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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경상남도

함양 월림리 화림동계곡 선비문화탐방로

by 구석구석 2022.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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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문화탐방로

1구간 선비문화탐방관(구.봉천초교)-거연정-군자정-동호정-경모정-농월정 6km

2구간 농월정-구로정-오리숲-광풍루 4.1km 

더 걷고 싶다면( 6.2㎞ / 2시간)

거연정휴게소에서 거연정에 들러 정자를 구경하고 나온 후 봉전교를 건너 왼쪽 나무데크를 걷는다. 10분 정도 지나 포장길을 만나면 왼쪽으로 간 후 곧바로 오른쪽으로 방향을 바꿔 대전-통영고속도로 굴다리 까지 간다. 굴다리 직전에서 왼쪽으로 꺾으면 나무데크 산책로가 다시 이어진다.

길이 끊기는 지점에선 자연석(自然石)으로 이어진 징검다리를 건넌다. 비가 많이 오는 날엔 중간 부분이 물에 잠겨 신발을 벗고 건너야 하는데 돌이 흔들리므로 조심 조심 걷는다. 징검다리 중간쯤에서 오른쪽 소나무 섬으로 빠져 나무데크 산책로에 오른다.

농로와 시멘트 길을 지나 ‘호성마을’ 앞 산책로를 걷는다. ‘람천정’ 지나 ‘화림계곡 탐방 안내판‘을 만나면 왼쪽으로 꺾는다. 계곡 위 돌다리를 건넌 다음 큰길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고 남강천을 따라 길게 뻗은 둑길을 걷는다. 둑길이 끝나는 지점에선 조심조심 도로를 건넌 다음 ‘서하교’를 건너 왼쪽으로 굽어지며 이어져 있는 구(舊)도로로 들어선다. 큰길을 다시 만나 잠시만 더 걸으면 왼쪽에 황토색 계단이 보인다. 계단을 내려가 오른쪽으로, 풀 많은 둑길을 걸으면 농월정 이정표가 나온다.

‘학명지사(鶴鳴志士)’, 몸을 닦고 마음을 실천하며 평생을 살아온 선비들은 언제나 고고한 기상을 지닌 학을 닮고자 했다. 무명 저고리 한 벌을 걸치고도 풍류를 즐기고, 시를 읊으며 살았던 그들의 발자취를 쫓아 함양으로 나서자 희디 흰 학 한 마리가 길동무를 자처한다.  

경남 함양은 ‘내륙의 섬’이라 불릴 만큼 오지였다. 서쪽엔 백두대간, 남북으로는 지리산과 덕유산이 첩첩이 벽을 두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서 함양은 속세의 때 묻지 않은, 불순물 없는 군자(君子)의 향기를 느끼기에 더 없이 좋은 곳이다. 지금은 대전-통영간 고속도로 무주~함양 구간이 개통 돼 서울에서 4시간 내에 갈 수 있게 됐다(지곡 IC). 정여창 고택에서 옛 선비들의 ‘지(智)와 덕(德)’을 엿봤다면, 이제 그들이 즐기던 음풍농월(吟風弄月)의 현장을 가볼 차례. 선비들의 과거길이었던 화림동 계곡과 신라시대 최치원이 조성한 인공숲 ‘상림’을 권한다. 

함양은 선비 마을답게 정자와 누각이 100여 채 세워져 있다. 벗과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학문을 논하거나 한양길에 잠시 머물러 주먹밥을 먹던 곳이다. 서하면 화림동 계곡은 과거 보러 떠나는 영남 유생들이 덕유산 60령을 넘기 전 지나야 했던 길목으로 예쁜 정자와 시원한 너럭바위가 많아 예부터 ‘팔담팔정(八潭八亭: 8개 못과 8개 정자)’으로 불렸다. 현재는 농월정(터)-동호정-군자정-거연정을 나무다리로 이은 6.5㎞ ‘선비문화탐방로’(2006년 말 완공)는 선비들이 지나쳤던 숲과 계곡, 정자의 자태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다.

다리를 걷다 정자가 보이면 잠시 쉰다. 정자 앞 크고 납작한 너럭바위가 작은 들판처럼 펼쳐져 있다. 바위 이름은 얼마나 낭만적인지. ‘달이 비치는 바위 못’이란 뜻의 월연암(月淵岩)과 ‘해를 덮을 만큼 큰 바위’인 차일암(遮日岩)이 풍광을 아우른다.

