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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경기도

평택 덕목리 심복사

by 구석구석 2024. 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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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시 현덕면 심복사길 22 / 심복사 031-682-5588 www.simboksa.org

 

 

[경기도의 아름다운 사찰] 소에게도 불성이 있을까? 소 무덤이 있는 평택 심복사 - 중부일보 - 경

불교에서 소의 의미2021년, 신축년도 이제 넉달 정도 남았다. 10간 중 신(辛)은 오행 상 흰색을 의미하고 12지 중 축(丑)은 소를 의미하니 올해는 ‘흰 소’의 해다. 불교에서 하얀 소는 상서로운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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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선종화 중에 불도(佛道)를 찾아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을 야생의 소를 길들이는 데 비유한 심우도(尋牛圖)가 있다.

12세기경 중국 북송(北宋)의 곽암이라는 승려가 처음 그린 것인데, 총 열 단계의 과정을 거친다고 해서 십우도(十牛圖)라고도 한다. 그 과정은 다음과 같다. 방황하던 동자가 마음 속 야생 소를 발견해 도망치지 못하게 하고 길들인다. 길들여진 소를 타고 집으로 돌아간 동자는 마침내 소를 방편으로 자신의 심원에 도달했음을 안다.

심복사전경 / 양승수

이후 ‘공(空)’을 깨닫는다. 이때 야생의 소는 미완성의 도를 뜻해 검은 소로 묘사된다. 소는 길들여지면서 점차 하얗게 변하다가 동자가 소를 타고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는 단계에선 완전한 흰 소가 된다. 동자와 소 모두 번뇌와 망상, 욕망이 끊긴 무심한 상태다. 불교에서 진리를 찾는 자라면 바로 이 흰 소를 만나야 하는 것이다.

심복사 창건설화 묘사한 벽화 / 중부일보

심우도는 사찰 벽화로 자주 접할 수 있는 그림이다. 본 기획인 ‘경기도 아름다운 사찰’에서 소개했던 용문사, 신륵사, 회암사 등 숱한 사찰 전각 외벽에 심우도가 그려져 있다. 불교하면 떠오르는 동물들은 코끼리부터 사자, 용, 물고기, 거북, 학, 호랑이 등 실로 다양하다. 과거 농경사회에서 가장 밀접했던 동물인 소 역시 불가와 가까웠다. 고려 때 선승인 보조국사 지눌스님의 호는 소를 기르는 사람이라 해서 ‘목우자(牧牛子)’라 했고, 현재는 사적으로 보호받는 만해 한용운 스님의 유택 또한 심우도에서 이름을 따온 ‘심우장(尋牛莊)’으로 불린다.

 

소무덤

‘우보살’을 기리며 조성한 소 무덤

평택 심복사에는 심우도가 없다. 그런데 소 무덤은 있다. 도로에서 절로 향하는 마을 안길로 들어서자마자 ‘소 무덤’이 보인다. 모르고 지나치면 시골 길가에서 흔히 보이는 누군가의 산소 같지만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까만 비석에 큼직하게 새긴 ‘소 무덤’이란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대체 어떤 소였기에 죽어서 사람 못지않은 묏자리를 얻었을까. 떼를 입힌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봉긋한 봉분과 그 아래로 반듯하게 쌓아 올린 축석, 커다란 상석을 보니 경건하고 귀하게 모시는 묘가 분명하다. 사실 죽은 동물을 기리며 사람과 같이 묘를 조성한 일이 아주 드문 사례는 아니다.

주인에게 충성한 말을 기리기 위해 만든 무덤 ‘의마총’은 파주, 청도, 곡성 등 전국 곳곳에 있다. 또 주인을 위해 호랑이를 물리친 의로운 소를 묻어준 구미의 ‘의우총’도 있다. 심복사 앞 무덤 주인인 소는 어떤 공덕을 지었기에 죽어서 비석을 남겼을까.

