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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제주시

서귀포 서귀포70경 서귀포70리

by 구석구석 2022.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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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칠십리는 어디부터 어디까지를 말하는 것일까. 일반적으로 생각하기 쉬운 거리개념이 맞는 것일까. 정의현(과거 행정단위를 말하는 것으로 지금의 성읍민속마을)에서 서귀포까지 거리인 ‘서귀포칠십리(西歸浦七十里)’가 국내에 널리 알려진 직접적인 동기는 1938년대에 조명암씨에 의해 서귀포칠십리 노랫말이 지어지고, 박시춘 작곡, 남인수의 노래로 불려지면서 부터다. 당시 일제치하에 억눌려 살았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끝없는 향수와 애틋한 그리움을 이끌어 내면서 큰 인기를 누렸다고 한다.  

 

●●●서귀포칠십리?
서귀포칠십리의 사실기록은 1416년(이조시대 태종16년) 안무사 오식에 의해 제주도 행정구역이 제주목, 대정현, 정의현으로 나눠지게 됐으며, 1423년(세종 5년) 안무사 정간에 의해 정의현청(고성)이 현재의 표선면 성읍마을로 옮겨지면서 70리의 거리적 개념이 싹텄다. 1653년 제주목사 이원진에 의해 발간된 ‘탐라지’에 의하면, 서귀포는 정의현청에서부터 서쪽 70리에 있으며 원나라에 조공을 바칠 때 순풍을 기다리던 후풍처였다고 전하고 있다.

서귀포칠십리는 처음에 정의현청이 있었던 현재의 성읍마을에서 서귀포구까지 거리를 알려주는 개념이었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는 단순한 거리개념이 아니라 서귀포시민의 이상향이자 서귀포의 아름다움을 대변하는 고유명사로 인식되고 있다. 제주 사람들의 마음속에 안식과 위로 그리고 꿈과 희망을 안겨주는 이어도처럼.

서귀포70경 4코스 / 이중섭문화의거리 서귀진지 서귀포담팔수나무자생지 천지연폭포 자리테우 서귀포칠십리축제 서귀포층의패류화석 서귀포시립해양공원관광유람선 섬속의섬 서귀포칠십리해안경승지 서귀포해안산호군락 서귀포자리물회 소남머리 정방폭포 서불과지 백중날물맞이 소정방폭포 거믄여해안경승지 제지기오름 쇠소깍 서귀포감귤 향토요일시장 지장샘

 

●●●축제정보
서귀포 칠십리 축제는 남주의 해금강, 항구의 베니스라 불리는 한반도 최남단 도시 서귀포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알리고 여행객과 지역주민이 함께 어우러져 즐기는 지역 문화축제로 1995년 처음 개최됐다. 정방폭포, 천지연폭포 일대와 서귀포항 등 서귀포 시내 유명 관광지에서 칠십리 연극제, 동요제, 가요제와 바다체험, 각 마을별 탐라민속놀이경연이 축제기간 내내 다양한하게 펼쳐진다.

서귀포 70경 3코스 / 법화사지 하원동탐라왕자묘 도순동녹나무자생지군락 영또폭포 고근산 각시바위 갈옷 서귀포시립제주월드컵경기장 약천사 월평해안경승지 당굿 강정천 막숙 황우지애안열두굴 외돌개 삼매봉 하논 솜반내

올해 칠십리축제는 9월의 끝자락에 시작해 가을바람 선선한 10월 초입에 마무리된다. 축제 기간중에는 서귀포항 일원에서 바다낚시대회, 해녀태왁수영대회와 함께 선상낚시체험 테우체험 등 제주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독특한 체험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또 같은 기간 천지연폭포 내에서 각종 문화·예술공연과 전통 민속공연 등을 선사할 계획이다.

