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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경기도

평택 원정리 수도사 사찰음식

by 구석구석 2024. 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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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맛이 좋아 해골물도 달았을가? 평택 수도사

 

 

[경기도의 아름다운 사찰] 물맛 좋아 해골물도 달았을까? 사찰음식 전문사찰 평택 '수도사' - 중

원효 순례의 시작이자 끝전국에는 원효대사의 흔적이나 전설이 서린 수많은 사찰들이 있다. 본지 경기도 아름다운 사찰 기사를 통해서도 신륵사, 원효사, 염불사, 아미타사 등 도내 원효대사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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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사에서 가장 유명한 고승이자 사상가로서 원효대사의 영향이 미치지 않은 고찰도 드물다. 그럼에도 그 옛날, 스님 한 분이 그토록 많은 절과 산을 언제 다 돌아다녔을까 의구심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나 생애 전반을 저잣거리에 뛰어들어 부처의 가르침을 대중에 전하고, 당나라 유학 결심 후 유학길에 오르느라 경주에서 평택을 오갔던 원효대사이기에 전국 사찰 일주가 무리는 아니었을 것 같다. 그 일주의 종착지이자 시발점이 있다면 바로 이곳이 아닐까. 원효의 사상과 명성을 낳게 한 ‘원효대사 깨달음 성지’, 평택 수도사다.


 그는 왜 이곳에서 유학을 포기했을까

모두가 알다시피 원효대사의 당나라 유학은 이뤄지지 않았다. 바다 뱃길을 눈앞에 두고 잠을 청했던 그날 밤, 갈증을 느낀 원효는 어둠 속에서 물 한 바가지를 마신다.

다음날 그 물이 해골에 고인 물임을 알게 된 그는 다음과 같은 깨달음을 얻는다. ‘마음이 생기면 우주 만물이 생기고, 마음이 사라지면 해골 물과 깨끗한 물이 서로 다르지 않으니 세상 모든 것은 오로지 마음먹기에 달렸구나!’ 그리하여 동행했던 의상대사만이 당나라로 향하고 원효대사는 다시 서라벌(경주)로 돌아갔다.

수도사는 원효대사가 해골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은 오도성지로 추정하는 사찰이다.

661년, 그러니까 1360년 전에 두 스님이 하룻밤을 묵은 무덤가 혹은 토굴이 정확히 어딘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당시의 경로를 통해 대략의 위치를 추정해볼 수는 있다.

신라시대, 서라벌에서 당나라로 향하는 경로를 짚어보면 크게 경주-상주-보은-청주-목천-천안-평택을 거쳐 팽성의 경양포나 곤지진에서 배를 타고 평택의 신흥포(현재의 아산 둔포면)나 계두진에 내렸다. 그 다음 포승방면으로 향해 최종적으로 당나라행 배를 타는 코스가 대중적이었다고 전한다. 그 길 위에 수도사가 자리했다는 점에서 원효대사가 깨달음을 얻은 곳으로 추측하는 것이다.

물론 스님들이 다른 경로를 따랐을 수도 있고 수도사가 아닌 다른 장소에서 묵었을 가능성도 있다. 다만 오도처일 확률이 높은 장소들 중에서 원효의 업적과 깨달음의 내용을 알리는 전시관을 운영하고, 주변 관광지와 연계해 천 년 전 구도의 길을 되살린 곳은 수도사가 유일하다.


신라까지 이어진 실크로드, 그 위의 원효길

수도사에서 평택항이 멀지 않다. 자동차로는 15분, 도보길인 ‘원효길’을 따라서는 3시간 30분 쯤 걸린다. 원효길은 평택의 마을 곳곳을 도는 도보길 ‘평택섶길’의 12개 코스 중 한 코스다. 평택호예술공원에서 평택항을 거쳐 수도사를 잇는 총 길이 22km의 이 길은 원효와 의상이 불법을 찾아 걸은 길이라 해서 원효길로 명명되었다.

수도사 대숲 안에 마련된 해탈수관

평택항은 옛날부터 국제무역의 허브였다. 중부권에서 중국을 단거리로 갈 수 있는 항구로 많은 물자가 오가고 유학생 교류가 잦았다. 의상대사도, 또 ‘왕오천축국전’을 남긴 혜초스님도 이곳에서 바다를 건넜다. 즉, 로마에서 경주를 잇는 실크로드의 주요 기항지 중 한 곳이 평택·당진항이었다.