이야기는 고려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평택 덕목리 앞바다(현재의 아산호 일대)에서 고기를 잡던 천씨 노인이 그물을 올렸는데 큰 돌이 딸려 올라왔다. 괘념치 않고 버렸는데 또 한 번 같은 돌이 그물에 걸려 자세히 살피니 불상이었다. 그는 예사롭지 않다고 여겨 불상을 지고 근처 산을 올랐고, 갑자기 불상이 무거워져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던 자리에 불상을 봉안했다.

그런데 노인의 꿈에 부처님이 나타나 바닷가에 큰 배 한 척과 검은 소 세 마리가 있으니 그것을 이용해 절을 지으라는 계시를 주었다. 노인이 바닷가에 가보니 정말 폐선 한 척과 소들이 있었고, 노인은 소들의 도움으로 폐선의 목재를 불상의 자리로 옮겨 절을 지었다.

그 자리가 바로 현재의 심복사다. 그러니까 이 소 무덤은 노인과 함께 사찰 창건의 공덕을 세운 소 세 마리의 무덤이다. 무덤이 조성된 때는 2016년으로 심복사 주지 스님과 신도들은 늦게라도 창건주에 대한 고마움을 표하고 싶었던 것 같다. 또한 사찰의 창건설화가 단지 설화에 머물지 않고 가시적인 형태로 드러나니 사찰 들머리의 의미 있는 표식이라 할 수 있겠다.

주지스님은 고마운 ‘우(牛)보살’을 기리며 매년 무덤 앞에서 제를 지낸다. 그 모습은 KBS 프로그램 ‘한국인의 밥상’ 편에도 등장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취를 삶아 만든 떡, 과일과 녹차 등 짚을 깔아 정성스레 마련한 한 상을 소에게 올리며 예를 다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무덤 앞에는 논이 펼쳐져 있고 같은 자리에서 시선을 멀리 던지면 바다를 향해 흐르는 안성천이 보인다. 용인에서 발원해 안성을 거쳐 세를 불린 천은 아산만의 길목에 닿아 있다. 바닷가에서 예까지 거슬러 올라온 불상, 논밭을 지나 산기슭을 오르는 소들을 모습을 자연스레 연상할 수 있는 풍경이다.
 

대적광전

주불로 모신 창건설화 속 천년 돌부처

심복사 일주문은 소 무덤에서 1~2분만 걸으면 보인다. 일주문 편액에는 광덕산 심복사(廣德山 深福寺)라 적혀있다. 광덕산은 현재 고등산의 옛 이름이다. 사실 심복사도 본래 이름이 신복사(新福寺)였다고 한다. 신복이 어쩌다 심복이 되었는지, 절은 언제 창건되었는지 기록이 없어 정확히는 알 수 없다. 다만 노인이 바다에서 건졌다는 불상이 오롯하게 주불전에 모셔져 있기에 고려 때에도 존재했을 것이라 가늠할 뿐이다.

일주문을 지나 연못 하나를 돌아들면 곧장 도량이 나온다. 고등산은 해발 132m의 낮은 산이고 절은 산의 입구나 다름없는 야트막한 지대에 자리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가기는 어렵지만 자차를 이용할 시 오래 걷거나 오르지 않아도 돼 접근성은 좋다. 도량 입구 담장에는 창건설화를 묘사한 벽화가 그려져 있다. 폐선을 싣고 등불을 따라 가는 소 세 마리를 표현했는데 소의 하얀 머리와 까만 몸통이 돋보인다. 심우도에서 도의 깨달음을 향해 점점 흰색으로 변하는 소의 모습을 차용한 듯하다.

주불전이 있는 절마당으로 들어서기 위해 2층 전각인 향수해(香水海)를 통과한다. 누각 이름이 독특한데 향수해란 불교 세계관의 중심산인 수미산을 둘러싼 여덟 바다 가운데 일곱 바다를 가리킨다. 여덟 바다 중 가장 바깥쪽의 바다만 짠물이고 일곱 바다는 민물이다. 이는 곧 연꽃이 필 수 있는 바다라는 의미이기도 해서 향수해를 ‘연꽃 피는 향기로운 바다’라 칭하기도 한다.

