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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거 저런거/군대이야기

6보병사단 / 2여단 용문산부대

by 구석구석 2021. 7.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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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불패 용문투혼'

■ 2보병여단 용문산부대 / 철원 이평리주둔 

한국전쟁에서 가장 잘 싸운 부대인 6사단 청성부대 예하부대로 국방개혁 2.0에 의거하여 여단으로 변경되었다. 

한국전쟁 당시 1951.5월 2연대 단독으로 중공군 3개사단을 방어한 용문산전투의 주역이다.

ㅇ직할대 - 수색중대(황룡. GP) 통신중대 의무중대 포병대

ㅇ1대대 흑룡 - 철원 후방으로 이전예정  

ㅇ2대대 백호 - 중부전선 최전방을 방어하는 GOP전담 대대

ㅇ3대대 용호

한국전쟁 용문산전투 병력배치상태

용문산전투는 6·25전쟁 중이던 1951년 5월 17일부터 21일까지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과 가평군 설악면 일대에서 중공군과 국군 사이에 벌어진 전투다.


육군6사단이 지키고 있던 용문산 일대에 막강한 물량 공세로 중공군이 공격해 오자 6사단 전초부대였던 2연대가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이에 중공군은 이 전초진지를 주력부대로 오판하고 3개 사단을 동원해 총공격했다. 고립된 2연대는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화력과 항공 지원을 받으며 남한강과 북한강을 접하고 있어 중부전선 최고의 요충지로 꼽히는 용문산을 힘겹게 방어해 냈다.

주력부대를 포위해 섬멸할 계획이었던 중공군이 2연대에 총공격을 감행하고 있을 때 기습 준비를 하고 있던 6사단 7·19연대가 중공군의 후방을 기습, 중공군을 역으로 포위하며 중공군을 섬멸 위기로 몰아넣었다. 7·19연대의 공격과 함께 유엔군과 국군의 화력지원이 더해지면서 중공군은 많은 전사자를 냈고 중공군은 섬멸을 피하기 위해 5월 21일 새벽 퇴각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국군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6사단은 곧바로 추격을 시작, 양평에서 가평과 춘천을 거쳐 화천발전소까지 60여㎞를 진격하며 중공군을 격퇴했다. 이 과정에서 큰 손실을 입은 중공군은 화천호에 이르러 퇴로가 막혔다. 6사단은 그대로 중공군의 후미를 공격해 중공군 대부분을 화천호에 수장시켰다.

이 전투로 중공군 3개 사단 2만여 명의 병력이 궤멸했고 이를 계기로 사기를 최고조로 끌어올린 국군은 대대적인 반격 작전을 실행하게 됐다. 용문산전투의 패배로 인해 엄청난 전력 손실을 입은 중공군은 수세에 몰리며 휴전 협정을 제의하게 됐다. 이승만 당시 대통령은 이 전투 후 화천호를 오랑캐를 무찌른 호수라는 뜻의 ‘파로호(破虜湖)’라고 명명했다.

/ 국방일보 이석종 기자 seokjong@dema.mil.kr

부대섹터가 평지다.

'여단급 KCTC 쌍방훈련'은 한 번의 훈련에 2개 여단을 참가시켜 실전을 방불케 하는 KCTC 훈련기회를 더 많은 부대에 제공하기 위한 취지로 육군이 2021년에 처음 도입하여 2022.3월 훈련에는 15사단 을지여단과 6사단 용문산여단 전투단 소속으로 4,500여 명의 병력이 참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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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단급 KCTC 쌍방훈련에 참가한 용문산여단 장병들이 무박 4일 교전 훈련하는 모습. (사진=육군 제공)
여단급 KCTC 쌍방훈련에서 용문산여단 K1E1 전차가 적진으로 기동하는 모습. (사진=육군 제공)
여단급 KCTC 쌍방훈련에 참가한 용문산여단 중대장이 소대장들에게 명령하달을 하는 모습.

ㅇ 1989년 4월 6일 경기도 포천군에 위치한 승진훈련장에서 대대급 훈련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 훈련에 참가한 6사단 소속 공완택 상병(1967~1989)은 자신의 목숨을 버리고 전우의 생명을 구하는 선택을 했다.

유품이 국립대전현충원 보훈미래관에 전시되어 있다.

이날 오전 11시 5분경 안전핀이 뽑힌 수류탄이 동료 전우들이 모여 있는 개인호 근처에 떨어지자 피하지 않고 헬멧으로 수류탄을 덮었고 그 위로 자신의 몸을 던져 장렬히 산화했다. 그의 이러한 살신성인의 행동으로 4명의 전우가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공 상병은 평소 전투 훈련 중에 표창을 받을 정도로 성실히 군 생활을 하는 군인이었다.

그는 경기도 화성시 향남읍 상두리 출신으로 4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1987년 10월 21일 군에 입대하여 제6사단 2연대 3대대 10중대에서 유탄발사기 사수로 복무하였다.

정부는 그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기려 1989년 5월 1계급 특진과 함께 보국훈장 광복장을 추서하였다. 공 병장의 유해는 1989년 5월 4일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다. 소속부대인 육군 청성부대는 순직현장인 승진훈련장에 고인을 기리는 추모비를 세웠고,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홍원리 구 월정역 월정공원에 동상을 건립해 그의 살신성인 정신을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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