서라벌(경주)에서부터 먼 길을 걸어온 원효대사도 이윽고 대진(평택항)에 닿았을 때는 퍽 의미심장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이미 한 차례 고구려 국경을 넘다 간첩으로 오해를 받고 유학이 불발된 경험이 있던 원효에겐 꼭 당으로 가야한다는 절실함이 있었다. 그 간절함을 찰나에 뒤집은 원효 마음 속 깨달음의 실체를 오늘을 사는 중생이 헤아리긴 어렵다. 그저 말로 전해 듣고 머리로 이해할 뿐이다. 득도한 이와 그렇지 못한 이 사이의 심연 또한 분별하려는 마음이 만들어낸 것이리라.

다만 그가 걸었던 원효길을 걸으며 천년을 거쳐 회자되는 어느 ‘자유인’의 모습을 더듬어 보는 것이다. 원효길은 하루만에 종주하기에는 장거리라서 보통 수도사에서 평택항까지 1구간, 평택항에서 평택호예술공원까지 2구간으로 나누어 걷는다.

평택호예술공원에는 혜초기념비가 있다. 2009년 열린 제4회 UN실크로드 메이어스 평택포럼을 기념해 세운 비로 실크로드를 통해 인도를 여행한 혜초스님의 생애와 업적이 적혀 있다. 일각에서는 혜초기념비 옆에 원효대사의 동상이나 관련 시설을 세워 ‘실크로드’와 ‘원효대사’로 상징되는 국제도시 평택을 좀더 알릴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도 그럴 것이 두 키워드가 부각된 관광지는 현재로선 수도사 외에 전무하다. 지난 10월 16일 수도사에서는 제1회 평택 역사문화로드 학술대회가 열렸고 불교계, 학계 전문가들이 모여 이와 관련한 논의를 벌이기도 했다. 이들은 평택호예술공원에 혜초·원효·의상 스님의 구법 열정을 예술조형물로 기념할 것을 제안했다. 오는 10월 30일 토요일에는 수도사에서 원효길 체험 행사가 열릴 예정이다.

전통사찰음식학습체험관 옆의 장독대


해골물을 마시고 물멍 즐기는 ‘해탈의 시간’

수도사에는 원효대사 깨달음 체험관이 있다. 원효대사의 명성을 생각하면 그에 대한 기념관이나 박물관이 오랫동안 부재했음이 의문스럽다. 다행히 2017년, 정부예산지원으로 원효대사깨달음체험관이 수도사 경내에 문을 열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원효대사를 조명하고 깨달음의 순간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알찬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이곳의 하이라이트는 토굴체험실이다. 어두운 통로를 지나 원효대사와 의상대사가 묵었던 토굴 재현실로 들어서면 짧은 애니메이션이 상영된다. 영상을 통해 그 유명한 해골물 깨우침이 일어나는 순간, 관람객이 서있던 바닥 내부에 조명이 켜지면서 해골 모형이 드러난다. 왜 이곳이 기념관이나 박물관이 아닌 ‘체험관’이라는 이름으로 세워졌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체험관 뒤로 가람을 내려다볼 수 있는 숲길이 나있다. 이 길을 따라 걸으면 멀리 남양호가 보이고 대웅전 뒤편을 지나면 대나무가 우거진 작은 숲이 이어진다. 그리고 곧 해탈수(解脫水)라 명패를 건 사각의 반듯한 벽돌건물이 등장한다. 원효대사가 마신 해골물을 해탈수라고 표현한 것인데 건물 내에는 이 해탈수를 상징하는 작은 인공못이 조성되어있다.

천장은 못과 같은 형태로 뚫려 하늘이 훤히 보이고 못 주변에는 여러 명이 앉을 수 있는 의자가 만들어져 있다. 명상의 공간이다. 요즘 유행하는 말로 ‘물멍(물을 보며 멍하게 있는 다는 의미)’도 할 수 있고 ‘하늘멍(하늘을 보며 멍하게 있는 다는 의미)’도 할 수 있다. 시선을 어디에 두든 마음이 차분해지고 사각사각, 바람에 흔들리는 대숲의 소리만이 귀를 간질인다.

해탈수 옆에는 특이한 식수 공간이 있다. 물은 페달을 밟으면 해골 모형의 한 귀퉁이에서 흘러나온다. 정수된 물로 안심하고 마실 수 있지만 어쩐지 기분이 묘하다.

아궁이로 사찰음식을 만드는 수도사 주지 적문스님.



물맛이 달아 음식도 맛있나, 사찰음식의 성지

해탈수 건물 옆에는 무대처럼 설치된 나무 데크 위에 야외 조리대가 놓여 있다. 사찰음식을 만들고 시식하는 오픈 스튜디오다. 우거진 대숲 안에서 바람소리 새소리 들으며 제철 식재료로 만든 사찰음식을 맛볼 수 있다니, 상상만으로도 군침이 돈다.