서귀포 70경 2코스 / 군산 제주전통초가모형제작가 송기홍 서귀포돌담 예래종환해장성 서귀포연대방어유적 서귀포잠녀 색달해안갯깍주상절리대 쉬리의언덕 중무해수욕장 겨울바다펭귄수영대회 중문민속박물관 제주국제컨벤션센터 중문대포해안주상절리대 여미지제주관광식물원 천제연폭포 필선녀축제

지역주민과 관광객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거리가장행렬은 축제 첫날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과거 제주에 부임했던 제주목사의 서귀진성 순력행차와 불로초를 찾아 떠났다고 전해지는 진시황의 사자 서복의 행렬을 재현한 거리 퍼포먼스는 거리를 따라 걷는 것만으로도 축제현장의 열기를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을 듯.

서귀포시가 선정한 70경 1코스 / 백록담 선돌 영천관지 돈내코 한란 제2산록도로 서귀포녹자재배단지 무오법정사항일운동발상지 거린사슴전망대 서귀포자연휴양림 존자암지 영실기암 한라산영실숲 

 

서귀포 70경, 그 지도 위를 걷다

바다. 햇빛, 공기, 오름, 화산폭발로 이루어진 기암괴석, 끝도 없이 흘러내리는 폭포의 아름다움. 천혜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서귀포를 두고 사람들은 '복 받은 자들의 터'라고 말한다. 돌 하나, 풀 한 포기에도 애절한 전설과 선인들의 지혜가 숨어 있는 서귀포. 내가 사는 곳에서 바라보는 서귀포의 하늘은 늘 동경의 대상이었다.

날마다 걷는 것이 길이라지만, 문화와 역사, 자연, 생태학의 보물이 숨은 곳으로 떠나는 길은 늘 새롭기만 하다. 그래서 여행은 다시 깨어나는 작업인지도 모르겠다. 넘치는 부분은 나눔의 지혜를 얻게 하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순간은 '상생의 지혜'로 눈을 뜨게 만들기도 한다. 여행지에서 느껴보는 형형색색의 비경은 화려하지만 그 속에 숨은 인문, 사회의 비밀은 항상 수수께끼다.

자줏빛 선임교에 여행 온 거북이와 소라

서귀포 70경의 첫걸음은 천제연폭포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사람은 하루에 백리를 걸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백리를 하루에 다 걸으면 무슨 재미가 있으랴! 천제연폭포로 가는 길에서 내 마음의 허를 채워준 것은 멀리서 여행 온 거북이와 소라의 벽화였다.

서귀포의 가을햇빛은 감귤만큼이나 그 당도가 높다. 2003년 그해 가을, 자줏빛 구름다리 선임교 다리를 뚜벅뚜벅 걸으며 나는 처음으로 햇볕의 따사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벽화 속의 선녀들과 하늘나라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담팥수나무, 구실잣나무, 조록나무에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그리고 삐죽이 얼굴을 내민 왕모람, 바위 손 넝쿨식물에게도 손을 흔들어댔다.

평소 나는 서귀포를 손바닥 지도만큼 작게 느꼈다. 그래서 70경을 떠나면서 여행 일정을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이면 다 걸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70경의 첫발을 내딘 순간부터 거북이 걸음은 시작됐다.

그리고 1년 4개월이 지난 이 순간에도 나는 그 손바닥 지도 위를 걷고 있을 뿐이다. 칠십리의 절반도 걷지 못한 나에게 어떤 이는 "한 달이면 다 갈 수 있는 칠십리 길을 왜 그렇게 더디 가느냐?"고 묻는다. 그리고 어떤 이는 "서귀포 70경이 관광지와 다른 점이 무엇이냐?"고 질문을 한다. 그러나 그것은 '왜 사느냐'고 묻는 것과 같다.


