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시 상아동과 성곡동 일원 안동호 하류에 달구경에 적합한 다리가 있다. 다리 이름도 '달빛이 비치는 다리'라는 뜻의 '월영교(月映橋)'다. 낙동강을 감싸듯 하는 산세와 안동댐으로 이뤄진 울타리 같은 지형은 밤하늘에 뜬 달을 가슴 속에 파고 들게 하기에 충분하다. 다리 이름은 유난히 달과 연관이 많은 안동댐 유역의 지명 등을 고려해, 주민 공모를 통해 출품된 322점 중에서 선정됐다. 안동댐 유역은 옛날부터 '달골(月谷)'로 불렸으며, 다리 건너 '엄달골'과 연결된다. 또한 산 중턱에 옛날 선비들이 시를 읊던 '월영대(月映臺)'가 옮겨져 있다.
이 다리는 바닥과 난간을 나무로 만든 목책 인도교다. 폭 3.6m, 길이 387m로 국내에서는 가장 긴 목책교다. 다리 중앙에는 팔각형 정자인 '월영정(月映亭)'이 있다. 동절기를 제외하고 매일 정오, 오후 1시, 3시, 5시, 7시, 9시에 20분씩 분수가 가동돼 볼거리를 제공한다. 추석연휴 달구경에 나선 여행객도 시간을 잘 맞추면 분수를 볼 수 있다.
월영교는 달을 소재로 절묘한 자연풍광을 드러내는 조형물이지만, 420년전 안동에 살았던 이응태 부부의 아름답고 숭고한 사랑을 후세에 전하고 있다. 앓고 있는 남편을 위해 머리카락을 뽑아 한 켤레의 미투리를 지은 지어미의 애절한 사랑을 기념하고자 다리를 미투리 모양으로 만들었다.
이응태 부부의 사연은 1998년 안동시 정하동 택지개발지구 현장의 한 무덤 속에서 미라와 함께 한글 편지가 발견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원이 아버님께'로 시작되는 이 편지는 원이 엄마가 남편을 낫게 하기 위해 자신의 머리카락과 삼 줄기로 미투리를 삼는 등 온갖 정성을 다했으나, 끝내 어린 아들과 유복자를 두고 일찍 세상을 뜨자 원망스럽고도 안타까운 마음과 그립고 사모하는 정을 표현하고 있다. 이 편지는 미투리와 의복 등 다른 출토유물과 함께 안동대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원이 엄마의 사랑을 형상화한 '안동 아가페상'은 대구지검 안동지청 앞에 세워져 있으며 국악가요와 소설, 현대무용으로 재탄생하기도 했다.
월영교에서는 몇가지 주의해야 할 사항이 있다. 분수가 가동될 때 바람이 불면 옷과 소지품이 젖을 우려가 있으며, 난간에 기대면 송진이 묻어날 수 있다. 하이힐을 신은 여성은 뒷굽이 교량바닥 나무 사이에 끼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달구경에 앞서 안동댐 주변을 둘러보려면 집에서 2시간 정도 먼저 나서서 날이 밝을 때 도착하면 된다. 월영교 건너편에 있는 민속촌과 KBS 드라마 촬영장, 민속박물관, 석빙고 등을 둘러본 뒤 안동댐과 KBS 해상촬영장을 살펴볼 수 있다.
안동 시내 동쪽의 안동댐 주변에는 안동 민속촌과 안동 민속박물관, 이육사 시비, 드라마 태조 왕건 촬영장, 안동호 등이 몰려 있어, 제대로 돌아 보자면 한나절은 족히 걸린다. 안동댐 보조댐 부근에서 강 건너편을 바라 보면 언덕배기에 초가집이 드문드문 들어 앉아 있다. 이 곳이 바로 안동댐을 조성하면서 수몰된 지역의 가옥 몇 채를 옮겨와 야외박물관으로 만든 민속 경관지이다.
야외박물관입구에는 두 개의 장승이 반기고 있고 이어서 이고장이 낳은 문인 이육사 선생의 시비 앞으로 발걸음이 옮겨진다. 시비에는 그의 대표작 '광야'가 새겨져 있다.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중략)....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본명이 원록인 이육사 시인은 1904년 도산면 원천동에서 출생했다. 북경 사관학교에 입학 후 귀국,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에 연루되어 대구 형무소에서 3년간 옥고를 치렀다. 그 때의 수인번호 64를 따서 호를 '육사'라 지었다고 한다. 육사시비 앞에는 그의 일생을 간략히 기술한 다음과 같은 안내문이 세워져 있어 옷깃을 여미게 한다.