힐링 푸드니 마음 테라피니 하는 말들이 퍽 진부하게 느껴지지만, 산사 대숲에서 유부버섯조림, 토란튀김 등을 먹으며 스님과 대화를 나누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힐링이지 싶다.

수도사 주지 적문스님은 오랫동안 사찰음식을 연구해온 사찰음식 권위자다. 경기도 지정 슬로우 푸드 체험기관, 대한불교조계종 문화사업단 지정 전통사찰음식 특화사찰인 수도사는 적문스님의 직접적인 지도로 다양한 사찰음식 클래스를 운영하고 있다.

사찰음식은 원효대사와 함께 수도사를 대표하는 키워드다. 대나무숲 오픈스튜디오에서 진행되는 사찰음식 시연 프로그램은 보통 ‘원효대사 무애무(무애사상을 표현한 춤) 공연’과 사찰 산책으로 묶인 1시간 코스로 참여할 수 있다. 원효대사와 사찰음식을 주제로 공연과 체험을 두루 즐길 수 있어 수도사에 처음 방문한 이들에겐 더 없이 알찬 시간이다.

일일 사찰음식 쿠킹클래스에 참여할 수도 있다. 수도사에 별도로 세워진 전통사찰음식학습체험관 안에는 개인별 조리대와 모니터를 갖춘 최신 설비의 클래스룸이 있다. 일일 클래스는 보통 세 가지의 사찰음식을 조리하고 시식한다. 전문가 과정으로 3개월 기본반, 6개월 심화반 강좌도 있다.

전 과정을 수료하면 사찰음식 지도자 자격증 시험 자격이 주어진다. 체험관 옆에는 크고 작은 장독들이 보기 좋게 놓여 있고 장작으로 불을 때는 재래식 초가 부엌이 있다. 모두 사찰음식을 위한 것들이다. 문득 물맛이 좋은 곳은 장맛도 좋다는 말이 떠오른다. 원효대사가 해골물을 달콤하게 마신 이유가 원체 수도사 일대의 물맛이 좋아서는 아닐까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적문스님은 매년 한중일 사찰음식 전시회도 열고 있다. 각 나라별 사찰음식의 특징을 살려 만든 실물 음식을 하루 동안 전시, 시식하는 행사다. 지난해 전시에는 ‘코로나19 면역력 증진 강화를 위한’이라는 수식이 붙었다. 타국의 사찰음식까지 다루는 전시는 드물어서 큰 관심을 모았고 올 11월 27일 예정인 두 번째 전시 또한 기대를 모으고 있다. 과연 실크로드 위에 세워진 사찰답다.

/ 출처 중부일보 글·사진 여행작가 유승혜

 

 

[경기도의 아름다운 사찰] 마르지 않는 해탈수, 원효를 만나다… 평택 수도사 - 중부일보 - 경기·

원효스님의 석굴 수행 행적을 찾아가는 길에 만난 평택 수도사는 사실상 그 발단이라고 해야할 곳이다. 원효스님은 의상스님과 함께 이곳을 지나면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날 중국 당나라로 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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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의 아름다운 사찰] 마르지 않는 해탈수, 원효를 만나다… 평택 수도사

원효스님의 석굴 수행 행적을 찾아가는 길에 만난 평택 수도사는 사실상 그 발단이라고 해야할 곳이다. 원효스님은 의상스님과 함께 이곳을 지나면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날 중국 당나라로 가는 배를 타려고 했으나 밤중에 해골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어 유학길을 접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유명한 이야기는 우리가 잘 아는 ‘삼국유사’나 ‘삼국사기’에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다. 중국의 ‘송고승전’에 실려있으며, 그것도 원효스님 이야기가 아니라 의상스님의 이야기 가운데 등장한다. 더불어 해골물을 마신다는 이야기와도 조금 다르다.

원효스님의 해골물 설화를 그린 수도사 대웅전의 벽화 출처 : 중부일보

‘송고승전’에는 이렇게 나온다. 즉, 당나라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가다가 한밤중에 폭우를 만나 당혹스런 차에 다행히 토굴을 찾아 몸을 피하고 편하게 하루를 묵었는데, 아침에 보니 그곳은 무덤이었던 것이다. 주변에 해골도 널려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런 곳에서 부득이 하루를 더 묵을 수 밖에 없었다. 아마도 계속되는 폭풍우로 인해 떠나기로 했던 배도 발이 묶여 하루를 더 기다릴 수 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전날에는 그 토굴에서 안락하게 편히 잘 수 있었지만, 일단 그곳이 무덤인 줄 알았기 때문인지 원효스님은 계속 귀신 꿈을 꾸고 귀신이 나타날 것만 같아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같은 장소인데도 무덤인 것을 몰랐을 때와 알았을 때 사람의 마음이 그렇게 다른 것을 알고는 큰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이다.