테마가 있어 더욱 아름다운 70경
서귀포가 지정한 70경은 가는 곳마다 테마가 있었다. 우선 색달해안갯깍주상절리대를 비롯한 23선의 자연경관지는 풀 한 포기에서부터 이름 없는 돌에 이르기까지 그 의미가 담겨 있었다. 또 바다와 어우러진 해안경승지에서는 시인이 되기도 하고, 한여름 폭포 소리 들으며 천년동안 묵었던 때를 벗기도 하고, 눈보라가 몰아치는 한겨울 백록담을 오르며 인내를 배우기도 했다.

지난 해 10월, 맨발로 동글동글한 바다 돌을 밟으며 달려갔던 색달해안갯깍주상절리대와 중문대포해안 주상절리대의 비경은 기암괴석 전시장으로 아직도 눈앞에 선하다. 더욱이 한여름 돈내코의 얼음장 같은 계곡물에서 독서삼매경에 빠졌던 기억은 70경의 길 떠남이 아니었더라면 감히 느껴보지 못할 여유로움이었다.

그리고 자연생태체험 14곳 중 내가 체험한 서귀포자연휴양림과 제지기 오름, 서귀포 녹차재배단지 체험은 희로애락의 감정을 토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특히 서귀포녹차재배단지는 녹차 밭을 걸으며 차 한 잔의 여유로움에 젖어보기에 넉넉한 여행이었다.

무엇보다도 해발 700고지에 있는 서귀포자연휴양림 법정악 산책로는 새소리와 풀벌레소리, 갖가지 이름모를 나무 속에서 자연과 인간이 하나 됨을 느껴보는 기회였다. 그리고 바다 위에 떠 있는 보목리의 제기기 오름기행 역시 서귀포에 대한 그리움과 남녘 끝에 대한 환상을 담금질하기에 충분했다.
 

문화유적지체험 기행으로는 무오 법정사 항일운동 발상지에서 제주사람들의 항일운동의 역사를 새겼으며, 법화사지 스님이 주신 네잎 크로바의 행운은 건강과 부, 신앙 그리고 좋은 인연을 내게 주셨다.

특히 서귀포시가 생활문화유산으로 지정한 9선 중 보목리에서 먹었던 자리물회를 아직도 기억한다. 사실 나는 자리물회를 잘 먹지는 못하지만 한여름 얼음을 숭숭 띄워 양푼에 가득 담아온 보목리 사람들의 인심은 자리물회 맛보다도 더욱 푸짐했다.

그리고 축제. 민간신앙 5선 가운데 가장 의미가 있었던 것은 서귀포 칠십리 축제에 참가했던 문섬 기행이다. 민간으로서는 도저히 방문하지 못할 문섬. 축제가 아니었더라면 어디 발을 디뎌놓을 수 있었을까?

그리고 또 하나 관광체험명소로 이미 소문이 난 이중섭 문화의거리에서 천재화가의 흔적을 찾기도 했다. 이중섭 미술관에서 구입했던 '섶 섬이 보이는 풍경'과 '서귀포 환상'은 70경의 감흥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응접실 손님으로 접대되어 있다.

 

비경마다 숨겨진 4·3의 아픔

자연의 아름다움을 아픔으로 간직한다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그러나 역사를 바르게 인식한다는 것 또한 우리들의 과제다. 조망이 아름다운 소낭머리 '소나무가 우거진 해안 동산'을 보며 희비가 엇갈렸다. 해송의 절개와 절벽의 비경, 암벽 끝에 붙어 있는 야생화의 끈질긴 생명력을 만끽하기보다는 진혼곡을 듣는 기분이었다.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치는 4·3의 영혼이 남아 있는 '살인훈련' 장소. 나는 그 곳에서 서귀포 70경이 역사의 아픔을 딛고 다시 태어나길 소망했다.

특히 진시황과 서복의 전설이 새겨진 정방폭포의 아름다운 풍경 위에 역사의 아픔까지 함께 간직한다는 것이 참으로 힘든 일이었다. 왜 정방폭포에서는 파도 소리가 들리지 않는지, 무엇 때문에 폭포의 물보라가 산산조각으로 쪼개지는지, 그리고 안개처럼 피어오르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비경 속에 숨어 있는 아픈 과거의 역사 속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은 어떻게 조명될까?

