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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거 저런거/이것저것

역사유물로 보는 한국의 7대불가사의

by 구석구석 2022. 8.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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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6월, 한국에서 발견된 유물하나가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경주 미추왕릉지구 계림로 14호분에서 발견된 항금 보검 때문이었다.

기원전 6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보검은 금 알갱이와 옥으로 새겨진 너무나 정교하고 화려한 것이었다.

더욱 더 놀란것은 그 보검이 7천Km나 떨어진 동유럽에서 만들어지 것이었고, 그것을 신라에 전달한 사람은 한민족의 후손이라는 설이 유력한 로마제국의 정복자, 훈족이었다는 사실이다.

'한국7대 불가사의'는 신라 황금 보검을 비롯하여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유산 7가지를 철저한 과학적 고증을 토대로 밝혀내 화재가되고 있다. 여기에 나온 문화유산들은 '세계7대 불가사의'에 견주어도 손색없다는 평가다. 저자는 '세계7대 불가사의' '과학이 있는 우리문화유산'등을 저술한 이종호박사이며 책은 단순히 문화유산을 밝혀내는데 그치지 않고 문화유산의 탄생배경과 전래과정까지 상세히 추적함으로써 역사교양 도서로도 손색이 없다.

 

1. 고인돌 별자리

기원전 3,000년경에 제작된 최초의 천문도로 평범한 돌에 아무렇게나 구멍을 뚫은 것처럼 보이는 고인돌 별자리로 현대 과학자들도 놀랄 정도로 별자리 위치가 정확하며, 세계 최초의 석각 천문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와 고구려 고분벽화로 이어진다.

 

2. 신라의 황금보검

누금세공기술의 진수를 보여주는 최고의 보검

동아시아의 유일무이한 유물이다. 이 칼을 통해 약 7000㎞ 떨어진 트라키아 지방에서 만든 보검이 어떤 경로로 경주의 대릉원에 묻힌 사람에게 전해졌는지, 그 무렵 동유럽과 신라는 어떤 관계였는지 파악 가능하다.

황금 보검에서 보이는 나선무늬는 통칭 그리스 소용돌이무늬라 일컫는 전형적인 그리스 로마 시대의 테두리 무늬로 그리스의 항아리 그림 등 연속 번개무늬에서 시작되었다고 추정한다.

동부 유럽의 켈트 지역에서 제작한 이 보검이 정작 발견된 곳은 경주의 대릉원이다. 

두 지역 사이의 거리는 약 7천 킬로미터로 오늘날의 교통수단을 경험한 현대인의 거리 감각으로는 까마득히 멀게 느껴지는 곳이다. 그런데 황금 보검은 수천 킬로미터를 넘어 경주의 지배자에게 전달외었다.

훈존의 서방 이동 경로에서 발견된 유물과 한국의 가야와 신라 지역에서 발견된 유물 등을 비교 검토한 후 그들은 다소 설명이 빈약하기는 하지만 훈족은 원류가 아시아의 최동단, 한국인일 가능성이 있다고 발표했다. 이런 사실은 신라와 훈족의 지배자가 충분히 연계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훈족의 지배자 중에서도 395년에 태어나 453년에 사망한 아틸라는 훈족의 왕으로서 세계 3대 제국 중 하나를 건설한 영웅이다. 더욱 의미심장한 것은 아틸라의 근거지가 황금 보검의 고향이라고 볼 수 있는 트라키아 지역으로 현재 헝가리라는 점이다.

아틸라의 비롯한 훈족의 주력 세력이 한민족과 친연 관계가 있다면 동로마제국에서 만든 황금 보검이 신라로 전해졌다는 추정도 충분히 가능하다. 이는 신라가 동방의 고립된 작은 나라가 아니라 당대의 어느 나라보다도 세계성을 갖추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3. 다뉴세문경

13,000개의 정교한 선으로 이루어진 청동기 유물의 걸작

기원전 4세기경에 만든 지름 21cm의 청동 거울로 그 안에 0.3mm 간격으로 13,000개의 가는 선을 기하학적인 규칙성을 고려해 새겨 넣었다.

1960년대 충청남도 지역에서 발견된 다뉴세문경은 기원전 4세기 무렵 청동기 시대에 만든 거울로 '청동기 시대의 불가사의'로 꼽힌다.

이 거울의 뒷면에 새긴 세문 디자인을 찬찬히 살펴보면 누구나 찬탄을 금할 수 없게 된다. 동심원과 선, 삼각형, 사각형을 활용한 섬세한 디자인은 기원전 4세기경에 만들었다고는 믿기지 않는 뛰어난 미적 감각이 돋보인다.

다뉴세문경의 크기는 지름이 21.2센티미터에 불과한데, 이 좁은 공간에 무려 1만 3,000개가 넘는 정교한 선이 새겨져 있다. 이 정도의 정밀함과 섬세함이라면 현대의 숙련된 제도사가 확대경과 정밀한 제도 기구를 이용해 종이를 그린다고 해도 쉽지 않은 작업이다.

다뉴세문경은 그 아름다움과 불가사의함으로 많은 과학자와 기술자를 매료시켰고, 이들로 하여금 그 복원 작업에 도전하게 했다. 하지만, 최근까지도 그 복원 시도는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21세기 한국 최고의 두뇌 집단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과학기술원도 다뉴세문경의 복원 프로젝트에 도전했다가 실패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기원전 4세기경에 다뉴세문경을 만들어낸 우리 선조들의 기술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4. 고구려 개마무사

고구려의 개마무사는 말과 기사 모두 강철로 된 갑옷으로 무장한 채 적진을 돌파, 대형을 파괴했다. 고구려가 최강의 전투력을 보유하고 한민족 사상 가장 광대한 영토를 영유하게 만든 철기 문명 수준과 이를 가능케 한 고구려의 경제력이 엿보인다.