평택 수도사 전경과 언덕 너머의 바다 풍경

그렇다면 해골물을 마셨다는 이야기는 언제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정확한 출처는 아직 확인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이야기가 만약 오래된 것이라면 나름대로 또다른 근거를 가지고 있을 것이기에 해골물 설화를 당장 무시하지는 않기로 한다. 여하간 토굴과 무덤이라는 큰 흐름에서는 별반 차이가 없다.

이때 원효께서 깨달은 내용이 바로 "일체유심조"라고 널리 알려져 있으나, 실제는 약간 다르다. 이 역시 큰 뜻으로 보면 같은 의미이지만, 원문을 읽고나면 원효스님이 왜 유학을 포기했는지 더 분명히 알 수 있다. 원문은 이렇다.


심생즉종종법생(心生則種種法生) : 마음이 생겨나면 각각을 분별하는 마음이 생기고
심멸고감분불이(心滅則龕墳不二) : 마음을 멸하면 토굴과 무덤도 둘이 아니네
삼계유심만법유식(三界唯心萬法唯識) : 세계는 오직 마음에 딸린 것이며, 현상은 인식에 딸린 것이니
심외무법호용별구(心外無法胡用別求) : 마음 밖에 따로 법이 없는데, 어디서 무엇을 따로 구하랴

수도사 대웅전(중앙) 및 명부전(향좌측), 사찰음식체험관(향우측)

원효스님은 무덤에서 하루 묵으면서 세 번째 구절 ‘만법이 유식’임을 깨달았다. 그런데 그가 당나라에 유학가서 배우려고 했던 것이 바로 유식불교였다. ‘유식’임을 깨달았으니 굳이 ‘유식불교’를 배우러 갈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원효스님이 깨달음을 얻은 장소, 즉 오도처(悟道處)가 어디인지에 대해서는 몇가지 설이 있다. 가장 유력한 곳으로 알려진 곳이 바로 이곳 평택 수도사이며, 그밖에 화성의 몇몇 장소가 물망에 오르기도 한다. 이러한 차이는 원효·의상스님이 배를 타러 가려던 항구인 당항진을 어떤 경로로 이동했는가에 따른 이견이다.

충북 영동의 추풍령을 지나 평택을 거쳐 화성 당항진으로 이어지는 남쪽 길로 갔을 것으로 추정하는 견해와 함께 북쪽 계립령을 넘어 여주를 통해 뱃길로 서쪽으로 나아갔을 것이라는 견해의 차이이다. 이번 글에서는 어느 곳이 맞는가에 대해 다루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현재 우리가 원효대사의 오도처로서 찾을 수 있고, 어느 정도 컨텐츠가 갖춰진 곳은 평택 수도사이며, 상당한 신빙성을 갖고 오랜 세월 오도처로 인식되어 온 곳이기도 하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수도사 바로 뒤가 바다임을 알 수 있다. 현재는 해군 2함대 사령부가 자리잡고 있어 지금도 항구로 중요한 지역이다. 더구나 원래 수도사의 자리는 현재의 위치에서 바닷가로 고개를 넘어 원정리 봉수대(괴태곶 봉수대) 인근이었으나 이곳에 과거 산업시설이 들어서면서 사찰과 마을이 모두 지금의 위치로 이전해올 수 밖에 없었고, 지금은 수도사의 원터가 해군기지에 편입되어 있다.

지금보다도 더 바다가 보이는 가까이에 수도사가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현재의 수도사는 그렇게 이전해 왔지만, 경내 큰 나무 아래에 있는 승탑은 원위치에서 옮겨오면서 함께 이전해온 것이라고 한다. 

원효 깨달음 체험관

여하간 원효스님이 배를 타려고 했던 곳은 당진일 수 있지만, 이곳에서도 멀지 않으니, 이 바닷가 어느 토굴에서인가 원효스님은 깨달음을 얻으셨던 것이다. 물론 애초부터 깨달음을 얻은 토굴은 무덤이었으니, 현재 그곳이 그대로 남아있을리는 만무하다. 다만 다양한 컨텐츠를 통해 그 깨달음이 흔적을 이곳에서 느끼고 읽어볼 수 있다.

