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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 안보/해외 파병

아프카니스탄 청마부대 공군수송지원단 57공수비행단

by 구석구석 2024. 4.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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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해성·청마부대 ①

美 9·11테러로 항구적자유작전 개시

우리나라도 테러 대항 국제연대 동참
2001년 12월 해·공군 수송지원단 창설
인도적 구호작전 병행 국가 이미지 높여

우리 군은 유엔 평화유지활동(PKO)과 함께 다국적군 활동에도 참여해 국제 분쟁지역에서 인도적 지원·재건을 계속했다. 2001년 아프가니스탄 항구적자유작전(Operation Enduring Freedom)에서는 의무·공병부대인 동의·다산부대는 물론 해·공군의 수송지원부대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큰 활약을 펼쳤다. 해군 해성(海星)부대와 공군 청마(靑馬)부대는 수송지원 임무를 맡아 다국적 공조체계를 유지해 연합·합동 임무를 수행하며 국제사회의 인도적 구호작전에 힘을 보탰다.

9·11테러와 항구적자유작전

2001년 9월 11일 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와 버지니아 미 국방부(펜타곤)에서 동시 발생한 9·11테러는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줬다. 민간 여객기를 납치해 추락시킨 이 테러는 ‘쌍둥이 빌딩’으로 유명한 세계무역센터 건물 한 동을 한순간에 무너뜨렸다. 항공기에 탑승했던 승객·승무원과 건물·주변에 있던 시민 등 3000여 명이 목숨을 잃고 2만5000여 명이 다쳤다. 인류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테러 공격으로 기록됐다.

이에 미국은 사건의 배후로 지목된 오사마 빈 라덴과 알카에다 조직을 비롯한 테러 조직·단체에 전쟁을 선포하고, 영국·캐나다 등 다국적군과 함께 2001년 10월 아프가니스탄에서 항구적자유작전을 개시했다. 당시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은 탈레반이 점령하고 있었는데, 탈레반은 알카에다를 적극적 지원·보호하고 아프가니스탄 내 이슬람 정권을 수립해 다국적군에 맞서고 있었다.

다국적군은 작전 개시 한 달여 만인 11월 13일 카불을 점령하고, 두 달여 뒤인 12월 14일에는 전쟁 승리를 선언했다. 이후에는 아프가니스탄 과도정부 수립, 알카에다 잔당 소탕, 빈 라덴 체포 등을 위한 안정화로 방향을 전환해 작전을 계속했다.

이 과정에서 다국적군은 국제사회와 함께 개전 이전부터 설정·추진한 인도적 구호작전도 지속적으로 펼쳤다. 이슬람 세계의 반발을 무마·억제해 이들의 탈레반 지원을 차단하고, 아프가니스탄 과도정부의 안정을 위해 구호물자와 식량을 지원한다는 내용이었다. 또 난민에 대한 원조도 이어간다는 것이었다.

2003년 9월 공군수송지원단 청마부대 장병들이 해외공수작전을 진행하며 군수물자와 의약품 등 재보급 물품을 항공기에 싣고 있다. 국방일보 DB

해성·청마부대의 파견

우리나라는 2001년 9월 24일 테러에 대항하는 국제사회연대에 동참한다는 계획을 발표하며, 의료인력을 파견하고 수송자산을 제공하기로 했다. 이어 10월 19일부터 22일까지 파키스탄 내 아프가니스탄 난민 지원을 위해 공군 C-130 수송기 5대를 동원해 텐트, 담요, 방한복 등 100만 달러 상당의 구호품 지원 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또 12월 18일에는 육군의료지원단과 해·공군 수송지원단 해성·청마부대를 창설했다.

해군수송지원단 해성부대는 비로봉·향로봉함 등 수송함(LST)으로 구성됐으며, 최초 170여 명에서 시작해 6개 진에 걸쳐 연인원 820여 명의 장병이 참여했다. 주요 임무는 태평양과 인도양 인근 해역에서 다국적군의 대테러 작전물자 수송과 평화적 목적의 지원·구조작전이었다. 2003년 9월 임무 종료 시까지 군수물자 15회, 재해물자 2회 등 17회에 걸쳐 임무를 수행했다.

특히 해군특수전전단(UDT/SEAL)과 해군해난구조대(SSU) 요원들도 작전에 포함돼 적 테러로부터 자체 방어를 비롯한 해저탐색, 인명구조, 심해용접 등의 임무를 펼쳤다.

