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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경상남도

산청 산청3매 원정매 정당매 야매 단속사 예담촌

by 구석구석 2022. 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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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성면 남사리 원정매元正梅

산청에는 남도의 정취와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고매(古梅) 세 그루가 있다. 다름아닌 ‘산청삼매(山淸三梅)’다. 대전-통영고속도로를 진주 방면으로 시원스레 달리다 보면 산청을 지나 단성 인터체인지에 이른다. 여기를 빠져나가면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이다. 단성면은 우리나라에 목화 씨앗을 처음으로 가져온 문익점의 목화 시배지이자 성철 스님의 생가가 있어 유명한 곳이다.


단성 인터체인지에서 동쪽으로 7km 정도를 달리면 남사리가 있다. 남사리에는 전통 고택이 수십 채 모여 있는 예담촌이 자리하고 있다. 문화재급 기와집이 즐비한 마을 안으로 들어서면 구불구불한 돌담길이 이어지고 화사하게 꽃을 피운 매화나무가 돌담 너머로 향기를 날리고 있다. 

이 마을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매화나무가 있다. 이름 하여 원정매(元正梅)다. 원정매는 고려 말의 문신 원정공 하즙(元正公 河楫·1303~1380년)이 심었다고 전하는 매화다. 하즙은 이곳에서 태어나 1324년(충숙왕 11년) 문과에 급제해 벼슬길에 나갔다. 출사 후 폐정개혁기관인 정치도감에 배속돼 정치·경제·사회 분야의 개혁을 시도하며 관리의 실정과 토지·노비 문제를 바로잡았다. 심지어 기황후의 동생인 기삼만을 구속하기도 했다. 아들 윤원 역시 대사헌에 이르렀고, 증손자 연이 마침내 영의정에 올라 진양 하씨의 위세를 삼도에 떨쳤다. 

원정매는 하즙이 낙향 후 심은 것으로 전한다. 연보가 없어 언제 고향으로 돌아왔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공의 말년에 해당하는 1370~1380년경으로 추정하면 수령이 적어도 630~640년에 달한다.  

동양화가이자 미술사학자로서 매화 사랑이 깊었던 근원 김용준(近園 金瑢俊·1904~1967년)의 <근원수필>에 보면 “세인이 말하기를 매화는 늙어야 한다 합니다. 그 늙은 등걸이 용의 몸뚱어리처럼 뒤틀려 올라간 곳에 성긴 가지가 군데군데 뻗고 그 위에 띄엄띄엄 몇 개씩 꽃이 피는데 품위가 있다 합니다”라는 문장이 있는데 원정매는 그 표현에 딱 맞는 매화나무다.  

원정매는 붉은 꽃을 피우는 홍매화다. 수형이 용틀임을 하듯 휘어져 있어 고고한 기품을 뽐낸다. 하지만 격조를 자랑하던 이 노목도 세월의 힘에는 어쩔 수 없는지 쇠하고 말았다. 몇해전 주인 영감님이 세상을 뜬 후 더 노쇠했다. 심지어 나무 밑동이 까맣게 죽어 수년 전 문화재청으로부터 사망선고를 받고 신문에도 기사가 실렸다.

그러나 지금은 다행스럽게도 원 밑동 옆에서 돋아난 새 가지가 튼실하게 자라 올라 붉은 꽃잎을 탐스럽게 토해내 보는 이의 마음을 위무한다. 많지 않은 꽃무리가 어린 벌들을 불러 살아 있는 매향을 흠향할 수 있다.

원정매가 있는 고택 마루 위에는 ‘원정구려(元正舊廬)’라는 붉은 글씨의 편액이 걸려 있다. 누가 봐도 잘 쓴 이 글씨는 석파 대원군이 ‘원정공이 살던 옛 집’이라는 의미로 직접 쓴 것이다. 아마 대원군도 이 고매를 보러 왔다 탄복하여 글씨를 남긴 모양이다. 

하씨 고택에는 원정매와 함께 원정공의 증손자로 조선조 영의정을 지낸 문정공 하연(河演·1376~1453년)이 7살 때 심었다는 감나무도 있다. 계산해보니 이 나무도 수령이 640살에 달한다. 울퉁불퉁 고목 진 이 감나무는 허물어진 담 옆에서 따사로운 봄볕을 받고 있다. 

