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뜸 등대를 가진 서해의 푸른 섬 어청도
[여행스케치=군산] 어청도는 군산항에서 서쪽으로 72km 떨어진 해상에 있는 섬이다. 2021년 항로에 투입된 신규 쾌속선 어청페리호를 타고도 2시간이나 가야 하는 먼 섬, 전라북도 가장 서쪽에 있는 유인도다.
군산연안여객선터미널 -> 어청도
평일 : 1일 1왕복 운항
성수기 주말(5월~9월 중 토/일) : 1일 2왕복 운항
여행자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신흥상회
어청도로 가는 승객은 평일과 주말이 확연히 다르다. 여행객들은 주말에 몰리고 평일에는 군인, 낚시꾼, 공사차 입도하는 사람들이 주류를 이룬다. 여객선이 도착하면 선착장은 몹시 분주해진다. 내리는 사람들, 그들을 마중 나온 사람과 차량, 그리고 육지로 나가는 사람들이 뒤섞여 한바탕 북새통을 치러낸다. 먼 섬이다 보니 오고 가는 물건도 많다. 생활필수품이 내려지고 섬에서 나는 해산물이 실린다.
처음 어청도를 찾았을 때는 그런 분위기에 주눅이 들었고 홀로 여행객에 대한 무관심이 조금은 섭섭했다. 하지만 이런 기분도 잠시, 선착장을 빠져나와 신흥상회에 들린 후 곧바로 마음 편해졌던 기억이 있다. 이곳을 운영하는 친절한 부부 덕이다.
신흥상회는 여행자센터와 같은 곳이다. 슈퍼를 겸한 민박으로 매표소 역할도 한다. 그런 데다 민박과 식당 소개는 물론 낚시 포인트, 트레킹 코스까지 안내해준다. 겉모습만 보고도 여행의 목적이 무엇인지 대번에 알아채는 신통력도 겸비했다. “등대를 보러 가실 거죠? 걷기를 좋아하시면 바로 뒤편으로 올라가셔서 능선을 타세요. 마을 안길 코스는 좀 싱겁죠.”
세상 어디든 잠들지 못할 곳은 없다
늦가을에서 초겨울은 텐트 없이 비박을 하기에 적당한 계절이다. 해충도 없고 기온도 적절하다. 무엇보다 잠자리에 누워 별을 감상할 수 있어서 좋다. 자다가 문득 깨어났을 땐 하늘의 별 빛이 온통 내게로 쏟아지는 것 같은 환타지를 보기도 한다.
비박의 장점은 장소에 크게 제한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게다가 비화식까지 겸비한다면 세상 어디든 잠들지 못할 곳은 없다.
비박의 구성은 침낭, 침낭커버 그리고 패드형 매트리스다. 아주 간편해서 어디서든 잠자리를 꾸밀 수 있다. 대신 침낭은 가볍고 복원력이 우수해야 하며 침낭 커버는 투습력이 보장된 것을 선택하면 된다. 이런 구성으로 야영을 하면 얼굴은 차가워도 몸은 따뜻하게 유지할 수 있다. 마치 노천탕에 들어가 있는 느낌이랄까.
이젠 철 지난 영화 됐지만
선착장 뒷산 중턱에는 꽤 넓은 데크 전망대가 있다. 이곳에 서서 바라보면 이 섬을 천혜의 피항지라 일컫는 이유를 알게 된다. 어청도는 커다란 말굽이 남쪽으로 열린 모습을 하고 있다.
석산에서 시작되어 당산, 공치산, 안산, 검산봉을 거쳐 독우산에서 마무리되는 산줄기는 서, 북, 동풍을 차단하는 바람막이의 역할을 한다. 게다가 열려있는 남쪽 출입구도 자연석으로 만든 두 개의 방파제가 단단히 막고 있다. 그래서 어청도는 국가 1급 대피항이며 서해어업전진기지로 이용되고 있다. 그리고 해군기지가 있어 많은 배가 들고 난다.
과거, 풍랑이 거친 날이면 섬은 항구를 빼곡히 메운 배들로 섬은 불야성을 이뤘다. 다방과 술집 그리고 식당이 뱃사람으로 넘쳐났던 시절, 물론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섬이 가지고 있다는 영화롭던 기억이다. 이젠 철 지난 영화가 되었지만.
