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동의·다산부대 ① 동의부대 5년여 간 환자 26만 명 진료
다산부대 바그람 기지 공사 절반 수행
주민들과 다국적군 찬사 받으며
지역 안정과 평화 정착 기틀 마련
2001년 다국적군의 아프가니스탄 항구적자유작전에 동참한 우리 군은 평화협력을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에 힘을 보탰다. 아프가니스탄의 안정과 평화 정착을 위한 인도적 구호·지원에 중점을 두고 다양한 임무를 수행했다. 당시 해성·청마부대(해·공군 수송지원단)에 이어 파병된 동의(의료지원)·다산(건설지원) 부대는 도움의 손길이 절실한 주민을 진료·치료하고, 지역 재건과 다국적군 시설 건설을 진행하며 평화의 기틀을 만들었다.
동의부대는 2002년 2월 처음 1진이 키르기스스탄 마나스 다국적군 기지에 전개해 동맹군과 현지 주민에 대한 의료지원을 시작했다. 이어 2진은 아프가니스탄 카불과 바그람에서 파병대를 운용했으며, 이듬해 파견된 3진부터는 아프가니스탄 바그람 다국적군 기지를 중심으로 대민 의료지원을 계속했다.
△ 동의·다산부대는 아프가니스탄 다국적군 작전에 동참해 각각 의료지원과 건설지원 임무를 수행하며 지역 안정과 평화 정착의 기틀을 만들었다. 사진은 동의부대 3진과 다산부대 1진 장병들이 2003년 2월 26일 당시 특전교육단에서 열린 파병환송식 모습. 국방일보 DB
동의부대 진료는 현지 주민들에게 큰 힘이 됐다. 아프가니스탄의 불안정한 국내 상황에서 위태롭고 위험한 상태에 놓여 있던 주민들은 동의부대의 헌신적인 진료를 받으며 삶의 희망을 이어갔다. 동의부대 군의관·간호장교의 뛰어난 진료·치료 실력에 대한 소문은 파병 이후 오래지 않아 아프가니스탄 전역으로 퍼졌고, 주민들과 다국적군의 찬사를 받으며 한국군의 위상을 높였다.
동의부대의 진료를 받기 위해 멀리서 찾아오는 주민도 있었고, 일부는 파키스탄 등 인근 국가에서 찾아오기도 했다. 실제로 환자의 절반 이상은 50㎞ 이상 거리의 지역에서 찾아오는 주민이었다. 이로 인해 동의부대의 병원 일대는 진료를 받기 위해 몰려든 주민들로 새벽부터 긴 줄이 생기곤 했다. 동의부대는 지역적 특성을 고려해 내과·외과·소아과를 중점적으로 진료했고, 동맹군 장병들에 대한 진료도 병행했다.
이와 함께 동의부대는 주민 계몽을 위한 보건 교육을 정기적으로 진행하고, 오지 마을을 찾아가는 진료도 펼쳤다. 또 주민과의 교류 행사를 마련해 우리 문화를 알리고, 다국적 의료지원단과 교류·협력을 이어가며 연합의무 협조체계를 구축했다. 2007년 12월 철수 시까지 5년10개월여 동안 11개 진에 걸쳐 연인원 790여 명이 임무에 참여했고, 약 26만 명의 환자를 진료했다.
다산부대 최초 파병은 2003년 2월이었다. 동의부대 3진과 함께 아프가니스탄 바그람으로 전개했고, 이듬해부터는 건설 소요 증가에 따라 대대급 부대를 건설공병단 규모로 증편해 파견했다. 다산부대는 다국적군 바그람 기지 내 활주로 확장 공사, 항공기 계류장 공사, 훈련장과 방호시설 건설을 비롯해 기지 운영에 필수적인 각종 시설 공사를 도맡아 완수했다.
또 아프가니스탄 재건을 위한 도로·건물의 보수·복구와 학교·관공서의 신축 지원 활동도 펼쳤다. 2007년 12월 철수할 때까지 4년10개월여 동안 9개 진에 걸쳐 연인원 1350여 명이 투입됐고, 바그람 기지 내 공사의 약 50%에 해당하는 400여 건의 공사를 수행했다.
