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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 안보/육군

7보병사단 8여단 상승불사조 GOP

by 구석구석 2021. 7.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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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사단/ 8여단 상승불사조여단 / 화천 경계

1940.4월 춘천에서 창설되어 한국전쟁 개전시 한강방어선전투에 투입되었고 9중대가 김일성대학에 태극기를 꽂았다.

7보병사단 예하부대로 전군에서 가장험한 GOP섹터를 자랑하며 6~70도 경사의 네발계단으로 유명한 곳으로 원빈이 8여단에 배치되었다가 십자인대 파열로 의병제대하기도 했다.

도로자체도 험하기에 칠성로 같은 경우 별도의 교육을 받아야 투입된다. 근무가 힘든만큼 체력이 좋아진다고 하며 제대후에도 비가 오면 무릎이 쑤신다고 한다.

 

8여단 수색중대

겨울에 눈으로 부식을 공급받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여 1~2개월은 버틸 수 있게 비상식량을 비축해 놓는데 이런 경우에는 여단의 인력이 총동원되어 제설작업을 하기에 1주일정도면 해결된다.

ㅇ직할대 - 수색중대의 경우 수상령일대를 담당하며 독립중대이다.

ㅇ1대대 (진북대대) - 신읍리 

ㅇ2대대 (멸공대대) - GOP담당. 5중대에 네발계단이 있다.

ㅇ3대대 (통일대대) - 풍산리 

6·25전쟁 ‘불패 신화’

여정의 시작은 사단 주둔지 인근에 세워진 고(故) 심일 소령 동상이었다. 안내를 맡은 사단 공보장교 박정훈 대위와의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 주변을 둘러보다 우연히 마주했던 것.

심 소령은 6·25전쟁 춘천지구전투·옥산포전투·소양교전투 등에서 공적을 세웠고, 1951년 1월 영월전투 중 전사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동상 건립 취지문에는 심 소령의 숭고한 희생과 위국헌신 정신을 기리기 위해 사단과 화천군이 함께 세웠다고 적혀 있다.

그사이 박 대위가 도착했다. 박 대위는 “아마 이동하다 보면 이런 추모비·전적비를 계속 보게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만큼 화천 일대 지역이 6·25전쟁 때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사단은 그 중심에서 수많은 전과를 올렸다는 뜻이다.

지난 9일 육군7보병사단 불사조여단 멸공대대 GOP 경계병 박찬형 상병과 김건우 일병이 초소 경계근무 교대를 위해 계단을 오르며 철책을 점검하고 있다. 북한강을 중심으로 깊게 ‘V’자로 파인 협곡 형태의 이 지역은 전체 남방한계선 GOP 철책 중에서 걷기 난도가 가장 힘든 곳 중 하나다.

실제로 사단은 6·25전쟁에서 총 28차례 전투를 치러 혁혁한 공을 세웠고, 정전협정 체결 후에도 45회 이상의 대침투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6·25전쟁의 마지막 승전으로 기록된 425고지전투를 비롯해 영천지구전투, 평양탈환전투, 화천지구전투, 백석산지구전투, 크리스마스고지전투 등을 승리로 이끌며 전쟁의 흐름을 바꿨다.

민간인통제선(민통선)을 지나 작전지역으로 이동하며 자신을 희생해 전우와 나라를 지켜낸 영웅들의 추모비를 볼 때마다 고개가 절로 숙어졌다.

고(故) 정경화 소령(추서 계급) 동상. 1977년 DMZ 수색정찰·지뢰제거 임무를 수행하다 자신을 희생해 부대원들을 구한 정 소령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다.
독수리여단 북극성대대 ○○소초 장병들이 귀순자 발생 상황을 가정한 상황조치훈련을 하며 주변을 경계하고 있다.

현장 종결, DMZ 완전작전

민통선을 지나 한참을 북쪽으로 올라가 일반전초(GOP) 철책 인근에서 수색대대 장병들을 만났다. 백승림 대위와 수 명의 장병은 수색작전을 앞두고 군장검사에 몰두했다. 통신장비와 휴대품 등을 꼼꼼히 살피고, 임무 숙지 상태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시정이 좋지 않으니 작전에 유의하고, 의심지역은 철저히 확인하라”는 강조사항 전달과 함께 군장검사가 끝났다.