바위 위 물살이 움푹 파 놓은 웅덩이들에 물이 들어차 잔잔한 얼룩무늬를 이룬 모양이 신비롭다. 이 곳에 막걸리를 쏟아 붓고, 꽃잎이나 솔잎을 띄워 바가지로 퍼 마시는 이도 있다고 한다. 진정한 풍류를 즐길 줄 아는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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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의는 면 단위치고는 제법 큰 동네다. 안의는 본래 이름은 안음현이었다. 영조 43년 인근의 산음현에서 일곱 살 난 여자아이가 아기를 낳는 괴변이 있었다. 영조임금은 음기가 너무 세어서 그렇다면서 산음을 산청으로 개명하면서 안음도 역시 안의로 바꾸었다고 한다. 

 화림동 계곡엔 수많은 정자가 있다. 옛날 정자도 많았지만 누군가에 의해서 불타기도 하지만 복원의 손길 또한 그치지 않는다. 아니 새로 짓는 정자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 많은 정자 가운데 농월정, 동호정, 거연정이 최고라고 하는 데 내가 보기로는 거연정이 으뜸이 아닐까 싶다.  

거연정은 강바닥 가운데 우뚝 솟은 섬 바위위에 자리잡고 있다. 거연정 앞 높이 솟은 구름다리가 멋있지만 아쉬운 것은 쇠붙이로 정자와 잘 어울릴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구름다리가 정자보다 더 높아 정자를 위협하는 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

거연정 앞 소는 아주 깊다고 한다. 수심이 너무 깊어 한 번 빠지면 항아리처럼 패어있는 소를 헤어나지 못해 익사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익사사고를 막기 위해서 수영을 금하기도 한다. 거연정 무지개 다리 위에서 내려다 보는 소는 시퍼렇다. 무섭다. 하지만 한 번 뛰어 내리고 싶은 욕구가 이는 것은 무슨 만용이람.

거연정 저 푸른 소 속에다 쇠그물을 걸쳐 놓고 그 위에서 앉아보는 상상에 빠진다. 푸른 물속. 그것도 찬물이 속는 푸른 물속에 들어가는 것은 상상 만으로도 더위가 물러서는 듯하다.

거연정에서 바라다 보는 주변 풍광은 일품이다. 정자는 정가 그 자체로도 좋지만 그 정자에 들어가서 주변 경치를 보는 것이 더욱 좋다. 거연정 방안에 들어가서 사방을 둘러보면 푸른 숲과 바위, 소나무 숲들이 눈에 들어온다. 작은 집이긴 하지만 그 아름다움은 큰 누각을 압도하지 않는가. 

거연정과 150m 거리를 두고 또 하나의 정자가 서 있는데 바로 군자정이다. 소박하고 아담하면서도 오랜 나무의 결이 살아있어 고풍스러움이 물씬 묻어난다. 군자정은 조선 성종 때의 성리학자인 정여창 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1802년 후세사람들이 세웠다고 한다. 가만 보니 울퉁불퉁한 바위에, 정자를 받치고 있는 다리의 높이가 들쭉날쭉이다.

군자정 / 장희자기자
군자정에사 보는 영귀대의 암반위에 영귀정이 보인다. / 장희자기자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본연 모습 그대로 지켜나가려는 선인들의 지혜가 엿보인다. 그러나 아쉽게도 정자 주변에 큰 도로가 나고 식당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어 고즈넉한 정취는 느끼기가 어렵다. 군자정에서 잠깐 숨을 돌린 뒤 다시 동호정으로 가보자.

화림동 계곡 동호정 앞 나무다리

 동호정은 1890년대에 세운 정자로 경치가 빼어났다. 너럭바위위로 맑은 물이 흐르고 정자 사이로 푸른 바람이 흐른다. 함양군 서하면 황산마을 태생인 동호 정만리는 조일전쟁 때 선조 임금을 업고 의주로 피난을 가게 되었다. 그 공로로 호성공신에 책록이 되었다. 

벼슬에서 물러난 동호는 이곳에다 정자를 짓고 고기를 낚기도 하고 시를 읊으며 자연을 즐겼다고 한다. 그 뒤 동호는 고종임금 때(1892) 좌승지로 추증되었다고 한다. 

