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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충청남도

서천 현암리 판교마을 수정냉면

by 구석구석 2022. 9.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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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군 판교면 현암리는 오래전에 시곗바늘이 멈춘 것 같은, 오래된 흑백사진 속 풍경 같은 마을이다. 마을은 죄다 낡고 오래된 것들의 질감으로 가득하다. 녹슬어가는 철 대문과 기울어진 목조건물, 막다른 골목과 펑크 난 리어카, 셀로판지를 떼어낸 자국으로 유리창에 남은 옛 대폿집 상호…. 현암리 골목에는 쇠락한 건물들이 마치 유적처럼 남아 시간을 되돌린 것 같은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판교극장. 1961년에 지어진 이 건물은 공공행사를 여는 공관(公館)으로 문을 열었다가 1967년부터 극장으로 활용됐다.

현암리를 일러 ‘판교마을’이라고도 부른다. ‘판교’라면 경부고속도로 톨게이트를 먼저 떠올릴 텐데, 여기 서천의 판교도 성남 판교와 지명 유래가 똑같다. 지금은 폐교된 판교초 앞 물길에다 널빤지로 다리를 놓고 다녔다 해서 ‘널다리’로 부르다가 ‘너더리’가 됐고, 이걸 한자로 옮기면서 ‘널빤지 판(板)’에 ‘다리 교(橋)’ 자를 써 판교라 불렀다. 

지금은 판교면이지만, 본래는 비인군 동면에 속한 ‘판교리’였다. 그러던 것이 1930년 장항선 열차가 놓이고 판교역이 들어서면서 마을이 번성하자 ‘판교면’으로 승격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판교면의 중심은 오일장과 우시장이 서던 판교리였는데, 정작 판교역이 들어선 자리는 판교리가 아니라 이웃 현암리였다. 현암리에다 역을 세우면서, 역 이름은 그때까지 인근에서 가장 번성한 마을이었던 판교리를 가져다 쓴 것이다.

기차역이 현암리에 들어서자 판교면의 중심은 판교리에서 급속도로 현암리로 옮겨갔다. 기차역이 서자 이듬해인 1931년 오일장이 현암리로 옮겨왔다. 1935년에는 판교우편소, 1936년에는 판교면사무소, 1942년에는 판교경찰서가 줄줄이 현암리로 이전했다. 제재소와 목공소, 정미소, 양곡상, 양조장이 앞다퉈 현암리에서 문을 열었다. 이따금 악극단 쇼까지 공연하는 극장까지 마을에 들어섰을 정도였으니 전성기에 현암리가 얼마나 흥청거렸는지는 짐작되고도 남는다.

1980년대 들어 도시중심의 국토개발로 마을 젊은이들이 도시로 떠나면서 쇠퇴하기 시작했다. 성장의 속도도 빨랐지만, 쇠퇴의 속도는 훨씬 더 빨랐다. 확인사살처럼 당겨진 마지막 방아쇠가 2018년 장항선 철로 직선화로 인한 판교역 이전이었다. 역으로 번성했던 마을은 역이 빠져나가면서 스러졌다. 여기다가 2009년 서천공주고속도로, 2015년 국도 4호선까지 멀찌감치 비껴가면서 현암리는 교통과 지리적 중요성을 모두 다 잃고 섬이 되고 말았다. 이런 과정에서 성장과 쇠퇴의 시·공간이 마을에 고스란히 박제처럼 남았다. 쇠락의 속도가 너무 빨라 미처 지워지지 않은 예전의 모습. 이게 지금 현암리가 간직하고 있는 풍경이다.

판교마을 골목에 나란히 잇대어 길게 지어진 건물.

지금 현암리에 남아 있는 오래된 공간들은 그들이 그때 버리고 간 것들이다. 버텨보려 했다면 어떻게든 고쳐 쓰든가 허물고 다시 지으면서 훼손됐을 텐데, 아예 버리고 가는 바람에 오히려 옛 모습 그대로다. 이렇게 남겨진 옛것의 가치를 알아본 문화재청은 지난 10월 현암리 일대의 건물 7개를 묶어 통째로 국가 등록문화재로 지정했다. 특정 건축물이 아니라 마을의 일정 공간 전체를 등록문화재로 지정한 건 이례적이다. 건물 하나하나뿐만 아니라, 마을에 남겨진 근대의 자취를 보존해보겠다는 뜻이다.

현암리의 건물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옛 판교시장 인근의 ‘장미사진관’이라고 부르는 2층 목조주택이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운영하던 쌀 배급소로 지어진 건물인데, 당시로써는 드물게 2층 한옥 상가로 지어진 건물이어서 독특한 외관으로 랜드마크 역할을 해왔다. 장미사진관이 들어선 자리는 판교 오일장과 우시장이 연결되는 곳으로 모시전, 어물전, 싸전, 여관, 대폿집 등이 늘어서 번성했다. 장미사진관도 한때 쌀집이었다가 주산학원, 사진관, 점방, 원불교 예배당 등으로 바뀌어오면서도 옛 모습을 잃지 않았다. 사진관은 진즉 문을 닫았지만 증명사진을 찍어주던 사진관 상호가 곧 건물의 이름이 돼 남았다.

1930년대 문을 열었다는 삼화정미소는 목조건축물의 외관에서부터 시간의 깊이가 묻어난다. 오 씨 일가가 삼대에 걸쳐 운영해 마을 주민들 사이에서는 ‘오방앗간’이라고 불리는데, ‘삼화(三和)’란 상호는 삼형제가 의좋게 운영하라는 아버지의 소망을 담아 지은 것이란다. 한창때 현암리에는 방앗간만 여섯 개나 있었다는데, 그중 오방앗간이 가장 장사가 잘 돼 명절이면 100명이 넘는 손님이 줄을 설 정도였다고 했다.

