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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서울 한강

강동 고덕동 고지봉

by 구석구석 2020.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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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그린웨이

고지봉

고덕산의 강변 끝자락에 있는 봉우리를 고지봉이라 한다.

강동구 암사동과 고덕동 경계지역에는 70m·88m 봉우리들이 작은 구릉을 이루고 있으며, 한강과 만나면서 절벽과 충적지로 끝을 맺고 있다. 이 중 고덕동 산 93-8번지 해발 88m 봉우리를 일반적으로 응봉이라 한다. 

고지봉이라 하는 것은 고려 말에 이곳에 은거한 이양중李養中의 굳은 절개와 높은 덕을 추앙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고려 문신 이양중은 이색·서견·정몽주·이방원과 더불어 형제결의를 맺고 지내왔다. 

이성계가 고려를 뒤엎고 조선왕조를 건국하게 되자 이에 격분하여 지금의 고덕동에 움막을 짓고 숨어 살았다. 

 

한강변 고지봉 북쪽 기슭 강동구 암사동 산 1-1번지에는 암사동의 동명이 유래된 암사 즉 바위절 터가 남아 있다. 

신라시대에 절이 9개나 있어 구암사라고 하였고, 하진참 동쪽 바위에 있었으므로 바위절이라고도 하였다. 

구암사 중 오랫동안 명맥을 유지해 온 백중사가 암사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기도 하였으며

서거정이 읊은 「백중사」 시가 전한다. 

암사가 있던 터라 생각되는 곳은 암사수원지 취수장 옆 산봉우리인데 이곳은 구암서원 터와 일치하고 있다. 

암사3동의 한강 접안지점에 자리잡고 있던 구암서원은 조선 현종 8년(1667)에 건립되어

고려말 조선초의 명신 이집과 거의 비슷한 시대 인물인 이양중, 조선 성종 때 인물인 정성근, 인조 때의 정엽과 오윤겸, 그리고 임숙영을 배향하고, 숙종 23년(1697)에 현판을 하사받았다. 그러나 흥선대원군이 집권함에 따라 고종 8년(1871)에 철폐되었다. 

 

지금 이 구암서원 터에는 고종 33년(1896) 8월에 세웠다고 입석 연월을 적고 있는 ‘遁村李先生諱集俎豆舊基’라는 비석이 서 있어, 이곳이 구암서원 터임을 알려주고 있다. 또 이 비석 근처에는 서원의 주춧돌로 보이는 돌들이 남아 있고, 기와쪽도 보이는데 당시는 큰 서원이 세워져 있었으리라 짐작된다. 

 

구암서원 터에서 멀지 않은 지금 암사수원지 뒤에는 이집의 후손인 광주이씨 일가의 묘역이 있다. 

이 곳에서는 비석 하나가 유난히 눈길을 끈다. 

이는 연산군 2년(1496)에 세워진 광릉부원군 이극배의 신도비이다. 

이 신도비는 근 500년간이나 온갖 풍상을 겪으면서도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서 

당시의 서체와 석공술을 잘 나타내고 있다. 

광주이씨 광릉부원군파 묘역(서울시 유형문화재 제90호)에는 연산군 원년(1495)에 만들어진 이극배와 

그의 부인 광주최씨의 쌍분을 비롯하여 11기의 분묘, 문·무인석 17기, 상석 7기, 망주석 10기 등이 있다. 

이극배신도비 10m 거리에는 약수터가 있어 시민들이 즐겨 찾는 휴식공간이 되고 있다. 

인근에는 양정고등학교 설립자인 엄주익 장군의 묘소도 말끔히 단장되어 있다. 

고지봉은 고덕공원으로 지정되어 2개의 산책로가 정비되어 있다.

 

▲ 1코스
고덕역⇒약수터길⇒가재골길⇒고개⇒응봉(88.3m)⇒전망대(삼각점)⇒광릉부원군묘역⇒광릉약수⇒암사수원지정문⇒고덕뒷길⇒암사선사유적지⇒암사역

 

자료 금수강산 www.maunt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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