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성군 현풍면 원교리 12-1 현풍공설시장
현풍천변에 위치하며 1918년에 개장된 소형재래시장으로 100여개의 점포중에 절반이 노점이며 수구레국밥 돼지국밥 양파가 유명하다.
대구에는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따뜻하고 정감 어린 풍경이 많이 있다. 대구의 반을 차지하는 달성이다.
돌담길을 비롯해 100년 이상된 5일장, 사투리가 그렇다. 남평문씨본리세거지인 인흥마을은 역사적인 의미분 아니라 돌담길을 따라 걷는 것만으로도 여유로워진다. 마비정 벽화마을도 빼놓을 수없는 곳이다.
대구의 명산이라면 십중팔구는 팔공산을 먼저 떠올리겠지만 달성군의 비슬산(琵瑟山, 1084m)도 그에 못지않다. 달성여정에서 가장 먼저 선택 한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비슬산은 대구 달성군과 경북 청도군에 걸쳐 있다. 비슬산은 가을단풍과 참꽃 군락지로 유명하다. 정상아래 해발 1000m 평탄면에 붉은 융단을 깐 듯 참꽃이 펼쳐진다. 해마다 4월 비슬산참꽃문화재가 열린다.
비슬산 자연휴양림에서 등산로를 따라 오르면 청량한 숲길이 펼쳐진다. 정상까지는 1시간 30여분이 걸린다. 편하게 이동하려면 휴양림에서 출발하는 산악용 전기자동차를 타면 된다.
길을 나선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세계 최대 규모인 암괴류(岩塊流, 천연기념물 제435호)가 먼저 반긴다. 암괴류는 둥글거나 각진 바위덩어리들이 산비탈이나 골짜기를 따라 아주 천천히 흘러내리면서 쌓인 것이다. 여러 개의 암괴류가 각기 다른 산비탈을 따라 내려오다가 합류해 이어지는데 길이 약 2㎞, 최대 폭 80여m에 달한다.
숲길을 한 구비 한 구비 돌때마다 왼편으로는 황금빛 들녘과 낙동강이 휘돌아 가며 따라온다. 흐린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를 쏟을 듯 잔뜩 성을 내고 있다. 발걸음이 빨라진다.
대견사로 드는 길목, 옹골찬 바위들이 시립해 있고 비탈을 따라서는 암석들이 널려 있다. 기이한 형태의 암석들을 병풍처럼 두른 대견사의 역사는 신라시대까지 올라간다.
일연스님이 고려 고종 4년(1227) 22세 때 승과 선불장에 장원급제한 뒤 초임 주지로 22년간 있으며 '삼국유사' 집필을 구상한 곳이다. 대견사는 일제강점기 때 폐사되었다가 이후 흔적으로만 남았던 '대견사지' 위에 현재의 대견사가 중창된 건 2014년이다.
절집 앞은 절벽이다. 이 깎아지른 암봉 끝자락 너럭바위에 아슬아슬하게 석탑 한 기가 서 있다. 신라시대 세워진 대견사지 삼층석탑(유형문화재 제42호)이다. 수많은 풍파를 거치며 탑 일부가 훼손되는 고난을 겪으면서도 옛 모습을 잃지 않고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석탑에서 바라보면 부드럽게 뻗은 산들이 대구의 들녘과 굽이치는 낙동강을 깊게 껴안는다.
잔뜩 먹구름을 품고 있던 서쪽하늘이 거짓말처럼 열리기 시작했다. 먹이활동에 나선 까마귀떼가 쉼 없이 날갯짓을 하고 구름 사이사이를 비좁고 찬란한 빛이 쏟아진다. 유장하게 흐르는 낙동강 물줄기에도, 천년의 석탑에도, 두 손 모아 기도하는 여행객에게도 빛은 따뜻하게 품을 열어준다. 이런 장엄한 풍경을 마주한다면 종교를 떠나 누구라도 두 손을 보아도 좋을 것이다. 소박한 석탑 한 기가 전하는 비슬산의 풍경은 긴장과 장엄함을 그리고 저릿한 아름다움을 선사하는지도 모르겠다.
비슬산을 내려와 화원읍 남평 문씨 세거지지인 인흥마을로 간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목화씨를 들여온 문익점의 후손들이 인흥사 절터 자리에 일군 마을이다. 인흥사는 일연이 삼국유사를 집필한 곳으로 전해지는 절집이다.
마을에 들면 날아갈 듯한 처마의 한옥들과 세월의 흔적이 더께로 쌓여 있는 돌담길, 그리고 오래된 나무들이 단박에 여행객을 사로잡는다. 높이 2~3M 돌담길 아래를 걷는 기분이 고즈넉하면서도 여유롭다.
