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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경기한강유역

여주 파사산 파사산성

by 구석구석 2024. 4.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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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여주 파사성 (驪州 婆娑城)

경기도 여주의 파사성은 남한강 동쪽에 있는 해발 230m인 파사산 능선을 따라 돌로 쌓은 고대산성(古代山城)이다. 길가에 있는 이정표를 따라 20여 분 정도 산길을 올라가다 보면 만날 수 있는 이 산성은 짧은 산행에 비해 남한강과 함께 남한강의 보(洑)인 독특한 모습의 이포보(梨浦洑)가 한눈에 들어와 많은 상춘객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파사성의 북쪽 성벽을 따라 봄을 만끽하는 등산객들이 올라오고 있다.

특히 고려 말 이색 선생과 조선 중기 유성룡 선생이 이곳 파사성 위에서 경치를 바라보다 아름다움에 취해 시를 남길 정도였으니 전망만큼은 어느 곳에도 뒤지지 않는다. 또한, 복원한 곳과 복원하지 않은 곳이 산성 입구인 남문터부터 확연하게 눈에 들어와 옛 모습과 비교해 보는 것도 흥미롭다. 햇볕이 따스한 날 파사성에 올라 찾아온 봄을 만끽해 보자.  

새롭게 복원된 구불구불한 성곽이 주변 경관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 축조 시기 명확하지 않은 고대 산성

파사성이 처음 축조된 것은 신라 제5대 파사왕 때라고는 하지만 정확한 기록이나 문헌은 없다. 또한, 고대 파사국(婆娑國)의 옛터가 있어 파사성이라 했다지만, 이 또한 근거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파사성에 관한 기록이 처음 나타나는 것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으로 이때에도 이미 ‘고산성(故山城)’이라고 되어 있어 축조 시기를 명확하게 알 수 없다. 그나마 최근까지 진행된 발굴·조사에서 삼국시대의 유구(遺構·옛날 토목건축의 구조와 양식 등을 알 수 있는 실마리가 되는 잔존물)를 발견, 파사성의 축성 시기가 삼국시대로 밝혀졌을 뿐이다.

이후에 새롭게 성을 고치고 쌓은 것은 1592년 임진왜란 때로 당시 유성룡의 건의로 승군을 통솔하던 총섭 의엄이 승군과 함께 3년에 걸쳐 지금의 파사성을 완성했다고 한다. 이 같은 내용은 『선조실록(宣祖實錄)』과 유성룡의 『서애집(西厓集)』에 나와 있어 자세히 알 수 있다.

성곽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남한강의 전경과 함께 이포보가 한눈에 들어온다.

■ 현재와 과거가 공존하는 성곽

성벽의 길이는 936m이고 최대 높이는 6.5m, 낮은 곳은 1.4m 정도다. 성곽 상단의 폭은 3.2~7.2m에 이른다. 성의 전체적인 모습은 들쑥날쑥하고 북쪽이 솟아있는 형태다. 성벽은 크기와 두께가 다른 돌을 이용했지만, 잘린 면이 밖으로 오도록 쌓아 올려 비교적 일정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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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출입문으로 쓰이는 남문지 왼쪽으로 곡성과 함께 성곽이 잘 복원돼 있는데 여기서 바라보는 경치가 아름답다. 나머지 구간은 복원되지 않고 무너진 곳이 많지만, 옛 성곽의 모습을 간직한 곳도 남아있어 현재와 과거가 공존하는 성곽이기도 하다.

복원된 포루와 치

파사성은 지난 2016년까지 모두 7차례 발굴조사가 이뤄졌고, 이때 성 바깥과 안쪽에 면을 맞추고 사이에 돌을 채워넣은 석성이 확인됐으며, 신라시대 성벽의 특징인 보축 성벽도 이때 조사됐다.

주 출입문으로 쓰이는 남문지 옆에 있는 곡성 앞의 포루. 이 포루는 조선시대의 방어시설물로 성벽 밖으로 각지게 돌출시켜 축조됐다.

■ 적 감시에 최적이었던 전략적 요충지

문터는 동쪽과 남쪽에 두 군데가 있는데 이 중 남문터는 파사성에서 주 출입문으로 쓰이고 있다. 또한, 남문터에는 위에 건물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팔각형의 주춧돌이 있는데 조선시대에 세운 것으로 짐작된다.

파사성 장대

남문터 안쪽에는 넓은 평지가 있어 파사성을 한 바퀴 둘러보기에 앞서 쉬어 가기 좋다. 성 내부에는 수구지를 비롯해 우물터와 각종 건물터가 남아있다. 파사성 가장 높은 지대인 동북쪽에는 곡성이 있는데 삼국시대의 성벽이 일부 원형대로 남아있어 이를 허물지 않고 볼 수 있도록 2008년 보수 공사를 했다.

당시 보수 공사를 하며 상부는 계단 형식으로 정비한 점이 특징인데 노후한 성벽이 윗부분의 하중으로 인해 더는 훼손되지 않도록 하려고 이런 방법을 택했다.

파사성의 입구.남문지로 왼쪽, 오른쪽으로 가면 동문지로 간다.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남한강 상류와 하류로 진입하는 외적을 감시하는 데 최적의 입지조건을 갖췄던 파사성. 작지만 지리적·전략적 요충지로서 우리나라 성곽 역사에서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현재 확인된 파사성의 시설들은 동벽 남쪽과 남문지 서쪽, 북벽 서쪽의 성벽이 돌아가는 부분에서 발견된 3개소의 곡성과 포루 등이다. 포를 쏘거나 망을 보는 데 사용된 포루는 삼국시대에는 당연히 없었던 만큼 조선시대에 이르러 곡성을 포루로 만들어 재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남문지에 들어서서 곡성이 있는 왼쪽 성벽에 올라서면 보이는 파사성의 내부 모습.

/ 국방일보 이경원의 성곽순례 / 편집 이경하기자 

 

여주 37번국도 천서리막국수 봉진막국수 파사산성 마애여래입상 (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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