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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 안보/해외 파병

해외파병 아프카니스탄 다산부대 건설공병단

by 구석구석 2024. 4.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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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 동의·다산부대 ⑤ - 이인희 예비역 대령 (1진·8진 다산부대장)

 
최우선 임무 비행장 복구로 판단
현지 동행 상급부대 실무진과 협의
콘크리트 혼합·제조 장비 목록 추가
다국적군 공병 작전에도 큰 역할

다산부대는 2003년 2월 약 150명 규모의 공병대대급 부대로 아프가니스탄에 최초 파병돼, 동맹군 기지 내 각종 시설공사와 지역재건 사업을 했다. 이후 2004년 3진부터는 임무 소요 증가에 따라 건설공병단 규모로 증편 운영됐으며, 2007년 12월 철수 시까지 9개 진 1350여 명의 장병이 파병돼 국제 평화협력의 든든한 기틀을 만들었다.

다산부대 장병들이 바그람 기지 내 헬기 적하장을 만들며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하고 있다. 국방일보 DB

이인희 예비역 대령은 1진 부대장(당시 중령)으로 처음 다산부대 활동에 참여했다. 당시 이 예비역 대령은 공병 병과 장교이자 일선 현장 지휘관으로서 다양한 공병 작전을 수행하던 중이었다. 그러다 다산부대 창설 소식을 접하고 군의 해외 임무 수행과 국제평화 협력에 공감해 파병을 자원했으며, 경험과 역량을 인정받아 1진 부대장으로 선발됐다.

사실 그의 해외 임무는 아프가니스탄이 처음은 아니었다. 앞서 1995년 10월 앙골라 공병부대 1진(당시 소령)으로 유엔평화유지활동(PKO)을 다녀온 터였다. 당시 선발대장으로서 본대보다 먼저 현지에 도착해 업무 협조, 정찰, 첩보 수집 활동 등을 수행했다. 또 본대 전개 이후에는 운영과장으로서 부대운영 전반을 맡아 성공적인 파병을 이끌었다.

“해외파병을 통한 대한민국의 발전과 국위 선양에 온 힘을 다해 동참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다산부대에 지원했고, 운 좋게도 선발됐습니다. 성공적이었던 앙골라 파병 경험을 살려 다산부대의 첫 체계를 잘 구축해 달라는 뜻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어느 부대든 1진 부대장의 책무는 상대적으로 더 무거운 편이다. 부대 창설 작업을 주도해 인원을 편성하고 각각의 임무를 부여하며 소요 물자·장비를 구성해야 했다. 또 파병지의 역사와 환경, 다국적군 작전의 흐름과 적대세력의 위협 정도를 파악하고, 작전 수행에서 맞닥뜨릴 수 있는 다양한 상황을 시뮬레이션하며 대비 방안을 마련해야 했다. 현지 정부 및 다국적군과 협조·협력하는 일도 필요했다.

“해외파병의 성패는 파병 준비에 달렸다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넓은 범위에서 얼마나 깊이 있게 준비했느냐에 따라 현지 작전 수행의 완성도가 달라집니다. 다산부대 파병 때는 준비 기간이 너무 촉박하다는 점이 아쉬웠어요. 새로 편성된 부대의 운영·관리, 현지 임무 수행을 위한 장병 교육·훈련, 필요 물자·장비 소요 확인과 준비 등 해야 할 일이 참 많았습니다.”

이 예비역 대령은 부대원 교육·훈련에 특히 집중했다. 단 한 건의 안전사고도 없이 무사히 임무를 완수하기를 바랐고, 대한민국 군인으로서 다국적군 작전에 참여해 그 우수성을 선보이길 원했다. 이를 위해서는 부대원들이 일치단결된 자세와 수준 높은 임무 수행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믿었다. 부대원들은 이 예비역 대령만큼, 아니 그보다 더 큰 열정으로 역량과 팀워크를 빠르게 향상해 나갔다.

