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해성·청마부대 ⑤ 남정옥 예비역 대령 (해성부대 4진 단장)
고준봉급 상륙함 4척 해상작전 지원
출항 전 강도 높은 교육·훈련 반복
1~3진에서 노하우와 팁 전해 받아
해협에선 테러 대비 각국과 정보 공유
변덕스러운 날씨 맞서 물자 지켜내
해성부대(해군수송지원단)는 2001년 아프가니스탄에서 펼쳐진 다국적군의 항구적자유작전에 동참해 연합 수송지원 임무를 수행했다. 2001년 12월 18일 청마부대(공군수송지원단)와 함께 창설해 같은 시기 임무를 수행했다. 대테러작전을 위한 물자·장비 수송과 인도적 구호·지원 활동이 주 임무. 청마부대와의 차이는 임무 공간이 각각 공중과 해상이라는 점이었다. 2003년 9월 1일까지 약 1년 9개월간 총 17회에 걸쳐 해상 수송지원하며 국제평화와 지역안정에 힘을 보탰다.
△ 당시 해성부대 작전에는 고준봉·비로봉·향로봉·성인봉 등 고준봉급 상륙함(LST) 4척이 참여했다. 사진은 항해 중인 고준봉함의 모습. 국방일보 DB
남정옥 예비역 대령(당시 중령)은 당시 해군 고준봉함 함장으로 해성부대 4진을 이끌었다. 직전까지 구축함 부장으로 근무했고, 해성부대가 편성되면서 고준봉함으로 자리를 옮겨 해성부대 4진 단장에 임명돼 작전에 투입됐다.
부대 임무는 명료했다. 해상작전 지원. 다국적군의 대테러작전을 지원해 해상에서 상륙함으로 물자·장비를 수송하고 인도적 지원·구조를 하는 일이었다. 국제사회 일원으로서 평화협력에 참여하는 책무였다. 부대는 고준봉함을 포함해 비로봉함, 향로봉함, 성인봉함 등 4척의 고준봉급 상륙함(LST)이 각자 진을 이뤄 작전을 수행했다.
“지역안정과 평화를 위한 임무였습니다. 그와 같은 임무는 부대명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해성(海星)은 ‘별을 보고 바다를 건너 세계 평화에 기여하자’는 뜻이었으니까요. 더욱 넓은 바다에서 우리 해군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해성부대의 수송지원 경로는 청마부대와 다르지 않았다. 싱가포르에서 물자·장비를 실은 뒤 바다 건너 디에고 가르시아로 향했다. 싱가포르는 다국적군의 물자 집결지였고, 디에고 가르시아는 인도양 영국령 섬으로 다국적군 기지가 있었다. 부대는 싱가포르와 디에고 가르시아를 정기적으로 오가며 수송지원을 이었으며, 부정기적으로 필리핀과 괌 등 일대 해역에서 부여된 작전을 펼쳤다.
남 예비역 대령과 4진 부대원들은 이를 위해 출항 전 강도 높은 교육·훈련을 반복했다. 해외 임무 수행에 앞서 다양한 상황에 대비하고자 했다. ‘예상치 못한’ 일이 아예 발생하지 않도록 모든 상황을 가정해 대응하는 연습을 했다. 앞선 1~3진으로부터는 경험으로 얻은 세부적 노하우와 생생한 팁을 전해 받았다.
그렇게 모든 준비를 마치고 드디어 출항했다. 그런데 수일을 걸려 해성부대 4진이 처음 도착한 지역은 싱가포르가 아닌 동티모르였다. 당시 동티모르에서 평화유지활동(PKO)을 수행 중인 상록수부대에 보급물자 수송 임무를 받은 터였다. 싱가포르를 향하는 중간에 들른 기항지였다. 고준봉함은 동티모르 오에쿠시 항구에 첫 닻을 내렸다.
“현지에 도착해 상록수부대원들을 마주했는데, 저희를 반가워하는 모습에 기뻤습니다. 상록수부대의 평화유지활동에 필요한 이런저런 물자·장비를 공수했어요. 그중 김치를 비롯한 식량 보급에 장병들이 크게 좋아했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가 수송한 재보급 물자들이 상록수부대의 지속적인 활약에 보탬이 될 것을 생각하니 뿌듯함이 들었습니다.”
사실 남 예비역 대령은 동티모르가 처음이 아니었다. 고준봉함 출항 전 부대원 일부와 동티모르를 먼저 찾아 현지 상황을 확인했었다. 상록수부대 및 현지 정부 관계자 등과 업무협의를 하고, 함의 경로와 정박지 등의 해상·해저 지형을 파악했다. 완벽한 작전을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출항 전 많은 교육과 훈련에 매진하며 충분한 준비를 했습니다. 물론 아무리 준비한다고 해도 막상 현장에서는 또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모를 일이었지만, 훈련만이 사건·사고 없는 임무 완수를 만들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수많은 정보를 기억하고 다양한 가정 상황을 머릿속에 그리며 모든 상황에 대처하고자 했습니다.”