판교마을 시장골목 초입의 삼화정미소. 오 씨 성을 가진 이가 운영했다고 해서 주민들은 오방앗간이라고 불렀다.

3대에 걸쳐 술을 빚어오던 동일주조장은 지난 2000년 문을 닫았다. 주조장 건물이 어찌나 초라하게 쇠락했는지 20년 전까지만 해도 여기서 술을 빚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그런 인상을 주는 데는 시멘트벽의 ‘동일주조장’ 상호 아래에 고딕체로 굵게 새겨진 전화 번호가 한몫한다. ‘TEL 45’. 전화 번호가 두 자릿수 ‘45’번이다. 그러고 보니 골목 초입 한약방 전화 번호는 ‘29’번이었고, 삼화정미소는 ‘52’번이었다. 자석식 교환 전화가 있었던 아득한 시절의 전화 번호다. 그때는 교환수가 전화를 연결해줬다. 

동일주조장. 3대에 걸쳐 술을 빚어오다가 지난 2000년 문을 닫은 양조장이다.

※ 현암리 판교마을의 오래된 건물 그림은 문화체육관광부 유휴공간문화재생사업 진행 과정에서 우편엽서를 만들기 위해 그려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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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암리에 아직도 꾸준하게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있는 건 음식점이다. 현암리에서 가장 이름난 식당은 1978년에 개업한 콩국수를 내는 ‘진미식당’(사진)이다. 마을은 고즈넉한데 식당 안에는 늘 손님들이 있다. 여름에는 동네 주민 수보다 더 많은 손님이 문 앞에 줄을 선다. 메뉴는 콩국수와 막국수, 콩전. 이게 전부다. 진한 콩물의 콩국수도 좋고, 누룽지처럼 구워낸 콩전의 고소한 맛도 좋다. 작년까지는 4월 중순부터 9월 중순까지 딱 5개월만 하고 문을 닫았는데, 올해부터는 연중 문을 연다. 이제 언제 가도 콩국수 맛을 볼 수 있다.

현암리의 중국집 ‘동생춘’도 제법 이름이 알려진 곳이다. 팔순을 목전에 둔 60년 경력의 수타면 장인이 자그마치 49년째 한자리에서 운영하고 있는 중국집이다. 충남 예산의 중국집에서 수타 기술을 배워 현암리가 한창 경기가 좋던 시절에 이곳에서 개업했다. 자장면도, 볶음밥도 훌륭하다. 다만 이곳에서는 세 그릇 이상 주문이 있을 때만 면을 친다.

현암리는 냉면집으로도 유명하다. 진미식당 건너편에는 둘 다 ‘원조’의 간판을 높게 매단 ‘수정식당’과 ‘삼성냉면’이 마주 보고 있다. 두 곳 모두 도토리가루와 고구마 전분으로 면을 뽑아 냉면을 내는 집이다. 질긴 면발의 냉면인데 정통파 냉면이라기보다는 시장통 냉면 혹은 분식집 냉면 스타일에 가깝다.

[문화일보 2021.12 서천 = 글·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현암리234번지 판교수정냉면 041-951-5573

 

서천 나들목에서 부여방면으로 10분 거리의 판교역 좌측에 위치한 수정식당은 고객에게 친절하기로는 판교면 내에서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누구나 알고 있을 정도다.

3개의 별실이 있어 오붓한 분위기에서 각종 모임을 갖기도 그만인 수정식당은 단골고객이 상당히 많을 정도로 유명 한데, 이유는 김연화(58) 사장이 손수 냉면을 만들기 때문이다.

수정식당의 냉면은 요즘같이 급격히 변화되는 맛과는 달리 25년이라는 시간 동안 맛이 변치 않고 한결같다. 냉면의 맛을 좌우하는 건 단연 면발과 육수다. 이곳 냉면의 면은 최상급의 전분 과 순수 도토리 전분을 사용해 면을 뽑기에 쉽게 끊어 지지 않고 꼬들 꼬들 탱탱함을 유지한다.

냉면이 여름 별미라면 5가지 버섯의 내뿜는 향긋한 향을 자랑하는 버섯전골은 겨울철 별미로 손꼽힌다. 버섯전골은 사장이 직접 재배해 신선하고 믿고 먹을 수 있는 각종야채들과 쇠고기가 들어가 담백함 과 향긋함 그리고 버섯 특유의 씹히는 맛이 어우러져 먹는 이의 오감을 만족시켜준다.

그때그때 무쳐 내는 배추 겉절이도 인기 있다. 가족들이 운영 하여 항상 웃음이 넘쳐나는 가정집 분위기가 풍기는 수정식당은 20 ~ 60대 까지 남녀노소 누구나 부담 없이 즐겨 찾을 수 있는 맛집이다.

 

현암리 255-1 삼성식당 041-951-5578

30년 전통의 소문난 냉면 전문점. 진한 사골육수 맛을 느낄 수 있는 물냉면은 속을 시원하게 달래주어 더울때면 항상 생각나는 별미이며, 시원한 육수와 함께 나오는 비빔냉면은 그 매콤한 맛이 입안을 얼얼하게 하여 한국인의 입맛에 제격이다.

오성초등학교 맞은편에 위치 / 대표메뉴 냉면 / 10:00~22:30 / 전체 70석 / 30대 주차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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