/ 월간산 2009.4

 

운리 야매

단성면 운리의 마을 주변에는 정당매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논 밭두렁과 야산 기슭에도 오래된 매화나무가 자생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정당매가 있는 곳에서 좌측으로 약 300m 지점에 두 그루의 매화가 있는데 첫 번째 논두렁에 있는 나무는 근원 직경이 63㎝에 달하는 수령 약 350년 생의 백매이고, 두 번째 나무는 수고 5.5m 수폭 5.0m의 건강하게 자란 백매로써, 수령이 약 150년생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운리 마을의 서편에 있는 나지막한 두류산 기슭에 있는 야매로는 수풀 속에 파묻혀 야매의 강인함을 엿보게 하는 수고 3m에 근원직경 51㎝인 수령 약150년생의 백매와 수고 6.0m에 여러 줄기로 자란 수령 약 100여년생의 백매가 있다.

/ 한국관광공사


단성면 운리에 도착하기 전, 예담촌이라는 푯말이 있는 곳이 남사마을. 예담촌이란 오랜 세월을 묵묵히 지켜온 옛 담의 신비로움, 전통, 예를 중요시하는 산청 남사마을의 단정한 마음가짐을 담아가자는 의미에서 지어진 이름이다.

남사마을은 수많은 선비들이 과거에 급제하여 가문을 빛내던 학문의 고장이다. 안동의 하회마을처럼 양반마을과 전통한옥마을로 유명하다. 농촌전통 테마마을로 지정된 남사마을은 예담촌(옛 담마을)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정이 묻어나는 고즈넉한 담장들이 우리 전통 한옥의 아름다움을 엿보게 한다.

이곳 진양 하씨의 종택으로 33대 째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고택이 있다. 고려말 원정공 하집이 살았던 곳이기도 하다. 원정공(元正公)이란 의미는 의를 행하여 백성을 기쁘게 하는 것이 원이요, 정의로서 남을 복종케 하는 것이 정이라는 뜻이다.

분양고가(汾陽古家)라는 편액이 걸려 있는 집은 명문 고택의 냄새가 물씬 풍긴다. ‘원정구려(元正舊廬, 원정공의 옛집)’라는 대원군의 친필 편액이 보관 되어 있는 사랑채 앞 뜰에 600년 동안 묵묵히 고택을 지켜온 고매가 있다. 줄기의 용트림이 괴기하고, 분홍의 꽃빛이 아름다운 이 매화는 중국이 자랑하는 10대 명매 가운데 하나인 운남성의 보조사 고매와 그 모양새가 비슷한 점이 많다. 운리의 정당매와 마찬가지로 현재 꽃을 피운 상태다.    

         

최씨고가

비록 고택으로 들어가는 길의 높은 돌담이 찾아오는 이들에게 적지 않은 위압감을 선사했지만, 막상 대문을 열고 들어가 마주친 고택은 그야말로 고색창연함 그 자체였다. 역시 집은 사람이 그 안에 살아 본 기능을 잃지 않아야 제 모습을 유지하는 것인가. 

최씨 고가는 말 그대로 전통과 현대의 만남이었다. 공간 곳곳에는 그냥 관리비나 주고 마음 편히 살기 위해 아파트를 선호하는 작금의 현실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그런 멋이 새겨져 있었다. 물론 그만큼 불편하겠지만 그만큼의 자부심이 뒤따를 것이다. 옛 것을 지킨다는 것은 결코 ‘실용’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행위이다. 

대전-진주 고속도로 단성IC로 나와 우측 덕산 방향으로 약 5분 정도 차로 가면 입석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운리 방향으로 가면 운리 도착하기 전 예담촌이라는 표지판이 나오는데 이곳이 남사마을이다. 마을에서 물어보면 진양 하씨 종택을 찾을 수 있다. 단성면 사무소 055-970-7281 

남사예담촌은 마을에서 농촌전통을 알리고 도.농 교류를 촉진하려 자매결연단체, 출향인사, 체험객, 마을주민 등 500여명을 초청한 가운데 ’전통문화축제’를 연다. 남사예담촌은 전통 혼례를 통해 도시와 농촌의 만남을 재현해 보고 풍년기원과 복을 비는 예담제를 비롯해 체험객들의 소망을 담은 소원나무만들기등 다채로운 행사를 펼친다.

남사예담촌은 단성면 남사마을은 넓은 들과 울창한 숲이 둘러친 수려한 경치를 자랑하고 예로부터 충.효.예.학의 마을로 고목과 전통가옥 그리고 아름다운 담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그 모습과 기상을 닮아가자는 의미에서 남사예담촌이라고 불려오고 있다.