통문이 열렸고, 장병들이 조심스럽게 비무장지대(DMZ)로 발걸음을 옮겼다. 통문이 닫히고 장병들이 시야에서 멀어지자 가파른 경사에 설치된 철책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7사단 작전지역이 산세가 험하기로 유명한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박 대위는 “그래도 이 정도면 완만한 축에 든다”면서 손사래를 치며 “부대원들은 전군에서 가장 험준하고 중요한 지역을 담당한다는 자부심으로 철통같은 경계태세와 완전작전태세를 유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남방한계선 GOP 철책 통문 앞에서 DMZ 수색작전 투입을 위해 군장검사 중인 수색대대 장병들.

수색대대 장병들을 뒤로하고 GOP대대의 한 소초로 향했다. 소초에서는 마침 상황조치훈련이 한창이었다. 훈련은 귀순자 발생을 가정해 대응조치를 이해·숙달하는 데 중점을 뒀다. 사복 차림의 귀순자 역할 장병이 식별되면서 훈련은 시작됐다. 초동조치조가 투입돼 주변을 경계하고, 손을 머리 위로 든 귀순자에게 접근했다. 장병들은 귀순자의 소지품을 확인하고, 채증 영상을 지휘부와 실시간 공유하며 추가사항을 조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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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는 평화롭고 평온해 보이지만 이면엔 긴장감으로 가득한 곳이 바로 DMZ다.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지만, 무슨 일이든지 일어날 수 있다. 이 때문에 장병들은 모든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임무를 수행한다. 소초장 김정현 중위는 “당장 적과 싸워 이길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실전적 훈련”이라며 “소초원들의 땀방울 하나하나가 DMZ를 수호하고 나라를 지키는 힘이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백암산 정상으로 안내하는 ‘대한민국 최북단 케이블카’인 백암산 케이블카의 운행 모습.


첨단 감시장비와 함께 진화한 환경

날이 저물 무렵 칠성전망대를 찾았다. 1991년 건립 후 2013년 리모델링을 마친 칠성전망대는 중부전선을 대표하는 안보 명소다.

굽이굽이 펼쳐진 산지(고도가 높은 산이 많은 지대) 사이로 북녘이 눈에 들어왔다. 높다란 산등성이를 따라 철책이 구불구불 이어졌고, 그 너머로 금성천이 흘렀다. 금성천은 남고북저(南高北低) 지형으로 남에서 북으로 흐르는 하천이다. 그 옆으로는 드넓은 개활지가 보였다. 안내장교 설명에 따르면 9만9000㎡(약 3만 평)의 개활지에서는 감자·옥수수 등의 경작 활동이 이뤄진다고 한다.

이내 철책에 어둠이 내렸고 불이 켜졌다. 그런데 불빛이 흰색이다. LED 등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철책 등은 노란색일 거라는 생각은 고정관념이었다. 그러고 보니 첨단 감시장비도 크게 늘었다. 더욱 진화한 환경에서 DMZ를 수호하는 것이다. 그렇게 철책도 변화한다. 연신 감탄을 내뱉자 안내장교가 “환경은 많이 바뀌었지만 DMZ가 변함없듯 이곳을 수호하는 장병들의 의지도 선배 전우들과 다르지 않다”는 말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밝은 띠가 생긴 DMZ 능선 너머로 보름달이 차올랐다. 전망대를 찾은 이때는 개기월식이 있던 날이었다. 서서히 달이 가려지면서 철책의 불빛과 밤하늘의 별빛이 더 밝아졌다. 7사단의 상징인 북두칠성이 특히 빛났다. 북두칠성은 조선시대 장수의 지휘기에 그려졌다. 무인의 기개와 승리를 상징한다. 그중 일곱 번째 별은 최선봉에서 적을 무찌른다는 의미의 ‘파군검봉(破軍劍棒)’으로 불린다. 7사단의 ‘상승’과도 일맥상통한다.

9일 오전 강원 화천군 화천읍 백암산 정상. 화천군청이 DMZ 관광자원 활성화를 위해 2022년 10월 개통한 백암산케이블카를 타고 오를 수 있으며 이곳에서 맑은 날에는 남쪽으로는 평화의댐과 북쪽의 임남댐과 금강산을 동시에 볼 수 있다. 민간인출입통제선 내라 군의 인원통제를 받는다.