공중수송작전 지원 임무를 부여받은 공군수송지원단 청마부대는 조종사·정비사·지원요원과 C-130 수송기 4대로 구성됐다. 2003년 12월까지 총 8개 진 440여 명의 장병이 임무를 수행했다. 주 임무는 작전지역 다국적군 병력·물자·환자의 수송·이송과 인도주의적 물자공수 및 자국민 보호였다. 청마부대는 정기 공수작전으로 다국적군 공군기지가 있는 인도양 영국령 섬 디에고 가르시아를 왕복하고, 부정기 공수작전으로 괌, 태국, 필리핀 등을 왕복하면서 다국적군 연합작전을 뒷받침했다. 또 2003년에는 이라크 안정화 작전을 위해 파견된 서희부대(공병건설단)와 제마부대(의료지원단)에 대한 물자 재보급 공수작전도 병행했다.

이들 해·공군 수송지원단은 국제공조체계를 유지해 장거리 전략공수와 해상 보급 임무를 완벽히 수행하며 다국적군 작전에 큰 힘이 됐다. 또 군사작전뿐만 아니라 인도적 구호작전을 병행해 국가 이미지를 향상하고 평화를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에 든든한 바탕이 됐다.

/ 국방일보 서현우 기자 /도움=군사편찬연구소

 

아프가니스탄 해성·청마부대 ② 양경철 대령(청마부대 8진 조종사)


수송기 통해 작전기지 연결
물자와 병력 수송·이송 임무
매주 한 차례 우리나라 기지 이륙
해외서 공수작전 뒤 돌아오는 여정
각 지점 1~2일 머문 뒤 비행 강행군

청마부대(공군수송지원단)는 2001년 아프가니스탄에서 펼쳐진 다국적군의 항구적자유작전에 동참해 연합 수송지원 임무를 수행했다. 대테러 작전물자 수송과 인도적 구호·지원 활동이 주 임무. 2001년 12월 18일 창설해 2003년 12월 20일까지 약 2년간 진행한 총 81회의 수송지원은 국제 평화와 지역 안정을 이루는 배경이 됐다.

청마부대의 다른 이름은 57공수비행단이었다. 앞선 해외 파병 부대들이 현지에 주둔하며 연합·단독 작전을 이어간 점과 달리 청마부대는 국내에 주둔하며 해외 작전을 펼쳤다. 국내 기지에서의 이륙을 시작으로 해외에서 공수작전을 진행한 뒤 다시 기지로 돌아오는 여정. 수송기를 통해 작전기지를 연결하고 물자와 병력을 수송·이송하는 역할이었다.

청마부대는 국내를 출발해 필리핀을 거쳐 싱가포르와 디에고가르시아를 잇는 작전을 수행했다. 사진 제공=양경철 대령

공군5공중기동비행단 항공작전전대장 양경철 대령(당시 대위)은 2003년 초 C-130 수송기 조종사로 청마부대 8진 임무에 참여했다. 그보다 3년 앞서 부대에 전입해 기종 전환 훈련을 이어가며 선배 조종사들의 해외 공수작전 수행 모습을 지켜봤었다. 국가와 국민을 수호하며, 나아가 국제평화 임무에 동참해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는 일은 군인의 사명이라고 생각했다. 언젠가 꼭 그 임무에 참여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저에게도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주저하지 않고 자원했어요. 망설일 이유가 없었습니다. 결국, 조종복 오른팔에 태극기를 부착하고 연합 작전을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국가를 위하는 또 다른 임무에 도전하는 기회를 얻은 것이었습니다.”

당시 임무는 C-130 항공기 조종이었다. 매주 한 차례 우리나라 기지를 이륙해 필리핀을 경유, 싱가포르와 디에고가르시아 연합 작전기지를 연결하는 비행을 펼쳤다. 필리핀은 중간 급유지점이었고, 싱가포르는 다국적군 물자가 집결하는 기지였다. 또 디에고가르시아는 인도양의 영국령 섬으로 다국적군 공군기지가 주둔해 있었다. 기지를 출발해 필리핀-싱가포르-디에고가르시아를 거친 뒤 역순으로 다시 돌아오는 일정은 꼬박 일주일이 걸렸다. 각각의 지점에서 하루, 이틀을 머문 뒤 다시 비행하는 강행군이었다. 조종사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하지만 우리 임무는 조종사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수송기에는 동승 비행사(내비게이터), 정비사, 항공적재사, 엔지니어, 특기정비사 등이 함께 탑승합니다. 모두가 한 팀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완벽히 해냈기에 임무를 완수할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해외 공수 임무는 더욱 까다로웠다. 당시만 해도 우리 군의 장거리 해외 공수 임무는 거의 볼 수 없었다. 청마부대처럼 다국적·연합 작전을 위한 정기공수 비행을 펼친 일은 더더욱 흔치 않았다. 여러 국가의 영공을 통과하고 이착륙하는 임무는 각국과의 지속적인 협력과 소통을 필요로 했다. 또 전혀 다른 환경과 기후에서 실전 임무를 수행하면서는 부대원 모두가 극도의 긴장감을 줄곧 유지하며 유기적인 조직체가 돼야 했다.