/연합뉴스 

■ 100년 전 파리장서운동 펼친 선비들의 활약상 오롯이 '유림독립운동기념관'

100년 전인 1919년 3·1 독립운동 물결에는 전국의 유림도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137명의 유림 대표는 전문 2674자에 달하는 장문의 한국독립청원서를 작성, 파리강화회의에 보냈다. 이른바 파리장서운동으로 유교계 대표적인 독립의거다. 파리장서에는 ‘한국은 오랜 역사를 지닌 문명의 나라로 스스로 정치할 능력이 있으므로 일본의 간섭은 배제돼야 한다. 일본은 교활한 술책으로 보호를 명목으로 한국을 빼앗으려 하고 있다. 일본의 포악무도한 통치를 참을 수 없어 독립운동을 벌이고 있는 한국의 처지를 만국에 알린다’는 내용이 담겼다. 

지식인이 평화적 방법으로 국제법에 호소한 특별한 독립운동으로 평가받는 파리장서운동의 정점에는 산청군 단성면 남사마을 출신의 면우 곽종석(1841~1919) 선생이 있었다. 면우는 파리장서운동 직후 투옥됐다, 병보석으로 풀려났으나 같은 해 8월 눈을 감았다. 예담촌 한쪽 자락에는 면우 선생을 비롯한 유림의 독립운동 활약상을 확인할 수 있는 유림독립운동기념관이 있다. 근처에는 이동서당 등 면우 선생 유적과 파리장서 기념탑도 있다. 지난달에는 이낙연 국무총리가 이곳을 다녀가기도 했고, 산청군은 지난 1일 유림독립운동기념관에서 파리장서운동 100주년 기념식을 개최하기도 했다. 

웅석봉 기슭의 단속사(斷俗寺)는 신라 말기의 절이다. 748년(35대 경덕왕 7년)에 이순이 창건했다는 설과 763년(35대 경덕왕 22년)에 신충이 창건했다는 설이 삼국유사의 ‘신충괘관’에 실려 있다. 경덕왕 때에 직장 이순이 발원하기를 나이 오십이 되면 출가하여 절을 짓겠다고 했다. 

748년에 마침 그의 나이가 오십이 되었으므로 원래 있던 작은 절을 중창해 단속사라 하였다. 또 763년에 신충이 관직을 사퇴하고 두 친구와 함께 지리산에 들어갔다. 경덕왕이 두 번이나 불러도 나오지 않고 머리를 깎고 사문이 되어 왕을 위해 단속사를 짓고 죽을 때까지 대왕의 복을 빌겠다고 하니 왕이 허락하였다. 단속사는 ‘속세를 끊었다’는 뜻이다. 

본래 단속사에는 신라의 화가 솔거가 그린 유마상이 있었는데 세상에서 전하기를 신이 그린 그림이라 하였다. 근처에는 최치원이 쓴 ‘광제암문(廣濟巖門)’의 각자가 있다. 또한 경내에는 신라 병부령 김헌정이 지어 813년에 세운 신행선사비와 1148년에 이 절에 들어와 1159년에 입적한 고려 최고의 명필 대감국사의 비, 그리고 최치원의 독서당이 있었다. 우리나라 금석문 연구의 귀중한 자료인 두 개의 비문은 탁본으로만 전한다. 

단속사의 폐사 연대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다만 김일손(1464~1498년)이 쓴 <두류기행>을 보면 “절이 황폐하여 지금 중이 거처하지 않는 곳이 수백 칸이 되고 동쪽 행랑에 석불 500구가 있는데 하나하나가 각기 형상이 달라 기이했다”고 술회되어 있다. 이 기록으로 미루어 보아 조선 초기까지는 간신히 지탱하다가 임진왜란의 병화로 소실된 것으로 추측된다.   

현재 절터에는 동삼층석탑(보물 제72호)과 서삼층석탑(보물 제73호)이 본래 위치에 서 있다. 주변에는 금당지, 강당지 등의 초석이 그대로 남아 있어 신라 시대의 가람 배치를 짐작할 수 있다. 입구에는 당간지주도 있다.

/ 월간산 김규

 

지리산 줄기가 힘차께 뻗어 내려오다가 멈춘 옥녀봉 아래 남향으로 자리한 단속사 절터에는 동.서의 삼층석탑과 주춧돌이 어지러이 놓인 가운데 매화나무 고목이 한 그루 서 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의 매화나무로서는 수령이 가장 오래된 정당매(政堂梅)이다.