동티모르에서 보급 수송을 마친 고준봉함은 다시 싱가포르로 향했다. 고준봉함은 4개월여 뒤 임무를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 한 번 더 동티모르를 찾았다. 상록수부대에서 본국으로 보내는 물자·장비를 수송하기 위해서였다.
싱가포르에서 다국적군의 물자·장비를 실은 고준봉함은 목적지인 디에고 가르시아로 향했다. 남 예비역 대령은 고준봉함이 정기항로 작전구역에 들어서자 긴장의 고삐를 더욱 조였다. 언제 어디서 위협 상황이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좁은 해협에서는 테러에 대비해 각국 부대들과 정보를 공유하며 운항 간 상시 협조체계를 유지했다. 또 넓은 바다에서는 변덕스러운 해상 날씨에 주시해 뜨거운 기온과 높은 습도, 험악한 파도와 태풍에 맞서 항해 장비와 수송 물자·장비를 오롯이 지켜냈다.
/ 국방일보 서현우 기자 < lgiant61@dema.mil.kr >
아프가니스탄 해성·청마부대 ⑥ 남정옥 예비역 대령 (해성부대 4진 단장)
혹시 모를 테러 위협 대비태세 갖춰
원거리 항해와 고온·고습 장기 노출
상륙함에 지속적 정비소요 일으켜
항구 도착해 휴식 취하는 시간에도
자발적으로 상태 살피고 정비·수리
해성부대(해군수송지원단)는 2001년 다국적군 항구적자유작전의 해상 수송지원을 진행하며 차질 없이 임무를 완수했다. 원거리 해상 수송이라는 도전과 작전구역에서 발생하는 여러 위협을 극복하며 성과를 이뤘다. 이를 통해 지역의 안정과 국제평화를 위한 협력에 힘을 보탰다.
△ 당시 다국적군 연합 작전에 참여한 해성부대 상륙함(LST)들은 완벽한 물자·장비 공수지원을 펼쳤다. 사진은 과거 해성부대 임무에 참여했던 상륙함들이 화물을 선적하는 모습. 국방일보 DB
해성부대의 임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싱가포르와 디에고 가르시아를 잇는 수송지원에서의 모든 시간·공간이 도전이자 위협이었다. 지원부대였지만 대테러작전에 동참한다는 이유로 테러집단의 공격 표적이 될 수 있었다. 또 작전지역의 기후 특성인 높은 기온과 습도, 갑자기 쏟아지는 세찬 비와 집채만 한 파도는 안전한 항해에 문제가 될 수도 있었다. 당시 고준봉함 함장으로 해성부대 4진을 이끌었던 남정옥 예비역 대령(당시 중령)은 위기 극복의 원동력으로 부대원들의 팀워크를 꼽았다.
“결과만 놓고 보면 테러단체에 의한 위협은 없었지만, 당시 임무를 수행하면서는 항상 대비태세를 갖췄습니다.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요. 그와 같은 대비태세가 있었기 때문에 사건·사고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또 부대원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해줬기에 부대가 유기적이고 체계적으로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해성부대는 고준봉·비로봉·향로봉·성인봉의 해군 고준봉급 상륙함(LST) 네 척이 각자 진을 구성해 로테이션 방식으로 작전에 참여했다. 각 진은 비슷한 수준의 병력을 구성해 배치됐는데, 항해 중에는 자체방어능력 구축을 최우선으로 뒀다. 이 때문에 부대는 항해 및 물자·장비 선적·하역에 필요한 승조원을 비롯해 군의·통역 장병, 특수전전단 대테러요원, 해난구조요원 등으로 구성됐다.
“임무 완수는 부대원 모두가 한 팀으로서 제 역할을 해줬기에 가능했습니다. 특히 좁은 해협을 지나갈 때는 대원들이 더욱 긴장했습니다. 넓은 바다와 비교해 테러 위협 요소가 더욱 많기 때문입니다. 공중·해상·수중 등에서 발생 가능한 모든 상황에 대비했습니다.”
테러세력으로부터의 위협만큼 남 예비역 대령과 부대원들을 힘들게 했던 것은 급변하는 기상이었다. 바다 날씨는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법. 대양 한가운데서 갑작스럽게 폭풍우라도 만나면 피양(避洋·항해 중인 배가 기상여건의 악화로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세차게 내리는 굵은 비와 커다란 파도는 부대원들에게 큰 스트레스였다. 아울러 원거리를 항해하며 장기간 높은 기온·습도에 노출돼 함의 지속적인 정비 소요를 일으키기도 했다.