고구려의 중국을 상대로 전쟁에서 거듭 승리를 거두고 대제국을 이룰 수 있었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고구려가 앞선 철기 문명을 바탕으로 동시대의 다른 나라에 비해 최첨단 무기로 무장했기 때문이다.

고구려의 주력부대는 '개마무사'로 구성되어 있었다. '개마'란 기병이 타는 갑옷을 입힌 말을 이르며 개마에 탄 중무장한 기병을 '개마무사'라 했다. 오늘날 우리는 개마무사라는 단어에 익숙하지 않지만, 함경도에 있는 개마고원이 고구려의 개마무사들이 달리던 곳이라는 사실에서 유래한 지명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개마무사라는 단어는 과거에 우리 민족에게 매우 익숙한 것이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말조차 강철 장비로 무장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점을 시사한다. 사실 기병이 아무리 용맹하더라도 말이 부상한다면 전투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으므로 말의 안전은 기병 못지않게 중요하다. 따라서 고구려는 기병은 물론 말까지 갑옷으로 무장했는데, 당시에 말과 사람을 위한 갑옷을 강철로 만드는 것은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이는 고도로 발달한 철기 문명 수준과 아울러 경제력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고구려가 사상 최강의 전투력을 갖추고 한민족 사상 가장 광대한 영토를 영유한 사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5. 무주정광대다라니경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

판목 전체에 글자를 새기고 종이를 얹어 인쇄한 본격적인 의미의 목판 인쇄물이며 조각 기술 또한 매우 정교하다. 목판 인쇄술에 이어 세계 최초로 목활자, 금속활자를 발명한 조상이 어떤 방식으로 인쇄 기술을 축적했는지, 좋은 보기다.

경주 불국사의 석가탑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국보 126호이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유물은 아직 그 진정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다라니경은 인류의 3대 발명 중 하나인 인쇄술이 중국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입증하는 유물이다.

인쇄술 덕분에 정보의 신속한 전달이 가능해졌다. 신속성의 차이 외에 정확성의 차이도 눈에 띈다. 손으로 쓰는 글씨는 틀린거나 읽기 어려울 수도 있다. 이에 반해 인쇄술을 이용해서 읽기 쉬운 글씨체로 올바르게 여러권을 대량생산할 수 있다.

대량생산된 책은 저렴한 가격으로 널리 보급되었다. 정보의 신속하고 정확한 전파를 통해 인류가 축적한 지적 자산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서로 상승 작용을 일으켜 더 높은 창의력을 촉발했다.

706년 인쇄된 다라니경의 발견은 인쇄술이 중국에서 발명되었다는 기존 학설의 수정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기존에 중국 당나라에서 인쇄술이 발명되었다고 추정하던 시기가 712년에서 756년 사이임을 고려하면 다라니경의 발견이 세계의 학자들, 특히 중국 학자들에게 던진 충격파가 얼마나 컸을지 짐작할 수 있다.

 

6. 고려 수군의 함포

세계해전사를 다시 쓰게한 주인공

선박에 장착된 고려 수군의 함포는 왜구를 상대한 진포해전과 대마도 정벌에서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다. 진포해전은 세계 최초의 함포 해전이다. 서양 근대 함포 해전의 효시인 레판토 해전보다 190년이나 앞섰다. 최무선이 개발한 화약 무기와 뛰어난 함포 전술이 어떻게 전승됐는지 드러난다.

최무선은 고려 말에 화약을 만든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그가 이후 계속해서 화포를 만들고 이를 고려 수군의 전함에 정착하여 왜구를 상대로 진포해전을 승리로 이끌었으며, 대마도 정벌에도 나섰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진포해전은 세계 최초의 함포 해전이라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다.

서양 역사에서 토 해전 이후 함포가 장착된 함대로 해상권을 장악한 국가가 세계를 정복하게 되며, 역사의 주도권은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넘어간다. 서양이 동양에 대해 우위에 서게 되는 지리상의 발견과 식민지 침탈의 바탕이 되는 것이 바로 함포 외교이다.

그런데 레판토 해전보다 무려 190년이나 앞서, 최무선은 화포를 선박에 장착하여 적선을 격파하는 함포 해전을 세계 최초로 선보인다.

200년 후 최무선의 화약 무기와 함포 전술을 그대로 계승한 조선의 수군이 임진왜란에서 왜군을 맞아 대승을 거둔 것을 보면 당대에 최무선이 창안한 함포 전술이 얼마나 뛰어난 것이었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7. 훈민정음

 1940년 일제 강점기에 경상북도 안동 지방에서 세계를 놀라게 한 책 한권이 발견되었다. 이 책에는 한글에 관한 많은 의문점을 풀어줄 수 있는 설명이 담겨 있었다. 이 책이 없다면 한글에 대해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만큼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책은 그 가치가 큰 만큼 1962년 12월 국보 70호로 지정되었고 1997년 10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그 책이 바로 '훈민정음'이라는 책이다.

놀라운 것은 세계의 문자 중에서 한글처럼 창제자가 명확히 밝혀진 것은 없다는 점이다. 중국의 한자는 물론, 영어의 알파벳도 오랜 시간 진화를 거쳐 현재에 이르렀으므로 창제자를 찾을 수 없다. 한글이야말로 창제자와 창제일, 창제 동기가 뚜렷한,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위대한 문자이다.

 

뉴시스기사와 중앙일보 화제의 도서소개에서 발췌함.

/ 헤럴드경제  20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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