하지만 이 같은 동의·다산부대의 역사에는 안타까운 사건도 있었다. 2007년 2월 적대세력의 테러 행위로 다산부대 고(故) 윤장호 하사(추서계급)가 전사한 것이다. 통역병이었던 고 윤 하사는 당시 바그람 기지 정문 인근에서 통역 임무를 수행하던 중 자살폭탄 테러를 당했다. 이 사고로 다국적군 장병과 주민 등 50여 명이 죽거나 다쳤으며, 이는 파병 장병의 안전 대책을 더욱 강조하는 계기가 됐다.
동의·다산부대에는 해병대 병력도 포함됐다. 해병대 파병은 베트남전쟁 이후 두 번째였다. 경계작전 지원을 위한 요원들이었는데, 2002년 2월 동의부대 최초 파견 시 8명을 편성해 경비반으로 운영했다. 이후 다산부대가 전개해 바그람 기지 내 두 부대가 통합 운영되면서 17명을 추가해 기지 내외부에서의 부대 경계작전을 수행했다. 또 이들 중 일부는 아프가니스탄 현지 한국대사관 경계작전에 투입돼 재외 공관 경계와 교민 보호 임무를 했다.
동의·다산부대는 대한민국 위상 제고에 큰 역할을 했다.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책임을 다해 평화협력에 동참한 활동이었으며, 아프가니스탄 주민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으로 양국의 우호를 크게 증진한 활약이었다. 아울러 1990년대 소말리아와 서부사하라 등에서 펼친 해외 작전 수행의 흐름을 이어 더욱 발전된 임무를 하며 우리 군의 역량과 경험을 높이는 시간이었다.
/ 국방일보 서현우 기자
아프가니스탄 동의·다산부대 ② 김승기 예비역 중령 (동의부대 11진 부대장)
하루 평균 300여 명 현지 주민 진료
탁월한 의술·우수한 치료제 입소문
국경 넘어 파키스탄서도 찾아와
부대 경계 등 맡은 해병대 요원들
완벽한 작전 수행으로 무사고
태권도 교실 운영 동맹군 교육도
동의부대는 2002년 2월 18일 창설해 같은 달 27일 1진 파병을 시작으로 2007년 12월까지 임무를 수행했다. 5년10개월여의 기간 동안 약 26만 명의 환자를 진료·치료하며 아프가니스탄 주민들의 가슴에 큰 감동을 남겼다. 동의부대는 뛰어난 진료 역량과 진정성 있는 자세로 주민들에게 찬사를 받았으며, 부대원들이 펼친 인도주의적 구호·지원은 양국 간 우호 증진을 이루는 밑거름이 됐다.
△ 2007년 4월 당시 진행된 한국군 병원 개원식에서 김승기(당시 중령·가운데) 동의부대장과 정장수(당시 대령·왼쪽 둘째) 다산부대장을 비롯해 아프가니스탄 정부와 다국적군 관계자들이 기념 테이프를 자르고 있다. 국방일보 DB
김승기 예비역 중령은 동의부대 11진 단장으로 2007년 4월 현지에 파견됐다. 마지막 진이었으며, 마지막 동의부대장이었다. 약 25년여의 군 생활을 이어가는 시기에 새로운 임무에 도전하고자 동의부대 파병에 지원한 터였다. 그보다 앞서서는 서부사하라 국군의료지원단 지원반장으로 평화유지활동(PKO)에 참여하기도 했다. 선발 과정은 까다로웠지만, 김 예비역 중령에게는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지휘관의 역량, 해외임무 경험, 외국어 능력 등 세부적인 평가를 거쳐 적임자로 최종 선발됐다.
“군인으로서 전장에 나가 실전을 경험하기 원했고, 열악한 아프가니스탄 상황을 이해해 현지 주민들에게 의료지원 봉사를 하고자 했습니다. 또 전투경력을 쌓아 이후의 활동에도 도움을 얻고자 했습니다.”
