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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제주시

서귀포 조천읍-성판악~한라산~관음사코스

by 구석구석 2014. 4.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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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산행의 묘미는 눈 쌓인 등산로를 푹신푹신 걷는 데 있다. 나뭇가지에 핀 눈꽃을 후두두 털어내는 재미도 쏠쏠하다. 봄 산행이라고 즐겁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막바지에 이른 겨울 산행의 여운을 즐기기 위해 제주도 한라산을 찾았다. 장갑, 털모자, 방한복, 아이젠, 스틱 등의 장비는 필수다.

3월의 제주도가 벌써 봄을 맞이하고 있을 때 한라산은 아직 겨울이었다. 멀리 바라보이는 산등선은 백발노인처럼 흰 눈을 이고 있었다. 품을 파고들자 나무들이 거의 다 헐벗고 있었고, 날씨도 초겨울이라 하면 딱 좋았다.

 

 


아직 눈 녹지 않은 등산로 겨울산행 여운 즐길 수 있어

성판악 코스 가장 평탄하지만 속밭대피소 이후 곳곳 급경사

눈 속에 펼쳐진 백록담 하산길 관음사 코스도 장관



요즘 한라산 등반길은 정상을 다녀올 수 있는 성판악 코스(9.6㎞), 관음사 코스(8.7㎞)가 있다. 어리목 코스(4.7㎞), 영실 코스(3.7㎞)는 해발 1,700m의 윗세오름까지만 갈 수 있다. 이번 산행의 경로는 성판악 주차장~사라오름 갈림길~진달래밭 대피소~백록담~삼각봉 대피소~관음사 휴게소를 거쳤다. 총 18.3㎞로 '쉬멍놀멍' 가다보니 9시간 40분이 걸렸다.

 

 성판악 코스는 한라산을 오르는 길 중 가장 평탄한 길이다. 하지만 백록담 정상까지 거리는 9.6㎞로 가장 길다. 정상을 앞둔 진달래밭 대피소를 낮 12시 30분까지 통과해야 정상에 갈 수 있기 때문에 아침 일찍 등산을 시작해야 한다.

등반은 성널오름에서 약 2㎞ 떨어진 성판악 주차장에서 출발했다. 해발 750m에 위치한 성판악 주차장은 한라산을 횡단하는 516도로의 중간 지점에 있다. 듣던 대로 등산로는 평탄하다. 사람들의 발에 밟혀 녹다 얼다를 반복한 눈길을 따라 출발했다. 등산로를 벗어나면 아직까지 1~2m씩 눈이 쌓여 무릎까지 푹푹 빠진다.

원래 성판악(城板岳)은 한라산 동쪽 사면에서 가장 규모가 큰 성널오름을 일컫는 한자 표기다. 성널오름의 수직 암벽이 널빤지를 쌓아 만든 성벽처럼 보인다고 해서 '성널'로 불렸고, 한자로는 성판(城板)으로 표기됐다.

들머리에서 약 3㎞ 지점에 이르자 굴거리나무가 겨울 추위를 이기기 위해 잎을 축 늘어뜨리고 있다. 반면 꽝꽝나무는 눈 속에서도 꼿꼿했다. 500m가량을 더 전진하자 갑자기 푸른 기운이 훅하고 엄습한다. 1970년대 산림녹화 사업으로 제주 전 지역에 심었다는 삼나무 숲이다. 바늘처럼 뾰족한 푸른색 잎이 흰 눈과 대비돼 더욱 청량하다.

삼나무 숲이 내뿜는 피톤치드를 만끽하며 10분을 채 못 걸었는데 속밭 대피소가 나온다. 산행 들머리로부터 4.1㎞ 떨어진 해발 1,140m 지점인데 1시간 30여 분 만에 도착했다. 그 만큼 등산로가 평탄했다는 증거일 터. 하지만 여기서부터 정상까지는 본격 등반을 각오해야 한다. 진달래꽃 대피소까지 화장실이 없으므로 잠시 쉬어가는 것이 좋다.

속밭 대피소에서 1.7㎞ 구간은 경사가 있는 등산로다. 곧 갈림길을 만난다. 왼쪽으로 길을 잡으면 사라오름으로 향하는 길이므로 직진해야 한다. 이때부터는 제법 급경사 길이다. 숲에 가려진 깔딱고개도 넘어야 한다. 진짜 숨이 넘어갈 듯 힘들다. 벌써 정상을 다녀온 하산객들이 "5분만 가면 진달래꽃 대피소"라며 뻔한 거짓말로 격려한다.

40분가량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다 보니 어느새 시야가 확 트이면서 진달래밭 대피소가 나온다. 해발 1,540m. 모이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구름 사이로 한라산 정상이 드러나 보인다. 옛날 이곳에는 털진달래가 군락을 이뤄 장관을 이뤘다고 한다. 지금은 조릿대만 눈에 띄는 정도다.

이곳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비닐 속에 물만 부으면 발열제가 물을 끓이고 쌀을 익히는 전투식량이다. 생존을 위해 개발됐으니 맛까지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일부 속없는 주부 사원들은 '현대 첨단 기술의 총아', '집에서도 해먹어야겠다'며 호들갑이다. 맞벌이 하면서 살림까지 챙기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진달래밭 대피소를 떠나 해발 1,700m 지점에 들어서니 구상나무 군락지가 모습을 드러낸다. '살아서 백 년, 죽어서 백 년'이라는 구상나무들이 눈을 뒤집어 쓴 채 설국을 만들었다. 맑은 날에는 여기서 한라산 동부지역의 오름 군락도 조망할 수 있다고 한다.