DMZ에 조금 더 가까이

이튿날 아침 일찍 백암산으로 향했다. 백암산은 6·25전쟁 최대 격전지 중 하나다. 중동부전선 최고(最高) 고지를 놓고 혈전이 치러졌다. 1181m 정상에서는 사방이 환히 내려다보인다. 그래서인지 가는 길이 쉽지 않다. 산을 돌아 넘어가는 고부랑길이 계속됐다. 산세가 훌륭해 화천을 두고 산수화의 도시라고도 부른다. 실제 화천읍의 도로명에는 ‘산수화로’도 있다. 화천읍에서 만난 한 주민은 “경관이 빼어나기에 산수화라고 부르지만, 산천어와 수달이 사는 화천이란 뜻에서 앞글자를 따 산수화로 부르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안개자 자욱한 민통선에 들어서자 야생동물이 출몰하니 주의하라는 표지판이 눈에 띈다. 얼마나 지났을까? 길 건너에서 산양 2마리가 풀을 뜯고 있다. 이어 백암산 케이블카에 이르렀다. 화천군청이 운영하는 케이블카는 2014년 3월 착공 이후 8년 7개월여 만인 올해 10월 개통했다. 케이블카를 타고 10여 분이면 정상 전망대까지 오를 수 있어 주민과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전망대에서는 남쪽으로 평화의댐, 북쪽으로 임남댐(금강산댐)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날은 심한 안개가 발목을 잡았다. 평화의댐은 임남댐의 수공(水攻)을 방어하기 위한 용도로 국민성금을 모아 건설됐다. 담수와 발전 기능이 없는 홍수 조절 전용 댐이다. 집중호우와 북한의 예고 없는 임남댐 개방으로 인한 수량을 막아내며 홍수 조절 기능을 확인시켜 줬다.

현장취재에 동행한 육군7보병사단 정훈병 이비오 상병이 9일 오전 강원 화천군의 방패막이라 할 수 있는 백암OP 정상에서 세워져 있는 비목을 바라고 있다. 정전협정을 앞두고 치열하게 벌어진 금성전투의 핵심 전투지로 국민가곡 비목의 직접적인 배경인 백암OP는 과거 병력이 상주하던 GP였으나 지금은 감시카메라로만 운영되고 있다.

작은 돌무덤에 놓인 녹슨 철모

케이블카 덕분에 쉽게 백암산 정상에 올랐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산 능선을 따라 40여 분을 더 도보로 오르내렸다.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돼서야 목적지인 감시초소가 시야에 들어왔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빈 초소에는 감시장비들이 대신 입주했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작은 돌무덤에 녹슨 철모가 올려진 나무가 보였다. 이곳에 온 목적인 ‘비목(碑木)’이었다.

비목은 국민 가곡이자 6월의 노래로 우리에게 더 잘 알려져 있다. 비목을 보니 가슴이 뭉클해졌다. 비목을 세상에 끄집어낸 사람은 작사가 한명희다. 그는 과거 국방일보와 인터뷰에서 “1964년 백암산 전방 감시소초(GP)장으로 근무할 때 순찰 중 녹슨 철모와 돌무덤 하나가 눈에 들어왔고, 이름 모를 무덤이 전쟁 당시 내 또래의 젊은이였을 거라는 생각에 눈물을 흘렸다”고 말했다.

녹슨 철모와 돌무덤 앞에 서서 눈을 감자 70여 년 전 이곳에서 자유·평화를 지킨 영웅들이 떠올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사단 정훈병 이비오 상병은 비목 너머 깎아지른 경사의 고지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 상병은 “수많은 고지전이 전개됐을 참호와 진지들이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가슴속을 차오르게 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9일 늦은 오후 강원 철원군 비무장지대(DMZ) 일대 육군7보병사단 불사조여단 멸공대대 관할의 북한강 최상류 주변 남방한계선 GOP 철책로에서 멸공대대 공보장교 김덕영 중위가 완전무장 상태로 현장 안내를 하고 있다. 북한강을 중심으로 깊게 ’V'로 파인 협곡 형태의 이 지역은 전체 남방한계선 GOP 철책 중에서 걷기 난이도가 가장 높은 곳 중 하나다. 이곳 위로는 북한의 임남댐이 있으며 아래 하류로는 그에 대응하기 위해 지어진 평화의댐이 위치한다.