"일제에 항거하는 강렬한 민족 의식을 서정적으로 노래하되 상징적 수법과 세련된 언어를 구사하여 청초하고 고고한 기풍을 지닌 시가 많다. 1942년 북경으로 건너가 독립 운동에 힘쓰다가 1944년 북경감옥에서 옥사했다." 육사의 시비는 이 곳 말고도 한군데 더 있다. 안동시 도산면 토계리의 퇴계묘소를 지나 이육사 생가터에 가면 '청포도' 시비가 세워져있다.
육사시비 뒤편의 마을 언덕길을 넘어가면, 드라마 '태조 왕건' 촬영장을 만날 수 있다. 문경, 제천에 이어 안동에도 이 드라마 촬영장이 생겨난 데에는 이 지방의 역사를 살펴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왕건과 견훤이 힘겨루기를 할 당시 김선평, 권행, 장길 등 안동의 호족들이 왕건의 편을 들어 병산전투에서 고려군이 이기게 했다는 것이다. 현재 이 곳에는 고려시대의 관아, 옥사, 민가 등 20여 채의 건물이 들어서 있다.
성곡동 784-1 민속박물관 054-821-0649
이 박물관은 총 171,630㎡의 부지에 옥내박물관과 야외박물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옥내 박물관에는 안동지방 문화의 특징인 유교문화, 특히 관혼상제를 중점적으로 전시하고, 아울러 이 지방 특유의 민속놀이를 모형전시하고 있으며 영상관람을 위하여 시청각실과 영상실도 갖추고 있다.
야외박물관에는 보물인 석빙고를 비롯하여 안동댐 건설시 수몰지역에 산재하던 전통 고가옥 등 20여점의 중요 생활문화 자료들을 이건 전시하고 있다. 안동문화권의 민속문화를 조사·연구·보존·전시함으로써 국민의 사회교육의 장과 시민의 휴식공간으로 제공되며 올바른 지방문화의 이해를 돕고자 건립된 공공시설이다.
안동의 유교문화와 독특한 생활문화의 주제로 나뉜 옥내박물관은 평생의례 주제로 보면 제1전시실에는 아기점지부터 어린이 성장까지 전시되어 있고, 제2전시실에는 관례부터 제례까지 전시되어 있다.
생활문화 측면에서 보면 제1전시실에는 서민들의 생활문화가 전시되어 있고 제2전시실에는 양반들의 생활문화가 전시되어 있다. 그리고 안동문화권의 민속놀이는 제3전시실에 모형으로 연출 전시되어 있다.
성곡동 산225-1 안동석빙고 보물 제305호 / 1963년 1월 21일 지정
석빙고는 얼음을 저장하기 위해 돌을 쌓아 만든 창고이다. 특히 이 석빙고는 낙동강에서 많이 잡히는 은어를 국왕에게 올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조선 영조 13년 (1737)에 지어졌다. 형태는 동·서로 흐르는 낙동강 기슭의 넓은 땅에 강줄기를 향하여 남북으로 길게 누워 있으며, 입구는 특이하게 북쪽에 옆으로 내었다.
안으로 계단을 따라 들어가면 밑바닥은 경사져 있으며, 중앙에는 물이 강으로 흘러가도록 만든 배수로가 있다. 천장은 길고 크게 다듬은 돌들을 무지개 모양으로 틀어올린 4개의 홍예(虹霓)를 세워 무게를 지탱하도록 하고, 각 홍예 사이는 긴 돌들을 가로로 채워 마무리하였다. 천장 곳곳에 환기구멍을 두었는데, 이는 안의 기온을 조절하기 위하여 설치한 것으로 바깥까지 연결하였다. 전체적으로 규모는 큰 편은 아니나 보존상태는 양호하다. 특히 석빙고는 그 위치가 매우 중요한데, 안동댐 건설로 수몰될 위기에 처하여 지금은 본래의 위치보다 높은 곳으로 옮겨왔다. 이전에는 바로 옆에 강이 흘러서 얼음을 운반하기가 아주 쉬웠을 것으로 보인다.
