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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충청남도

부여여행 부소산 백마강 합송리994

by 구석구석 2023. 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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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팔경

 

 

백마강

부여팔경은 1900년대 초 부여를 찾아오는 사람들과 시인 묵객의 의견을 엮어 부여팔경을 정하였다고 한다. 슬픈 망국, 백제와 백제인의 심성이 잘 드러난 곳으로 보인다.  부여에 가면 먼저 부소산을 올라야 한다. 낙화암, 고란사, 사자루, 영월루, 산성, 군창지, 삼층사 등의 명소와 문화재가 많다. 

부여팔경은 여타지역같이 고정물이 아닌 자연풍경으로 되어 있어 직접가서 느껴야한다.  

扶蘇山 暮雨 - 부소산에 내리는 부슬비

落花岩 宿鵑 - 낙화암에서 망국의 한을 우짖는듯한 소쩍새

皐蘭寺 曉鍾 - 고란사의 은은한 풍경소리

白馬江 沈月 - 백마강에 젖어드는 달

百濟塔 夕照 - 백제탑의 저녁노을

窺岩津 歸帆 - 규암나루로 들어오는 돛단배

水北亭 淸風 - 수북정에서 바라보는 백마강 아지랑이

九龍坪 落雁 - 구룡평야에 내려 앉는 기러기떼

 

고란사 부소산(扶蘇山) 낙화암(落花岩) 아래 백마강(白馬江)이 한눈으로 내려다보이는 위치(位置)에 있다.

김휴림의 여행편지

초창(初創)은 백제(百濟) 제17대 아신왕대(阿莘王代)라고 전해지기도 하며, 또는 백제시대(百濟時代) 낙화암(落花岩)에서 목숨을 던진 삼천궁녀(三千宮女)들의 원혼(寃魂)을 추모하기 위해 고려(高麗) 초기(初期)에 건립되었다는 설도 있으나 정확한 창건연대(創建年代)는 알 수 없다.

암자가 자리잡은 이곳 주변은 경관(景觀)이 아름답고 낙화암에 얽힌 전설과 더불어 기암괴석(奇岩怪石), 기화이초(奇花異草) 등으로 더욱 유명(有名)한 곳이다. 현존(現存)하는 건물(建物)은 은산(恩山)의 숭각사(崇角寺)로부터 옮겨 지은 것이며, 상량문(上樑文)에 의하면 정조(正祖) 21년(1797) 중건(重建)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고란사는 절 자체보다 고란초와 고란약수가 더 많이 알려져 있으며, 또 유명한 낙화암이 바로 위에 있어 찾는 사람도 많다. 

고란초는 고사리과에 속하는 식물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유독 이곳에서만 볼 수 있다고 한다. 고란사 뒤편 바위에 붙어 자생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바위에 붙어 있는 고란초를 찾기는 어렵다.

대신 법당 뒷편에 고란초에 대한 설명이 있는 액자가 걸려 있는데, 액자 가운데에 있는 좀 지저분해 보이는 것이 고란초라고 한다. 고사리라기보다는 이끼에 가까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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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란약수는 고란사 법당 뒤에 있다. 다른 약수와는 달리 바위 밑에서 물이 나와 고여있는 형태이다. 좀 깊은 곳에 고여 있어 손잡이가 긴 국자 모양의 용기로 떠서 마셔야 한다. 

이 고란약수에 고란초를 띄워 마시면 한 잔 마실 때마다 삼 년씩 젊어진다는 속설이 있다. 이 약수를 너무 많이 마셔 갓난아이가 되어버린 할아버지의 이야기도 곁들여서 전해지는데, 속설은 어디까지나 속설일 뿐이다. 또 백제의 왕들이 이 물을 즐겨 마셨다는 말도 전해지는데, 실제 물맛은 별로 특이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백마강

백마강은 "백제의 제일 큰 강" 이란 뜻으로 규암면 호암리 천정대에서 세도면 반조원리까지 16㎞의 금강을 일컫는다. 부소산을 휘돌아 흐르는 백마강에는 백제시대의 중요한 국사를 결정했다는 천정대, 낙화암, 조룡대, 조각공원이 있는 구드래, 부산ㆍ대재각, 스스로 따뜻해졌다는 자온대, 수북정 등등 발길이 닿는 곳마다, 뱃길이 가는 곳마다 옛전설이 있다.  

