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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경상북도

경주 왕신리 운곡서원 은행나무

by 구석구석 2021.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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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곡서원 은행나무 

 

가을의 대미를 장식하는 나무는 아마도 은행나무일 것이다. 은행나무는 신생대 에오세 시대에 번성했던 식물로 2억7천만 년 전의 화석이 지금도 발견된다. 따라서 은행나무는 살아있는 화석이라 불리만큼 유일하게 현존하는 식물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은행나무는 경기도 양평 용문사에 있는 은행나무로 수령은 1천100~1천500년으로 추정된다. 높이는 약 42m이며, 줄기 아래 부분의 둘레 길이는 약 15m에 달한다.

이러한 은행나무는 주위를 둘러보면 어렵지 않게 찾을 수가 있어 대구 도동서원, 영천 임고서원, 밀양 금시당, 충북 영동의 영국사 등등 많은 곳에서 천연기념물 또는 보호수 등으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은행나무의 매력은 뭐니뭐니해도 노란색으로 물든 은행잎이다. 늦가을 나무 전체가 치장을 마치면 그 모양이 환상적이다. 게다가 한 잎 두 잎 떨어져 쌓이는 이파리를 바라다보면 책갈피에 갈무리하고 싶고, 시상을 떠올려 읊조리고 싶고, 그 속에 풍덩 빠지고 싶은 마음이 불쑥 인다.

운곡서원은 경북 경주시 강동면 왕신리에 있는 서원으로서 안동권씨(安東權氏) 시조인 고려 공신 태사(太師) 권행(權幸)과 조선시대 참판 권산해(權山海), 군수 권덕린(權德麟)을 배향하기 위하여 1784년(정조 8)에 건립한 서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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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곡서원이 현재 핫(HOT)한 곳으로 전국의 관광객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수령 약 350여 년의 은행나무는 1982년 10월 29일 ‘11-15-16’번을 부여받아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이 은행나무를 보면 남존여비 사상으로 인해 남녀 성비가 불균형을 이루고 산아제한 정책이 시행될 때 외치던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부럽지 않다”라는 구호가 생각난다. 많은 비용을 들여 홍보를 한다고 해도 본래가 가진 아름다움에 끌리는 것은 어쩔 수 없으니까 말이다.

2024 운곡서원 은행나무

지난 12일 오전 8시경, 해가 뜨려면 아직 한참이나 남았다. 수평선에 머리를 내민 태양은 아닌 게 아니라 벌써 떠올랐겠지만 워낙 산골이라 9시는 넘어야 햇빛이 들어온단다. 은행나무는 이제 막 절정으로 치닫는지 음지 쪽 일부분을 제외하고는 대체적으로 노란색 일색이다. 간혹 성급한 이파리는 바람결에 몸을 실어 난분분 땅으로 내려앉는다.

주위를 둘러보니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왔다. 소리 없는 소문이 발을 달아 천리를 달리고 매년 이맘때를 기억하는 사람들로 보인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깊어가는 가을을 찬미하고 잊지 않고 찾아준 관광객들을 위해 경주시 주최로 간단한 공연이 마련되었단다.

2024 운곡서원

공연은 버스킹(Busking: 거리 공연을 일컫는 말)과도 같았다. 처음 사랑가 독창을 시작으로 현대무용, 부채춤, 장구춤, 선비춤 순서로 진행되었다. 급하게 준비된 자리라 그런지 무대도 마이크도 없다. 박자를 맞추기 위한 녹음기 한 대와 카세트테이프 몇 개가 전부다. 설운도의 노래 상하이트위스트에 나오는 노래가사가 걸맞다. 과거의 어느 날 소풍 때 단발머리, 나팔바지에 그저 리듬에 몸을 맡기던 아날로그 그대로다.

2024 운곡서원

현대의 판에 박힌 듯, 흐트러짐 없는 음악만을 대하다가 무성영화의 어눌한 듯 또는 빈 듯, 유창하게 읊어 내리는 변사처럼, 장막에 느닷없이 내리는 비처럼, 귀가 자글자글 치직거리는 소음이 어느새 유년을 불렀는지 투박한 정감이 인다. 우연히 왔다가 과거로 돌아가는 타임머신이란 거짓말 같은 선물을 받은 느낌이다.

[2020 시니어매일 이원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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