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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거 저런거/이것저것

정인숙미스테리 정인숙피살사건

by 구석구석 2022. 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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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3월 17일 밤 11시경 제3한강로변에 세워진 검은 코로나 승용차 안에서 모의 한 여인이 피실된 사체로 발견되었다. 경찰은 현장에서 허벅지에 관통상을 입고 신음중이던 운전사를 병원에 옮기는 한편, 즉각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은, 피살된 사람은 정인숙이라는 여인이었고, 범인은 운전사인 그녀의 오빠 정족욱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수사결과 발표에 따르면 정종욱이 사생활이 문란했던 여동생 정인숙에 대해 분격한 끝에 권총으로 살해하고 자신도 자살하려 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경찰의 수사 발표를 믿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알려진 바에 의하면 정인숙은 그 동안 하는 일도 별로 없이 고급 주택에서 살고 일류 호텔과 카바레를 전전하며 호화생활을 누리고 있었다. 게다가 평소 그녀는 자신이 모고관과 깊은 관계라고 떠들고 다녔다는 것이었다.

정일권 국무총리의 이름이 수없이 거명되었고, 심지어는 박대통령도 거론되었다.

이 정인숙 사건은 당시 제3공화국 고위층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건으로, 위정자들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가했다.
정인숙은 이른바 고급 접대부로서 정부의 고관대작들만을 상대로 하였던 것인데, 이 사건이 터짐으로써 고위층의 부도덕한 타락상이 세상 밖으로 노출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 사건의 전모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온갖 추측이 난무하였을 뿐이다. 어느 나라든지 정치인과 고위층의 스캔들은 있게 마련이고, 이것이 문제가 되어 정치생명이 끝나는 경우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당시 한국사회에서는 이런 문제가 정확히 밝혀지기란 어려웠다.

 

다음은 중앙일보기사

1970년 오늘(3월 17일) 오후 10시40분쯤 서울 남산의 한 호텔 스카이라운지.

"제발 나를 놓아주세요. 나를 떠나게 해줘요. 이제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아요.…인생을 헛되이 보내면 죄악이에요. 제발 나를 놓아주세요. 또 다시 사랑할 수 있게요…."

영국가수 잉글버트 험퍼딩크의 노래 '릴리스미(RELEASE ME)'가 감미로운 저음을 타고 어두운 실내를 흘렀다. 느리게 오가는 조명 속에서 정인숙은 3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한 40대 남자와 생애의 마지막 춤을 추었다. 당시 호텔 종업원들에 따르면 그녀는 이날 밤 '릴리스미'를 두 번이나 신청해 들었다.

그로부터 20여분 후 정인숙(본명 정금지·당시 25세)은 서울 마포구 합정동 강변도로에서 머리와 가슴에 두발의 총탄을 맞고 숨졌다. 이것이 세칭 '정인숙 사건'의 발단이었고 아직도 사건 전모는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권력과 성과 살인범죄 같은 'A급 주제'들이 거의 완벽하게 결합된 이 사건은 그래서 최근까지 소설과 영화, 드라마와 다큐멘터리의 소재로 사용되고 있다.

경찰은 사건현장 부근에서 다리에 총을 맞고 신음하던 오빠 정종욱씨(당시 34세)를 범인으로 지목,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그러나 19년간 복역하다 지난 89년 출소한 정씨는 "나는 인숙이를 쏘지 않았다. 20대 남자 두 명이 범인이다"라며 자신은 정치적 희생양임을 주장했었다.

당시 세간에는 정인숙과 고위층 인사의 염문설이 파다하게 퍼졌고, 정인숙의 '비밀수첩'에서 발견된 26명의 고위층 인사 명단은 이같은 의혹을 뒷받침했다. 수첩속의 명단은 비록 언론에 보도되지는 않았지만, 세간에는 정치적 살인사건이라는 추측이 무성했다.

지난 91년에는 정씨의 아들이 미국에서 귀국, 지금은 고인이 된 前국무총리을 아버지라 주장하며, 친자확인소송을 제기해 정인숙사건은 다시 세인의 이목을 끌었다. 그러나 이 소송은 당사자에 의해 얼마 후 취하됐다.

당시 이 사건을 에워싸고 '명함조심' '오빠조심'이란 말이 유행어가 되기도 했고, '강변3로'는 정조관념이 희박한 여자를 이르는 시대용어가 되기도 했다.

