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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경상북도

청도 금천면-평기리 대왕산

by 구석구석 2014. 4.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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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청도군 금천면과 경산시 남산면에 걸쳐 있는 대왕산(大王山·606m)은 소박한 겨울 산을 찾는 꾼들에게 안성맞춤이다. 높지도 수려하지도 않지만 완만한 능선을 걷는 재미가 남다르다.

대왕산은 600m를 겨우 넘긴 작은 산이다. 주변 봉우리와 연결된 능선도 부드럽고 완만하다. 산세는 겸손한데 이름은 거창하기 이를 데 없다. 주변의 높은 봉우리들을 제치고 큰 임금(大王)을 뜻하는 이름을 얻었다. 이름 때문인지 이 산 비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대왕산이 최고봉이라 확신하고 있다.

연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마을 어르신들을 붙잡고 물었다. 사람 따라 다른 이야기를 해줬으나 아마도 기우제와 관련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금천 사람들은 옛날부터 큰 가뭄이 들면 대왕산 정상에 올라 산신에게 기우제를 올렸다고 한다. 이런 것을 따져 볼 때 '대왕'은 산신의 별칭일 가능성이 높다. 무속 신앙의 사례를 볼 때 유명한 산의 신을 '백두대왕', '태백대왕'으로 부르고 있는 까닭이다.

 

 

대왕산 이름에 얽힌 궁금증을 해소하고 산행을 시작한다. 구체적인 코스는 갈고개 휴게소~등산 진입로(묘지)~고개 마루~478봉~567봉~대왕산~598봉~641봉(갈림길)~묘~648봉~묘~청도 김씨 묘~462봉~돈치재~김전저수지~김전2리 입구 순이다. 모두 10.5㎞ 구간으로 4시간 30분 소요됐다. 대왕산은 남동쪽에 있는 학일산(鶴日山·692.6m)과 연계해 코스를 만들기도 하지만 겨울에 타기에는 코스가 너무 길어, 아쉽지만 학일산은 포기했다.

 

 

들머리는 경북 청도군 금천면 갈지리를 통과하는 69번 국도변의 갈고개 휴게소다. 휴게소의 대형 입간판이 보이면 차를 세워두고 도로를 따라 100m 더 올라간다. 주차 공간이 충분하고 주차비는 무료다. 


왼편에 창고가 보이면 왼쪽으로 꺾어 마을로 진입한다. 곧 큰 포도나무 과수원을 만나게 되는데 오른쪽으로 꺾어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산 사면으로 향한다. 5분 정도 완만한 오르막을 오르다 보면 동네를 완전히 빠져나오게 된다. 큰 소나무들이 도열한 포장 임도를 지나 정면에 가족 납골당이 보이는 곳에서 길이 두 갈래로 갈린다. 오른쪽 시멘트 포장 임도를 버리고 왼쪽 비포장 임도를 따라 감나무 과수원을 통과한다.

 

 

감나무 과수원을 지나면 본격적으로 산 사면에 붙는다. 25분가량 오르막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면 고갯마루에 도달한다. 이름도 없는 이 고개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478봉으로 올라간다. 여기서부터 완만하던 오르막이 거세게 저항하기 시작한다. 경사 자체는 그리 높지 않지만 길이 성가시다. 등산로 표면이 얼면서 부풀어 올랐고 그 위로 낙엽이 쌓여 미끄럽다. 발이 자꾸 미끄러지면서 헛심을 쓰게 된다. 

 

478봉에서부터 비슬지맥 능선에 합류한다. 478봉에는 지형 측정의 기준이 되는 삼각점이 있지만 봉우리 자체는 초라하다. 좁고 잡목만 가득해 전망이 전혀 트이지 않는다. 서둘러 567봉을 향한다. 이 봉우리는 대왕산으로 착각하기 쉽다. 대왕산이 이 봉우리 뒤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대왕산은 이 봉우리를 거쳐 10분가량 더 전진해야 한다.

드디어 대왕산 정상. 꼭대기의 초라한 모습은 어마어마한 산 이름 때문에 잔뜩 부풀었던 기대를 일거에 배신한다. 경산시가 세운 정상석이 아니라면 이곳이 정상인지도 모를 지경이다. 누가 파낸 듯 움푹한데다 관리가 안 돼 잠깐 앉아 쉴 마음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어수선하다. 간벌이 안 돼 그 좋다는 주변 조망도 완전 깜깜이다.

