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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경상북도

안동 법흥동 임청각

by 구석구석 2014.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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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주 이상룡선생의 임청각(臨淸閣) 054-853-3455 www.imcheonggak.com

임청각은 안동시 법흥동에 있는 조선 중기에 지어진 고성이씨종택의 건물로 1963년 1월 21일 보물 제182호로 지정되었다. 이 건물은 조선 세종(世宗:재위 1418∼1450) 때 좌의정을 지낸 이원(李原:1368∼1429)의 여섯째 아들 영산현감 이증(李增)이 안동 산수의 아름다움을 좋아하여 정착하였는데 그의 셋째 아들 형조좌랑 이명이 세운 별당형 정자이다. 목조건물로는 봉정사 극락전과 함께 임진왜란을 겪어 온 오래된 건물이다.

 ‘임청각’이라는 당호는 도연명의 귀거래사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조선 중기(1515년 건립) 때 형조좌랑 李洛(이락)이 건립한 臨淸閣은 「봉정사 극락전」, 「부석사 무량수전」과 함께 임진왜란을 겪은 99칸의 목조기와집이다.월간조선

대청에는 조선 중기의 문신인 이현보·이항복 등 제현의 시판이 걸려 있으며, 임청각의 현판은 이황의 친필이다. 평면이 ‘丁’자형의 누각으로 된 팔작지붕의 별당 건물로 대청은 정면 2칸, 측면 2칸이다. 남향으로 세웠고 서쪽에 접속하여 ‘丁’자형으로 온돌방을 부설하였는데, 그 내부는 4개의 방으로 구분되어 있다.

건물 주위에는 쪽마루를 돌려서 난간을 세웠고, 두 군데의 돌층계를 이용하여 출입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임청각 서쪽에 있는 본채는 전체 99칸의 집이었으나 일제시대 중앙선 철로의 건설로 인해 낙동강변쪽의 대문채 등이 사라지고 현재 50여 칸만 남아있다.

본채는 전면 아래서부터 동서 길이 12칸의 행랑채와 그 후면에 다시 같은 길이를 이룬 두채가 병행되는데 제일 뒤 건물의 중앙에 대청을 두었으며 그 전면 좌우에는 앞 뒤채를 연결하는 방이 있어서 안마당은 세 구역으로 구분되었다. 현재 대문으로 남아있는 곳은 옛 중문이었으며 바로보이는 사랑방이 임시정부 초대국무령이었던 석주 이상용선생이 태어난 방이다.

석주(石洲) 이상룡(李想龍, 1858∼1932)선생은 본관은 고성으로 어릴 때 이름은 상희, 호는 석주이며, 중국으로 망명한 이후 상룡으로 개명하였다. 일찍이 서산 김흥락 문하에 들어가서 학문을 익히다가 일제가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을미사변을 일으키자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책을 덮고 구국 의병활동에 나섰다가 종국에는 중국에서 손문정부를 도와 활동하며 이름을 바꾸게 되었다.

자료 : 안동뉴스

君子亭으로 들어가는 입구/월간조선
臨淸閣에서 가장 아름다운 君子亭

 

君子亭은 양반가의 별당형 정자 건축의 전형을 보여 주고 있는 건물로, 정자 옆에 蓮池를 조성하여 군자를 표상하는 연꽃을 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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