’라는 뜻을 지닌 ‘궁연’은 국가 중요 무형문화재 제38호인 황혜성家의 제3대 기능보유자인 한복려 선생(TV 드라마 ‘대장금’ 음식 자문)이 지도하는 궁중음식 전문점이다. 왕에게 올렸던 수라를 절제 있게 다듬어, 정갈하고 격식 있는 상차림으로 고객들께 고유한 한국음식의 정수를 선보인다.

 

자랑스런한국음식점 종가 02-764-7303 www.jonggaseoul.com

재동 27-1번지 / 11:30 ~ 14:00 / 18:00 ~ 22:00 / 대표메뉴-제육, 편육 / 3호선 안국역 2번출구 죄회전 헌법재판소 지나 30m

 

육젓과 서울식 보쌈김치를 곁들인 제육과 편육, 김에 싸먹는 우족편, 전통 너비아니 등에는 종가의 자부심을 지켜온 세심한 정성이 담겨 있다. 밑반찬으로 나오는 여러 가지 장아찌는 아작아작 씹히는 맛도 일품이고 오랜 숙성 과정을 거쳤음에도 원재료 고유의 향이 남아 있다.

 

계동 43 유심사

 

지하철 3호선 안국역 3번출구 앞 현대사옥 왼쪽 계동길 약 800m 지점 우물 앞

 

유심사는 만해 한용운 스님이 1918년 9월 월간지 "유심"을 창간하고 제3호까지 발행한 곳으로 만해 한용운 스님의 거처로 사용되던 곳이다. 3.1만세운동을 위해 천도교 측과 기독교 측의 합작 교섭을 마무리한 최린이 한용운을 방문해 불교계의 참여를 허락받았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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