전망데크는 하룻밤을 보내기에 적격이었다. 바닥이 넓고 편평한 데다 마을에서 가까워 식당이나 슈퍼를 이용하는 데도 편리할 것 같았다.
해가 부쩍 짧아졌음을 알고 있기에 서둘러 등대를 찾아가기로 했다. 배낭을 벤치에 놓아 둔 채 카메라와 삼각대만을 챙겨 들었다. 전망데크는 등대로 가는 탐방로의 시작점이다.
등대 가는 길
탐방로 우측으로 난 좁은 길을 따라가면 헬기장을 만나게 되고 얼마지 않아 곧장 당산 능선으로 들어서게 된다. 어청도 탐방길은 어렵고 힘든 코스가 없다. 능선은 높아 봐야 해발 200m 안팎, 일단 올라서면 큰 굴곡 없이 편안하게 이어진다.
능선의 바깥으로는 망망대해, 300km 너머는 중국 땅이다. 어청도와 인근 섬 외연도에는 중국 춘추시대 제나라의 재상 전횡을 신으로 모신 사당이 있다. 전횡은 그의 주군 항우가 전쟁에 패해 자결하자 부하 500명을 이끌고 망망대해를 전전했다. 그러다 안개를 뚫고 솟은 푸른 섬을 발견하고는 어청도라 이름을 짓고 머물렀다고 한다. 외연도에도 같은 내용이 전해지는 것을 보면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는 아닌 듯하다.
이동통신사 중계탑 돌아나가자 봉수대에 나타났다. 봉수대는 왜구들의 침입을 알리기 위해 설치됐으며 인근을 지나는 배들의 길잡이 역할도 했다. 본디 당산 가장 높은 봉우리에 있었던 것을 편평한 능선 자락에 원형을 복원하여 놓은 것이다. 당산 쉼터에는 작은 벤치가 마련되어 있었다. 보온병에 따뜻한 커피라도 담아왔으면 하는 후회가 들었다. 해군 레이더기지를 지나고 나면 하산 길이다. 그렇게 터벅거리며 10여 분, 팔각정고개에 닿았다.
등대로 가는 길은 여러 갈래지만 결국은 팔각정고개에서 만난다. 지금껏 걸어왔던 서쪽 서방산(당산)과 섬의 북쪽 공치산 능선 길 그리고 선착장에서 마을을 통과 곧바로 올라오는 도로 역시 이곳에서 합쳐진다. 이곳에서 등대까지는 약 700m, 내리막이다.
으뜸의 풍모를 지닌 어청도등대
어청도등대는 1912년 대륙 침략을 꿈꾸던 일제에 의해 세워졌다. 일반적인 등대들이 직원 숙소 및 관리소와 같은 부지에 세워진 것과 달리, 어청도등대는 별도의 공간에 우뚝 서 있다.
빨간 지붕과 아치형 미닫이문이 있는 등탑은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답다. 그리고 절벽 끝으로 이어진 낮은 돌담길과 등대만을 위해 조성된 반원 터와의 조화는 비할 데 없이 절묘하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이 우리나라 등대 15경 중에서 어청도등대를 으뜸으로 친다. 사진작가들이 이곳을 명품 출사지로 꼽는 것도 같은 이유다.
앵글에는 오직 하늘과 바다만을 그 배경으로 하는 오롯한 등대의 모습만이 담긴다. 등대 옆으로 난 절벽 길을 따라 내려가면 ‘구유정’ 이름을 가진 정자가 있다. 뜻처럼 갈매기가 노니는 구유정 앞바다에는 어청도 영해기선 기점이 있다.
제법 많은 사람이 등대를 찾아왔지만 잠시 머물다 되돌아갔다. 등댓불이 켜지기까지 시간은 더디 흘렀고 계속되는 바람에 몸에선 한기가 느껴졌다. 해가 바다 너머로 모습을 감추고 얼마 후 등댓불이 점등되었다. 얄찍했던 광선은 어둠이 짙어 갈수록 선명해져 가는데 돌아갈 시간도 잊은 채, 홀로 그 광경을 마냥 바라보고 있었다.
어청도는 전 지역에서 캠핑이 금지돼있다. 데크 전망대에서의 무분별한 텐트설치 및 취사가 일반 여행객들에게 민폐를 끼치고 또 화재, 쓰레기 문제가 야기되었기 때문이다. 단 텐트 없이 침낭과 비박색을 이용하거나 취사도구 없이 비화식으로 간단한 식사를 하는 것은 허용된다.