이 예비역 대령이 파병 준비 과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사전 현지 조사였다. 부대 파병 전 국방부·합동참모본부 등의 우리 군 해외임무 실무진과 함께 아프가니스탄 바그람 기지를 찾아 현지 조사와 정찰을 통해 부대에 필요한 장비를 추가 파악하고 부대원들의 임무 수행 방법을 세부적·구체적으로 준비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사전에 현장을 직접 보는 것은 파병 준비에 큰 도움이 됩니다. 실제 보고 듣고 체감하면서 작전 수행에 어떤 장비가 더 필요한지, 부대 전개 후 어떤 임무에 우선 순위를 둬야 하는지 파악하게 됩니다. 그러면 본국에서의 파병 준비에도 속도가 붙는 것은 물론 더 잘 준비할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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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사전 현지 조사를 통해 추가한 장비 가운데 콘크리트 배처 플랜트(concrete batcher plant)가 부대 임무 수행에 큰 힘이 됐다. 콘크리트 배처 플랜트는 콘크리트를 혼합·제조하는 기계 장비다. 콘크리트는 일반적으로 대규모 고정 설비가 구축된 공장에서 대량으로 생산한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현장에 소규모로 설치해 콘크리트를 만들기도 하는데 이때 사용하는 장비가 콘크리트 배처 플랜트다.

“당시 파병부대장으로서 판단한 우리 부대의 최우선 임무는 비행장 복구였습니다. 50㎝ 두께로 활주로를 복구해야 하는데, 여기에는 엄청난 양의 콘크리트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현지에서 공급받는 콘크리트 양을 파악하니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그는 현지 조사 기간 내내 이를 고민했다. 실제 작전이 펼쳐지는 곳에서 활주로 복구는 신속히 이뤄져야 했다. 느긋하게 콘크리트가 보급되기만을 손 놓고 기다릴 수는 없었다. 고민 끝에 콘크리트 배처 플랜트를 생각해냈고 현지에 동행한 상급부대 실무진과 다각도로 협의한 끝에 이를 부대 수송장비 목록에 올렸다.

“이는 부대가 전개해 신속하게 임무를 수행하는 데 큰 힘이 됐습니다. 나아가 현지 타국 군 공병부대에까지 콘크리트를 보급하며 다국적군 공병 작전에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렇게 다산부대는 파병 준비를 마쳤고 2003년 2월 27일 현지로 떠났다.

/ 국방일보 서현우 기자

 

아프가니스탄 동의·다산부대 ⑥ - 이인희 예비역 대령 (1진·8진 다산부대장)

 
바그람 기지 내 시설공사 주요 임무
설계·공사공법 등 작전 완벽 수행
타국 군 적극적 구애에 노하우 전수도
촉박한 시간 속 끝낸 저장 시설 공사
다국적군 사령부 관계자 모두 감탄

다산부대가 주둔한 바그람 기지는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에서 북쪽으로 40여 ㎞ 지점에 있는 해발 약 1490m의 고지대였다. 1950년대 처음 건설됐으며, 이후 아프가니스탄 북부동맹과 탈레반 등 부족·세력 간 충돌의 격전지였다. 또 2000년대 다국적군 작전 수행의 요충지였다. 우리 군 동의·다산부대가 파견될 당시에는 약 20개의 다국적군이 바그람 기지에 주둔하며 연합 작전을 펼치고 있었다.

2006년 다산부대 7진 장병들이 바그람 기지 내 활주로 보수공사를 하고 있다. 국방일보 DB

다산부대의 주요 임무는 바그람 기지 내 다국적군의 시설공사였다. 비행장 활주로 보수·확장을 비롯해 항공기 계류장, 연합훈련장, 저장시설, 정비고, 주둔 시설 등 기지 내 각종 시설공사를 진행했다. 또 인도적 지원 목적의 민사작전도 수행해 인근 지역의 도로, 교량, 학교, 관공서 등을 건설하며 지역재건에 힘을 보탰다. 이인희 예비역 대령(당시 중령)은 1진과 8진 다산부대장으로서 당시 부대의 작전을 총괄했다.

“1진으로 처음 파병지에 도착했을 때 막막함이 들기도 했습니다. 사막·산악지형이 대부분이었고, 가뭄은 계속되는 상태였습니다.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포장도로도 없었고 시설도 매우 열악해 천막 텐트를 임시 사용해야 했습니다. 한 번씩 눈을 뜨기 힘들 정도의 모래바람이 심하게 불어 작업이 가능할지 걱정했어요. 하지만 그만큼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이었으며 어려운 작업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부대원들은 오히려 더욱 강한 의지를 다졌습니다.”

다산부대 단독으로 공사를 수행하기도 했고, 타국 군 공병부대와 연합으로 진행하기도 했다. 다산부대는 다국적군 사령부로부터 요청이 오면 설계부터 세부 공사 일정, 자재·장비 사용, 공사공법 등 모든 작전을 주도적으로 완벽하게 수행했다. 다산부대의 수준 높은 공병 작전 능력과 특유의 성실함은 언제나 다국적군 장병들의 모범이 됐다.