 

부산은행 알파 리더 원정대가 한라산 정상을 눈 앞에 두고 마지막 오르막을 오르고 있다.

 

조금 더 오르니 마지막 쉼터 난간이 있는 해발 1,800m 지점. 정상이 코앞이다. '새벽이 오기 전 가장 어둡다'고 했던가? 정상을 앞둔 지점이라 경사가 심하다. 한 걸음 뗄 때마다 발이 더 무거워진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 잠시 뒤를 돌아보니, 한라산을 도넛처럼 둘러싼 구름이 그야말로 장관이다. 정상만을 목표로 무작정 걷기만 하던 토끼 같은 등산객들은 이 풍광을 놓쳤음에 틀림없다.

백록담으로 향하는 마지막 경사면을 타고 오른다. 정상이 코앞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바쁘지만 몸이 따라 주지 않는다. 느릿느릿 10여 분을 걸어, 드디어 백록담에 닿았다. 해발 1,950m.

 

한라산 정상 부근. 검은색 현무암과 흰눈, 푸른 관목이 그림 처럼 펼쳐져 있다.

 

흰사슴을 탄 신선이 사는 곳이라는 전설답게 백록담은 눈을 뒤집어쓰고 좌우로 펼쳐졌다. 화산 폭발로 형성된 분화구 능선 둘레만 대략 1.7㎞, 화구호의 깊이 110m다.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신령스러운 곳이라 하여 영주산(瀛州山)이라고도 불렸던 한라산, 제주의 모든 전설을 머금고 있는 백록담 너머 장구목과 삼각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눈물 나게 아름답다.

등반길이 한라산 등산로 중 가장 평탄한 길이었다면 관음사 코스를 따라 내려가는 하산길은 험하다. 한라산 등반로 중 가장 먼저 개발된 관음사 코스는 삼각봉은 물론 눈이 녹지 않은 한라산 북사면의 풍광을 즐길 수 있다. 산봉우리와 골짜기가 교차하는 하산 길의 풍광은 백록담을 떠나는 아쉬움을 보상하고도 남는다.

장구목을 스쳐지나 헬리콥터장을 지나고 옛 용진각 대피소까지 아주 가파른 절벽을 따라 내려가게 된다. 이 구간이 관음사 등반코스 가운데서 겨울철 가장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 양쪽 밧줄을 잡고 아이젠을 찼다고 하더라도 미끄러지기 일쑤다.

 

옛 용진각 대피소 인근에 설치된 현수교가 눈 덮힌 계곡을 가로지르고 있다.

옛 용진각 대피소에서 왼편으로 바라보면 마치 왕관을 쓰고 있는 듯한 바위들이 펼쳐진다. 왕관릉이다. 이곳은 누구를 세워, 어느 방면으로 사진을 찍어도 그림이 된다.

용진각 대피소 앞 현수교에서 15분가량을 전진하면 삼각봉 대피소다. 삼각봉 대피소를 지나면 왜 이런 이름이 붙었는지 저절로 알 수 있다. 대피소 지붕 뒤로 솟은 봉우리가 말 그대로 삼각형이다.

삼각봉 대피소를 지나 관음사 코스 종착점인 휴게소까지 대략 2시간가량 걸린다. 마지막 남은 체력을 쥐어짜야 한다. 다행인 것은 여기서부터는 길이 평탄하다는 점이다.

/ 부산일보 라이프레저부 051-461-4164. 박진국 기자

 

한라산 정상을 등반하려면 늦어도 오전 9시 30분에는 성판악에서 산행을 시작해야 한다. 당일 산행을 계획한다면 넉넉잡아 오전 8시 30분까지는 제주국제공항에 도착할 수 있도록 일정을 조정해야 한다. 에어부산은 오전 6시 50분 김해국제공항을 출발해 7시 40분 제주에 도착하는 항공편을 매일 운항하고 있다. 대한항공도 오전 7시 30분에 출발해 8시 25분에 도착하는 항공편을 매일 운항하고 있다.

 

제주공항에서 성판악 주차장까지는 택시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요금은 2만원 안팎이다. 원점회귀 코스가 아니기 때문에 렌터카는 불편하다. 버스를 이용하려면 일단 택시를 타고 제주종합터미널(064-753-1153)로 간다. 요금은 3천 원 안팎이고 5분 정도 걸린다. 제주종합터미널에서 516도로 노선버스를 타고 40분 정도 달리면 성판악 주차장에 도착한다. 버스는 오전 6시부터 10~15분 간격으로 운행되며 요금은 1천500원이다.

 

산행 종점인 관음사 휴게소에서는 노선버스가 없다. 콜택시(제주 VIP콜 택시·064-713-8259)를 타는 수밖에 없다. 제주공항까지 요금은 1만 5천 원 안팎.

제주국제공항에서 부산으로 돌아오는 비행기는 오후 5시 15분부터 20~30분 간격으로 운행된다. 마지막 비행기는 오후 10시 55분에 제주를 출발한다.

 




음 식 점

 

공항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토끼와 거북이'(064-713-4444·제주시 용담3동 2359의 2) 식당에서 제주도 음식의 모든 것을 맛볼 수 있다. KBS 인기 예능 프로그램인 '1박2일'에 소개 돼 더욱 유명한 이 식당에서 생선회, 전복회, 갈치회와 돔베고기, 전복구이, 갈치구이, 고등어조림 등 다양한 제주 음식을 맛 볼 수 있다. 4인 기준으로 9만, 11만, 15만 원대의 상차림이 있다. 제주의 풍성한 맛을 모두 음미하고 싶다면 코스요리(4인기준·19만~24만원)를 시키면 된다. 맛은 입구에 걸린 이승기의 표정이 보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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