파병을 준비하면서 관련 사전교육을 진행했다. 전장 지역에서의 교전규칙과 파병 장병 수칙, 적 공격 시 행동, 기지 방호체계, 질병 예방, 현지 풍습 등에 대해 전문 교관의 교육이 펼쳐졌다. 특히 현지 정세와 문화에 대해서는 더욱 자세하고 꼼꼼하게 교육받았다. 선발 이후 약 1개월간 이어진 현지적응교육은 성공적인 임무 완수를 위한 훌륭한 밑거름이 됐다.
“파병을 준비하며 가장 걱정했던 점은 팀워크였습니다. 현지의 위협 상황을 충분히 인식해 긴장감을 갖고 교육·훈련에 매진했지만, 군의관·간호장교·지원장병과 육군·해병대 등이 혼성된 부대로 짧은 기간 안에 부대원들이 하나로 뭉치는 일이 걱정이었어요. 하지만 부대원들은 최정예 요원들이었습니다. 전투복에 부착한 태극기를 보며 자부심과 자긍심을 느꼈습니다. 자연스럽게 한뜻으로 똘똘 뭉쳤습니다.”
△ 동의부대 소속 해병대원들이 아프가니스탄 바그람 기지 내에서 다국적군 장병들에게 태권도를 교육하고 있다. 국방일보 DB
김 예비역 중령과 동의부대 11진 장병들은 현지에 도착해 빠르게 임무를 준비했다. 임무 수행지였던 아프가니스탄 바그람 기지에서 20여 일간 한국군 병원 개원을 위해 전력을 쏟았다. 앞서 10진 활동 당시 적대세력의 폭탄 테러로 인해 일시 폐쇄한 병원을 다시 여는 일이었다. 병원은 곧 문을 다시 열었고 본격적으로 진료를 시작했다.
동의부대의 임무는 주로 현지 주민들에 대한 진료였다. 열악하고 위험한 환경은 주민들을 질병과 부상의 위험으로 내몰았지만, 진료와 치료를 받는 일은 쉽지 않았다. 국제평화와 인도주의 차원에서 주민들에게 의료지원을 펼치는 동의부대는 주민들에게 삶을 계속 영위하게 하는 희망이었다.
“11진은 하루 평균 300여 명의 현지 주민을 진료했습니다. 부대의 진료수준이 탁월하고 치료제가 우수하다는 소문이 나서 아프가니스탄 지방은 물론 국경 넘어 파키스탄에서도 찾아오는 주민들이 있었습니다.”
아침에 병원 문을 열면 이미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멀리서 찾아오는 주민들은 전날 저녁 이미 도착해 기다리는 상황이었다. 병원으로서는 진료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루 300명을 진료하는 일은 부대원들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이었다.
“멀게는 300~400㎞ 떨어진 지역에서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진료 가능한 하루 최대 환자 수가 한정돼 있어 병원에 오는 순서대로 진료를 진행하니, 많은 주민이 밤늦게 도착해 밤새 줄을 섭니다. 일교차가 커서 한낮에는 30도에 이르지만, 새벽에는 서늘해 모닥불을 피우고 예닐곱 시간을 기다리는 모습을 종종 봤습니다.”
최정예 요원들이 모인 부대였다. 뛰어난 의료실력은 의심할 바 없었으며, 진정성을 갖고 친절하게 대하는 모습은 주민들에게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동의부대는 주민 외에 일부 동맹군에 대해서도 진료를 진행했다.
이와 함께 동의부대에는 의료 병력 외에 함께 파병된 해병대 요원들도 있었는데, 동의부대 진료 경계와 더불어 아프가니스탄 현지 한국대사관 경호 임무를 맡아 수행했다. 현지 치안이 불안해지자 재외공관과 교민 안전을 위한 조치였다. 해병대 요원들의 완벽한 작전 수행으로 사건 사고는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해병대 요원들은 또 태권도 교실을 운영해 동맹군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는 것은 물론 주요 행사 시 태권도 시범을 선보이기도 했다.