인재 강희안(1419~1464)의 양화소록에 보면 우리 선조 통정공께서 소년시절에 지리산 단속사에서 글공부를 하실 때에 손수 매화 한 그루를 뜰 앞에 심어놓고, 시 한 수를 읊었다고 씌여 있다. 여기서 인재가 말하는 선조는 고려 말기의 문신인 통정 강회백(1357~1402)으로 우왕2년(1376)에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이 점점 높아져서 정당문학(政堂文學, 중서성과 문하성의 종2품 벼슬)겸 대사헌에 이르렀다.

 공양왕 4년(1392) 정몽주가 살해된 뒤 진양에 유배되었다가 조선 건국 후 태조 7년(1398) 동북면 도순문사가 되었다. 그는 경남 산청 출신으로 강희안의 조부가 되며 통정이 소년시절 정당매를 심고 읊었다. 통정집에 기록된 또 하나의 시는 그가 46세로 일생을 마치기 전에 손수 심은 정당매를 찾아와 읊은 시로써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커다란 감동과 감회를 느끼게 한다.

단속사의 스님들이 공의 재덕을 생각하고 깨끗한 풍채와 고매한 품격을 사모하여 그 매화를 보면 곧 공을 본 듯 하였다. 해마다 흙으로 뿌리를 다져주고 북돋아 기르기를 때를 맞춰 알맞게 하였다. 그 가지의 모양이 가까스로 굽고 또 푸른 이끼가 나무줄기를 감싼 것이 《매보(梅譜)》에서 말한 고매와 다름이 없으니 참으로 영남의 한 고물이라 하겠다. 이로부터 영남에 나랏일로 오는 사람들이 이 고을에 오면 누구든지 단속사를 찾아서 그 매화를 감상하고 우리 선조의 시운에 맞춰 시를 써서 문 위에 걸어놓곤 하였다. 이와 같이 단속사의 스님들은 이 매화나무를 극진히 보살피게 되었고, 통정공의 후손들과 영남에 내려오게 된 관리들이 정당매를 찾게 되었다.

 이 매화나무의 나이는 통정공이 소년시절 단속사에서 글을 읽을 때 심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므로 그가 이 절에서 공부한 시기를 20세 이전의 등과하기 전으로 본다면 대체로 1376년 이전에 식재된 것으로 볼 수 있어 그 수령은 630년이 넘었을 것으로 본다. 현재 정당매는 높이 8m에 둘레가 1.5m로서 근간에서 4본의 지간이 생겨 위로 혹은 옆으로 뻗었다. 꽃의 색깔은 백색이며 홑꽃이다. 3월 20일 전후이면 어김없이 꽃망울을 터뜨려 맑은 향기를 퍼뜨린다.

 후손들은 이 정당매를 기념하기 위하여 비각을 짓고 비를 세웠다. 매각은 1915년에 매비의 건립과 함께 건립된 것으로 정당매각이란 넉자로 된 현판이 걸려 있으며, 비각 안에는 매각을 세운 연유를 기록한 ‘정당매각기'와 통정공의 매화원운의 시와 후손들의 시 여러 편이 걸려 있다. 현재 이 정당매는 1982년 11월 10일자로 경상남도의 도나무(고유번호 12~41 호)로서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 한국관광공사

 

운리 515 다물평생교육원 055-973-1754∼6 

 다물민족학교는 구한말 대성학원과 신흥무관학교의 맥을 잇는 자생적 민족교육기관으로 1990년에 설립되었다. 다물(多勿)은 '되물리다', '되찾는다', '되돌려 놓는다'는 의미로 고구려 동명성왕의 '고조선의 영토와 문화를 회복한다' 는 취지를 본뜬 '다물정신'으로, 왜곡된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되살리겠다는 건강한 민족혼의 교육 이념을 표방하고 있다. 민족교육, 민주교육, 통일교육, 선진화교육에 목표를 두고 5단계의 창조적 교육체계를 만들어 산업지도자, 공무원, 군인, 일반시민, 주부, 학생, 해외동포 등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 종합생활관 2층 - 가족형 숙소 / 12실식당 및 휴게실 단층 30평

* 종합수련관 - 20~50인 내외 교육가능하며 전통도예실, 전통음악 및 춤강습실, 전통 건강수련실, 다도실, 고전 및 전 통예절 학습실

* 수련 및 공연시설 - 국궁장, 대공연장, 소공연장 전통무예, 국악, 전통춤, 가곡 선도수련장, 삼림욕장, 명상산책로, 약수터

* 자연학습원 - 제1자연학습원(1만평 - 야생화 단지, 약초단지, 녹차단지, 유실수단지) / 제2자연학습원(2만평 - 유기농재배)

