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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거 저런거/이것저것

김근태와 깃발사건

by 구석구석 2022.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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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발사건을 아시나요

 

<김만식의 세상만사>

김근태 의장은 누구인가?

군사독재정권시대 민주화투사들이 자유와 민주 인권을 위하여 목숨걸고 싸웠지만 수사기관이 빨갱이로 허위조작하여 배포한 보도자료가 언론통제 속에서 신문과 방송에 그대로 보도되어 지금까지 제대로 모른다.
그렇게 많이 조작된 사건들 중에서도 1987년6·29민주화에 큰 영향을 주었던1985년 발생한 깃발사건(민추위사건)을 대표적으로 간략하게나마 사실을 살펴보아야겠다. 그래야 민주화투사들을 제대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o. 군사독재가 만들어 낸 빨갱이들

깃발사건은 5공정권이 서울대 ‘민주화추진위원회(민추위)’가 내세운 노학연대(勞學連帶)로 인해 학생운동이 노동운동으로 비화될 것을 우려하여 만들어낸 작품이다.

이 단체의 위원장인 문용식(서울대 국사학과 졸업)과 문용식의 배후조정자로 김근태(전 민주화운동 청년연합의장, 현재 열린우리당 의장) 등 관련자 26명을 국가보안법위반혐의로 구속하고, 17명을 수배했다고 5공정권은 발표했다. 이에 따라 군사독재정권의 앵무새가 되어버린 신문방송들은 학교내외시위와 노사분규를 배후 조정한 자생적인 사회주의집단이라고 보도하며, 이 사건의 배후로 발표된 김근태의 정체가 적색분자라고 강조했다. 체포된 학생들과 김근태 등은 심한 고문을 당했으며, 서울대생 박종철은 이 사건의 마지막 수배자인 박종운을 하숙집에 재워주었다는 이유로 연행되어 물고문을 받다가 숨지게 된 것이다.

군사독재시대 대부분의 시국사건이 고문에 의한 조작이었듯이 깃발사건도 고문에 의하여 조작된 것이었으니 1985년 12월 19일 김근태가 고문받은 사실을 법정에서 진술한 내용을 보면 군사독재자와 그 하수인들은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o. 울음바다가 된 법정

1985년 9월 4일부터 20일까지 전기고문과 물고문을 당했는데 전기고문을 주로 하고, 물고문은 전기고문으로 발생하는 쇼크를 완화하기 위하여 한 것이다. 고문하는 동안 비명이 밖으로 새어나가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라디오를 크게 틀었으며, 비명 때문에 목이 부어서 말을 못하게 되면 즉각 약을 먹게 하여 목이 트이게 했다.
9월 13일 “최후의 만찬이다. 예수가 죽었던 최후의 만찬이다. 너 장례날이다”라고 협박하면서 두차례 전기고문을 하고, 9월 25일 집단폭행을 당했으며 그후 여러차례 구타당했다.

잠을 못잔 것은 물론이고 밥을 굶긴 것도 절반쯤 된다. 9월13일이후에는 고문 때문에 밥을 먹지 못했고 그 후유증으로 지금까지 밥을 먹지 못한다.
가방에 고문도구를 가지고 다니는 건장한 사내는 “장의업이 이제야 제철 만났다. 이재문(남민전사건의 주법. 옥사했음)이 어떻게 죽었는지 아느냐, 속으로 부서져서 병사했다. 너도 각오해라. 지금 당하고 있는 네가 민주화되면 내가 고문대위에 서 줄테니 그때 네가 복수해라”고 했다.
그뿐만 아니라 고문대위에 알몸상태로 묶여 추위와 신체적으로 위축된 상태에서 “이것을 X이라고 달고다녀? 민주화운동하는 놈들은 다 이따위야”라고 성적인 모욕까지 가했다.

고문할 때는 온몸을 발가벗기고 눈을 가리고 고문대위에 눕혀놓은 후 발목과 무릎팍 허벅지 배 가슴 다섯군데를 묶어놓고 그 밑에 담요를 깔아 머리와 가슴 사타구니는 전기고문이 잘 되게 물을 뿌리고 발에 전기를 연결시켰다. 처음에는 약하고 짧게 점차 강하고 길게 강약을 번갈아 가면서 전기고문이 진행되는 동안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왔다고 하자 방청석은 울음바다가 되었다.

 

o. 실낱같은 희망

그렇게 야수만도 못한 고문전담자들 중에 한사람은 나중에 혼자 남아서 김근태의 손을 잡고 “고문하는 것을 보고 구역질이 났다. 여기서 빨리 나가라 허위라도 다 인정해라 여기 있으면 당신은 죽는다”고 울면서 이야기 하는 것을 보고 실날같은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9월 20일 버텨내지 못하게 만신창이가 되었는데, 9월 25일 집단폭행을 가한 후 알몸으로 바닥을 기며 살려달라고 애원하면서 빌라고 하여 그대로 하고, 그들이 쓰라는 조서내용을 보고 그대로 쓰고 항복했다. 이렇게 민주화인사들은 상상할 수 없는 고문으로 많이 죽어갔으며, 그들이 목숨을 걸고 민주화투쟁을 한 결과 1987년 6·29민주화를 가져왔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다시 간단하게 말해보면 민주화투사들은 자유와 민주 인권을 위하여 정의를 자기 목숨같이 여긴 역사의식이 투철한 인물들이다.

 

이름 : 김근태
출생 : 
1947년 02월 14일 
출생지 : 
경기도 부천 
가족관계 : 
아내, 1남 1녀 
학력 : 
경기고등학교,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경력 : 
제43대 보건복지부 장관(2004), 제17대 새천년민주당 국회의원(2004), 제16대 열린우리당 국회의원(2000), 제15대 국회의원(1996), 통일시대민주주의국민회의 공동대표(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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