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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제주시

제주 조천마을 만세동산

by 구석구석 2022.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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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천마을 

▲ 과거 조천포구에는 조천관이 있었으며 조선시대에는 화북포구와 더불어 2대 관문이었다. 오마이뉴스 장태욱

조천포구에 가면 과거 조천진성의 성벽 안에 복원된 연북정(戀北亭)이 있다. 조천마을에는 연북정에 얽힌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조천포구 선창가에는 큰 바위가 있었는데 이것을 조천석이라 한다. 사람들은 이 바위에다 닻줄을 걸어 배들을 매곤 했다.

 기록에 의하면 1590년(선조 23년)에 이후옥 목사가 제주에 부임했을 때 조천진성은 너무 좁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후옥 목사는 아전과 주민에게 "조천에 관이 있게 된 것은 실로 도적들이 왕래하는 요충지이며 나라의 사명을 띠고 와서 춤추는 곳인데 어찌 이와 같이 성이 좁고 집은 노후하였느냐"고 하여 농사짓는 틈에 이 바위 인근 바다를 매립하고 바위 위에 망루를 안치해서 쌍벽정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 후 1599년(선조32년)에 성윤문 목사가 부임해서 이곳을 증축하고, 그 명칭을 연북정(戀北亭)으로 고쳤다고 한다.

 

연북정은 조선시대 불교탄압이 극심할 때 제주로 유배온 보우대사가 순교한 장소로도 알려져 있다(좌), 조천 마을의 서쪽 입구의 언덕 위에는 우주선 모양으로 생긴 둥근 건물 위에 큰 탑이 세워진 것을 볼 수 있다. 약 10년 전에 건축된 이 사찰의 이름이 '평화통일불사리탑'이다. 이 안에는 조선시대 불교탄압이 자행되던 시절에 순교한 보우대사와 지안대사의 순교비가 세워져 있다(우)/오마이뉴스 장태욱

보우대사는 조선 중기의 고승으로 호는 허응(虛應) 또는 나암(懶庵)이고 법명이 보우였다. 그는 15세에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고, 그 뒤 금강산 일대의 장안사(長安寺)·표훈사(表訓寺) 등지에서 수련을 쌓고 학문을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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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천포구에서 해안도로를 따라 동쪽으로 200m쯤 가면, 오른쪽 길가에서 복원된 조천연대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조금 더 동쪽으로 신흥리 마을 가까이 이르면 과거 고려군이 삼별초와 대항하기 위해 쌓았던 환해장성이 나타난다. 

고려말부터 조선시대 내내 제주에는 왜구의 침입이 끊이지 않았다. 그래서 1439년(세종 21년)에 도내에 왜구의 침입에 대한 방어시설을 강화하여 3성, 9진, 25봉수대, 38연대를 정비하였다. 그러다가 1510년(중중 5년)에 삼포왜란이 일어나자, 조천, 명월, 서귀포 등지에 방어소를 축성하고 연대도 증설했다고 한다. 

조천마을에서 일주도로를 따라 마을의 동쪽 경계에 이르면 만세동산이 나온다. 만세동산은 1919년 3월21일부터 이 일대에서 치열하게 전개되었던 독립만세운동과 이 과정에서 시위에 가담해서 모진 탄압을 받았던 인사들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만든 공원이다.

제90주년 3.1절을 기념하는 만세대행진 참가자들이 조천읍 만세동산에 모여 그날의 함성을 되새기며 힘차게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있다.제주일보2009.3 정이근기자


만세동산 입구에는 항일독립운동 기념탑과 기념비가 있고, 공원내부에는 애국선열추모탑과 선열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지어진 창열사라는 위패 봉안실이 있다. 그리고 일제의 폭정과 이에 항거했던 투쟁사를 보여주는 항일기념관이 있는데, 기념관 내부에는 조천만세운동, 해녀 항일운동, 법정사 항일운동 등 제주지역에서 일어났던 항일투쟁들을 디오라마나 매직비전 등을 통해 청소년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준비해 놓았다.

 

  

 

/ 자료 - 오마이뉴스 장태욱 조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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