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평(海眼坪)'은 영천 사람들도 잘 모른다. 한자 '坪(평)'이 '평평하다'는 뜻이라는데 착안해 평야가 아닐까 지레 짐작할 뿐이다. 그러나 영천 들판을 다 쏘다녀도 해안평은 찾지 못한다. 이는 경북 팔공산 동쪽 산등성이에 있기 때문이다. 조계종 제10교구 본산인 은해사에서 2.5㎞가량 더 치받아 올라가면 어느 순간 눈앞이 훤해지는데, 바로 그곳이 해안평이다. 이른 새벽이라면 안개와 구름에 휩싸인 산중 평지가 마치 바다처럼 보이기도 한다고 한 스님은 말했다. 해안평이란 한자어도 그래서 나온 말인 듯하다.
성철스님이 수행한 은부암
▲ 산등성이인데도 내가 흐르고 못도 여럿 생긴 경북 영천 해안평의 운부암 전경. 암자라고 하기에는 절집 규모가 크다. 파릇파릇 돋은 새 잎들이 못물과 대비돼 더 싱그럽게 느껴진다.
평지 가람인 은해사도 원래 이곳에서 '해안사'란 이름으로 창건했다. 신라 헌덕왕 1년(809년)의 일이다. 지금은 은해사에 딸린 암자 중 하나인 운부암(雲浮庵)이 이곳을 지키고 있다. 결국 운부암을 찾는 것이 해안평에 도달하는 길이 됐다.
은해사에서 운부암까지는 도로가 잘 닦였다. 그러나 요즘처럼 따듯한 계절이라면 계곡과 숲을 즐기며 느긋하게 걸어 오르는 사람들이 더 많다. 해안평을 산중 평지라고 했지만 천성산의 화엄벌처럼 광대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오히려 더 푸근하고 편하다. 특히 암자 주변으로 내가 흐르고 웅덩이 같은 못도 여럿 있어 촐촐거리는 물소리가 정겹다.
못 중 가장 큰 곳에는 두 눈을 부릅뜬 달마대사가 큰 키로 서 있다. 그 옆 불이문을 통과해 높은 계단을 오르면 보화루에 닿는다. 보화루 맞은편에 국가 보물인 청동보살상을 모신 원통전이 있다. 두 건축물 사이의 공간이 마당인데, 한가운데 조성된 탑이 예사스럽지 않다. 작고 둥근 보주와 옥개석, 탑신, 기단이 각 하나뿐으로 탑 높이가 어른 허리춤에 못 미친다. 몸체를 다 잃은 탑이기에 분명히 곡절이 있을 법한데 굳이 묻지 않았다. 그 자체로도 왠지 아름다웠다.
원통전 뒤 언덕에는 속이 텅 빈 고목 한 그루가 서 있다. 어른 두 사람이 들어가도 비를 피할 수 있을 정도로 나무 속이 넓다. 해안평에 절터를 처음 잡은 의상대사가 꽂았다는 그 전설 속 지팡이가 자란 천년 나무란다.
운부암은 성철 스님이 수행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원통전 옆 사립문을 열고 들어가면 오른쪽 끝에 스님이 기거한 방이 있다. 운부암은 성철 스님 외에도 수많은 대선사들이 수행했는데, 이를 알리듯 해안평 입구에 '천하명당 운부선원- 조사도장'이라는 돌비가 서 있다.
■은해사와 갓바위
운부암에서 내려오면서 은해사를 들렀다. 아미타불을 모시는 미타도량인 은해사는 일찌감치 인종 태실을 산중에 보관했다. 유교 국가인 조선에서조차 왕실 보호를 받았다는 얘기다. 덕분에 지금도 조계종 제10교구 본사로 말사 39곳을 거느리고 있다. 그러나 다른 대사찰처럼 소실과 중창을 거듭했다. 이로 인해 이렇다 할 국보급 유물은 그다지 없다. 대신 지난 2005년 개관한 성보박물관에서 추사 김정희의 편액 글씨를 친견하는 의미는 크다.
추사는 말년에 이곳 주지로부터 편액 글씨를 요청 받았다. 은해사가 왕실과 가깝다는 생각에서 선뜻 '불광(佛光)'이라는 글씨를 써 주었다. 그런데 이를 받은 주지가 '불(佛)'자의 마지막 획이 너무 길다며 임의로 잘라 편액 크기에 맞췄다.
훗날 이를 안 추사는 편액을 내려 즉석에서 불에 태웠다. 뒤늦게 추사의 뜻을 간파한 주지는 편액을 새로 제작했다. 논란이 된 획의 길이는 무려 1.3m. 송판 4장을 이어붙였다. 그 편액이 지금 성보박물관 입구에 전시돼 있다.
벚꽃이 만개한 은해사
은해사는 요즘이 가장 아름답다. 특히 기와와 황토를 섞어 만든 담벼락 너머의 벚꽃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은 평생의 추억이 될 수 있다. 보화루에서 일주문까지 이어진 2㎞ 구간의 소나무 길(금포정)도 사진작가들에게 잘 알려졌다. '금포정(禁捕町)'은 살생을 금하는 구역으로, 키 크고 잘 생긴 소나무가 숲을 이룬다. 이 솔숲은 숙종 38년(1712)에 조성됐으니 300년이 훌쩍 넘었다.
은해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선본사 갓바위(경산)가 있다. '팔공산 갓바위'로 더 잘 알려졌는데, 원광 법사의 수제자인 의현 대사가 어머니의 명복을 빌기 위해 신라 선덕여왕 7년(638년)에 만들었다. 높이 4m로 몸통과 대좌가 하나의 돌로 돼 있다. 갓처럼 생긴 판석 때문에 갓바위 부처라고 부르는데, 우리나라 최고의 기도처로도 유명해 산 정상에 있는데도 늘 사람들로 북적인다.
은해사 335-3318(템플스테이)
운부암 335-9236
임고서원 335-2864
임고초등학교 행정실 335-3774
최무선과학관 331-7096
선본사 종무소(경산) 053-853-98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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