백마강교 밑에서 시원한 강바람 맞으며 즐기는 카누, 요트 등 수상레포츠도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여유를 선물한다. 매년 6월~10월 카누 요트 체험교실이 진행되니 참고하자.

고란사 아래 유람선 선착장에서 보면 백마강 상류쪽으로 작은 섬처럼 있는 바위가 조룡대다. 당나라 장군 소정방이 백제를 침공할 때, 강 건너는 것을 방해하던  용을 백마를 미끼로 이 바위에서 낚았다는 전설이 있다.

수북정

부여에서 백제대교를 건너자마자 왼쪽으로 백마강을 굽어보고 있는 정자가 수북정이다. 조선조 광해군 때 양주 목사를 지낸 수북 김흥국선생이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건립하였으며, 자신의 호를 따 수북정이라 하였다. 복원하였으며 따스한 봄날 주위에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의 모습은 매우 아름다워 부여팔경 중의 하나이다.  

 건물은 앞면 3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새 날개 모양으로 장식한 익공 양식으로 꾸몄다. 동에는 부소산(扶蘇山)과 나성(羅城)이 있고 정자 밑에는 백마강(白馬江)이 맑게 흐르고 있다.

충남 부여군 규암면 규암리 147-2에 있는 수북정 / 한국관광공사

자온대수북정 아래쪽에 있는 자온대(自溫臺. 일명 옛바위)는 백제시대 왕이 왕흥사(王興寺)에 행차할 때 이 바위를 거쳐가곤 했는데, 왕이 도착할 때마다 바위가 저절로 따뜻해져서 구들돌이라 명명했다 한다. 이 전설에 따라 자온대라 불려오며 암벽에는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의 '자온대(自溫臺)'라고 쓴 친필이 음각 유존(遺存)되어 있다.

 

 부산각서석, 대제각

구드래 건너편 백마강가 부산의 절벽에 대재각이 있으며, 그 안에는 자연 암반에 '지통재심 일모도원’이라 쓰여진 각서석이다.

부소산 북쪽 백마강을 내려다보듯 우뚝 서있는 바위 절벽이 낙화암이다. 낙화암은 사비성이 나당연합군에게 유린될 때, 수 많은 백제 여인들이 꽃잎처럼 백마강에 몸을 던졌다는 전설이 깃든곳이다. 

이 전설로 낙화암이라는 꽃답고 애절한 이름을 얻었지만, 『삼국유사』에는 타사암(墮死岩-사람이 떨어져 죽은 바위)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백제 성왕이 국가 중흥의 원대한 꿈을 펼치려 사비로 도읍을 옮긴 후 관산성 전투에서 전사하는 비운을 맞기도 하였으나, 위덕왕ㆍ무왕ㆍ의자왕에 이르는 동안 최강의 국력을 자랑하게 되었다.  

이에 신라는 단독으로 백제에 대항하기가 어려워 당나라와 연합하여 백제와 대결하기에 이르렀다. 이때 백제는 국운을 다했던지 의자왕도 정사를 소홀히 하고, 나라가 흔들리게 되었다. 결국 의자왕 20년(660) 사비성은 신라ㆍ당나라 연합군에게 함락되고, 성내에 살던 궁녀와 도성에 남은 여인들은 부소산성으로 피신하였다.  그러나 침략군이 부소산성까지 몰려들자 백제 여인들은 적군에게 잡혀가 치욕스러운 삶을 사느니보다 차라리 푸른 강물에 몸을 던져 무너지는 국운과 함께 목숨을 깨끗이 버리는 길을 택했던 것이다.

영일루 아래쪽으로 백마강을 시원하게 내려다볼 수 있는 육모지붕의 백화정이 절벽 위에 자리잡고 있고 아래에는 낙화암이 있다. 힘들지 않은 걸음이라도 땀이 났을 만한데 백마강 강바람에 땀을 식히기에 안성맞춤이다. 부소산성에 오르는 이들은 대개 여기에서 사진을 찍는다. 그러나 실은 그 바로 아래 나무 모양의 난간을 두른 자리가 백마강이 휘돌아 가는 모습이 배경으로 더 근사하게 잡히는 곳이다. 