당시 바그람 기지에는 우리 군 외에도 미국, 태국, 슬로바키아, 폴란드에서 온 공병부대가 있었다. 하지만 타국 군 공병부대는 임무 수행 능력에서 다산부대를 따라오지 못했다.

타국 군 공병부대는 다산부대와 함께 작업하기를 바랐으며, 작업 현장에서 이것저것을 물으며 배워가려고 했다. 부대원들 역시 이를 알고 타국 군 장병들에게 친절히 설명했다.

우리 군 공병작전 능력의 우수성을 알리는 기회였으며, 연합 공병작전 수행능력을 향상하는 시간이었다.

이 예비역 대령의 기억에 힘들거나 까다로운 공사는 없었다. 모든 작업은 순조로웠고 진행에 전혀 문제 될 일은 없었다. 부대원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임무를 실수 없이 완벽히 해줬기 때문이다. 그중 기억에 남는 공사는 저장시설(K-span) 신축이었다. 촉박한 시간에도 불구하고 한 치 오차 없이 완성해 낸 성과였다.

“처음 설계를 담당한 미군 장교가 시설의 규모로 봤을 때 제시간에 끝내지 못할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실제로 시간이 부족했어요. 시간을 맞추지 못하더라도 사고 없이 또 완벽히 공사를 끝낼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부대원들이 힘을 내는 것이었습니다. 한국군의 저력을 보여주겠다며 더욱 굵은 땀방울을 흘렸는데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공사는 오히려 예정보다 더 빨리 마무리됐다. 미군 설계 담당자는 물론 다국적군 사령부 관계자들 모두 감탄했다. 또 기지 내 타국 군 장병들에게 크게 소개되기도 했다. 당시 미군 240공병단장 슈와즈 대령은 엄지를 치켜세우며 한국군의 공병 능력을 인정하기도 했다.

“부대원들의 노력이 만든 결과였습니다. 최선을 다하려는 의지였어요. 우리가 이곳에서 진행하는 공사 하나하나가 바로 나라의 위상을 높인다는 생각으로 헌신한 것이었습니다. 개개인의 임무 역량도 뛰어났지만, 하나가 돼 움직이는 단결력도 대단했습니다.”

그래서인지 한 번은 미군 주임원사가 기지 내 회의 자리에서 이 예비역 대령에게 부러움을 전하기도 했다. 훌륭한 부대의 바탕에는 탄탄한 팀워크가 있기 마련인데 다산부대는 아침 점호와 뜀걸음만 봐도 일사불란한 모습이라는 것이었다. 또 임무에서는 열정을 다하는 모습도 인상적이라는 설명이었다.

/ 국방일보 서현우 기자

 

아프가니스탄 동의·다산부대 ⑦ - 이인희 예비역 대령 (1진·8진 다산부대장)

 
8진 파병 당시 현지 치안 불안정
도로·교량·학교 직접 짓던 민사작전
기술교육 등 안전한 방식으로 진행
윤 하사 민사작전 중 폭탄테러로 전사
해마다 2월 27일 현충원 찾아 추모

다산부대는 2003년 2월부터 2007년 12월까지 아프가니스탄에 파병해 연합 공병 임무를 수행하며 다국적군 작전을 지원했다. 이 기간 다국적군 각종 시설을 신속하고 튼튼하게 신축·보수해 우리 군의 우수한 공병 능력을 선보였으며, 성실하고 열정적인 임무 수행 자세로 타국 군의 모범이 됐다. 또 다양한 교류 활동을 이어가며 동맹의 우정을 키우고 연합 작전 수행 능력 향상에 기여했다.

다산부대 9진 장병들이 항공기 계류장 완공식에서 다국적군 관계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국방일보 DB

이인희 예비역 대령은 다산부대 1진 부대장뿐만 아니라 8진 부대장으로도 활동했다. 8진 파병 당시에는 동의부대 10진을 함께 지휘하는 한국군지원단장직을 겸했다. 2002년 말께 다산부대가 처음 해외 임무를 부여받고 이듬해 현지에 전개하기까지 모든 과정에 참여했으며, 이어 1진 부대장으로 현지에서 임무를 수행했다. 누구보다 다산부대의 임무를 잘 알고 현지 상황을 이해하고 있었기에 마무리를 준비하는 8진 부대장으로서 자격은 충분했다.