* 기타 - 펜션, 가족 및 소규모 단체용 숙소3개, 다물가족용 펜션

 

후끈후끈 참숯가마, 무릉도원 따로 없네 / 지리산골에 자리한 황토숯가마

 

강추위가 몰아친 30일 오전, 강한 바람이 뼛속까지 파고들어 옷깃을 올려도 추위를 피하기란 쉽지 않다. 이맘때면 더욱 간절히 생각나는 곳. 참숯을 구워낸 뒤 남아 있는 가마의 열기로 찜질을 즐기는 숯가마 찜질방. 은은하게 배어나오는 참나무 향과 몸에 좋다는 원적외선 등 건강 찜질을 소개하기위해 산청군으로 향했다.

이맘때면 더욱 간절히 생각나는 곳. 참숯을 구워낸 뒤 남아 있는 가마의 열기로 찜질을 즐기는 숯가마 찜질방. 은은하게 배어나오는 참나무 향과 몸에 좋다는 원적외선 등 건강 찜질을 소개하기위해 산청군으로 향했다.

제법 유명세를 타고 있는 산청 찜질방은 목화재배지를 지나 남사 예담촌에서 5분거리에 소재하고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주변에는 숯을 구울때 나는 뿌연 연기가 자욱하고 숯냄새가 진동을 한다.

지리산 참숯굴 찜질방 풍경 / 변종만

"처음 이곳에 왔을때만 해도 거부감이 들었어요. 20여 명이나 되는 사람들 모두 똑 같은 옷을 입고 시커먼 굴 안으로 들어가 있는 모습이 마치 수용소에 온 느낌이랄까요. 하지만 한 두번 찾게 되면서, 숯가마의 매력에 빠지게 되었죠."

" 저는 오랫동안 앓아온 피부병을 낫기 위해 안해본 것이 없을 정도로 노력을 해봤습니다. 2년 전 지인으로부터 이곳을 소개받은 후로, 현재까지 한번도 빠지지 않고 찾고 있습니다. 피부병도 많이 낫게 됐구요."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에 연신 물을 들이키며 숯가마 안에 앉아 있던 찜질방 매니아(?)들이 입을 모아 예찬론을 펼쳤다. 이처럼 찜질방을 찾는 이들이 늘면서, 찜질방은 이제 여행지의 주요 코스로 각광받고 있다. 6년간 숯을 구워온 송인용씨는 이곳에 터를 잡을 당시만 해도 찜질방이 아닌, 숯공장이 주용도 였다고. 4년전 관광객들이 우연히 이곳을 발견, 찜질을 즐기면서 점차 입소문을 타게 된 것이다.

숯을 구워낸 가마 안에는 특이한 물질이 있는데, 그 물질이 사람 피부 깊숙히 들어가 서서히 열기를 전한다. 그것이 원적외선이다. 원적외선은 피부 깊숙이 들어가 혈액순환과 신진대사를 촉진하고 몸속의 노폐물을 땀으로 발산시킨다. 신기하게도 숯가마에 앉아 있으면 뜨겁기는 하지만 숨이 막힐 정도로 답답하지는 않다. 황토와 숯이 숨을 쉬면서 습기를 빨아들여 쾌적한 공기를 만들기 때문. 또 땀을 흘리면서 끈적거리거나 냄새가 나지 않는 것도, 그리고 숯가마에서 나와도 금방 추워지지 않는 것도 원적외선 때문이다.



숙박

남사마을에는 문화재로 지정된 전통가옥인 황토집(016-9620-7411)을 비롯해 몇 곳의 민박집이 있다. 산천재가 자리한 산청군 시천면 일대에는 뷰캐슬펜션(055-973-2250), 작은풍경펜션(055-974-0074), 삼청호수펜션(055-973-4866) 등의 여러 펜션이 있다. 

먹을 곳

산청 남사마을에 자리한 남사예담촌전통찻집(011-9314-0422)에서는 전통차뿐 아니라 떡국, 녹차수제비, 파전 등을 맛깔스럽게 내놓는다. 그리고 지리산을 자주 찾는 산꾼들 사이에 시천면 사리의 팔도한우촌(055-973-0092)은 한우구이와 갈비탕, 시천면 중산리의 지리산산꾼의집(055-972-1212)은 산채비빔밥을 잘하기로 소문난 집이다. 그 밖에 산청읍내의 춘산식당(055-973-2804)은 산청에서 가장 내력 깊고 손맛 좋은 한정식집으로 손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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