 

<그때그사건>

땅에 묻은 스캔들 - 정인숙피살사건

1970년 3월 17일.

제3한강로변에 세워진 검은 코로나 승용차 안에 서 미모의 여인이 피살된 채 발견됐습니다.

뒷좌석의 여인은 가슴과 머리에 치명적인 총상을 입고 살해됐으며 운전을 했던 오빠는 대퇴부에 총상을 입고 택시 기사에 의해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처음 이 사건은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드문 권총살인이라는 점에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피살된 여인의 주변이 알려지면서 사건은 의혹에 휩싸이기 시작했습니다.

피살된 여인은 정인숙. 3살난 아들을 둔 26세의 미혼모였습니다.
게다가 그녀의 소지품에서 명사 20여명의 명함과 미화 100백장 그리고 일반인이 소지할 수 없었던 회수 여권등이 발견됐습니다.

경찰은 범인으로 그녀의 친오빠 정종욱이 지목했고 여동생의 문란한 사생활에 분노한 오빠가 여동생을 살해한 후 자신도 자살하려한 것으로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발표를 곧이 곧대로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당시 한간에는 이 사건을 비꼬아 '눈물의 씨앗'을 개사한 노래까지 떠돌았습니다.

"아빠가 누구냐고 물으신다 할 것 같으면 청와대 미스터 정이라고 말하겠어요. 나를 죽이지 않았다면 영원히 우리만이 알았을 것을 죽고 보니 억울한 마음 한이 없소.... "

야당에서는 정인숙이 모 정치인과 깊은 연관이 있다며 국회차원의 진상 규명을 요구했습니다.

이 사건은 사회적 문제로 확대됐으나 결국 의혹이 풀리지 않은 채 서둘러 종결됐습니다.

30여년이 지난 지금 20년의 형을 마치고 출소한 정인숙의 오빠 정종욱은 억울한 누명이었음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고관대작들만 상대하는 고급접대부였던 그녀의 죽음으로 고위층의 부도덕한 타락상이 세상에 알려졌지만 누가 왜 그녀를 죽였는지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제 3공화국 최대의 섹스스캔들이었던 정인숙 피살 사건은 여전히 미스테리로 남아있습니다.

※ 정인숙 피살사건은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땅에 묻은 스캔들 -정인숙 피살사건'을 통해 방송된 바 있습니다.

 

숨겨진 역사를 찾아서 / 정인숙 사건

덕성여대 배현아 기자 2005년 4월 9일 20:46 press@duksung.ac.kr

 

1970년 3월 17일 밤 11시경, 제3한강로 변에 세워진 검은 코로나 승용차 안에서 한 여인이 피살된 채 발견되었다. 함박눈까지 내리던 그날의 그 여인은 당시 26세의 정인숙이었다. 경찰은, 이 사건의 범인은 정인숙의 운전사인 친오빠 정종욱이라고 밝혔다. 수사 결과에 따르면, 정종욱은 사생활이 문란했던 여동생 정인숙에 대해 격분한 끝에 권총으로 살해하고 자신도 자살하려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발표를 믿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정인숙은, 그동안 하는 일도 별로 없이 고급 주택에서 살고 일류 호텔과 카바레를 전전하며 호화생활을 누리고 있었다. 게다가 평소 정인숙은 자신이 정일권이라고 알려진 모 고관과 깊은 관계라고 떠들고 다녔다고 한다. 정인숙은 정부의 고위공직자들만을 상대로 했던 고급접대부였던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고위층의 부도덕한 타락상이 세상 밖으로 노출되었다.


 사건 당일, 정인숙은 약 2시간 30분 동안 박정희 권가를 주름잡던 사람들의 모임에 참가한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낯선 두 사람을 만났다. 정일권 총리의 심부름을 왔다는 말에 안심하고 창문을 열었지만, “안녕! 비너스! 팡!” 소리와 함께 정인숙은 운명을 달리 했고, 정종욱은 오른쪽 허벅지에 총상을 입고 말았다. 그날 정인숙의 집에는 정일권과의 사이에서 낳은 그녀의 아들 정성일이 있었고, 그녀와 부적절한 관계에 있던 사회 저명인사 26명의 명단과 전화번호가 적힌 수첩이 발견되었다. 사건 이후 정종욱은 19년의 형기를 마치고 출옥한 뒤 자신이 정치적 희생양임을 주장했으며, 정성일은 현재 미국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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