낙화암전망대

이처럼 여자의 정조를 생명보다 더 소중히 하고, 백제마지막 순간까지 지키려 했던 백제 여인들의 충절과 넋이 어린 곳이 바로 낙화암이다. 바위 절벽에 새겨진 ‘낙화암(落花岩)’이라는 글씨는 조선시대 학자인 우암 송시열 선생이 쓴 글씨이다. 

 

부여팔경을 다 볼수 있는 곳이 부소산과 부소산성

부소산성은 700년 백제 왕조의 마지막 수도 사비기 왕궁의 배후 산성으로, 평상시에는 왕궁의 후원 역할을 하다가, 위급할 때에는 왕궁의 방어시설로 이용됐다고 한다. 출처 : 투어코리아

부여읍내에 있는 부소산 정상과 능선을 따라 2.5㎞가량 흙으로 쌓아올린 토성이다. 백제 왕조 마지막 120년간의 수도였던 사비의 외곽성이다. 하지만 산성이라기보다 잘 닦여진 산책로라는 느낌이 강하다.

시민들은 이 산책로를 따라, 토성을 따라 운동 겸 산책을 즐긴다. 사실 능선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진 산책로는 백제로 들어가는 역사의 통로다. 성이라고 하기엔 앙증맞은 토성과 영일루, 반월루, 군창지, 서북사지 등 유적지가 곳곳에 있다.

 길을 따라 걷다보면 가장 먼저 만나는 곳이 삼충사(三忠祠)이다. 백제 멸망 당시 의자왕에게 충성을 다했던 세 충신인 성충, 흥수, 계백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1957년 건립된 것으로 매년 10월 백제문화제가 열릴 때 이곳에서 삼충제를 지낸다.

산책길의 끝은 낙화암과 고란사. 낙화암은 나라 잃은 슬픔을 껴안고 강에 몸을 던졌던 궁녀들의 넋이 어린 곳이라기엔 너무 아름다운 곳이다. 부소산은 부여의 진산으로 해발 100m의 언덕이지만 이곳을 둘러싼 산성은 왕궁과 시가를 방비하는 최후의 보루였다.  

영일루는 사비성의 동대(東臺)가 되는 영일대가 있던 자리이다. 지금 건물은 1964년에 홍산에 있던 홍산문루를 옮겨 지은 것이다. 부소산의 동쪽 산봉우리이니만큼 아침 해뜨기를 보기에 안성맞춤이어서 '해 맞는 곳'으로 이름이 붙었겠다.

백제의 왕이 지금 영일루로 바뀐 영일대(迎日臺)에서 정무를 보고 사비루로 바뀐 송월대(送月臺)에서 저녁을 즐겼을 만큼 이 부소산은 백제 도읍 부여의 중심지였으니 발에 채이는 돌부리 하나 예사롭지 않은 곳이다.

 

정림사지

 남에서부터 중문·석탑·금당·강당이 일직선상에 세워지고 주위는 회랑으로 구획된 백제의 사찰이다. 해방 전에 실시된 1차 발굴조사 결과 1탑 1금당식의 전형적인 백제절터로 밝혀진 바 있으며, 고려시대 명칭이 정림사였음이 알려졌다. 그 후 1979∼80년, 1983∼84년에 걸쳐 충남대 박물관이 전면적인 조사를 실시하였다. 

8m 33cm의 작지 않은 체구의 정림사지 5층 석탑

 중문지는 석탑 중심에서 남쪽으로 19.98m의 거리에 중심을 두고 자리잡고 있으며, 평면은 정면 3칸, 측면 1칸이다.금당지는 석탑 중심에서 북으로 26.27m의 거리에 위치하였으며 하층기단의 경우 정면 7칸, 측면 5칸이고, 파괴된 상층기단은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추정된다.

금당은 백제식의 이층기단으로, 상층기단 상면은 물론 하층기단에도 초석을 배치하는 것이 특이한 점이다. 강당지는 그 중심이 금당의 중심에서 31.70m 북쪽에 위치하였으며 정면 7칸, 측면 3칸으로 고려시대에 재건되었다. 석불이 안치된 연화대좌는 이 때 재건된 기단 위에 구축되었음이 확인되었다. 그 후 강당복원을 위한 사전조사 중 백제 때의 기단부도 확인되었다. 

