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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경상남도

진주팔경

by 구석구석 2022.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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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진주8경

 

진주성과 촉석루, 남강과 의암, 뒤벼리와 문화거리, 새벼리와 석류공원, 망진산과 봉수대, 비봉산의 봄, 월아산의 해돋이, 진양호의 저녁노을을 팔경이라 한다. 

진주성(晋州城)과 촉석루(矗石樓) 촉석임강(矗石臨江)

장중하고 오랜 역사를 간직한 촉석루 그림자가 남강에 잠기고 흰구름 두둥실 떠서 물새 노니는 멋을 으뜸으로 삼는 것이다.    

진주성 촉석루

강 가운데 돌이 오뚝 오뚝 솟아있다 하여 붙인 "촉석루"는 진주성의 대표적인 명승지로서 전쟁 발발 시에는 주장이 병졸을 지휘하던 장소로 쓰였으며 평소에는 선비들이 풍류를 즐기거나 과거시험을 보던 장소로 이용됐다. 촉석루를 다른 이름으로 '남장대' 또는 '장월루'라 부르기도 했다. 고려 고종28년(1241년)에 창건된 이후 여러 차례 중건, 중수를 했다가 1950년 6.25 동란으로 불탔던 것을 1960년 진주 고적보존회가 중건하였다고 한다.

진주성 공북문

17세기 이후에 그려진 진주성도에 나와 있는 진주성의 정문으로 공(拱>은 손을 모아 가슴까지 들어 올려 공경한다는 뜻이며, 북(北)은 임금님 계시는 북쪽인 북두를 뜻하는 것으로 2002년 5월 1일 복원되었다. 

 

남강(南江)과 의암(義巖) 의암낙화 

남강 의암

의기(義妓)논개(論介)가 왜장을 껴안고 순절한 의암(義巖)위에 춘삼월 꽃잎이 날려 와서 흰눈처럼 너울거리는 경치는 절로 술잔을 들게하지 않는가?

진주성에서 본 남강

버림으로 얻은 사랑 절개로 되살아나, 입다문 님의 진실 사리로 굳었네논개부인 붉은 마음 노을보다 더 고우니, 4백년 물굽이도 이제금 푸르나니

남강댐 둑 정상부를 2004년 9월부터 개방하고 있으며 가족단위 나들이객들이 진주팔경 가운데 하나인 진양호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고 매년 열리는 진주남강 마라톤대회 코스로 이용돼 진양호의 관광가치를 높이고 있다.

 

남강의 진주교

 

남강 음악분수대공원

뒤벼리와 문화거리수십 척의 깎아지른 절벽이 짙은 남강 물빛을 받아 한 폭의 동양화를 떠올리게 하는 절경이다. 예전엔 여가를 즐기는 낚시꾼, 빨래하는 아낙네들로 항상 붐볐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도로가 확장되어 차들만이 오가고, 인적은 드문 곳이 되어 버렸다.

뒤벼리의 야경

뒤벼리는 남강강변도로의 산쪽면을 말하며 동방호텔에서 법원방면으로 길게 이어진 절벽지대를 말하며  벼랑 사이 온갖 풀과 꽃 단풍이 일품이다.

 남가람 문화 거리를 마주 보며 남강가에 우뚝 솟은 벼랑으로 굽이쳐 흐르는 남강과 어우러져 한폭의 그림 같은 진주의 명소이다.

 

시내에서 뺨 맞고 모퉁이서 눈흘기네, 여리디 여린 마음들 그 품안에 껴안고
봄으로 벼랑사이 온갖 풀, 꽃 길러내며, 가을엔 붉은 단풍 꽃비를 흩뿌리네

뒤벼리 암벽에는 4-5명의 사람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이들은 일제시대 가장 악랄했던 친일부역자라는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진주성 안 의기사에 친일화가가 그린 논개영정을 모셔놓고 있는 것과 같이 진주시내 곳곳에 일제잔재가 남아 있다. 암벽에 새겨진 이름 가운데 신분이 밝혀진 사람은 이재각. 이재현. 성기운 3명이다.

/ 진주신문 윤성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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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벼리와 석류공원 

단장된 새벼리 / 진주시청

진주라 천리길도 예서부터 헤아리네, 진주사랑 첫 마음도 여기서 시작하니새벼리 석류공원 드나들며 쉬어가세, 진주 고을 인심이야 겉과 속이 다르잖네

석류공원의 인공폭포는 상부에 인공동굴을 설치하여 동굴내부의 인공폭포 뒤편에서 쏟아지는 폭포사이로 바깥을 조망할 수 있도록 하는 등 특색있는 시설이 설치되어 새로운 명물로 시선을 모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으며, 폭포 주변의 조경도 자연석과 낙락장송, 그리고 계절별로 다양한 분위기를 연출하게 될 수목과 초화류를 식재하여 숲속에서 쏟아지는 듯한 자연 속의 폭포를 연상할 수 있도록 조성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망진산(望晋山)과 봉수대(烽燧臺)

 현재 복원된 봉수대는 원래의 위치가 아니며 쌓는 방법도 다르다. 원래 망진봉수는 망진산 최정상에 설치되었으나 송신탑으로 인해 아래 쪽에 내려와 복원됐으며 쌓는 방법도 흙과 돌을 함께 사용한 남방식 축법에서 완전히 돌을 사용한 북방식 축법으로 바뀌었다.