우선 <원효대사 깨달음 체험관>에서는 문화해설사의 친절한 설명으로 수도사가 원효대사의 오도처로서 가지는 의미에 대해 배울 수 있다. 그리고 체험관 안쪽에는 동굴 형태로 만들어 놓고 원효스님의 그 깨달음을 얻던 날 밤의 행적을 체험해볼 수 있도록 꾸몄다.

폭우가 내리던 밤의 모습은 광케이블이 늘어진 동굴공간을 통해 간접적으로 그날의 비를 재현했다. 빗줄기처럼 늘어진 광케이블 사이로 들어서면 천둥소리가 들리고 마치 설치미술 속에서 자연을 만나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이내 큰 동굴 안에 들어서는데, 비록 원효스님이 머물렀던 토굴은 이처럼 크지 않았겠지만, 당시의 천둥치는 날 밤을 상상하기에는 충분하다.

깨달음 체험관 내부의 토굴 체험

인상적인 것은 원효스님이 해골물을 마시고 난 다음 날이 밝아오는 순간에 동굴 바닥에 빛이 켜지면 투명한 바닥 그 아래로 해골들이 늘어서 있는 것이 갑자기 드러나 깜짝 놀라게 된다. 그 ‘놀람’의 순간에 깨달음이 있었던 것이기에 신선한 접근으로 다가온다. 수도사를 방문하시면 꼭 이 체험관에 들러 광케이블 빗줄기를 지나 이곳 해골방에서 영상을 시청해보시기를 권한다.

원효스님의 깨달음을 충격요법으로 체험했다면, 이번에는 좀 더 여유롭게 생각에 잠길 수 있는 공간으로 걸음을 옮긴다. 대웅전 뒤쪽으로 대나무가 우거진 숲으로 오르는 잘 조성된 산책길을 따라 조금 오르면 ‘해탈수’라는 이름이 붙은 작고 아담한 건축을 만나게 된다.

그 건물 한쪽은 해골에서 물이 솟아나오는 방이고, 다른 방은 천정이 둥글게 개방되어 햇살과 바람이 개운한 현대식 선방이다. 둥글게 내려오는 햇살을 둘러싸고 벽에 기대어 앉아 맑은 물이 고인 연못을 바라보며 잠시나마 명상에 잠길 수 있는 곳이다.

대웅전 옆으로 해탈수 올라가는 대나무숲길

현대식 건물이지만, 필자가 과거 파키스탄의 간다라 유적지를 답사할 때 들렸던 옛 스님들의 수행처가 떠올랐다. 가운데 연못을 두고, 그 연못 주변에 스님들이 앉아 물에 비치는 형상들을 바라보며 참선했던 흔적이 남아있는 절터였다.

원효스님의 수행처로 전해지는 곳은 대부분 약수와도 관계가 있다. ‘송고승전’ 속 원효스님의 깨달음 이야기에는 ‘물’이 등장하지 않지만, 원효스님과 연관된 전국의 석굴 유적에는 특별한 물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다. 석굴과 물, 그것은 토굴과 해골물의 또다른 변용으로 보인다. 해골물 설화를 무시할 수 없는 이유가 아닐까. 수도사 해탈수가 그 이야기를 전해준다.

수도사의 두 번째 토굴체험장소인 해탈수(왼쪽)와 원래의 수도사터에서 옮겨온 조선시대의 승탑

평택 수도사에는 원효스님이 깨달음을 얻었다는 그 토굴 같은 것은 비록 전하지 않는다 해도 이곳에 이르면 바로 언덕 너머 바다의 기운이 느껴진다. 스님들 뿐 아니라 급변하는 삼국의 정세에 따라 당나라로 오갔던 많은 백제, 신라 사신들의 숨가뿐 걸음도 느껴진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당나라로 유학가기 위해 배를 타려던 원효스님과 의상스님의 기대와 불안감도 느껴진다. 그리고 고국에서의 마지막 밤일 수도 있는 그 밤을 지내던 비장한 각오도 느껴진다. 신라의 두 거장 스님의 행적이 느껴진다는 것은 매우 특별한 감흥이다.

비록 원효스님의 오도처로 잘 알려져 있지만, 여하간 의상스님도 거쳐간 곳이 아닌가. 또 의상스님도 처음에는 원효스님처럼 당나라 현장법사 문하에서 유식불교를 배우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화엄불교를 배우는 것으로 진로를 바꿨다. 이 역시 직간접적으로 원효스님의 깨달음이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니었을까?

폭풍우는 요란하게 두 분의 걸음을 붙잡았지만, 두 스님은 이곳에서 조용하면서도 거대하게 한국 불교의 새 흐름을 설계하고 계셨다.

/ 출처 중부일보 주수완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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