이에 부대원들은 항구에 도착해 물자·장비를 싣거나 내리면서 끊임없이 항해 장비·부품을 확인했다. 다음 항해를 위해 기본적인 휴식을 취하면서도 자발적으로 함의 상태를 살피고 선제적 정비·수리를 이어갔던 것. 주체적인 의식을 갖고 책임감 있게 행동하는 모습이었다. 또 부대원들 스스로 안전한 항해를 하며 연합작전의 임무를 완수하려는 강한 의지이자 헌신이었다.
“대양에서의 파도는 연안과 차원이 다릅니다. 배가 크게 흔들릴수록 부대원들의 체력과 정신력은 점점 약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부대원들은 처음 경험하는 대양에서의 해외 임무에 힘들 법도 했지만, 묵묵히 최선을 다했습니다.”
때로는 어선들도 위협이 됐다.
“야간에 작전구역 해역을 통과하는데 조업 어선들을 마주한 것이었어요. 선체에 등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어두컴컴한 어선들이 함정의 항해 경로에 불쑥 나타나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또 다른 지역에서는 어선 수백 척이 수로상에 촘촘히 모여 조업하고 있어서 지나가는 데 애먹기도 했습니다. 하마터면 사고가 날 수도 있었어요. 하지만 어민들을 보호하면서 그들을 피해 이동하며 겨우 빠져나갈 수 있었습니다.”
한 번은 항해 경로 변경이 가슴을 쓸어내리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경로상 큰 바다를 통과해야 했는데 기상이 심상치 않았다. 파도가 더욱 심해진다면 자칫 위험한 상황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바다 한가운데서 위급 상황 발생 시 피양 장소도 마땅치 않아 보였다. 남 예비역 대령은 상급부대에 보고해 상황을 설명한 뒤 인근의 작은 해협으로 경로를 수정했다. 가능한 범위였다. 아니나 다를까. 기존 경로에 폭풍우가 몰아닥친 것이다. 남 예비역 대령의 신중한 결정이 빛을 보는 순간이었다. 함정은 무사히 바다를 건넜고 안전하게 목적지에 이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안전이 중요합니다. 최대의 안전을 확보한 상태에서 최선을 다했을 때 최고의 성과를 낸다고 믿었습니다. 위기와 갈등의 순간마다 부대원들의 이성적이고 냉철한 판단이 모여 만족스러운 결과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 국방일보 서현우 기자
아프가니스탄 해성·청마부대 ⑦ 남정옥 예비역 대령 (해성부대 4진 단장)
1년 9개월여간 연인원 820여 명 참여
군수·재해구호물자 약 5300톤 수송
국외·연합 해상작전 경험 쌓고
원거리 대양 항해 자신감 얻어
해성부대의 작전 수행에는 고준봉급 상륙함(LST)이 투입됐다. 고준봉급 상륙함은 240여 명의 병력과 12대의 전차 수송이 가능한 국산 함정으로, 헬기 이착륙이 가능하고 공기부양상륙정도 탑재할 수 있다. 또 바닥이 평평하고 함수에 출입구가 있어 접안·부두시설 없이도 신속한 병력 전개와 물자 하역이 가능하다. 2001년 아프가니스탄에서 펼쳐진 다국적군의 항구적자유작전에서는 완벽한 해상 수송지원으로 연합작전의 시작과 끝을 책임졌다.
△ 해성부대의 다국적군 물자·장비 수송지원은 성공적인 연합작전의 바탕이 됐다. 사진은 당시 다국적군 작전에 참여한 바 있는 해군 상륙함(LST) 성인봉함이 항해 중인 모습. 국방일보 DB
당시 해성부대 4진 단장이자 고준봉함 함장이었던 남정옥 예비역 대령(당시 중령)은 작전 기간 부대원들의 사기 진작에도 신경 썼다. 부대원들의 사기가 높아야 까다롭고 어려운 해외 임무를 완벽히 수행할 것으로 믿었다. 매일같이 강도 높은 긴장감을 유지하는 부대원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를 주고 싶었다. 이를 위해 부대원들과 수시로 직접 마주해 이야기 나누며 애로사항을 듣고 해결했다. 부대원들의 안전을 먼저 생각했으며, 각 목적지에 도착해서는 부대원들이 잠시라도 휴식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또 기회를 만들어 연합 임무를 함께 하는 미군 군수전대 장병들과 친선 교류 활동도 진행했다. 부대원들이 국제감각을 익히며, 대한민국 군인으로서 연합 임무를 수행한다는 자부심을 느끼도록 했다.
