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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거 저런거/이것저것

이철희 장영자사건

by 구석구석 2022.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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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장영자사건 (李哲熙·張玲子事件)

 

요약

1982년 당시 대통령 전두환(全斗煥)의 인척으로 사채시장의 거물이었던 장영자와 그의 남편 이철희가 일으킨 거액의 어음사기사건. 전두환의 처삼촌 이규광(李圭光)의 처제였던 장영자는, 육군사관학교 제2기 출신으로 중앙정보부차장을 지낸 남편 이철희와 함께 권력을 배경으로 하고 은행의 무담보대출의 허점을 이용, 사기행각을 벌여 1981년 2월∼82년 4월 총 6404억 원에 달하는 거액의 자금을 조성하였다.

 

설명

1982년 당시 대통령 전두환(全斗煥)의 인척으로 사채시장의 거물이었던 장영자와 그의 남편 이철희가 일으킨 거액의 어음사기사건. 전두환의 처삼촌 이규광(李圭光)의 처제였던 장영자는, 육군사관학교 제2기 출신으로 중앙정보부차장을 지낸 남편 이철희와 함께 권력을 배경으로 하고 은행의 무담보대출의 허점을 이용, 사기행각을 벌여 1981년 2월∼82년 4월 총 6404억 원에 달하는 거액의 자금을 조성하였다.

그들은 자기자본율이 약한 건설업체들에 접근하여 조건이 좋은 자금조달을 제시하고, 그 담보로 대여액의 2∼9배에 달하는 어음을 받아 사채시장에 팔거나, 주식에 투자하는 등의 방법으로 어음사기행각을 벌였다.

그 결과 공영토건(共營土建)·일신제강(一新製鋼) 등의 기업이 도산하고, 조흥은행장·상업은행장이 구속되었으며, 권력층의 내부개편이 단행되는 등 정치·사회·경제적으로 큰 충격을 불러일으켰다. <건국 이후 최대 규모의 금융사기사건>이라 불린 이 사건은 집권 초기부터 정통성과 도덕성을 인정받지 못했던 전두환정권에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겼다.

이 사건의 재판 결과 이철희·장영자 부부에게는 법정 최고형인 징역 15년, 미화 40만 달러와 일화 800만 엔 몰수, 추징금 1억 6254만 6740원이 선고되었다.

< KBS 인물현대사 방영>

 

"지하경제의 큰 손! - 장영자 / 연출 : 김창범 PD

'큰손' 장영자, 한국사회를 뒤흔들다

서슬 퍼런 5共(공)이 ‘정의사회 구현’을 소리 높이 외치던 1982년. 그해 5월, 건국 후 최대 규모의 어음사기사건이라는 '이철희- 장영자 사건’이 터졌다. 당시 사채시장의 큰손으로 불리던 장영자와 그의 남편 이철희가 어음사기 혐의로 검찰에 구속되면서 이른바 '장 여인 광풍'이 몰아쳤다.

가녀린 한 여인의 '손' 은 정치권력을 등에 업고 청와대를 흔들고, 정부를 흔들고, 국민들을 흔들고 정치, 경제는 물론 사회 각 분야에 엄청난 파문을 일으킨다. 천문학적 금액의 사기 사건, 이 대담한 사기사건을 주도한 사람은 바로 사채시장의 '큰손' 장영자였다.

장영자는 어떻게 돈을 모았나?

이철희,장영자 부부의 호화사치 생활은 중동의 석유황족도 흉내내기 어려운 호사의 극치였다. 이들의 한달 평균 생활비와 접대비는 3억5천만원, 하루 평균 1천2백만원 꼴로 1년2개월 동안 49억원을 탕진하며 돈을 물 쓰듯 했다.

 

그렇다면 장영자는 어떻게 그 많은 돈을 모았던 것일까?

장영자는 숙명여자대학시절 메이퀸으로 꼽힐 정도로 미모에 화술이 뛰어난 인물로 이철희와 세 번째 결혼을 했다. 두차례의 이혼과정에서 받은 위자료 5억원 가량의 돈으로 부동산, 증권 등에 투자, 거액을 벌어 증권가에서 이름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제5공화국의 출범과 함께 정치권력을 등에 업은 장영자는 고위층과의 친분을 과시하면서 1981년 2월부터 1982년 4월까지 자금난에 빠진 기업들에 접근해 사채를 빌려주고 받은 어음을 굴리는 수법으로, 대여액의 2배, 최고 9배에 달하는 어음을 받아 사채시장에서 할인하여 총 7,111억 원의 어음을 유통시켰다. 이 가운데 어음사기 행각을 벌인 액수만도 6,404억원에 달했다.

장영자는 특히 어음사기과정에서 자신의 형부이자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처삼촌이던 이규광씨를 등에 업고 일부 은행장들을 끌어들여 관련 기업에 부당 대출을 해주도록 압력을 행사한다.

결국 '이-장 사건'은 5공화국의 그늘 속에서 기형적인 경제성장을 배경으로 검은 돈과 권력, 비뚤어진 경제관념을 가진 사람들이 한데 모여 만들어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장영자는 어떻게 돈을 모았나?

이철희,장영자 부부의 호화사치 생활은 중동의 석유황족도 흉내내기 어려운 호사의 극치였다. 이들의 한달 평균 생활비와 접대비는 3억5천만원, 하루 평균 1천2백만원 꼴로 1년2개월 동안 49억원을 탕진하며 돈을 물 쓰듯 했다.

 

그렇다면 장영자는 어떻게 그 많은 돈을 모았던 것일까?

장영자는 숙명여자대학시절 메이퀸으로 꼽힐 정도로 미모에 화술이 뛰어난 인물로 이철희와 세 번째 결혼을 했다. 두차례의 이혼과정에서 받은 위자료 5억원 가량의 돈으로 부동산, 증권 등에 투자, 거액을 벌어 증권가에서 이름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제5공화국의 출범과 함께 정치권력을 등에 업은 장영자는 고위층과의 친분을 과시하면서 1981년 2월부터 1982년 4월까지 자금난에 빠진 기업들에 접근해 사채를 빌려주고 받은 어음을 굴리는 수법으로, 대여액의 2배, 최고 9배에 달하는 어음을 받아 사채시장에서 할인하여 총 7,111억 원의 어음을 유통시켰다. 이 가운데 어음사기 행각을 벌인 액수만도 6,404억원에 달했다.

장영자는 특히 어음사기과정에서 자신의 형부이자 당시 전두환 대통령의 처삼촌이던 이규광씨를 등에 업고 일부 은행장들을 끌어들여 관련 기업에 부당 대출을 해주도록 압력을 행사한다.

결국 '이-장 사건'은 5공화국의 그늘 속에서 기형적인 경제성장을 배경으로 검은 돈과 권력, 비뚤어진 경제관념을 가진 사람들이 한데 모여 만들어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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