북한강 따라 난 철책과 오작교

백암산을 내려와 오작교로 향했다. 가는 길에 안내·인솔장교 김덕영 중위를 만났다. GOP대대 근무 5개월 차인 김 중위는 사단 포병대대에서 임무를 수행하다 GOP에 왔다. GOP 근무 소감을 묻자 김 중위는 “환경은 달라도 DMZ를 대하는 마음과 책임은 그대로다”고 답했다. 짧고 명료한 말속에 굳건한 의지가 느껴졌다.

오작교에 이르자 믿기지 않는 협곡의 풍경이 나타났다. 북한강이 남과 북을 가로질러 흐르고, 그 강변으로 GOP 철책이 당당히 서 있다. 오작교는 북한강으로 구분되는 두 지역을 잇는 작전도로인 동시에 철책이다. 두 지역이 만나는 의미가 담긴 오작교 건너편에는 또 다른 7사단 소초가 있다. 화천의 산줄기와 북한강을 따라 난 철책이 오작교로 이어져 다시 양구의 강과 산으로 연결된다.

‘디귿’ 모양 철책 안으로 강 중간에 또 하나의 다리가 놓여 있다.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흑룡장벽이다. 다리를 만들 때 공병부대 애칭인 흑룡에서 비롯됐다는 설과 다리 중간 기둥을 감싸는 검은색 계단이 흑룡과 비슷해 붙여졌다는 설이 있다.

북한강은 수위가 낮을 때는 1m도 안 되지만 높을 때는 10m를 넘기기도 한다. 지형적 특성으로 경계임무는 더욱 엄격하다. 사단은 적 침투에 대비해 수중 철책을 보강하고 주기적으로 수색정찰 활동을 하고 있다. 오작교 초소를 경계 중인 박태흥 상병은 “북한강의 잔잔함에 마음을 놓지 않으며 항상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9일 늦은 오후 강원 철원군 비무장지대(DMZ) 일대 육군7보병사단 불사조여단 멸공대대 관할의 북한강 최상류지역 오작교(뒤쪽)와 흑룡장교. 양구군과 철원군을 연결하는 오작교는 작전도로인 동시에 그 자체가 남방한계선 GOP 철책이라 할 수 있다. 견우와 직녀가 1년에 한 번 오작교에서 만나는 것처럼 남과 북이 언젠가 함께하길 기원하는 의미에서 붙인 명칭이다. 이곳 위로는 북한의 임남댐이 있으며 아래 하류로는 그에 대응하기 위해 지어진 평화의댐이 위치한다. 흑룡장교는 트러스트교와 아이빔교를 혼합해 지어졌는데 건설 당시 복잡했던 상황이 반영돼 있다.

세월 흘러도 변함없는 DMZ 의미

오작교와 북한강 양옆으로는 수직에 가까운 높다란 산들이 병풍처럼 서 있다. 산등성이를 따라 철책과 계단이 보였다. 김 중위와 함께 오르기로 했다. 가까이서 보니 경사가 훨씬 더 심했다. 계단이라기보다 사다리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엄청난 경사와 높이에 겁이 났다. 김 중위에게 “저 위까지 올라간다고요?”라고 묻자 “저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올라갑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알겠다며 호기롭게 나섰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숨이 차올랐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까마득하다. 아직 다 오르지도 못했는데 내려갈 일이 걱정이다.

꼭대기 부근에 다다르자 북한강과 오작교가 눈앞에 펼쳐졌다. 험한 산지도 만만치 않은데 거대한 물줄기까지 오롯이 지켜내야 한다. 모든 DMZ가 마찬가지지만 이곳이 얼마나 중요한 장소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DMZ를 수호하는 일은 참으로 경건하다. 철책 계단을 오르며 겸손해진 마음은 장병들에 대한 고마움과 존경심으로 바뀌었다.

70여 년을 그대로 멈춰 서 있는 듯한 DMZ와 그 시간을 함께한 수많은 장병의 모습이 겹쳐졌다. 할아버지가 사수했고, 아버지가 수호했던 이곳을 지키는 아들. 세월이 흘러 DMZ를 수호하는 장병들은 바뀔지언정, DMZ를 바라보는 그 이유와 신념은 변함없이 이어지리라.

/ 국방일보 2022.11 서현우 기자 < lgiant61@dema.mil.kr > 조용학 기자 < catch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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