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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거 저런거/군대이야기

8기동사단 1기보여단 101기계화보병대대 진호대대

by 구석구석 2023.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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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기갑기보여단 / 101기보대대 진호대대

육군 최초의 기보대대로 K-21 보병장갑차를 운용한다.

1948.1월에 수색에 주둔하고 있던 1여단 수색대 장갑중대로 경장갑차 10대로 창설되어 1948년에 대대로 증편되었고 이후 1973년에 기보대대로 개편되었다.

1988년 한국 최초의 기계화부대라는 의미로 진호대대로 호칭이 제정되었다. 한국전쟁중에는 제1보병대대로 변경되어 낙동강방어선을 지켜냈으며 1965년에는 맹호부대로 월남전에 참전하기도 했다. 

수기사(맹호부대) 예하였으나 1기갑기계화보병여단이 8기보사 예하부대로 변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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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8사단 진호대대 K21 보병전투장갑차 전투사격훈련

육군8사단 진호대대가 전투사격훈련에서 중대장의 공격 명령이 떨어지자 공격개시선에서 대기 중이던 K21 보병전투장갑차들이 본격적인 기동을 시작했다. 오전 내내 훈련장에 감돌던 팽팽한 긴장감을 몰아내듯 K21 장갑차들이 경쾌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날 훈련은 K21 장갑차 등 궤도차량 30여 대와 장병 3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즉각적인 전투사격 능력을 배양하기 위한 실사격훈련으로 진행됐다. 

전날 저녁에 실시한 K21 장갑차 탑승 보병들의 전술훈련에 이어 이날은 40㎜ 주포 사격 절차를 숙달하고 중대급 제대의 전술기동능력을 높이는 데 중점을 뒀다.

K21 장갑차 전투사격훈련 중 하차전투 훈련을 하고 있다.

훈련은 공격개시선 통과를 시작으로 최초·종심진지 돌파, 목표 확보 등 사전에 수립한 공격작전 전투 시나리오를 적용한 가운데 실전에 준해 실시됐다.

2중대 소속 K21 장갑차 3대가 기동로를 따라 이동하며 상대편 전차가 있는 것으로 가정한 산 능선 표적에 40㎜ 주포를 각각 발사했다. A진지를 점령한 후 경계태세를 취하는 사이 중대 소속의 다른 K21 장갑차 4대가 나타나 A진지 우측 차폐진지를 점령한 후 사격을 실시했다.

차폐진지를 점령 중이던 K21 장갑차들이 경계하는 사이 A진지에 있던 장갑차량들이 동시사격 후 예비진지로 이동해 경계를 취하고, 뒤에 대기 중이던 나머지 3대가 A진지를 재점령 후 사격하는 과정이 유기적으로 이어졌다. 2중대 훈련 후에는 1중대 소속 K21 10대가 같은 과정을 반복했다.

K21 장갑차들이 전투사격훈련 중 이동하고 있다.

부대는 이날 실사격훈련 전 장갑차승무원자격인증사격(ICQC·IFV Crew Qualification Course)과 내장훈련장치(차량 내부 전시기를 통해 제공되는 3차원 영상으로 조종·사격절차 등을 숙달할 수 있도록 하는 모의훈련장치)를 활용한 포술훈련, 야지기동훈련 등을 실시했다. 이를 바탕으로 부대원들은 전투기량을 한층 끌어올리고 훈련 성과를 극대화했다.

 

K21 장갑차들이 전투사격훈련 중 40㎜ 주포 사격을 하고 있다.

/ 국방일보 최한영기자. 사진 - 이경원기자

 '무명 350고지' 북측비탈에서 6.25전사자 유해를 발굴

군에서는 이름없는 산을 무명고지라고 부르고 구분을 위해 고지의 정상 높이를 붙인다. 무명350 고지는 해발 350m 고도의 이름없는 산이라는 의미다. 말 그대로 이름도 없는 산에서 육군 8기동사단 예하 진호대대 소속 140여 장병들과 국유단 발굴팀 10여명은 매일 같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미 25사단에 배속된 한국군 카투사의 유해를 찾기 위해서다. 

2022 포천시 소흘읍 일대 야산에서 8기동사단 진호대대 대원들의 유해발굴

유해발굴 장소는 전사기록과 참전용사의 증언, 주민제보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선정한다. 이곳은 71년전 미군이 중국군의 남하를 막기 위해 지연전을 벌였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곳이다. 군 기록에 더해 주변 마을에 오래 산 주민들이 '어릴 적 산채를 채취하다 이곳에서 사람 뼈를 발견해 다시 묻었다'고 제보한 것이 발굴 위치선정에 도움이 됐다.

1951년 4월 22일 저녁 7시, 중국군 제60군은 연천군 대광리 일대의 미 육군 25사단 방어선 정면을 공격했다. 이틀간 이어진 '김화-포천 지연전'의 시작이었다. 미군은 40여㎞ 이상 후퇴를 거듭하면서도 3차례에 걸쳐 방어선을 구축해가며 중국군의 남하 속도를 늦췄다. 국유단은 김화-포천 지연전에서 미군이 마지막 방어선을 이곳 무명 350고지 정상에서 북측비탈을 향해 구축했을 것으로 추측했다.

발굴현장에서 정밀노출 과정을 끝낸 유해와 유품은 예를 갖춰 오동나무관에 수습한 뒤 약식으로 제례를 지낸다. 이날은 오전에 비가 조금씩 내리면서 오후에야 약식제례를 치를 수 있었다. 약식제례를 마친 유해는 도열한 장병들의 경례를 받으며 인근 임시 보관소로 옮겨졌다. 군사경찰 순찰차와 대대장 전용차량이 앞뒤로 전사자 유해 운송차량을 호위하면서 전사자에 대한 예우를 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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