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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전라북도

정읍 내장사 원적암 백련암 서래봉 불출암

by 구석구석 2022. 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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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정읍시 내장동 - 내장산관광특구

우화정

내장산우리들꽃공원

국립공원 내장산 저수지 주변에 사각정자와 야외탁자 등 편익시설을 갖춘 1천여 평의 우리고유의 야생화 소공원으로 2003년도 시설되다. 들꽃공원에는 5평규모의 사각정자와 피크닉 탁자, 평의자 종합안내판 그리고 식재된 야생화의 특성을 알 수 있는 안내판 등 이 설치되어 야생화를 모르는 이들이 찾아와도 쉽게 보고 배우며 휴식을 취할 수 있으며 청소년의 교육장소로도 이용되고 있다.

공원내에는 섬초롱꽃, 매발톱꽃, 내장상사화, 은방울꽃, 앵초 금낭화, 처녀치마 등 27종의 다양한 우리들꽃 3만여 본이 식재되어 내장산의 수려한 자연경관과 어우러진 새로운 쉼터로 각광 받고 있다. 또한 내장호수를 끼고 도는 산책로와 가까워 가족, 연인과 산책을 즐긴 후 피로를 해소할 수 있어 시민과 관광객들의 발길이 잦다

 바로 인접한 곳에 수목원과 갑오동학 100주년기념탑 내장산 국제조각공원이 위치하고 있으며 내장산 국립공원 매표소와는 불과 10분 거리에 있다.  

 

내장산제5주차장에 있는 정촌서래목석원은 단풍축제 행사의 일환으로 ''99년도 제1회 전국장승창작 경연대회를 시작으로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일깨워주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조성된 곳이다. 전국 장승 제작인의 참여 확대로 각기 개성있는 작품을 제작하여 정통성을 바탕으로 창작예술성을 가미한 작품 조성이 또 하나의 새로운 볼거리 관광자원으로 자리 하였다.

또한 방문 관광객에게 직접 참여하는 장승깎기 체험행사를 병행하여 전통문화 체험을 통한 청소년의 교육적 의미를 부여하고 가족단위 관광객에 추억을 남길 수 있는 정읍관광의 이미지 제고를 위한 행사로 계속해서 개선 추진 발전시키고 있다. 

정읍시 남쪽에 자리잡고 있는 내장산은 순창군과 경계를 이루는 해발 600∼700m급의 기암괴석이 말발굽형의 능선을 그리고 있다. 

 [호남의 금강]이라 불리기도 하는 내장산은 예로부터 조선8경의 하나로 이름나 있으며, 동국여지승람(東國與地勝覽)에는 남원 지리산·영암 월출산·장흥 천관산·부안 능가산(변산)과 함께 호남 5대 명산으로 손꼽힌다. 

 총면적이 81.715㎢에 달하는 내장산국립공원은 전북에 속해있는 면적이 47.5㎢, 전남쪽이 34.2㎢로서 정읍시와 순창군, 전남 장성군에 걸쳐있다. 

 백두대간이니 호남정맥이니 하는 우리나라의 전통적 산맥관은 하천의 수계를 나누는 분수계를 기본개념으로 하며 노령산맥은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호남정맥에 해당한다. 호남정맥에 있는 내장산은 이런 점에서 아주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내장산은 서쪽의 입암산(笠巖山, 해발 626m), 남쪽의 백암산(白巖山, 백학산으로도 불린다. 해발 700m)과 함께 동진·황룡·섬진 등 3하천의 물을 나누는 분수계가 되기 때문이다.

내장산과 입암산의 북쪽사면은 동진강의 상류가 되고 입암산과 백암산의 남쪽사면은 영산강의 상류인 황룡강으로 흘러 들어가며 내장산과 백암산의 동쪽사면(순창군 복흥면 일대)은 섬진강의 상류가 된다. 

2013.11 내장사입구 단풍터널

노령(蘆嶺)이란 이름이 유래된 갈재의 서쪽에 있는 고창 방장산(해발 710m), 동쪽에 있는 입암산·백양사의 뒷산인 백암산을 연결한 능선은 곧 전라북도와 전라남도의 경계이기도 하다. 내장산은 1971.11.17 인근 백양사 지구와 함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내장산 매표소의 셔틀버스 서는 데에서 왼쪽은 케이블카 타는 곳, 오른쪽은 내장사 가는 길이다.