/ 국방일보 서현우 기자 < lgiant61@dema.mil.kr >
아프가니스탄 동의·다산부대 ③ 김승기 예비역 중령 (동의부대 11진 부대장)
한국군 병원, 양국 우호 증진에 큰 역할
진료 환자 수 24만 명 넘자 동맹국 감탄
통역요원 윤장호 하사 테러 희생 비극
폭발물 실습장 건물 윤 하사 이름 헌정
탈레반 피랍 땐 의료팀 과로·위험 직면
애국심·군인정신·팀워크로 헤쳐나가
동의부대의 이름은 조선 중기 명의 허준이 쓴 『동의보감』에서 따왔다. 백성들의 평안한 삶을 위해 일생을 헌신한 허준의 마음과 정신을 계승해 오랜 전쟁으로 상처받은 아프가니스탄 국민에게 희망과 미래를 심는다는 의미를 담았다.
△ 동의부대 간호장교들이 어린 환자의 기초 건강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국방일보 DB
동의부대의 대민 진료 활동은 아프가니스탄 현지 주민들에게 큰 힘이 됐다. 이렇다 할 의료 시설이 없는 상태에서 동의부대가 운영하는 한국군 병원은 이들이 희망을 잃지 않고 재건을 이루는 원동력이 됐다. 또 이들의 마음속에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한국군의 헌신을 보여줌으로써 양국의 우호증진에도 소중한 보탬이 됐다. 당시 11진 부대장이었던 김승기 예비역 중령은 진료를 받고자 찾아오는 주민들에게 무엇 하나라도 더 챙겨주고자 했다.
“진료를 마친 주민들에게 구호품을 전달하는 행사를 자주 열었습니다. 꼭 필요한 물품을 제공했어요. 미군 민사작전팀과 협력해 조금이라도 많은 물품을 확보하고자 했습니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병원에 오는 모든 주민에게 구호품을 공평하게 나눠줬는데, 구호품을 하나라도 더 받으려고 갓난아이까지 데려오는 주민도 있었습니다.”
구호품과 함께 생수 제공도 주민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동의부대 병원을 찾은 주민 다수는 진료를 받은 뒤 다시 집으로 돌아가려면 먼 거리를 이동해야 했다. 이때 물이 매우 중요했는데, 주민들이 노상에서 접하는 물은 상태가 좋지 않았다. 건강한 주민도 각종 질병에 노출되기 쉬웠으며, 환자들에게는 더욱 위험했다. 작은 생수 한 병이었지만 주민들은 동의부대의 배려에 감사했다. 이 같은 활동들에 동의부대를 ‘신이 준 선물’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구호품을 전달하면서 무엇인가 줄 수 있다는 것에 행복을 느꼈습니다. 과거 도움을 받던 대한민국이 이제 도움을 주는 나라가 됐다는 점에 자부심도 느꼈습니다. 앞선 세대와 선배 전우들의 희생이 발전된 나라를 만드는 초석이 됐음에 그분들에게 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동의부대의 진료는 쉼 없이 계속됐다. 2007년 6월에는 동의부대가 진료한 환자 수가 24만 명을 넘어섰다. 미국을 비롯한 동맹국들의 감탄이 쏟아졌다. 미국 국방부 출입기자단에서는 김 예비역 중령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계속된 요청에 본국의 승인을 받고 화상 방식으로 인터뷰했다.
△ 동의부대의 24만 명 환자 진료 기록이 달성된 2007년 6월, 당시 김승기(오른쪽) 동의부대장이 미국 국방부 출입기자단과 화상으로 인터뷰하고 있다. 국방일보 DB
“부대를 대표하는 자리였습니다. 부대원들의 헌신을 이야기했고, 우리 군의 노력을 설명했습니다. 또 아프가니스탄의 평화 구축에 더 많은 기여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기자들은 동의부대의 인도적 지원 활동에 큰 관심을 보였고,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이 같은 동의부대의 활약에는 안타까운 사건도 있었다. 동의부대 10진 통역요원으로 파병된 윤장호 하사(추서 계급)가 전사하는 일이 발생한 것. 2007년 2월 당시 바그람 기지 정문 인근에서 통역 임무를 수행하던 고(故) 윤 하사는 적대세력의 자살 폭탄 공격을 받았다.
현장에는 다국적군 장병과 주민 등 수십 명이 있었고, 폭탄 테러로 50여 명이 사상했다.