하지만 양 대령을 비롯한 부대원들의 가슴 속에는 뜨거운 무엇인가가 차오른 상태였다. 임무 수행을 위한 사전 교육에 더욱 매진했고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염두에 둔 혹독한 훈련을 계속했다. 그리고 이뤄진 첫 비행은 부대원들에게 감격이었다.

“첫 비행요? 출국 전날 너무 설레서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국가를 대표해 해외 임무를 수행한다는 자부심, 완벽히 작전을 수행하겠다는 긴장감, 가족·동료·국민에게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돌아오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양 대령의 머릿속에는 첫 해외 작전을 위해 그동안 연습한 각종 비행 절차가 계속 맴돌았다. 또 해외 기착 중 수행할 행정 절차들이 시뮬레이션처럼 떠올랐다.

“첫 작전 수행을 위해 기지를 이륙하고 항공기가 일정 궤도에 진입했을 때가 돼서야 마음이 다소 차분해졌습니다. 우리 영공을 벗어날 즈음 ‘드디어 내가 조종하는 수송기가 해외로 나가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순간 우리나라 관제사가 교신으로 인사를 건네왔는데, 눈물이 나도록 감격스러웠습니다.”

“안전하게 잘 다녀오십시오.”

짧은 한마디였다. 하지만 그 속에는 그보다 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음을 관제사도, 양 대령도 알고 있었다. 다른 말은 필요 없었다. 그 한마디로 충분했다.

약 8시간이 걸려 필리핀에 도착했고, 하루를 머물며 급유와 정비를 마친 뒤 싱가포르로 향했다. 싱가포르에서는 이틀을 머물며 물자·화물을 싣고 다시 이륙했다. 이어 도착한 디에고가르시아. 적도 가까이 있는 그곳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무사히 공수했다는 안도감과 뿌듯함이 들었다. 그리고 앞선 여정의 역순으로 귀국했다. 한국을 떠난 지 일주일여 만이었다. 빡빡한 일정이었지만, 쉴 새 없이 다음 비행을 준비했다.

물론 반복되는 작전 수행이 매번 순탄치만은 않았다. 위협은 예기치 못한 순간 찾아왔다. 테러 조직의 위협을 비롯해 기상 악천후, 비행 중 갑작스러운 기체 고장, 비상 착륙 위기 등이 곳곳에서 양 대령과 부대원을 기다리고 있었다.

/ 국방일보 서현우 기자

 

아프가니스탄 해성·청마부대 ③ 양경철 대령(청마부대 8진 조종사)


작전환경 급변으로 항공기 결함 잦아
설상가상 일부 계기에도 문제 발생
긴급조치하고 엔진 껐다 다시 켜기도
다행히 기체 정상으로 돌아와

작전지역 인근 발리서 폭탄 테러
中·홍콩 등 사스 확산 또 다른 위협
다양한 위기 선제 조치하며 침착 대응

청마부대(공군수송지원단)는 다국적군 작전의 항공 수송지원 임무를 맡아 완벽히 펼쳐냈다. 그 과정에서 여러 위기와 위협이 있었고, 그때마다 차분히 문제를 해결하며 결국 해내고야 말았다. 어떤 위협도 이겨내겠다는 각오와 실수·오차 없이 임무를 완수하겠다는 다짐은 위기를 극복하는 원동력이었다.

C-130 수송기의 기상 레이다를 정비하고 있는 청마부대원들. 사진 제공=양경철 대령

당시 다국적군의 연합 작전은 말 그대로 실전이었다. 가장 큰 위협은 미국·영국을 비롯한 다국적군에 대한 테러조직의 위협이었다. 작전지역에서는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누구도 모를 일이었다. 또 테러는 하늘과 땅을 가리지 않았다. 당시 조종사로서 임무를 수행한 공군5공중기동비행단 항공작전전대장 양경철 대령(당시 대위) 역시 이를 잘 알고 작전지역에서의 비행에 각별하게 신경 썼다.

“비행하면서는 여러 곳의 다국적군 부대들과 교신하게 됩니다. 작전 정보 등을 상호 주고받는 것이지요. 그중에서도 해상의 미군 함정이 보내오는 ‘테러조직의 공격에 대비하고 조심하라’는 메시지에는 더욱 긴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다국적군의 평화유지작전에 동참한 우리 수송기 역시 테러로부터 안전을 보장받을 수 없었다. 양 대령의 임무 기간 작전지역 인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는 대규모 폭탄 테러가 발생하기도 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우리 수송기가 테러 공격을 받은 일은 없었다.

