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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경기한강유역

남양주 수락산 흥국사

by 구석구석 2024.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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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흥국사(興國寺)라는 이름의 사찰은 여럿 있다. 모두 조선의 역사 또는 왕실과 깊은 인연이 있는 곳이다. 이름 자체도 ‘나라가 흥하길 기원하는 사찰’이니 우리나라 호국불교의 깊은 전통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경기도의 아름다운 사찰] '승유억불' 하던 조선왕실이 아낀 사찰… 남양주 흥국사 - 중부일보 -

우리나라에 흥국사(興國寺)라는 이름의 사찰은 여럿 있다. 모두 조선의 역사 또는 왕실과 깊은 인연이 있는 곳이다. 이름 자체도 ‘나라가 흥하길 기원하는 사찰’이니 우리나라 호국불교의 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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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신도시 건설로 번잡해진 남양주시 별내면의 북쪽에는 서울 노원구와 경기도 의정부시, 남양주시의 경계가 되는 수락산이 있다. 수락산은 화강암 암반의 산으로 숲은 울창하지 않지만, 아기자기한 암봉과 계곡으로 서울 인근 휴양지로 인기 있는 곳이다.

남양주 흥국사는 수락산의 동쪽 사면 덕릉마을 인근에 자리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봉선사의 여러 본말사의 역사자료를 수집하여 정리한 봉선사본말사지등에 신라 화랑의 세속오계를 지은 원광법사가 ‘수락사(水落寺)’라는 이름으로 창건하였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지금의 흥국사는 엄밀히 말하면 조선 후기 덕흥대원군의 원당으로 세워진 덕사(德寺)에서 출발하였다.

덕사는 조선후기에 편찬된 지리지인 동국여지지에 수락사와 별개로 기록되어 있고, 이곳은 ‘덕흥대원군의 재궁이다’라고 설명한 것을 보면 덕흥대원군의 원당으로 세워졌음을 알 수 있다.

덕흥대원군은 조선 14대 임금인 선조의 아버지로 11대 임금 중종의 서자 9남이었다. 13대 임금인 명종은 세자가 일찍 죽고 후사가 없자 이복조카인 하성군을 후계자로 지목하였고, 하성군이 왕위에 올라 선조가 되었다. 이런 조선 중기 왕실의 부침으로 역사상 처음으로 대원군으로 추숭된 인물이 덕흥대원군이다. 선조 이후 왕실의 가계가 덕흥대원군을 시조하는 만큼, 덕흥대원군의 원당인 흥국사는 왕실에서 관심을 가지던 사찰이다.

'흥국사사적'이라는 사찰의 역사를 기록한 책에는 흥국사가 선조대에 처음 원당으로 세워졌을 때 이름은 ‘흥덕사(興德寺)’라 하였는데, 인조때 덕흥대원군과 같은 글자를 쓰지 못 하게 하면서 사찰의 이름을 ‘흥국사’로 고쳐 내려주었고 한다.

이후 정조때(1792년) 왕실의 후원을 통해 기허선사가 불전과 승방 등 여러 건물을 고쳐 지었으나, 순조때 화재로 대부분의 전각이 불타 없어졌고, 이후 5년 동안 서별실, 명부전, 대웅보전을 차례로 다시 지었고, 대웅보전의 불상을 개금하여 다시 봉안하면서 ‘흥국사’라는 어필의 편액을 받아 걸은 것으로 재건은 마무리되었다. 재건이 마무리되고 얼마 후인 1830년에 왕실의 후원으로 새로운 건물이 세워지는데 이 건물이 지금 흥국사의 얼굴과도 같은 대방이다.

순조 임금때 진행된 흥국사의 재건은 대웅보전 수리공사때 발견된 상량문을 통해 그 과정과 의미가 확인되는데, 여기에 ‘흥국사는 덕릉의 원당이다’라고 적접적으로 기록하고 있어 덕흥대원군의 원당사찰임을 명확히 하고 왕실 후원의 타당성을 밝히고 있다. 이러한 명분 때문인지 상량문의 후원자 명단에는 제일 앞에 ‘대시주 가순궁저하 경인년생 박씨’가 이름을 올렸다. 이분은 당시 보위에 있는 순조의 어머니인 가순궁 수빈박씨이다. 통상 왕실의 후원은 상궁 등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관례에 비춰 본다면, 수빈박씨를 직접 언급한 자체가 흥국사의 중창에 대한 왕실의 적극적인 지원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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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의 전유물 잡상을 올린 대웅보전

현대에 세운 일주문을 지나 절에 이르면 넓은 마당이 나오고 그곳에 높은 축대를 쌓고 대방채가 당당히 서 있다. 서울?경기 지역의 많은 사찰이 보여주는 가람배치법이다. 이 대방을 뒤로하고 옆으로 돌아가면 영산전과 대웅보전, 시왕전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흥국사 대웅보전은 순조 임금대 재건하고 약 60년이 지나 고종때 다시 한번 크게 고친 건물이다.

건물의 생김새를 보면 앞쪽과 옆면이 모두 3칸이면서, 지붕은 사면에 모두 처마를 둘러 끝을 하늘로 살짝 들어 올린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지붕과 건물 몸통 사이에 설치하는 공포는 기둥 위와 그사이에도 빼곡히 설치하였는데, 모두 연꽃과 봉황을 조각하여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특히, 네 귀퉁이의 공포에는 용을 조각해 넣어 건물이 한층 화려하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사찰의 불전을 꾸미는데 용이 많이 쓰이는 이유는 부처님을 수호하는 상징이기 때문이다.