안내도를 보고 우선 일주문을 지나 내장사(063-538-8742)로 간다. 백제무왕 때(636년) 영은조사가 세웠단다. 그러나 종교개혁은 여기에도 있었던지 (조선 중종 34년) 사찰(승려)의 행패가 심하여 폐찰령을 내리고 소각하였다고 한다. 그뒤 다시 수축하였으나 세차례나 소실, 지금의 절은 1959년에 지어진 것이다. 본래는 영은사였으나 최근에 산 이름을 따서 내장사라고 바꾸어 부르게 되었다고.

1964년에는 무량수전을 세우고 1965년 대웅전 불상가 정화(幀畵)를 조성 봉안했다. 그리고 정부의 국립공원 개발계획에 따라 1973년에 일주문, 1975년에 명부전, 1978년에 정혜루를 복원하고 1978년에는 사천왕문을 새로 세웠다. 1979년에는 인도로부터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기도 했다. 

 원적계곡은 계곡이라기보다 작은 개울이다.  바로 앞 가파른 오르막이다. 느리게 돌로 만든 계단 위에 발을 올려 놓는다.

원적암 직전 같다. 불출봉 아래에 자리잡고 있는 원적암. 고려 때 창건했다는 암자다. 이 곳에는 인도로부터 들여온 유명한 상아(옥돌이라고도 함)로 만든 자그마한 와상이 있었다는데(아쉽게도 1910년 일본인에게 도난), 이름도 여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원적암과 비자림

 이 원적암은 고려 선종4년(서기 1087년)에 적암대사가 창건한 암자로 7간이나 되는 웅장한 규모였으나 역시 한국전쟁 때 소실된 것을 1961년에 법명이 중창했다고 한다. 원적암 바로 아래에는 잎이 모두 떨어진 감나무 몇 그루에 노랗게 익은 감들이 매달려 있었다.

원적암을 나오자 바로 비자나무숲(백양사 비자림과 함께 천연기념물 153호로 지정)이 보인다. 비자나무는 아주 크다. 아름드리 나무 그늘은 길까지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밑에는 데크를 놓아 관광객들이 숲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서로 얽혀 하늘을 덮고 있는 비자림은 아주 장관이었다. 단풍도 좋지만 비자림도 내장산의 대표적인 경관으로 손꼽히고 있다고 한다.

비자림을 지나자 곧 너덜겅이 나온다. 바위가 부서져 내려 길 위에 깔렸다는 길이다. 꼭 돌맹이를 사람이 깔아 놓은 것 같은 길을 걷는다. 아무 뜻 없이 길을 가지만 길에는 다 나름의 역사가 있다. 길의 고마움과 길이 된 역사도 함께 생각해본다.

백련암가는길/오마이뉴스

이번에는 벽련암이다. 서래봉 중봉 밑에 있어 바위를 머리에 이고 있는 기이한 암자다. 원래 내장사란 이름으로 일컬었다가 근세에 와서 영은암(현 내장사)을 내장사로 개칭하고 이 곳은 백련사라 하다가, 나중에 벽련암으로 고쳐쓰게 되었다고. 그러나 백련사가 언제 백련암으로 격하되었는지 알 수가 없단다. 그러니 꼼짝없이 이름을 빼앗긴 절이 되었다. 풍광은 내장사보다 빼어나지만 멀리까지 오려면 다리품을 팔아야 해서 거슬렸는지, 정확히 알 수가 없는 일.

벽련암의 대웅전과 선운당 / 오마이뉴스 이현숙

 서래봉으로 가는 길은 바위능선 뒷길이어서 내장산입구와 내장저수지 풍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우리들이 산에 오르는 사이 많은 차량들이 몰려들어 주차장이 가득한 모습도 바라보인다. 멀리서 바라보이는 모습이 마치 옛날 모내기 전에 소가 끌게 하여 논을 고르던 서래처럼 생겼대서 특이한 이름이 붙은 서래봉까지 가는 길은 그야말로 온통 쇠사다리 천지였다.