주민들의 아픔을 서정시로 표현한 나그네의 불찰

사실 온라인에서 기사를 다루다 보면 네티즌들의 비판과 비방은 어느 정도 감수해야 한다. 더욱이 제주토박이가 아닌 사람은 자칫 여행을 외부에서만 바라보는 서정시로 표현할 수도 있다. 그 점이 여행자들이 보완해야 할 가장 큰 허점이다.

특히 서귀포 70경의 매력은 때 묻지 않은 순수, 복원되지 않은 아름다움,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아서 한적한 것이 매력인지도 모른다. 그 중에서도 '별이 내리는 베릿내'로 표현했던 중문민속박물관은 보존과 개발의 차원을 넘어선 수수께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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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이라는 이유를 들어 무조건적으로 포크레인을 들이대서도 안 되겠지만, 보존이라는 이유를 들어 진보가 늦어지는 일도 한 번쯤은 생각해 봐야 할 문제점으로 남았다. 그래서인지 주관적인 눈으로 바라본 중문민속박물관 서정시는 네티즌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이정표가 없어 힘들었던 여행
손바닥 지도 하나만으로 출발한 서귀포 70경 기행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이정표가 없는 곳을 찾아 나설 때였다. 지도 위를 걸어가는 것이 여행이라지만, 도로표지판은 물론 표지석하나 없이 70경으로 지정해 놓은 것은 여행자의 분노를 샀다.

따라서 프로스트의 '가지 않는 길'처럼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길은 늘 가시덤불이 있었다. 사람들이 북적대는 유명한 관광지에서는 주차하기가 힘들었다.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에는 잡초가 무성한 곳도 있었다.

그 중 가장 힘들게 찾아간 곳이 있다면 서귀포 예래동 마을이다. 서너 번씩이나 가던 길을 다시 뒤돌아가며 마치 보물찾기를 하듯 허공 속을 헤맸다. 그런데 서귀포연대방어유적은 잡초 속에 숨어 있었다. 그리고 예래동환해장성은 표지판이라도 설정해 놓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문화유적지가 선인들의 지혜와 문화를 간직한 곳이라면 문화유적지의 관리는 당연히 후손들이 지켜야할 숙제가 아닐는지.

서귀포를 아시나요?
석양빛에 돛단배가 그림 같은 내 고향
칠 백리 바다 건너 서귀포를 아시나요
한라산 망아지들 한가로이 풀을 뜯고
굽이굽이 폭포마다 무지개가 아름다운
그리운 내 고향 서귀포를 아시나요

 

서귀포 70경을 <오마이뉴스>에 연재하면서 늘 내가 그린 밑그림은 '서귀포를 아시나요'이다. 물론 서귀포 70경은 자연경관지에서부터 자연생태체험, 문화유적체험, 생활문화유산, 축제와 민간신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카메라를 들이댔던 순간들처럼 칠십리 길을 걸으면서 그림자처럼 함께 하는 것은 그리움이다. 자신의 키를 낮추면 들꽃이 보이고, 느릿느릿 걸어가면 70경 속에 숨어 사는 사람들의 모습과 역사의 아픔까지도 느껴볼 수 있다. 그래서 지나간 것들이 더욱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여행의 의미가 '가진 것을 버리기 위한 것'임을 잘 알면서도 여백을 채우기 위해 몸부림쳤던 여정. 그래서 남아 있는 칠십리 길은 쉬엄쉬엄 걸으며 인간과 자연이 함께 살아 숨쉬는 상생의 길로 떠나려 한다.

 

선돌

한라산 제 1횡단도로의 선돌선원의 입구에서 선돌로 가는 산길은 겨우 자동차가 한 대 정도 다닐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울퉁불퉁한 돌길 사이에 자동차 바퀴를 겨우 굴릴 수 있는 산길. 걸어서 가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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