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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서울 한강

강서구 개화동 약사사 양천8경(개화산) 습지생태공원

by 구석구석 2020.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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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서구 가양동에 있는 궁산은 옛 양천고을의 진산으로 이곳에서 바라보는 한강변 풍광은 시정을 불러일으키는 명승이었다. 아울러 이곳 현감으로 왔던 겸재 정선은 그 풍광을 진경산수로 읊고 사천 이병연은 진경시를 시어 어우러진 작품을 연출하였다. 양천고을의 엣이름을 따라 파릉8경이라고도 한다. <강서문화원-강서문화와 역사> 

개화산자락길

개화산

옛날 개화산(128m)의 저녁 봉화를 개화석봉이라하여 양천8경의 하나로 칠만큼 봉화가 아름다운 산이다.

 

개화산은 서울의 서쪽 끝 강서구 개화동에 위치한 표고 128.4m의 잔구성 구릉산지이다. 

그야말로 동네 뒷산 수준이다. 지하철 5호선 개화산역과 방화역 9호선 개화역 근처에 있다 일명 ‘주룡산’이라고도 했다. 신라 때 한 도인이 주룡선생이라 자칭하며 이 산에 숨어 살면서 도를 닦고 세상에 나오지 않다가 이곳에서 늙어 죽었다. 그가 이 곳에 살 때 매년 9월 9일에는 동자 두 세명과 더불어 높은 곳에 올라가 술을 마시며 구일용산음이라 하였으므로 주룡산이라 이름하였다고 전한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그 자리에는 이상한 꽃 한송이가 피어났다. 이를 두고 사람들이 이 산을 개화산이라 일컬었다. 지금의 개화사가 주룡선생이 살던 옛 터라고 한다. 그런데 이 곳에 봉수대가 동·서 두 곳에 설치되어 있고, 봉수군과 봉대별장이 있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봉수진이 있었던 산이라는 의미로 ‘開火山’이라 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 두개의 봉수대 중 동쪽은 방화동의 치현에서, 서쪽은 개화산에서 봉수를 받아 연락하였던 것이다.  

 

치현의 동쪽 봉수대는 현재 통신대가 주둔하고 있으며, 이렇듯 임진왜란·병자호란 전까지는 봉화불을 올렸다 하여 ‘開火山’이라 하였는데, 그후에 ‘開花山’으로 이름이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개화산은 한강을 사이에 두고 행주산성과 마주 본다. 

 

산정에 서면 삼각산과 도봉산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고, 한강과 임진강이 마주치는 조강의 광활한 풍광과 바닷물이 들어오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또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인왕산·낙산·북악·남산을 비롯해서 멀리 관악산과 그 사이를 굽이쳐 오는 한강의 물길도 한눈에 즐길 수 있는 명소 중의 명소이다. 

그래서인지 조선 후기 화가로 이름 높은 겸재 정선은 양천현감으로 있으면서 열수팔경도의 하나로 개화사라는 제목으로 개화산과 절, 오솔길의 소나무숲과 그 아래 버들숲이 우거져 있고 전답이 있는 모습을 그렸다. 개화산에서는 매년 음력 10월 1일에 산신제를 지낸다.

개화산자락에 있는 약사사에서 들려오는 종소리는 '한산모종'이라하여 옛날 양천8경중 하나이다. 김포공항에서 지하철 5호선 이용 개화선하차. 48번국도에서 인천국제공항고속도로 진입로에 있다.

 

 

야트막한 산이긴 하다만 개화산은 치열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과거부터 봉화대가 있었으니 전략적 요충지였음이 분명하다. 한국전쟁때에는 국군과 인민군 사이에 치열한 격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몇년전 개화산 일대에서 많은 유골이 발굴되기도 했다. 

 

한국전쟁이후 개화산은 완전 민둥산이었으나 많은 노력으로 이젠 제법 푸르름을 되찾았다. 이젠 개화산 도시자연공원으로도 불린다. 강서구 주민들에게는 좋은 휴식처가 되고 있다. 올라가면 강건너 행주산성 일대와 김포평야, 김포공항 등이 잘 조망되는 곳이다. 

 

 

개화산봉수
개화산 북쪽 상봉에 있으며, 속칭 봉화뚝이라 한다. 조선시대에 통신수단으로 설치한 이 봉수는 전라도 순천군 돌산도로부터 충청도·경기도 등의 해로를 거쳐 김포군 냉정산에 다다라, 이 봉수가 서쪽으로 냉정에 연결되고, 동쪽으로 서울 목멱산 제5봉에 전달된다.

