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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경기한강유역

여주 천송동 신륵사 솥뚜껑닭볶음탕

by 구석구석 2022.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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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여주의 신륵사. 주변에 영릉을 비롯해 명성황후 생가, 고달사터 등 둘러볼 곳이 많은 곳이다. 차가 밀리지 않는다면 서울에서 1시간여 거리.

여강과 어우러지는 신륵사 전경

여주향토사료관031-880-1857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천년고찰 신륵사 옆(신륵사관광지내)에 1997년 5월 9일 개관한 여주군의 역사와 문화유산을 전시해 놓은 군립박물관이다.

1층 전시실에는 여주와 관련된 중수기사 등의 각종 전적류가 전시되어 있으며 2층 전시실은 구석기시대부터 시작된 우리 여주의 장구한 역사 유적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공간이다. 홍보관에서는 여주의 문화재와 주요 관광지 및 특산물 등 여주 전반에 관한 여주 홍보 영상물을 상영하고 있다. 그 옆으로는 갈모, 남바위, 복건 등의 민속유물과 벼루, 붓, 연적 등의 문방구류가 전시되어 있으며, 전국 민속놀이대전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쌍룡거 줄다리기’를 디오라마 형식으로 전시하고 있다.

또한 8세기 무렵 처음 세워진 후 10세기 무렵인 고려초에 대규모의 사세를 확장했던 점동면 원향사지에서 지표채집한 각종 막새기와와 명문기와가 전시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도자기의 고장 여주가 이미 1,000여년 전인 10세기에 이미 상품의 백자를 생산했던 결정적 증거가 되는 중암리 고려백자 가마터에서 지표채집한 각종 백자편들과 갑발들을 전시하고 있다.

 

신륵사관광단지-여주세계생활도자관 031-631-6507 http://www.wocef.com/

여주세계생활도자관은 한국 생활도자기 생산의 주요한 거점인 여주에 위치한 도자 전시관으로 역사 깊은 사찰인 신륵사와 인접해 있으며 남한강을 바라보고 있는 명소로서 부각되고 있습니다. 세계 도자디자인의 경향과 생활도자기의 미를 조명하는 전문 전시관으로서 한국 생활도자의 발전을 주도해 갈 것입니다.

    
2개의 대형전시실과 기획전시실, 다목적실로 이루어져 있으며 일반 및 전문가를 위한 도예공방(도자체험실, 흙놀이방, 여주도자견본관 등)과 전통 옹기가마, 한글나라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습니다.

여주세계생활도자관은 세계적인 도자디자이너와 유명 도자회사의 우수 도자디자인 제품 및 실용성과 아름다움을 겸비한 국내외 작가들의 도자공예품들이 상설 전시되고 있습니다. 또한 아프리카 원주민토기에서 도자타일 및 파인 세라믹 나이프까지 다양한 생활도자기의 세계를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 관람안내 : 하절기(3월 ~ 10월) : 10:00 ~ 18:00 - 동절기(11월 ~ 2월) : 10:00 ~ 17:00
○ 입장안내 : 폐장 1시간 전까지 입장 하실 수 있습니다.
○ 휴관일 : 매주 월요일, 매년 1월 1일
○ 전화상담 도자체험 문의 : 031-884-8552 / 전시관련 문의 : 031-631-6512

여주시 신륵사길 73 / 신륵사 031-885-2505 www.silleuksa.org

봉미산(156m) 남쪽 자락의 신륵사는 여강을 마주하고 있는 강변 사찰이다

'신기한 굴레'라는 뜻을 가진 신륵사. 대부분의 절이 큰 산에 위치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드물게도 남한강의 큰 줄기를 끼고 있는 절이다. 이처럼 큰 강을 앞마당 삼은 절이 또 있는지 생각나지 않는다.

여주의 아름다운 경치 여덟 가지를 들어 여주팔경으로 불리며 그 첫번째가 바로 신륵사에서 울리는 저녁 종소리인 것을 보면, 여주에서도 신륵사는 수승한 경관과 오랜 역사로 인하여 여주 사람들이 귀하게 여겨온 곳임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억불정책으로 인해 절이 위축되었으나 1469년(예종 1)에 영릉(英陵)의 원찰이 되었고, 1472년(성종 3) 절이 확장되고, 다음 해 정희왕후가 보은사로 개칭했다.

신륵사는 이 강에서 날뛰며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용마'를 어느 대사가 굴레를 씌워 다스렸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 대사가 나옹이라고도 하고 인당대사라고도 하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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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절의 창건과 관련된 이야기가 그럴듯하게 부풀려져 전하는 것일 게다. 곰이 사람이 될 수 없으니 '단군신화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한다면 이는 너무나 초보적인 반론이다. 역사에서 설화는 사실 그대로 보기보다는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사실 정도는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신륵사의 설화 역시 마찬가지이다. 강에서 날뛰는 용마가 무엇이겠는가? 더구나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라면. 누구나 강의 범람으로 인한 홍수의 피해를 떠올릴 것이다. 

그것을 막기 위해 어느 승려가 노력을 했을 것이다. 제방을 쌓거나 하는 직접적인 노력이었거나, 아니면 다른 방법이었을 수도 있다. 바로 풍수해를 막는 비보의 목적으로 절을 세우는 일. 이런 사실들이 그럴 듯하게 포장되어 신륵사라는 이름을 만들어지게 했을 것이다.

극락보전 내부 대들보에 나옹화상의 필적이라 구전되어 오는[천추만세千秋萬歲]라는 현판이 걸려져 있다. 이 현판은 이상하게도 입체감을 나타내고 있으므로 그 보는 위치에 따라 글씨가 달라 보여 특이함을 나타내는 흥미로운 현판이다. 보전 앞에 있는 것은 흰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다층석탑이다. 원각사지십층석탑과 비슷한 형태의 탑이다.