김 예비역 중령은 당시 11진으로 파견된 마지막 동의부대장으로서 고 윤 하사의 헌정 행사를 이끌었다. 미군 사령관에게 헌정 건물을 요청해 흔쾌히 수락을 받았고, 건축을 완료한 기지 내 폭발물 처리실습장 건물에 고 윤 하사의 이름을 명명했다. 또 헌정비를 세웠다.
“건축 당시 고 윤 하사가 참여해 통역 임무를 수행한 건물이었습니다. 이름을 ‘서전트(Sgt.) 윤 빌딩(공식 명칭은 하사 윤장호 IED 대응훈련시설)’으로 하고, 바그람 기지와 함께 영구히 보존되도록 했습니다. 건물의 용도가 폭발물 제거를 위한 실습공간이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더 크다고 봅니다. 아울러 동맹국으로서 미군과 함께 작전 중 전사한 군인을 위해 헌정 행사에 적극 동참한 미군의 예우는 우리가 배워야 할 부분입니다.”
김 예비역 중령이 현지에 파견된 지 3개월이 조금 지난 때에는 탈레반 반군으로부터 우리 국민 23명이 피랍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동의부대는 즉시 상황실을 열고, 피랍지역에 군의관·간호장교 등을 급파했다. 또 현지 연합합동군군사령부에 연락장교를 파견하고, 관계자들과 접촉해 협조·지원을 요청했다. 하지만 사건이 장기화하면서 부대 운영에 큰 차질이 생겼다.
동의부대는 한정된 인원으로 기존 한국군 병원 운영을 유지하면서 피랍지역에 현장 의료팀을 파견해야 했다. 추가적 임무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부대원들의 피로와 스트레스가 쌓여갔다. 현장 의료팀에는 테러 위협이 계속됐고, 병원에서는 의료인력 부족이 문제였다. 하지만 부대원들은 더욱 힘을 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임무를 다 하겠다는 다짐을 한 터였다.
“납치사건의 조속한 해결을 위해서라도 병원 운영을 멈추거나 줄일 수는 없었습니다. 아프가니스탄과 현지 주민을 위한 그동안의 노력이 사라질 수도 있으니까요. 부대원들은 애국심과 군인정신, 팀워크로 이를 극복했습니다.”
최대한 안전하고 신속하게 사건을 마무리하고자 했던 헌신이었다. 더 큰 피해 없이 사건을 마무리 짓는 데에는 동의부대원들의 보이지 않는 희생과 헌신이 가장 컸다.
/ 국방일보 서현우 기자
아프가니스탄 동의·다산부대 ④ 김승기 예비역 중령 (동의부대 11진 부대장)
어린이날 초청 등 다양한 주민 행사
다국적군 장병들과도 적극 교류
태권도 시범·사물놀이 공연 큰 호응
귀국 후 파병 경험 담은 책 발간도
동의부대는 의료지원부대로서 다국적군 작전에 참여해 지역의 안정과 평화를 위한 임무를 수행했다. 임무는 아프가니스탄 현지 주민을 진료하고 바그람 기지 내 한국군을 비롯한 다국적군을 의료지원하는 것이었다. 지휘부 예하에는 운영과·진료과·간호과·경비대를 뒀다.
△ 동의부대원들이 다국적군 장병들과 체육 활동을 하며 우정을 다지고 있다. 국방일보 DB
당시 11진 부대장이었던 김승기 예비역 중령은 부대의 주된 임무를 수행하면서 지역주민·다국적군과의 교류에도 신경을 썼다. 현지 전개 한 달여가 지났을 무렵 김 예비역 중령과 부대원들은 어린이날을 맞았다. 비록 아프가니스탄의 어린이날은 8월이었지만, 파병 초기 현지 주민에게 가까이 다가가고자 우리나라의 어린이날을 소개하면서 간단한 행사를 준비했다. 부대원들은 기꺼이 개인 시간을 할애해 행사를 마련했고, 인근 지역 학교 교사·학생 등 110여 명을 부대로 초청했다.
“뜨거운 햇빛을 가리고자 대형 텐트를 치고, 태권도 시범과 사물놀이, 비보이 댄스를 선보이며 어린이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했습니다. 또 잡채, 식혜, 부침개, 사탕, 과자, 음료 등을 제공했어요. 그때 그 아이들의 순수한 얼굴이 지금도 기억에 선합니다.”