조선말기에 봉수제는 폐지되고 그 남은 터도 6·25전쟁으로 미군부대가 주둔하면서 군사시설을 닦느라 흔적마저 없어졌다. 이 곳은 옛 양천지역의 이름인 파릉 8경의 하나로 개화석봉에 해당하여 개화산의 저녁 봉화가 평화로운 한강변 경치를 한층 아름답게 꾸몄던 것이다.

 

▲ 1 코스 (1시간)
개화초교⇒능선길⇒약사사⇒정상⇒삼전초교
▲ 2 코스
개화산⇒약사사⇒방화근린공원⇒치현산⇒꿩고개근린공원(전망대)⇒꿩고개근린공원⇒강서습지생태공원⇒소악루⇒궁산⇒궁산한바퀴⇒양천향교⇒홍원사⇒구암공원(허준박물관)⇒허가바위⇒공암나루터

 

 

개화동 332-2 약사사 02-662-2551

가양동에서 김포공항 방면으로 가다 방화사거리가 나오면 우회전하여 방화아파트단지로 들어선 다음 지하철5호선 방화역에 조금 못 미쳐 좌측에 강서농협이 보이면 좌회전한다.(방화5단지 사거리) 여기에서 100m 쯤 가면 좌측에 방원중학교가 있고, 우측에는 영신교회가 있는데 그 가운데 길을 따라 산으로 오르면 길이 끝나는 곳에 약사사가 있다.  

 

약사사는 서울시 강서구 개화동 332-2번지 개화산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직할사암이다. 겸재도 감탄했던 절경, 개화산 약사사 조선 후기의 화가로 이름 높은 겸재 정선은 개화사란 제목으로 개화산과 절. 그리고 주변의 풍경을 그림으로 남겼는데, 바로 이 개화사가 지금의 약사사이다.


절의 창건은 삼한 시대 혹은 신라 시대로 전하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언제 창건되었다는 기록은 없다. 또한 고려 시대의 유물인 석불과 삼층석탑이 남아 있는 점으로 보아 고려 시대에도 법등이 이어져 왔음을 짐작해볼 따름이다. 이후 조선 후기까지는 별다른 역사를 찾아 볼 수 없다가 1737년(영조 13)에 좌의정 송인명에 의해 크게 중수된 후 송씨 가문의 원찰이 되었다. 송인명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어려서 아주 가난했는데 개화사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으면서 공부를 하였고, 1736년에 좌의정에 오르자 그 은혜를 보답하기 위해 절을 크게 고쳐지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영조 때 최고의 시인이었던 이병연이 송인명에게 보낸 시를 통해 더욱 잘 알 수 있다. 봄이 오면 행연 배에 오르지 마오 손님이 오면 어찌 꼭 소악루만 오르려 하나 책을 서너 번 다 읽은 곳이 있다면 개화사에서 등유를 써야지.


『사천시초』 또한 이병연과 교류하고 있던 겸재 정선은 이 시를 보고 ‘개화사’라는 그림으로 절경을 남겼던 것이다. 이후 개화사는 약수암, 약수사, 약사사 등으로 절의 이름을 바꾸게 되는데 이는 아마도 절에서 솟아나는 약수와 법당에 모셔져 부처님과 매우 연관성이 있는 것 같다. 특히 법당에 봉안되어 있는 석불은 영험이 있어 지극정성으로 기도를 올리면 병이 치유되고 소원을 성취한다고 하여 향화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미타사
개화산 정상에서 남북으로 뻗어내린 산등성이를 경계로 하여 서남 기슭인 개화동 산81-13호에 자리잡고 있다. 약사사와 같은 시기에 창건되었다고 한다.

 

개화산 충혼비

6․25 전쟁 중에 개화산 전투에서 산화한 1,100명의 국군 전사자 영령들이 잠들어 있는 개화동 산 81-13번지인 미타사 앞에, 1999년12월 국방부에서는 호국충혼비를 세워 영령들을 위로하였으며 국민들의 애국정신 함양 및 전쟁 미 체험 세대들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이곳을 성역화하였다.

 

이곳에서 산화한 부대는 38선 접경의 황해도 연백지역을 지키다가 1950년6월25일 한강을 건너 이곳 개화산에 방어진을 치고 전투를 벌였던 육군 제 1사단 12연대 3대대장 김무중 소령 휘하부대였다. 본부와의 연락이 끊어진 채 마지막 한 발의 총알마저 다 소비한 상태에서 6월30일 북한군의 화력과 수에 밀려 결국 3대대와 중도에서 합류한 13연대 및 15연대 일부를 포함한 부대원 1,100여 명 전원이 개화산 골짜기에서 최후를 맞았다. 하지만 전쟁의 포성이 멈춘지 50년이 다 되도록 아무도 이 부대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잃어버린 부대로만 기록되어 있었다.