“테러의 위협을 피하면서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항공기 호출부호를 수시로 변경하거나, 장거리 비행 중 중간 체류지에서는 필요하다고 인정될 경우 숙소도 주기적으로 바꿨습니다. 또 기지에서 외부로 이동해야 하는 때에는 조종복을 벗고 사복으로 갈아입는 위장도 했습니다. 관광객처럼 보이려는 것이었습니다.”

신분 노출을 방지하는 행동지침이었다. 부대의 노력이었다. 하지만 테러 위협만큼이나 부대원들을 긴장하게 만든 일은 다른 곳에도 있었다. 장거리 해외 작전을 수행하는 임무의 성격에서 파생되는 것들이었다.

“망망대해에서의 장시간 해상 비행은 자체만으로도 조종사에게는 엄청난 긴장감을 유발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작전 환경의 급격한 변화에 따른 잦은 항공기 결함, 열대 환경에서의 태풍과 스콜의 위협, 고중량으로 이착륙해야 하는 상황 등에도 대비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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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와 환경이 다르고 하루에도 몇 번씩 기상이 급변하는 점은 비행에 불리한 요소였다. 작전지역에 도착해 정비·수리를 이어가려 해도 우리 군 C-130 수송기와 같은 항공기를 가진 타국 공군이 없어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공수지원 임무를 하는 우리와 전투 작전을 하는 그들의 기종이 달랐다. 이 때문에 정비소요 상황에 대비해 항상 주요 항공 부품을 갖추기도 했다.

또 장거리를 비행하기에 최대한의 연료를 주입해 출발해야 했다. 여기에 물자·화물까지 실리면 수송기는 최대 중량에 육박하기도 했다. 중량은 항공기의 안전하고 안정적인 이착륙은 물론 비행에 매우 중요한 요소다. 최대중량 운항은 자칫 매우 위험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 수 있었다.

“한번은 비행 중 갑작스러운 기상 악화에 엄청난 터뷸런스(난기류)를 만났습니다. 기체가 심하게 요동치면서 급기야 엔진이 멈추기도 했습니다. 설상가상 일부 계기에도 문제가 나타났어요. 바다 한복판 상공에서 비상착륙할 수 있는 곳도 없었습니다. 긴급 조치를 펼쳤고 엔진을 껐다가 다시 켜기도 했습니다. 기체는 정상으로 돌아왔고 무사히 임무를 마칠 수 있었던 일이 기억에 남습니다.”

위기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2003년 중국, 홍콩, 대만, 싱가포르, 베트남 등 아시아 국가를 중심으로 중증급성호흡기증훈군(사스·SARS)이 퍼지면서 청마부대원들에게도 위협이 됐다. 발병 이후 약 7개월 동안 32개국에서 8000여 명의 환자가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는데, 청마부대의 작전구역 범위에 발병 지역이 포함돼 있어 엄격한 주의가 필요했다.

“예방을 위해 크게 노력했습니다. 항시 위생에 신경 쓰고 지금처럼 마스크를 착용한 채 근무했습니다. 외부와의 불필요한 접촉도 피하고 항공기와 물자·화물의 소독·방역에도 집중했습니다. 그 덕분에 부대원 중 단 한 명도 사스에 걸리는 일은 없었습니다.”

다양한 위기에 대비한 결과였다. 또 위협 상황에 선제적으로 조치하며 긴박한 상황에서는 침착하게 대응한 성과였다. 이미 오랜 시간 완벽한 작전을 꾸준히 해왔던 경험과 해외 연합 임무에서 더욱 큰 역량을 펼쳤기 때문이다.

/ 국방일보 서현우 기자

 

 

아프가니스탄 해성·청마부대 ④ 양경철 대령(청마부대 8진 조종사)


C-130 수송기 중고도 비행 악기상 노출
조종 중 한순간도 긴장의 끈 놓지 못해
긴급 구호 지원·환자 수송 임무 완수
“덕분에 살았다” 미군 환자 감사에 뿌듯
능숙한 임무 수행에 타국 군 ‘찬사’

청마부대의 임무는 다국적군 작전에 소요되는 물자 공수, 병력·환자 수송, 자국민 보호 등이었다. C-130 수송기가 작전에 투입됐는데 제트항공기(민항기)와 달리 터보프롭(Turboprop) 항공기라는 점에서 고고도 비행에 어려움이 있었다. 이 때문에 기상변화가 많은 중고도 비행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악기상에 노출될 가능성이 더욱 컸다.