“여러 사기 진작 활동 중 위성 통신장비를 이용해 국내 가족들과 전화 통화할 수 있도록 한 점이 아무래도 장병들에게 큰 위로가 됐습니다. 국내 기지에서 출항해 수개월을 바다에서 보내야 하는데 가족들이 얼마나 그립겠습니까. 약 20년 전 휴대전화기가 막 보급되기 시작한 때이지만 이를 갖고 작전에 참여한 부대원은 없었고, 함 내에 공중전화도 없었어요. 부대원들의 사기를 높이면서 더욱 열심히 근무하도록 만든 일이었습니다.”
일정 시간과 규칙을 정해 진행된 배려였는데, 부대원들은 가족과 짧은 전화 통화에 눈물을 글썽이거나 커다란 웃음을 지으며 행복해했다. 그리고 다시 힘을 냈다. 일부 기항지에는 공중전화가 있기도 했지만 이를 실제 이용하는 데에는 불편함과 어려움이 있었다. 기항지에서는 재미있는 일화도 있었다. 정기적으로 들르는 어느 기항지에 각국 함정이 정박하면 현지 주민들이 음료나 간식을 팔기 위해 부두로 모여들었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니 한 주민이 군인들에게만 판매 가격을 높게 매겨 받는 것이었다.
“이유를 물으니 주민은 ‘군함이 입항해 가격이 올랐다’고 하는 것입니다. 황당해서 웃음만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후 다시 그 항에 입항했을 때에는 오히려 다른 주민보다 싸게 파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군인들이라서 저렴하게 팔고 있다’는 대답. 상황을 파악한 군인들이 그 주민의 물건을 찾지 않아 가격을 내린 모양이었다. 허탈하게 웃어넘긴 일이었다. 물론 기항지마다 만나는 현지 주민 대부분은 정직했고 다국적 장병들의 노고에 감사했다. 고단한 여정에 잠시나마 웃음을 줬던 에피소드였다.
남 예비역 대령은 임무 기간에 부대원 가족을 정기 공수 기지가 있는 싱가포르로 초청하기도 했다. 싱가포르 기지 일정에 맞춰 부대원들에게 휴가를 줘 가족들과 만날 수 있도록 한 조치였는데, 결혼식을 치르자마자 작전에 투입된 부대원을 비롯해 다양한 사연을 가진 20여 가족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다.
“초청이라고 해도 부대 차원에서 제공할 수 있는 것은 부대원들에게 짧은 휴가를 주는 것뿐이었습니다. 가족들이 자신들의 비용으로 외국에 찾아오는 것이라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었는데, 부대원들은 물론 가족들 역시 부대의 배려에 감사했습니다. 부대원들에게 큰 동기부여를 준 일이었습니다.”
특히 신혼이었던 부대원에게는 부대의 세심한 조치로 기항지에서 신혼 여행을 한 셈이었다. 행복한 추억을 만들기는 다른 가족들도 마찬가지. 부대원들과 가족들은 현지 음식을 먹고 관광지를 둘러보며 평생 기억에 남을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남 예비역 대령은 4진 활동을 마치고 2003년 1월 국내 귀항했다. 바로 직전에는 5진 부대를 필리핀 마닐라 인근에서 만나 임무를 인계했다. 앞선 진들이 그랬듯 남 예비역 대령 역시 임무를 수행하며 작성한 세세한 기록과 임무 노하우·팁을 다음 부대에 오롯이 전했다. 임무의 연속성을 지키며 한마음으로 임무 완수를 이어가려는 노력이었다.
“임무를 마치며 뿌듯하고 홀가분한 마음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더 많은 임무를 수행하지 못한 아쉬움도 없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완벽히 임무를 수행해낸 부대의 노력과 결실은 후배들에게 이어져 우리 군의 국제평화 활동에 소중한 밀알이 되었다고 확신합니다.”
해성부대는 2003년 9월 1일 마지막 6진의 임무 종료와 함께 활동을 마무리했다. 2001년 12월 시작해 1년 9개월여 동안 네 척의 상륙함(LST)과 연인원 820여 명이 작전에 참여해 임무를 수행했다. 이 기간 군수물자 15회와 재해구호물자 2회 등 총 17회에 걸쳐 약 5300톤의 물자·장비를 수송했다. 국외·연합 해상수송지원 경험을 통해 작전능력을 배양하고, 원거리 대양 항해의 자신감을 쌓았다. 또 다국적 부대와 군사교류를 이어가며, 인도적 구호작전으로 국제공조체계를 유지했다.
/ 국방일보 서현우 기자 < lgiant61@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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