오르고 내리는 두 줄로 만들어진 사다리는 대부분 급경사로 어느 곳의 사다리는 거의 직각에 가까운 급경사에 발판도 아주 좁아서 내리막길에서는 금방 앞으로 고꾸라질 것 같아 오금이 저렸다.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쇠사다리를 오르내리며 서래봉에 오르니 시야가 툭 트인다.

발아래 골짜기는 약간은 흐린 시야에서도 단풍이 곱게 물든 내장사와 골짜기가 바라보이고 건너편의 봉우리들도 아스라하다. 능선을 따라 이어진 불출봉의 바위봉우리와 저 멀리 망해봉도 장엄한 모습이다. 내장사 입구 쪽만 열려 있고 타원형으로 둘러쳐진 능선과 그 중간마다 우뚝우뚝 솟아 있는 봉우리들이 정말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서래봉에서 잠깐 쉬며 간식을 먹고 다시 불출봉으로 향했다. 그러나 이어진 길도 마찬가지였다. 급경사 길에 놓인 쇠사다리를 타고 오르내리는 길은 일행들을 힘들게 하고 때로는 위험을 느껴야 하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참을 걸어 불출봉이 저만큼 바라보이는 능선에 도착했다. 

능선에는 쉴만한 평평한 공간이 있고 이곳부터는 사다리 길이 아니다. 쇠사다리 길에 혼쭐이 난 일행들의 발걸음이 한층 가벼워 보인다. 골짜기를 내려다보니 골짜기 군데군데에서 뭉클뭉클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것이 아닌가. 그 모습이 너무나 환상적이어서 모두 넋을 잃고 바라본다. 골짜기에서 피어오른 물안개는 큰 덩어리로 나누어져 산자락을 타고 위로 오르고 있다.

불출봉에서 내려가는 길은 힘들지 않았다. 길도 무난해서 어려움 없이 불출암지에 도착했다. 커다란 바위절벽 아래 뻥 뚫려 있는 동굴이 옛날에는 암자가 있던 곳이라고 한다. 이 불출암지는 고려 광종 26년(서기 975년)에 하월선사가 암자를 세웠던 자리였다. 그러나 나한전 등의 건물은 한국전쟁 때 완전히 불타버리고 그을린 자국만 남아 있었다.

내려가는 길은 힘들지 않았다. 길도 무난해서 어려움 없이 불출암지에 도착했다. 커다란 바위절벽 아래 뻥 뚫려 있는 동굴이 옛날에는 암자가 있던 곳이라고 한다. 이 불출암지는 고려 광종 26년(서기 975년)에 하월선사가 암자를 세웠던 자리였다. 그러나 나한전 등의 건물은 한국전쟁 때 완전히 불타버리고 그을린 자국만 남아 있었다.

조금 더 내려오자 왼편 길 아래로 푸른 나무숲이 싱그럽다. 그 유명한 비자나무 숲이었다. 비자림 옆에는 원적암이 자리 잡고 있었다. 원적암에는 누렇게 금칠이라도 한 것 같은 불상이 건물보다 훨씬 높게 세워져 있는 모습이 특이했다. 

자료-오마이뉴스 이승철 이현숙 / 다이렉트보험

 

삼일회관 그 명성 그대로, 맛은 청출어람이라

내장산에 갔다가 서래봉에 오르지 않으면 내장산의 진정한 면모를 보지 못한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하산길, 집단시설지구에 있는 삼일회관(063-538-8131)에 들러 이 집 음식을 먹어 보지 않고 돌아온다면 내장산 산행의 진수를 빠뜨리고 오는 셈이다. 그만큼 삼일회관은 유명하다. 지금은 은퇴한 창업주 임옥희 할머니는 ‘내장산의 진주’ ‘신이 내린 손’이라는 찬사를 받았던 분이다. 이러한 분의 음식솜씨를 승계한 2대 업주, 산꾼들로부터 ‘에바스(에델바이스)’란 애칭으로 불리는 김희선씨는 창업주의 음식맛에 젊은 감각까지 가미시킨 상차림을 낸다. 청출어람(靑出於籃)에 금상첨화(錦上添花)다.