고려 때에는 신륵사 내 등대 위에 서 있는 전탑 때문에 벽절이라 불리었다. 신륵사는 창건 이래로 보제존자 나옹화상과 같은 고승대덕이 지냈던 곳이며 더불어 그 외관이 뛰어난 사찰로 이름이 높았다. 조선 후기 문인 김병익은 [신륵사중수기]에서 신륵사의 명성을 다음과 같이 서술하였다.

신륵사의 중심법당인 극락보전

'절을 세우고 폐하는 것이 세상의 가르침이 될 수 없거니와 유학자로서도 이를 위하여 노력할 일은 아니지만, 절은 폐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 고적이 명승지로 이름 높은 곳이기 때문이다. 신륵사라는 절은 고려시대의 나옹이 머물러 있었으며 항상 아름다운 경치는 물론이고 또한 높은 탑과 오래된 비가 늘어진 것이 옛스러워 목은을 비롯한 여러 문인들이 시로써 그 아름다움을 칭송하였다.

여주는 산수가 청수하고 그윽하고 또한 평원하고 조망이 좋으며 이와 더불어 신륵사는 높고 서늘한 것이 겸하여 있으니 그 경치가 절승한 지경과 같다. 오직 이 두 가지 이유로 온 나라에서 일컫어온 지가 이미 천 년이나 되었으니 비록 내가 절을 세우지 못할 망정 폐할 수 있겠는가.'

신륵사의 강가에는 벽돌로 만든 탑이 세워져 있다. 여러 차례 보수 과정을 거치느라 정확히 층수를 알 수 없는 탑이어서 '신륵사 다층전탑(보물226호)'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는 탑이다. 이 탑은 탑이 세워지는 일반적인 자리인 법당 앞이 아니라 강가 언덕 위에 세워져 강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래서 흔히 이 탑이 한강의 홍수를 막기 위한 비보의 목적으로 세워진 것이 아닌가 하고 추측되고 있다. 즉 한강에서 날뛰던 용마의 굴레 역할을 하기 위해 세워놓았다고 생각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이 탑 근처의 강은 물길이 휘어지면서 소용돌이가 발생하여 사고가 잦은 곳이었다. 한강을 오르내리던 뱃사공들은 이 벽돌탑을 그 표지로 삼아 뱃길을 조심했다. 그래서 신륵사는 벽돌탑이 있는 절이라고 하여 민간에는 '벽절'이란 이름으로 오히려 널리 알려졌다고 한다. 

아이들 어렸을때 여주여행시 나옹대사의 다비탑(좌), 강월헌

벽돌탑 아래 나옹의 다비 장소로 알려진 곳에는 작은 탑과 세워져 있고, 그 곁에는 '강월헌'이란 이름의 누각이 세워져 있다. 그곳에 오르니 강바람이 시원하다. 조용히 흐르는 남한강의 물줄기는 햇빛에 아롱거린다. 아마도 신륵사의 최고의 멋은 바로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정취일 것이다. 

아이들 어렸을 때

여주시 어영실로 116-28 (천송동) / 장작솥뚜껑닭볶음탕 010-3755-9046 

세종대교에서 신륵사까지 벚나무가 빼곡한 여주시 강변북로 산책로를 벗어나 어영실로를 따라가다 보면 도자마을 사이로 ‘장작솥뚜껑닭볶음탕’에 이른다. 천년 고찰 신륵사에서 차로는 지척이고, 걷기에도 멀지 않다. 띄엄띄엄 터를 잡은 전원주택 몇 채가 있을 뿐 주변은 온통 숲이다. 

식당 밖 산더미처럼 쌓인 장작 더미와 열병하듯 늘어선 카트 위 큼지막한 솥뚜껑들이 먼저 손님을 맞이한다. 카트도 솥뚜껑도 직접 주문 제작했다. 지난해 새 단장을 마친 식당 건물은 웅장하고 정갈하다.

메뉴는 닭볶음탕 한 가지. 인원에 따라 1마리(8만원)와 1.5마리(11만5000원) 가운데 하나를 고를 수 있을 뿐이다.

받침대 위에 서너 뼘 크기의 솥뚜껑을 걸고 장작불로 끓여낸 닭볶음탕은 일행의 탄성을 불렀다. 장작불은 솥뚜껑을 녹일 기세로 이글거리고, 닭볶음탕은 장작불 위에서 용암처럼 끓어올랐다.

화력이 엄청나 18호 닭 한 마리가 다 익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는다. 토치로 그을린 어설픈 불맛으로는 흉내 내기 어려운 제대로 된 불맛이다. 닭볶음탕이 내뿜는 진한 향기로 식욕은 폭발 직전이다.

장작솥뚜껑닭볶음탕은 호방하다. 숲으로 둘러싸인 식당 규모와 솥뚜껑 크기는 물론 식재료도 거침이 없다. 닭은 1750그램 안팎의 18호를 쓴다.

여느 프랜차이즈 치킨집에서 쓰는 10호 안팎의 닭과는 뼈 굵기부터 다르다. 부재료도 마찬가지다. 통감자도 대파도 양배추도 버섯도 가래떡도 큼지막하다.

갓 담근 김치를 비롯해 여섯 가지 반찬들도 푸짐하고 버릴 게 없다. 어느새 날은 어두워지고, 불멍에 빠져든 일행은 자리를 뜰 기세가 없다.

향긋한 봄밤의 공기를 호흡하며 지평막걸리를 곁들여 볶음밥까지 비우고 나니, 세상살이조차 거칠 게 없을 듯하다.

/ 출처 : 조선일보 2024 양세욱인제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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