심복사가 곧 서해와 만나는 안성천 하류에 위치한 사찰이기에 퍽 어울리는 작명이 아닌가 싶다. 또한 심복사 일주문과 도량 사이에는 연못이 있어 여름마다 연잎이 무성하고 연꽃이 핀다. 소 무덤을 비롯해 경내 안팎에서 세심하기 이를 데 없는 불교적 실천이 느껴진다. 심복사 향수해는 해탈문 혹은 불이문으로 볼 수 있다. 누하진입(樓下進入)후 계단을 오르면 눈앞에 대적광전이 등장한다.

삼복사의 하이라이트 석조비로자나불좌상 / 양승수

대적광전은 비로자나불을 본존으로 한다. 석가모니불이 인격으로서의 부처님이라면 비로나자불은 진리로서의 부처님이다. 온 세상을 비추는 태양처럼 불법 또한 어디에나 존재함을 상징한다. 석가모니불 대신 비로자나불을 중앙에 모시는 사찰이 많은 것은 한국불교만의 특징인데, 한국불교가 속한 대승불교의 이념적 결정체인 <화엄경>을 설법하는 부처님이 비로자나불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로나자불을 모시는 전각을 화엄전이라고 부르기도 하다.

그럼에도 주불전으로써 대웅전에 비해 대적광전은 드문 편인데 심복사는 창건설화에 등장하는 돌부처가 본존으로 모셔진 대적광전이어서 더욱 눈길을 끈다.
 

삼성각

비로자나불 앞에 이어져온 소처럼 우직한 불심

불단에는 협시불 없이 오직 석조비로자나불 한 분만이 계신다. 법당 실내에서 옛 돌부처를 마주하는 경험이 꽤나 새롭게 다가온다. 천년의 긴 세월 탓에 전체적으로 마모가 있지만 단아한 자태와 온화한 인상이 느껴지고 비로자나불의 수인인 지권인도 또렷하게 보인다.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는 지권인은 부처님의 여러 수인 중 가장 구분이 쉬운 모양새다. 오른손은 부처님의 세계, 왼손은 중생의 세계를 뜻하며 부처와 중생은 둘이 아닌 하나임 뜻하는 동시에 부처가 중생을 감싼다는 의미를 갖는다. 이러한 상징들 덕분인지 비로자나불에게선 빛을 쬐는 듯 따뜻한 기운이 느껴진다.

바다에서 끌어올려진 심복사 비로자나불도 그러하다. 아쉽게 광배는 사라졌지만 천년의 돌부처로 내내 같은 자리를 지켜오며 수많은 이들에게 말없이 불법을 설파해왔다. 비록 비로자나불이 사람의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광명(光明)의 부처라지만 그간 참 많은 불자들이 이 돌부처에게서 마음의 평안을 얻어갔을 것이다.

심복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은 보물 제56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고려시대 초기 석불 양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재다. 특히 신라 말에 조성된 봉화 축서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과 매우 유사해 신라 양식의 고려적 계승이라 평가받는다.

3층석탑 / 양승수


대적광전 앞 삼층석탑 역시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원형이 많이 파손되어 별도의 문화재로 지정되진 않았다. 석불과 석탑을 제외하고 도량의 전각들은 모두 근래에 새로 지은 것이다. 조선 후기에 몇 차례 중수 기록이 있지만 건물들은 오래 남지 못했다. 그러나 창건설화 속 불상이 오늘날까지 건재하다는 사실만으로도 심복사는 매우 특별한 사찰이다. 불상을 잘 모시도록 불사에 동참한 소들을 기리는 마음 또한 연연하다.

/ 출처 중부일보 글·사진 여행작가 유승혜

평택 덕목리-심복사 (tistory.com)

 

평택 덕목리-심복사

심복사 031-682-5588 서울에서 39번 국도를 이용하여 아산 방면으로 향한다. 가다가 주은임대아파트에서 좌회전하여 6㎞쯤 가면 절 입구에 닿는다. 여기까지 시간은 15~20분 가량 걸린다. 심복사 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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