주변의 대형 업소들에 비하면 규모가 작은 집이라 단풍이 절정을 이루는 11월 초, 예약 없이 찾아가면 식탁 차지가 어렵다고 하니 예약은 필수이겠다.

전주식당 1호점 한국의 맛은 ‘전주’로 통한다?

내장산 집단시설지구 식당 간판에는 모두 ‘전주’라는 지명이 접두어로 들어가 있는 것으로 착각할 정도다. 실제로 이곳 B동에 있는 대형 식당 4개 업소는 모두 다 ‘전주식당’이다. 물론 업주는 같은 사람이 아니다. 그렇다고 체인점도 아니다. 손님의 입장에서는 정말 헷갈리는데 업주의 입장에서는 ‘전주’라는 지명이 들어가지 않고는 영업이 되질 않는다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음식맛은, 길이 로마로 통하듯 전주로만 통한다는 말인가?

 ‘전주식당 1호점(063-538-9448·대표 김한수)’으로 들어가 봤다. 서울에 있는 여러 산악회에서 “정말 좋았다” 며 추천해준 업소다. 좁은 식당가에서만도 ‘전주’가 들어간 업소는 B동 말고도 네 곳이나 더 있다. 114 안내전화로 정읍에 있는 전주식당을 물으면 이 집 ‘전주식당1호점’을 가르쳐준다. 전주식당 A점에 예약했던 단체손님이 B점으로 찾아 들어가는 경우도 생겨 업소 간에 분쟁까지 생긴다니 기막힐 노릇이다. 늦게나마 정읍시에서는  ‘전주’가 들어간 업소의 영업신고는 받아주지 않기로 하고 기존의 ‘전주’가 들어간 업소들은 그 명칭 변경을 유도할 방침이라고 한다. 단체손님이 가장 많이 찾는다는 전주식당 1호점의 주종음식은 산채비빔밥(7,000원)이고 식탁 160석, 버스 4대의 인원이 함께 이용할 수 있는 규모다.

 

정읍황토식당 “산나물 양푼비빔밥, 겁나게 많이 팔렸다우”

할머니는 늘 웃으신다. 환하게 웃으신다. 이러한 할머니의 ‘반란’일까. 할머니는 식당을 개점하면서 ‘전주’라는 옥호를 거부했다. 더욱이 전주에서 자라 이곳으로 이주해서 사시는 분이라는데…. 묘하게도 ‘황토’라는 식당 이름에서도 ‘거부’의 뉘앙스가 풍긴다. ‘황토’는 ‘황토현’에서 따 왔다고 한다. 황토현은 조선 후기 농민운동의 지도자 전봉준 ‘장군’의 전적지 중 한 곳이다. 전봉준(1855~1895)은 정읍 태인 출신이고 황토현은 정읍시 덕천면 두승산(443.5m) 자락 상학마을에 있다. 부패한 관리들의 행패에 저항, 그들과 각을 세우고 싸웠던 분이다.

정읍황토식당(063-538-7923)’은 집단시설지구 A동 내장산 방향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다. 바로 길 건너편 B동에 있는 대형 전주식당 4곳을 마주했다. 차려내는 음식들은 건너편 식당들과 차별화했다. 업주 백재순(68) 할머니는 자기 업소의 대표적인 음식이 산나물 양푼비빔밥이라고 한다. 주변 식당 모두가 산채나물비빔밥을 차려 낸다. 할머니는 특이하게 산나물을 양푼에다가 차려 내면서 음식값도 다른 집들과는 달리 낮추어서 받는다는 것이다. 결코 ‘값싼 비지떡’이 아니라고 한다. 자영 농장에서 무공해로 재배한 각종 채소와 현지에서 나오는 산나물들로 차려 내는 음식이라 저렴하게 받아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런 덕분에 지난해 가을에는 산나물 양푼비빔밥이 겁나게 많이 팔렸다”며 할머니는 또 환하게 웃으셨다. 특히 황토식당에서 내는 복분자술은 자영농장에서 대량 재배한 복분자로 직접 담근 것이라 복분자주 생산공장 제품들과는 크게 다를 것임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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