망진산 금선암

그러나 옛날의 최첨단 통신 수단인 봉수대와 오늘날의 첨단통신 시설인 중계탑이나 송신탑 등이 똑같은 장소에 위치하고 있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다는 묘한 상징성을 주고 있다.
예부터 정갈한 맘으로 봉화를 올린 뜻은, 나라의 중대한 일 모두에게 알림이라진주사람 소원 담아 통일의지 지펴내니, 눈 아래 천년고도 시방 살아 꿈틀대네 

 망경남동의 뒷마루에 있기 때문에 보통 망경산이라고도 부르는데 그 둘레에 약 300m의 토성지가 남아 있다. 성터 안에 망경산 봉수대지(烽燧臺址)가 자리하고 있다.

망진산 봉수대는 진주와 진양 통합이후에 새롭게 복원되었는데 망진산 봉수대에서 바라본 시가지 전경은 진주8경의 하나로 신안·평거 지역을 중심으로 진주성을 조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곳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망진산에서 본 남강과 시내

 

망진산 봉수대에서 바라본 진주시내 야경

 

비봉산(飛鳳山)의 봄  비봉청람(飛鳳靑嵐) 

진주도읍(晋州都邑)의 주봉(主峰)인 비봉산의 묵은 나무에 파란 새순이 돋고 아지랑이 춤추며 그 가운데 나물 캐는 처녀들의 노래 소리는 가슴을 설레게 한다.

비봉산의 봄

우러러 비봉산의 정기를 받아, 봄으로 피어나는 뭇 생명이 경이롭다복사꽃 만발하니 종달새도 노래하네, 비봉이여 새 천년도 이처럼 피어나게

 높이 138m. 비봉산 남쪽에 시가(市街)가 발달하였고, 시가지의 남쪽으로 남강(南江)이 흐른다. 비봉산 서쪽에 가마못[釜池]이 있었으며, 그 서쪽을 진주에서 합천(陜川)으로 통하는 도로가 지난다. 산을 중심으로 비봉공원이 형성되어 있으며 산 동쪽에 의곡사(義谷寺) ·연화사 등이 있고 서쪽 기슭에는 비봉루(飛鳳樓)가 있으며, 진주강씨 시조 강의식 장군의 충의를 기리기 위한 봉산사라는 사당이 있다.

 

 월아산(月牙山)의 해돋이   아산일출(牙山日出)

 월아산 솟은 해가 서기를 비추니, 흐르는 남가람에 매운 얼 다시 뜬다 일구고 가꾸는 맘 알알이 맺혀, 슬기로 살아가는 내일을 여세

월아산과 해돋이

 

월아산 체육시설

 

월아산의 철쭉

 

진양호(晋陽湖)의 노을   진양반조(晋陽返照)

 문득, 사무치는 바가 있을 때 진양호로 달려가세, 거기 해 어스름 스러지기 직전의 노을을 보세때로 저무는 것이 이다지도 아름다울 줄이야, 붉은 물감 진양호에 풀어놓은 날 

진양호의 노을

 

 

 

지리산의 물길이 모여 만들어진 아름다운 낭만의 호수 진양호. 특히나 저녁노을이 아름다워 진주 8경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진양호 내 시원하게 트인 널직한 진양호반과 지리산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휴게 전망대는 ‘일년 계단' 과 연결되어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각광받고 있다.

남인수동상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각광받는 일년계단

그 외에도 백두산 호랑이 사자, 기린 등 40여종 300여 마리의 야생 동물을 직접 관람할 수 있어 어린이들에게 가장 인기가 높은 진양호 동물원, 놀이동산인 진주랜드, 가족 쉼터와 물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물문화관이 있다.

진양호 전망대

그리고 남인수 광장에선 가요계의 황제, 남인수의 노래가 구성지게 울려 퍼지고 진양호가 내려다 보이는 찻집에선 붉게 스미는 저녁노을의 풍광까지 감상할 수 있어 호반의 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다. 

임진왜란시 승군의 근거지인 호국사

 

진양호의 노을

자료kin.naver.comcafe.naver.com/joongan59 , cafe.naver.com/roadsafety김장하 선생님의 홈페이지

user.chollian.net/~h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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