“처음 1진과 이후 8진의 시간 간격은 약 3년 6개월쯤 됩니다. 그 사이 아프가니스탄 바그람 기지도 많이 변했고, 다국적군 작전도 상당 부분 진척됐습니다. 하지만 우리 군 다산·동의부대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했고, 동맹군들과의 우정도 변함없었습니다.”

다만 주민들의 재건을 돕는 민사작전은 1진과 비교해 8진에서 다소 제한적이었다. 아프가니스탄 내 치안이 불안정해졌기 때문이다. 이에 앞선 진들이 도로, 교량, 학교 등을 직접 지었다면 뒤를 잇는 진에서는 기술교육 과정 운영과 같이 상호 안전한 방식으로 인도적 지원을 진행했다.

“기술교육은 시공 과정에서 필요한 각종 기술을 교육하는 프로그램이었어요. 용접이라든지 목공 같은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주민 스스로 재건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또 다산부대 철수 이후에도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데 도움을 주고 싶었어요. 부대원들은 아프가니스탄의 미래를 위한 일이라는 생각에 열정적으로 주민들을 위해 봉사했습니다.”

이 같은 다산부대의 재건·기술교육 활동은 같은 시기 함께 파병된 동의부대의 의료지원과 더불어 모범적인 민사작전이 돼 아프가니스탄 주민들의 삶을 개선하는 희망이 됐다. 그리고 주민들이 한국군을 ‘신이 내린 은총’으로 부르는 원동력이 됐다.

하지만 일부 적대 세력의 테러가 때론 그 우호적인 관계를 가로막기도 했다. 윤장호 하사(추서 계급)의 전사가 그랬다. 다산부대 8진이었던 고(故) 윤 하사는 2007년 2월 27일 민사작전 중 폭탄테러로 전사했다. 이 예비역 대령은 당시 8진 부대장이었다. 지휘관으로서 누구보다 가슴이 아팠고 고 윤 하사에게 미안했다.

“안타까운 사건이었습니다. 그 일은 여전히 제 마음속 한곳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당시 부대원 모두에게 큰 아픔과 상처였습니다. 부대원들은 그 숭고한 뜻을 이어 전우의 몫까지 최선을 다해 임무를 마무리하고자 했습니다.”

이 예비역 대령은 해마다 2월 27일이면 고 윤 하사가 안장된 대전현충원을 찾고 있다. 그의 희생을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함이다.

이와 함께 다산부대는 타국 군과의 교류협력에도 신경 썼다. 특히 바그람 기지 내 다른 나라 공병부대와는 더욱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부대마다 다소 차이가 있는 공병 임무 수행 방법·과정을 공유하고 더 나은 연합 작전으로 나가는 방안을 위해 머리를 맞댔다. 다산부대는 뛰어난 역량을 바탕으로 연합 공병 작전을 주도했고, 타국 군 공병 장병들은 다산부대 공사 현장에 찾아와 견학하는 일이 잦았다.

다산부대는 태권도 교실을 운영해 기지 내 타국 군 장병들에게 큰 인기를 얻기도 했다. 교육에는 태권도 유단자인 장병들이 자발적으로 나섰으며 친절하고 열정적으로 그들을 가르쳤다. 또 국기원의 협조를 구해 일정 실력 이상을 체득한 타국 군 장병을 대상으로 바그람 기지 현지에서 승단시험을 치르기도 했다. 우리의 문화를 널리 알리는 동시에 타국 군 장병들의 체력과 정신전력 강화에도 도움을 준 시간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설과 추석에는 한복과 한식 체험을 제공하고, 투호 던지기와 제기차기 행사를 마련해 우리 전통문화를 소개했다. 또 다국적군의 단결을 위한 기지 마라톤 대회를 열거나 한미 연합 콘서트 등도 개최했다.

“그와 같은 교류 때문이었는지 한 태국군 공병부대장은 임무 교대하며 저에게 전투복 한 벌을 요청하기도 했습니다. 한국군 전투복을 자국 전쟁박물관에 기증해 아프가니스탄에서 큰 성과를 보여준 한국 공병을 다른 태국 장병들과 기억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뿌듯한 일이었습니다.”

다산부대는 9진 장병들이 2007년 12월 귀국해 해산하며 모든 임무를 마무리했다. 약 4년 10개월 동안 1349명의 부대원이 일궈낸 성과는 아프가니스탄의 안정에 든든한 보탬이 됐으며, 이어진 재건 작전에 소중한 바탕이 됐다.

/ 국방일보 서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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