당시 1사단장이었던 백선엽장군의 회고에 따르면 12연대는 임진강 다리를 건너 후퇴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26일 정오께 피투성이가 된 채 지프에 실려 온 연대장 전성호 대령을 비롯한 40여 명이 후퇴병력의 전부였고, 그 뒤는 바로 북한군이 따라 붙어 12연대는 거의 전멸한 것으로 알았다고 한다.

백선엽장군이 28일 밤 행주 나루에서 나룻배를 타고 한강을 건넜는데 야밤인데도 김포 방면에서 총소리가 요란하게 났다고 기록한 것을 볼 때 아마도 3대대 병력의 마지막 방어전이었을 것이다. 개화산 주변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12연대 3대대는 바다로 철수해 김포 비행장을 거쳐 26일 개화산에 들어 와 방어진지를 구축했다. 그러나 3대대를 뒤쫓은 북한군이 곧바로 개화산을 포위해 전투를 벌였으며 28일 밤까지 버티다가 본부와의 통신이 끊어진 채 탄약과 보급이 떨어져 전원 전사했다는 것이다.

 

미타사 주지인 송강 스님의 꿈에 피를 흘리면서 죽어가는 군인들이 자주 나타나므로 이 동네 원로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3 대대의 전몰 내력이 드러나게 되었고, 이로써 개화산에는 충혼비가 세워지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치현산

치현산은 강서구 방화동 산 110 일대 한강변에 위치하며, 개화산으로부터 북동쪽으로 이어진 높은 70.5m의 산으로 치현이라는 지명은 이 고개가 꿩사냥하기에 좋았기 때문에 붙여졌는데 방화리라는 동명이 생긴 이후에는 방화고개라고도 불렀다. 

 

꿩고개 공원은 게이트볼장과 정자 등을 주민들이 운동과 휴식을 함께 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지압로, 건강체육시설, 약수터음수전 등 건강을 위한 다양한 시설도 이용할 수 있다. 주변 방화공원은 다목적운동장을 비롯한 체육시설과 더불어 원형광장, 연못, 분수대, 물레방아 등이 설치되어 있다. 또한 공원의 산책로 곳곳에 파고라, 휴게소 등 휴식공간과 녹지공간이 어우러져 있다.산책로를 따라 벚꽃나무 등 각종 수목들이 식재되어 있으며 울창한 산림으로 둘러 쌓인 개화산과 꿩고개근린공원에 연접하고 있어 가족단위의 피크닉 장소로도 알맞은 곳이다.

 

봄에는 벚꽃과 함께 탄력있는 산책길을 걸을 수 있고, 여름에는 연못과 분수와 인라인스케이트를, 가을에는 단풍을, 겨울에는 원형광장에 얼음을 결빙시켜 얼음썰매를 가족과 함께 즐길 수 있는 공원이며, 주변에는 개화산공원이 있어 연계하여 이용되고 있다.

 

꾸미지 않아 더 자연스러운 강변길, 강서 습지생태공원

 

전형적인 강변습지의 모습을 하고 있는 곳으로, 인공의 손길이 덜해 자연스러운 멋이 배어난다. 나무 대신 갈대가 산책로 주위를 에워싸 한적한 시골의 천변을 걷는 듯 편안한 느낌이 든다. 멀리서 보면 녹색의 갈대 사이로 하얀 흙길이 굽이굽이 이어진 모습이 보인다.

 

한강 주변 다른 곳에 비해 찾는 사람들이 적어 혼자 사색에 잠기기에 좋고, 각종 새소리와 함께 갈대가 스치며 내는 바람소리를 듣기에도 좋다. 아이들과 함께라면 여름철새 탐조에도 나서볼 일. 철새는 강변 쪽 철새조망대 펜스 중간에 뚫린 구멍을 통해 관찰할 수 있다.

 

찾아가는 길

서울 올림픽대로 김포공항 방향 3차선으로 진행하다가 인천국제공항 전용도로 갈림길에서 300m 정도 직진한 후, 오른쪽 길로 진입하면 된다. 또는 가양대교 오른쪽 램프에서 가양아파트 방향으로 나와 서남물재생센터 후문을 지나 지하차도를 이용할 수도 있다.

 

대중교통으로는 서울지하철 5호선 방화역 2번 출구에서 1.9km 거리. 6번 마을버스를 이용, 강서습지생태공원에서 하차하면 편리하다. 주차료는 1일 3천원.

 

문의

서울 한강시민공원 강서지구사무소 02-3780-0621~3 http://hangang.seoul.go.kr 

 자료 - 여성동아 2007년 5월호

 

쭈구미전문점 쭉심 개화산점 02-2661-0100

강서구 양천로 29 (방화동 495-34)

개화산역 2번출구에서 횡단보도 건너 우측에 있으며 주차장은 별도로 없다.

홀에는 테이블 10여개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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