어린이날뿐만 아니라 기회가 있을 때마다 동의부대는 지역주민을 위한 크고 작은 행사를 열었다. 타국 군과의 교류에도 적극적이었다. 귀국을 두 달 정도 남기고 축구대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당시 다국적군 기지에는 17개국에서 파견된 장병들이 있었는데 이들과 함께 미니 월드컵을 연 것이다.
△ 아프가니스탄에서 국제평화협력 임무를 마친 동의·다산부대 장병들이 2007년 12월 서울공항에 도착해 비행기에서 내리고 있다. 국방일보 DB
“처음 이집트 팀에는 졌지만 이후 미국과 폴란드 팀을 이겼던 것이 기억납니다. 각국 장병들은 경기 중 치열한 몸싸움도 마다하지 않았지만, 경기가 끝나면 음료를 나누며 함께 웃곤 했습니다. 굵은 땀방울을 함께 흘리면서 동맹의 전우애를 키운 시간이었습니다.”
또 동의부대 창설기념일과 미국 독립기념일에는 해병대원들이 태권도 시범과 사물놀이 공연을 펼쳐 큰 호응을 얻었다.
“당시 태권도 시범을 본 타국군 장병들은 경탄을 금치 못하는 표정이었습니다. 특히 사물놀이는 매우 독특했는지 미군 군악대원들이 넋을 놓고 빠져들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동의부대 11진은 주어진 임무를 모두 수행한 뒤 2007년 12월 14일 귀국했다. 앞서 같은 달 5일에는 철수 전 마지막 진료가 펼쳐져 25만9569번째 환자가 진료를 받았다. 6년이 채 되지 않는 기간에 동의부대 11개 진 791명의 장병이 26만 명에 가까운 환자를 진료한 것이다. 진료 환자의 수도 놀라운 규모지만, 그 한 명 한 명의 환자를 진심으로 진료했던 정성과 열정은 그보다 더 값진 결실을 만들었다. 아프가니스탄에 희망을 심고 양국의 우호를 증진한 성과였다. 하지만 김 예비역 중령은 그 성과만큼 아쉬움도 남았다.
“우리 모두는 전장을 경험한 장병에 대한 예우에 더욱 신경 써야 합니다. 그들은 투입된 현장에서 목숨을 걸고 최선을 다합니다. 국익을 위해 공헌한 만큼 그에 맞는 대우와 보상을 받아 마땅합니다. 아울러 아프가니스탄처럼 위험 지역에서 임무를 수행한 장병들은 비록 지원부대라고 하더라도 전투경력으로 인정해 줘야 합니다.”
수십 년의 군 생활과 수차례 해외 임무 경험을 한 군인으로서 가졌던 아쉬움이었고, 후배 장병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임무를 수행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김 예비역 중령은 귀국 후 파병 당시의 경험을 담은 책 『마지막 동의부대장의 아프가니스탄 파병 이야기』를 내기도 했다. 임무 처음부터 끝까지, 현지 상황과 부대원들의 심리변화, 전장에서의 위기 대처 방법, 동맹군과의 합동작전 등에 대한 기록이었다. 파병 장병들에게 유익한 내용이었으며, 군사사적 가치도 충분했다.
또 최근에는 에티오피아에서 봉사활동을 했던 이야기를 담은 『커피, 태양 전설의 땅 에티오피아』를 펴내기도 했다. 6·25전쟁 참전국으로서 과거 우리나라를 도운 에티오피아에 약 3년간 머물며 기록한 책이다. 김 예비역 중령은 그곳에서 6·25전쟁 참전군인 후원과 그 자손에 대한 장학사업, 농촌개발지원, 교육사업 등을 진행했다.
“장병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파병 기록을 담은 책을 제작해 일부 부대에 기증했는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군사 사료로서 각 부대 도서관과 전쟁기념관 등에 존안되기를 바랍니다. 또 저의 책을 포함한 유익한 도서들이 병영 권장도서에 선정돼 장병들의 정신전력 강화에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 국방일보 서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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