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다양한 표정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맘때 서해안으로 가는 여행은 늘 재밌다. 겨울잠에서 깬 바다와 갯벌은 온갖 갯것으로 펄떡거리고, 항구와 식당가도 덩달아 들썩거린다. 여행자에겐 더없이 반가운 부산함이다. 봄을 누리러 전북 부안에 다녀왔다. 흰발농게와 말뚝망둥어가 뛰노는 줄포만(곰소만) 갯벌 건너편에는 마침 노란 유채꽃이 한창이었다.
부안은 갯벌이다. 부안은 변산반도를 중심으로 휘어진 활처럼 거대한 해안선(대략 178㎞)을 그리는데, 그 대부분에 넓고 진득한 갯벌이 발달했다. 특히 변산반도 남단의 줄포만은 국제 사회도 인정하는 ‘람사르 습지’다. 칠면초 같은 염생식물을 비롯해 100종이 넘는 생물이 줄포만에 서식하는데, 이맘때는 농게와 말뚝망둥어가 갯벌의 대장 노릇을 한다.
지난 20일 오전 10시, 물때에 맞춰 줄포만을 찾았다. 농게도 말뚝망둥어도 예민하기가 보통이 아니어서, 살금살금 발을 옮겨 갯벌에 다가갔다. 진흙 바닥에 구멍이 송송 뚫린 갯벌 앞에 망원렌즈를 조준해두고 잠복하길 5분. 농게와 말뚝망둥어가 하나둘 구멍 밖으로 빠져나와 흙장난을 시작했다.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 흰발농게도 천지에 널려 있었다.
흰발농게는 수컷이 한쪽에 하얗고 커다란 집게발을 가진 것이 특징이다. 정은희 줄포만 생태문화 해설사는 “수컷은 집 입구에 흙더미를 쌓거나, 하얀 집게발을 지휘자처럼 휘젓는 행동을 자주 하는데, 다 암컷을 유혹하는 몸짓”이라고 알려줬다. 그래서 얻은 별명이 ‘갯벌의 사랑꾼’이란다.
줄포만을 따라 난 해안길은 서해안에서도 손꼽히는 일몰 명소이자, 걷기여행길로 통한다. 지난해 개통한 서해랑길 44코스(고창 사포리~줄포만~곰소항, 14㎞)도 이 길을 지난다. 마침 해안길 옆은 지난해 10월 첫 씨를 뿌린 유채가 일제히 꽃을 피워 봄기운이 완연했다. 축구장 14개 크기에 달하는 10만㎡(약 3만 평) 면적의 들판에 노란 물결이 일고 있었다.
바지락도 지금이 제철이다. 부안 고사포 해변 앞 하섬과 모항 일대는 갯벌 체험객 사이에서도 이름난 바지락 명당이다. 간조 때 장화와 갈고리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바지락을 주워 담을 수 있다. 고사포 해변에서 만난 한 주민은 “선수들은 1시간이면 10㎏도 캔다”고 말했다. 하나 갯벌 위에서 과욕은 금물이다. 최기철 문화관광해설사는 “갯벌 체험도 좋지만, 안전사고가 잦은 만큼 밀물 시간을 반드시 확인하고 들어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바지락을 맛보러 고사포 해변 앞에 있는 34년 내력의 ‘변산명인바지락죽’을 찾았다. 김선곤 사장은 “건강한 조개는 해감만 해봐도 안다”면서 “산란기 전 4~5월 채취한 바지락이 살도 탱글탱글하고 맛이 탁월하다”고 말했다. 인삼을 곁들인 바지락죽, 매콤하게 버무린 회무침 모두 비린내 없이 감칠맛이 대단했다.
곰소항 인근 곰소염전에선 채염 작업이 한창이었다. 염부는 포근한 바람과 햇볕이 드는 4월이 되면 겨우내 가둬 뒀던 염전을 열어 바닷물을 대기 시작한다. 바닷물을 댄 지 열흘이면 네모반듯한 소금 결정이 맺힌다. 신인철 염부는 “올봄은 비가 잦아 22일에야 첫 소금을 거뒀다”며 “좋은 소금을 만드는 건 결국 하늘의 몫”이라고 말했다. 염부의 소금 농사는 봄부터 10월까지 이어진다. 투명한 염전 위에 단단하게 핀 소금꽃도, 그 꽃을 거두는 봄날의 노동도 값진 풍경이었다.
/ 출처 중앙일보 2023.4 부안=글·사진 백종현 기자
부안 710번지방도-줄포자연생태공원 김상만가옥 곰소만갯벌 (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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