불전 안에 들어가면 부처님이 앉아 계신 불단이 건물 뒤쪽 벽으로 치우쳐져 놓여 있고, 위쪽에는 화려하게 꾸민 닷집을 매달았다. 이곳의 부처님 뒤쪽에는 일반적인 불화가 걸리는 대신 크고 화려하게 조각한 광배가 설치되어 있어 다른 사찰의 불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부처님은 18세기 중반 활동한 상정스님의 작품으로 추정되는데 조선후기 불교조각 중 가장 화려한 광배를 가지고 있는 불상으로 정교하고 치밀한 조각이 보여주는 작품성이 높이 평가되고 있다.

흥국사의 대웅보전을 단순히 고종때의 불전으로 보기에는 여러 면에서 특별함이 있는 건물이다. 건물의 규모도 동시대의 불전 중에서 큰 편에 속하고, 공포를 건물의 사면에 모두 빠짐없이 설치한 부분도 동시대 건물 중에서는 보기 드문 완성도이다.

더 나아가 이 건물만의 특별함은 계단의 소맷돌 조각과 초석, 지붕에 올린 잡상에서도 찾을 수 있다. 먼저 소맷돌을 보면 6단의 계단 양옆에 아래쪽 3단과 위쪽 3단에 맞춰 위아래 2개의 소맷돌을 나눠 설치하였는데, 그 끝 부분에 3개의 소용돌이가 조각되어 있다. 얼핏 보면 삼태극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수원 화성과 용주사, 서울 승가사 등 정조때 중수한 건물에서 많이 보이는 소맷돌 조각 수법이다.

건물의 초석도 불교가 억압받던 시대의 투박한 산돌이 아니라 아래는 네모나고 위쪽은 둥글게 다듬은 초석으로 역시 소맷돌과 유사한 조각 수법을 보여주고 있다. 순조때 화재 이전, 정조대 절을 크게 수리할 때 만든 것으로 화성 용주사나 서울 승가사와 같이 정조와 인연 있는 곳의 특징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절의 기록이 1818년 화재로 모두 없어져 정조와의 인연이 자세히 알려지지는 않지만, 건물보다 오래된 소맷돌과 초석이 그간의 사정을 조금이나마 보여주고 있다.

대웅보전의 지붕에는 추녀마루라고 부르는 대각선 방향 네 모서리에 다른 절에서는 볼 수 없는 조각상이 올려져 있다. 이 조각상은 기와와 마찬가지로 흙으로 빚어 구운 것으로 ‘잡상(雜像)’이라고 일반적으로 부르고 있다. 잡상은 궁궐에서도 정전이나 편전과 같은 격이 높은 특별한 건축물에만 사용되는 장식 기와이다.

경복궁으로 치면 근정전과 사정전, 그에 따린 문 등에 사용하였다. 1622년경에 지어진 ‘어우야담’에는 잡상을 십신이라고 하여 대당사부, 손행자, 저팔계, 사화상, 마화상 등 이름이 순서대로 나열되어 있는데, 모두 ‘서유기’의 등장인물이다. 궁궐의 기록물인 ‘창덕궁수리도감의궤’(1647)에서는 잡상 명칭으로 손행자, 손행자매, 준견, 준구, 마룡 등으로 기록하여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삼장법사와 손오공으로 유명한 소설 ‘서유기’를 모티브로한 명칭이라는 점은 다르지 않다.

이런 잡상은 화마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상징물로 설치하는 것인데 사찰에 이를 설치한 것은 극히 예외적인 일이다. 그 만큼 흥국사가 조선왕실에게 있어서 각별한 의미가 있는 장소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대방과 불화에서 보이는 흥국사의 위상

흥국사에는 대웅보전뿐만 아니라 영산전과 대방, 영산전의 불상, 시왕전의 불상 등이 모두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고, 각 전각에 걸린 불화도 모두 조선후기 흥국사의 번창기때 그려진 것이다. 흥국사의 대방은 한 지붕아래 앞쪽에 튀어나온 누각이 큰 온돌방, 부엌 등이 같이 모여 있는데, 조선후기에 등장하는 새로운 유형의 건축물이다. 온돌의 발전과 여러 대중이 모여 같이 수행하는 결사문화가 꽃피면서 생겨난 것이다.

흥국사의 대방은 특히 왕실에서 각별히 신경을 써 지은 만큼, 다른 사찰의 대방보다 훨씬 더 크고 좌우대칭의 정연한 배치를 보여주고 있다. 대방 앞에 걸린 ‘흥국사’ 편액은 흥선대원군의 글씨로 그의 여러 글씨 중에서도 백미로 꼽히고 있다.

왕실의 후원이 컸던 만큼 흥국사에는 조선후기부터 근대기까지 수많은 화승이 활동한 본거지이기도 했다. 여러 전각에 모셔져 있고 걸린 불상과 불화 뿐만 아니라, 건물의 벽화와 단청에서도 남다른 완성도와 조형미를 볼 수 있다.

역사가 짧은 듯하지만, 그 어느 곳 못지않은 완성도와 격식을 갖춘 흥국사는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건, 지정되지 않았건 하나하나 꼼꼼히 뜯어 보며 그 시대를 음미하는 노력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부응했을 때 전혀 예상치 못했던 감흥을 맛볼 수 있는 곳이 이곳 흥국사가 아닐까 생각한다.

/ 출처 : 중부일보 - 도윤수 (동국대학교 문화재연구소 연구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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