인흥마을에는 가옥 9채와 재실 2채, 문고 1채가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집들은 문이 잠겨 있다. 실제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흙을 이겨 만든 돌담 사이를 걷는 것만으로도 수백년의 시간을 거슬러 오른 정취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여행객을 위해 문을 연 집은 초입에 자리한 수백당이다. '결백을 지키는 집'이란 뜻의 수백당은 노송과 어우러진 마당이 일품이다. 손님을 맞거나 모임 장소로 이용됐던 곳으로 '우물 정'(井)자 형태의 우물과 대나무로 경계를 이룬 뒷간 등이 옛 건물과 그림처럼 어우러졌다.
문중 서고인 인수문고는 국내외 서책 1만여 권과 목판이 보관되어 있다. 마을의 가장 안쪽에 터를 잡은 광거당은 추사 김정희가 쓴 현판이 걸려있다.
인흥마을에서 산자락을 거슬러 오르면 마비정 벽화마을이다. 1960~70년대 정겨운 농촌 풍경을 테마로 벽화를 그렸다. 대도시 대구에 속해 있지만 대중교통이라곤 하루 8번 운행하는 군내버스가 고작일 정도로 도심 속 오지다.
마을에 들면 토담을 따라 그려진 벽화들이 외지인을 맞는다. 쟁기질하는 황소, 난로 위에 도시락을 빼곡하게 올려놓은 옛 교실 풍경 등이 향수를 자극한다. 100년 된 초가집과 동네 할머니들이 음료수와 과자 등을 파는 이른바 '점방'도 눈길을 끈다.
벽화마을에서 멀지 않은 낙동강변에 사문진나루터가 있다. 우리나라 최초로 피아노를 들여온 곳이다. 1900년 3월 대구에 온 미국인 선교사 사이드보탐 부부가 미국에서 가져온 피아노를 배편으로 사문진나루터까지 싣고 온 뒤 대구 시내 사택으로 옮겼다고 전해진다. 사문진나루터는 1932년 나운규 주연의 '임자 없는 나룻배'가 촬영된 곳이기도 하다. 지금은 낙동강을 따라 걷는 산책로와 화원유원지 전망대, 주막촌 등이 조성되어 있다.
이외에도 1918년에 개설된 현풍시장은 100년의 세월을 자랑하는 대구의 대표 5일장이다. 달성군 일대를 아우르는 가장 큰 시장으로 매 끝자리 5,10일에 들어서는 현풍장은 현풍천까지 좌판이 벌어질 정도로 규모가 크다. 1980년대까지 우시장이 열렸는데 청도, 고령 등지에서 소를 팔거나 사기 위해 현풍장으로 모였다. 사람과 소가 한데 어우러져 밤을 새울 정도로 어마어마한 유동인구를 자랑했다.
시장안에는 이름도 생소한 수구레국밥집이 여럿 있다. 수구레란 쇠가죽 바로 아래서 발라낸 질긴 부위를 일컫는다. 원래 우시장 근처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평범한 국밥이었다. 소를 판 사람과 산 사람이 한데 모여 막걸리에 국밥 한 그릇씩을 비워내는 풍경은 현풍장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그때 그 시절 풍경은 사라졌지만 지금도 장날이면 사람들이 모여들어 국밥 한 그릇을 두고 정겨움을 나눈다.
비슬산 대견사는 중부내륙고속도로 현풍나들목으로 나가 현풍ㆍ비슬산자연휴양림 방향으로 좌회전한 뒤 이정표대로 따라가면 된다. 인흥마을, 마비정 마을 등을 먼저 보겠다면 중부내륙고속도로 지선인 화원ㆍ옥포 나들목으로 나오는 게 낫다. 휴양림에서 대견사까지는 '반딧불이 전기차'를 타고 오른다. 휴양림 주차장에서 대견사 입구까지 5.8㎞를 운행한다.
달성에서 가장 유명한 먹거리는 현풍면의 곰탕이다. 현풍면 성하리 인근에 원조 현풍할매집곰탕을 비롯해 곰탕집들이 몰려 있다. 현풍시장에는 수구레국밥(사진) 골목도 있다. 대구 시내로 나오면 안지랑 곱창골목이 유명하다. 푸짐한 돼지곱창구이를 내는 집들이 늘어서 있다. 납작만두, 매운어묵, 칼국수 등을 내놓는 서문시장의 먹거리 투어와, 평화시장 닭동집거리도 이름났다.
/ 달성(대구)=글 사진 조용준 여행전문기자 jun2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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