회랑지에서 남북을 통과하는 남북중심선을 상정하였을 때 가람 남북기준선에서 동쪽으로 22.50m 지점에서 동회랑이 통과하며 서쪽으로 22.57m의 지점에서 서회랑이 통과하였다. 북회랑은 강당 측면의 중앙칸 후반부에, 그리고 남회랑은 중문 측면에서 약간 후방으로 기울어진 위치에 연결되었던 것으로 추정되었다.석탑에 관한 조사에서는 기초부가 상중하 3부분으로 된 판축토에 의하여 구축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외에 사찰 동북부에서 문지, 건물지, 배수구 와적층이 발견되었고, 중문 밖에서는 방형의 연지와 남문지가 확인되었다. 조사를 통하여 다수의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활석재 삼존불편을 비롯하여, 각종 소조상, 기와 및 도제 벼루를 포함한 토기 각종이 발견되었다. 지정면적은 59,245㎡이다. 

구드래 조각공원

부소산 서쪽 끝자락에 있는 구드래는 백마강과 어울려 빼어난 경승을 이루고 조각공원이 잘 꾸며져 있어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휴식공간이다. 

 구드래 나루는 백제시대에 도성인 사비성을 출입하는 항구와도 같은 큰 나루였으며 현재는 백마강을 오르내리는 유람선의 선착장으로 주변에는 토속음식이나 별미를 즐길 수 있는 식당들이 많이 있으며 ‘85년도에 국민관광단지로 조성된 구드래에는 옛백제인의 조각 기술을 이어받은 지역 출신 유명 조각가 작품 30점과 99년도 국제 현대조각 심포지움에 참가한 국내.외 유명 조각가의 작품 29점등 총 59점의 조각 작품으로 옛 정취와 함께 현대적인 아름다움을 함께 갖춘 공원을 조성하여 관광객에게 상시 개방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이곳은 부여 사람들의 휴식처이기도 하며 “백마강과 물새가 울고, 일엽편주 돛단배를 홀로 저어가는 사공”으로 시작하여 널리 알려진 ‘백마강 달밤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해질녘 구드래나루터에서 유람선에 몸을 싣고 내려가다 보면 부소산의 또 다른 모습이 보인다.

 

가화저수지 

수면적 26만평의 계곡형저수지이다. 덕용지, 또는 송정지라고도 부르고 있다. 경치가 좋고 물이 맑아 관광낚시터로 지정될 정도로 주변경관이 뛰어나다.

TV드라마 ‘서동요’의 오픈세트장으로 유명한 부여군 충화면 가화리의 가화저수지는 물안개와 산안개가 아름다운 곳이다.   

계백 장군이 태어나 무예를 익혔다는 천등산 자락에 있는 가화저수지는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1955년에 축조된 25만평 규모의 저수지로 제고봉,시루산,오산에 둘러싸인 아늑한 분지. 특히 서동요 세트장이 있는 물바위산이 가화저수지를 향해 자라목처럼 돌출돼 산에서 저수지로 부는 바람을 막아줌으로써 수면은 거울처럼 고요하지만 산안개는 무시로 서동요 세트장을 넘나들며 기기묘묘한 풍경을 연출한다. 

가화저수지의 늦가을 아침은 특별하다. 수면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물안개를 박차고 청둥오리 떼가 장난스럽게 날아오르면 자라바위가 있는 물바위산 절벽의 소나무에 둥지를 튼 재두루미들은 선비처럼 고고한 자세로 저수지를 돌며 동양화의 한 장면을 연출한다.  

 

/ gongju.kbskorea.net/backjechang256.

/ new21.net/bk_n19

 / 부여군청 문화관광과 '부여관광'

서동요세트장

1만여평의 부지에 백제왕궁 및 마을, 태학사, 왕궁마을, 공방, 하늘채 등이 고증을 통해 반영구적인 건축방식으로 건립된 서동요세트장 

분위기 좋은 아늑한 ‘한옥 카페’에서 休 

한옥 특유의 단아하고 정갈한 운치, 초록초록한 자연풍광, 부드러운 햇살 즐기며 맛보는 차 한잔의 여유는 MZ세대의 취향을 제대로 저격한다. 게다가 곳곳이 감성 포토존이니 애정할 수밖에.

입소문 난 대표 한옥카페로는 ‘합송리994’, ‘무드빌리지’ 등이 있다. 무드빌리지는 카페와 함께 한옥 숙박 공간도 함께 운영하고 있어 하룻밤 머물며 시골 뷰를 만끽하기 좋다.

합송리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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