청마부대 임무의 대부분은 싱가포르와 디에고 가르시아를 오가는 정기 공수였다. 아울러 태국·필리핀과 괌 미 공군기지를 왕복하며 연합작전에 물자·병력을 수송하는 부정기 공수 임무를 병행했다. 긴급구호 지원과 환자 수송 임무도 함께 했다. 해외 여러 작전지역을 오가는 탓에 예상치 못한 일들이 종종 생기곤 했다. 특히 비행 중 기상 악화는 부대에 큰 위협이었다.

청마부대 8진 장병들이 2003년 12월 모든 임무를 마치고 작전 종료를 기념해 C-130 항공기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제공=양경철 대령

당시 조종사로서 임무를 수행한 공군5공중기동비행단 항공작전전대장 양경철 대령(당시 대위)은 이에 대한 대비를 이어가며 혹시 발생할지 모를 상황에 맞섰다. 한순간도 긴장을 놓지 않으며 조종석 창 너머의 창공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실제로 비행 중 악기상으로 엔진 이상이 발생해 인근에 비상착륙한 적이 있었습니다. 임무 투입 전 수없이 반복해 교육하고 익힌 대로 침착하게 대응했어요. 무사히 착륙했고, 우리 정비사들과 현지 인력의 도움을 받아 정비 후 다시 목적지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비상착륙조차 할 수 없을 때도 있었다.

“악기상으로 더 비행하는 것이 위험해 비상착륙하려는데 현지 공항 역시 태풍으로 폐쇄된 적도 있습니다. 너무나 당황스러운 순간이었어요. 다른 국가 공항과 연결해 겨우 수송기를 착륙시킬 수 있었는데, 부대원 모두가 일치단결해 빠르게 판단하고 대처해 위기를 넘겼습니다.”

극도의 긴장감을 유지해야 하는 것은 긴급 환자를 수송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디에고 가르시아 현지 군 병원에서 치료가 어려운 응급·중상 환자를 수송기에 태워 이송하는 일이 있었다. 환자의 상태를 지속적으로 확인하면서 신속하게 비행해야 했다. 갑작스러운 기상 변화와 기압 차이처럼 공중에서 일어나는 여러 요소로 인해 환자 상태가 위급해질 수도 있었다.

“디에고 가르시아에서 싱가포르까지 미군 환자를 수송하는 일이었습니다. 큰 탈 없이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미군 환자가 ‘고맙습니다. 당신 덕분에 내가 살 수 있었습니다’라는 말을 건넸는데, 그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청마부대원들의 능숙한 임무 수행은 타국 군의 입에 오르내리며 찬사의 대상이 됐다. 정기 공수의 목적지였던 디에고 가르시아에는 우리 공군장교 몇 명으로 구성된 파견대가 있었는데 이들의 후방지원 협조도 큰 힘이 됐다.

연합작전을 수행하는 청마부대원들은 디에고 가르시아 기지에서 시간을 내 현지 주둔 미군과 간혹 식사 자리를 같이 하기도 했다. 그럴 때면 소소하게나마 한국 음식을 미군 장병들과 나눴는데 반응이 매우 좋았다. 미군 역시 자신들의 음식을 청마부대원들에게 전했다.

“매주 한 차례 디에고 가르시아에 도착했는데, 우리가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미군 장병도 있었습니다. 음식을 비롯해 한국의 전통문화와 대중문화에 관심들이 많았거든요. 그들에게 한국을 알리고 또 양국 장병들끼리 우정을 키우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청마부대는 아프가니스탄 항구적자유작전 외에 이라크 안정화 작전에도 참여해 공병·의무부대인 서희·제마부대에 물자를 재보급하는 공수작전도 펼쳤다. 2003년 12월 20일 임무 종료 시까지 총 81회의 공수작전을 수행했다. 수송 거리는 약 144만㎞로 지구를 35바퀴 이동한 셈이다.

“당시 청마부대의 임무 수행은 유엔 회원국으로서 국제사회에서 책임을 다하기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위협을 무릅쓰고 작전을 펼쳤으며, 우리나라의 국격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고 생각합니다.”

양 대령을 비롯한 당시 청마부대원들의 헌신은 우리나라가 유엔가입 이후 국제사회에서 중심국가로 발돋움하는 데 소중한 힘이 됐다. 또 이 같은 해외 임무 경험은 지금 우리 공군이 맡고 있는 해외재난 긴급구호와 재외국민 보호 임무 수행에 밑거름이 됐다.

/ 국방일보 서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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