동호정은 마루로 올라가는 계단이 특색이 있었다. 발판을 도끼로 쪼은 듯한 통나무 두쪽을 걸쳐 놓았다. 투박하면서도 멋이 있어 보인다. 동호정 바로 앞 강바닥에 솟은 너럭바위는 차일암이라고 한다. 차일암은 햇볕을 가리는 바위란 말인데 바위가 햇볕을 가릴리는 없고 이 바위에 차일을 치고 그 아래에서 더위를 피했는가 보다. 

화림계곡 산기슭에는 테크재 나무다리를 놓아 흐르는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며 시원한 바람을 즐기도록 해 놓았다. 강길 물길을 따라 놓여진 길고 긴 아름다운 다리지만 사람이 지나다닌 흔적이 없다. 삼복 무더위가 덮친 여름한 낮이지만 장마 끝이라서 일까. 아니 지금쯤 사람이 붐비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화림동계곡 정자 중에서 가장 크고 화려함을 자랑하는 동호정.

서하면 쪽으로 더 내려가다 보면 차일을 덮은 듯 냇물의 가운데 수백 명이 앉을 만큼 바위섬으로 넓게 펼쳐진 암반, 그 앞에 동호정이 서 있다. 암반은 이름 하여 차일암. 해를 가릴 만큼 넓은 바위란 뜻이다. 담록색의 못에 다리를 담근 정자보다도 눈에 확 들어오는 차일암 곳곳에는 노래를 부르던 곳, 술을 마시며 즐기던 곳, 악기를 연주하던 곳 등이 음각되어 있다.

옛 양반들이 계곡 가까이에다 차일을 쳐놓고 풍류를 즐겼던 바위기 때문이라 한다. 동호정은 임진왜란 때 선조를 등에 업고 신의주까지 피란을 갔던 장만리 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지었다는 정자. 화려한 단청이 특징이다. 정자를 오르기 전에 나무계단도 도끼로 통나무 홈을 파서 만들어 이채롭다.

동호정

아무튼 유홍준이 전하는 이 나라 최고의 탁족터는 바로 화림계곡의 농월정이다. 박명부가 달을 희롱하며 자연을 즐겼다는 농월정, 이제는 불타고 없다. 함양은 우리나라에서 정자가 가장 많은 곳이라고 한다. 지금도 150개가 넘는 정자가 있다고 하는데 누군지 모르지만 정자에 불을 지르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1978년 고려 개국공신인 배현경의 후손들이 건립한 경모정을 지나면 수많은 너럭바위들로 가득 차 있는 농월정을 만난다. 농월정은 이름 그대로 계곡에 비치는 달을 희롱한다는 뜻. 허나 아쉽게도 농월정은 지난 2003년 화재로 흔적조차 없어졌기에 관광지 입구 안내판 사진으로만 겨우 모습을 짐작할 수 있다.

상상하건데 그곳에 아직 정자가 남아있다면 달 밝은 날 그곳에 앉아 달 바위에 흐르는 물이 달빛을 반짝이는 모습을 보면 달 뿐만 아니라 그곳에 가 있는 모든 이들을 유혹하기 충분 할 듯 하다. 비록 정자는 불타 없어졌지만 계곡 가득 펼쳐진 아름다운 너럭바위의 모습에, 옥같이 넉넉하게 흐르는 물에, 울창한 소나무숲의 멋스러움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농월정

농월정은 박명부의 후손인 밀양박씨 문중 사람들이 복원을 한사코 반대한다는 소문이다. 이 땅은 밀양박씨 문중의 개인 소유인데 문화재가 자리잡고 있어 재산권을 제약받고 있어 일부러 불태우지 않았을까 의심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농월정이야 있든 없든 관계하랴.

탁족을 즐기기엔 오히려 낫지 않을까. 그 옛날 농월정엔 탁족을 즐기는 사람보다는 뺑뺑이 춤을 즐기고 술 취한 반미치광이들이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 달을 희롱할 여우조차 빼앗았는데 이제 농월정 없는 농월정에서 참으로 달을 희롱하게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 오마이뉴스 정근영기자 / 스포츠조선 유정기자 / 한국관광공사 / 시니어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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