산행 시작 전 만났던 갈지리 어르신들이 "정상에 서면 대구까지 보일 만큼 높고 전망 좋아 옛날 학생들의 단골 소풍 장소였다"고 하더니만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정상석도 엉터리다. 경산시장 이름으로 된 정상석은 641.2m라 새겼으나 국토지리정보원이 발행한 지도에는 606m로 표기돼 있다. 641m봉은 대왕산에서 30여 분 더 가야 도달한다.

엉터리 정상석과 초라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대왕산은 현지 사람들에게는 생활과 역사의 중심지였던 모양이다. 산허리에는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7개 절터가 있고 정상에 봉수대도 있었다고 한다. 아마 정상석 앞에 있는 돌무더기가 봉화의 흔적이지 싶다. 또 일제강점기 때 남산면 면민들이 이 대왕산을 근거지로 항일 죽창 의거를 벌였다. 일부 향토 사학자들은 대왕산 주변으로 여섯 개의 작은 부족 국가가 형성됐다고 주장하고 있기도 하다. 부족국가 형성과 항일 의거의 중심이었다고 하니 대왕산을 달리 생각하게 된다.

대왕산을 뒤로 하고 598봉을 지나 641봉에 도착한다. 641봉은 오늘 산행 구간 중 가장 중요한 갈림길이다. 하지만 변변한 이정표도 하나 없어 지도를 확인하고 또 확인한 뒤 길을 잡아야 한다. 오른쪽 급격한 내리막을 따라 내려가면 천주산으로 가는 길이다. 비슬지맥은 641봉에서 천주산 방면으로 흐른다. 왼쪽 완만한 내리막 능선은 큰골산과 학일산 방면으로 가는 길이다. 비슬지맥에서 벗어나 일단 학일산 방면으로 방향을 잡는다.

잠시 내리막이던 능선은 648봉을 앞두고 다시 가팔라진다. 이 봉우리를 지나면 이름 없는 묘지 2기와 청도 김씨 묘를 지나 돈치재에 이를 때까지 계속 내리막 능선을 걷게 된다. 산행 말미의 중요한 갈림길인 돈치재는 지명의 유래를 놓고 혼란이 많다. 국가지리정보원의 지도에서는 돈치재로 표기하고 있지만 현지 사람들은 예외 없이 '도치재'라 부르고 있다. '도치재'라는 원래 이름을 잘못 표기한 것이 공식 지명으로 굳어진 것 아닌가 추측할 뿐이다.

 

 

아무튼 돈치재에는 오늘 산행 구간에서 유일한 이정표를 만난다. 직진해 3㎞를 더 전진하면 학일산이고 오른쪽으로 꺾어 내려가면 상평이다. '산&산'은 왼쪽으로 꺾어 김전리 방면으로 내려간다. 돈치재에서 20분가량 하산하면 오늘 산행 구간 중 가장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는 김전저수지를 지나게 된다. 저수지 가로 물에 반쯤 잠긴 수양버들이 청송의 주산지를 연상케 한다. 저수지 오른쪽 억새 길을 따라 걷다보면 지나왔던 능선이 부드럽게 굽이치는 모습을 구경할 수 있다.


김전저수지에서 날머리인 김전2리 입구까지는 마을길을 따라 15분 소요.

 

하산길 말미에서 만나는 김전저수지는 청송의 주산지를 연상시킬 정도로 아름답다. 저수지 앞에서는 또 부드럽게 넘실거리는 능선들을 한눈에 올려다볼 수 있다.

 

/ 라이프레저부 051-461-4164. 최찬락 답사대장 010-3740-9323. 글·사진=박진국 기자

 

날머리인 김전2리에는 식당이 몇 개 있었으나 모두 임시 휴업 중이다. 청도읍으로 나가거나 경산시로 나가야 제대로 된 식당을 만날 수 있다. 청도역 부근에 10여 군데의 추어탕 집이 있다. 이 중 '의성식당'(054-371-2349)과 '삼양식당'(054-371-5354), '고향추어탕'(054-371-0282)이 잘 알려진 집이다. 세 곳 모두 1급 수질인 청도천과 동창천에서 잡은 미꾸라지를 쓴다고 한다. 1인분 6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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