트레킹
1) 어청도구불길
1코스 등대길 : 선착장 -> 마을 -> 치동묘 -> 사랑나무 -> 팔각정 -> 등대
2코스 안산넘길 : 선착장 -> 마을 -> 해안팔각정 쉼터 -> 해안산책길
3코스 샘넘쉼터길 : 팔각정 -> 공치산 -> 목넘쉼터 -> 안산 -> 샘넘쉼터 -> 검산봉 -> 돗대봉
4코스 전횡장군길 : 치동묘 -> 사랑나무 -> 팔각정 -> 봉수대 -> 당산 -> 헬기장 -> 선착장
2) 종주(9km | 4시간)
선착장 -> 헬기장 -> 봉수대 -> 팔각정 -> 등대 -> 팔각정 -> 공치산 -> 검단산 -> 농배 -> 해안데크 -> 마을 -> 선착장
해산물이 다양하게 생산되는 지역 특성상, 기본 백반의 반찬도 푸짐하다. 식당별 음식 맛은 큰 차이가 없다. 치킨집이 한 곳 운영 중이며 성수기에는 선착장 바로 옆에 포장마차가 열린다. 섬의 편의점 역할을 하는 신흥상회에서는 수제 빵과 커피도 판매한다.
숙소는 대부분 민박형태로 취사가 가능한 펜션이 어청도항 주변에 분포돼있으며 단순하지만 깨끗하다. 식당과 함께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
/ 출처 : 여행스케치 김민수 섬전문 여행작가
새들의 천국인 어청도가 위험하다.
어청도 길고양이 증가…수천㎞ 날아온 새들 ‘쉬운 사냥감’
어청도는 군산항에서 뱃길로 72㎞, 중국 산둥반도와는 300㎞ 떨어진 섬으로, 서해 중부 해역 가운데 육지에서 가장 먼 거리에 있다. 2021년 11월부터 새로운 배가 취항하면서 기존 2시간20분이었던 군산~어청도 항해 시간이 2시간으로 단축됐다.
어청도는 4월 중순부터 5월 중순 사이 이동하는 여름 철새에게 매우 중요한 길목이다. 멸종위기종을 비롯한 다양한 새들이 해마다 번식지로 향하기 위해 수천 ㎞를 날아오는데, 어청도는 이런 새들에게 정거장 역할을 한다. 진홍가슴, 긴다리솔새사촌, 흰눈썹황금새, 붉은부리찌르레기 등 어청도는 희귀 조류들을 만날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다.
그런데 3년 전부터 어청도를 찾아오는 새들의 개체 수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올해는 어청도에 새가 없다는 것이 탐조인들 사이에서 공공연한 화두가 되었고, 어청도 주민들 역시 같은 생각이다.
기후 변화에 민감한 조류의 이동 특성 때문일까? 혹은 어청도에 농경지가 사라지며 생긴 환경 변화 때문일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그동안 어청도에서 보기 어려웠던 고양이 개체 수가 기하급수로 늘어나고 있다.
관광객이 버리고 간 고양이도 있고, 어선에서 키우다 버려진 길고양이들도 있어서 이들이 만나 번식이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새도 아름답지만, 개와 고양이도 사람에게 친숙하고 귀여운 동물이다. 그러나 사랑스러운 외모의 이면에는 고양이로서의 포식자 본능이 숨어있다. 고양이는 새를 먹이가 아닌 놀잇감으로 사냥하기도 한다.
어청도는 여름 철새들의 매우 중요한 경로로서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국내뿐 아니라 국외에서도 많은 탐조인들이 이곳을 찾는다. 탐조인들의 유입은 자연스레 어청도 주민들의 삶에 경제적 기여를 하게 된다. 길고양이를 이대로 방치한다면 어청도의 생태계는 물론 마을 경제에도 타격이 있을 것이다.
몇 년 새 어청도에 길고양이가 급격하게 증가한 것은 생태적으로 큰 충격을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인간이 무심히 버린 고양이가 수천 년을 이어온 새들의 땅을 죽음의 공포로 몰아갈 줄 누가 알았으랴. 불필요한 생명이 죽어 나가지 않도록 슬기롭게 해결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인간의 개입이 부른 일이다. 바로잡는 것이 우리 몫이다.
/ 한겨레 2024.5.16 글·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촬영 디렉터 이경희, 김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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