민속촌내 위치한 다래원 054-821-4079
천연염색 체험장과 월영교(나무다리) 걷기체험, 다례접빈 체험장, 광풍정 정자체험, 민속박물관 등 테마관람이 가능하다. 대지 1983.48m²(600평), 건평 330.58m²(100평)의 고가이다.
임진왜란을 마무리 지은 明나라 장수 천만리선생 동산서원(東山書院)
안동댐 민속박물관 앞 주차장을 지나서 빈집으로 남아있는 민속촌 언덕길을 오르면 ‘왕건’ 촬영장이 있고 그곳을 지나가면 최근에 새로이 중건한 충장공(忠莊公) 사암(思庵) 천만리(千萬里)선생을 모신 동산서원(東山書院)이 있다.
동산서원 가는 길은 헛제사밥 집들이 즐비하게 늘어 선 노변과 빈집으로 을씨년스런 촬영세트들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지만 행정단체는 이곳을 지역의 관광명소로 줄 곳 홍보를 하고 있다. 동산서원은 임진왜란을 주제로 한 ‘불멸의 이순신’에 나오는 명나라에서 조선으로 출정한 천만리 장군의 위패를 모신 서원 겸 사당이다.
천만리장군은 선조 때 명나라에서 귀화한 영양천씨의 중시조로 자는 원지. 호는 사암으로 임란 후 선조로부터 시호 충장(忠莊)을 받았다. 본래 노나라의 영양사람으로 서촉 종북산 천고봉 만인암 밑에 살았다 하여 성을 천씨로 하였다 한다.
아버지는 종악이며, 어머니는 병부시랑 전탁의 딸이다. 9세에 외삼촌 전륜에게 의탁되어 공부하였다. 1571년 무과에 급제하여 1575에 총절사가 되어 몽고군을 격퇴하였다. 그 공으로 내직인 내위 진무사가 되었으나 남의 참소를 입어 양릉에 귀양살이 하였다.
귀양에 풀려나 태청전수위사로 있을 때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선이 명나라에 원병을 요청하였는데, 이때 이여송휘하의 영량사 겸 총독장으로 그의 아들 상 ·희와 함께 조선에 출정하여 군량 수송 업무를 관장하였는데, 평양 ·곽산 등지의 싸움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1597년 정유재란 때도 양호 ·마귀 등과 함께 직산 ·울산 등지에서 전공을 세우고, 왜란이 끝나자 1600년(선조 33년) 8월 만세덕, 이승훈은 귀국하였으나 선생은 따라가지 않고 조선에 머물러 살았다. 선조는 그의 전공을 생각하여 선생을 화산군에 봉하고 전 30결을 급복하였으며 그의 아들 상도 뒤에 한성윤에 승진시켰다. 저서로는 시 44수와 문 2편이 <<사암천문집>>에 전한다.
서원은 원래 안동시 용상동 옛 경상섬유 터에 있었으나 도시구획사업으로 2002년에 이곳 성곡동으로 이건 되었다. 깨끗이 단장되어 잘 보존된 건물들과 조경석 곁에 흐드러지게 핀 진달래꽃이 잘 조화를 이룬 이 서원은 1961년 3월에 사림의 공의로 발의하여 용상동에 처음 건립하였다가 이 후 이곳으로 옮겨진 서원의 건물들은 자연의 지형을 이용해 삼층으로 구분, 중앙 층에 동산서원 현판이 걸린 강당건물인 상의당이 자리 잡고 있고 그 뒤로 한 층을 높여 사당인 충장사가 있으며 제일 아래쪽에 유정문이라고 이름이 붙은 서원의 대문 양쪽에 동재와 서재로 볼 수 있는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서원의 본채인 상의당은 총10칸으로 양편으로 2칸씩의 온돌방이 있고 중앙은 대청마루로 구성되었고 하늘을 휘감은 전통 조선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그 위에 선생의 위패를 모신 충장사는 단청이 선명하게 그려진 맞배지붕의 합문을 지나 총 3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그리고 대문채 곁에 따로 지어진 동재는 1칸이고 서재는 2칸이며 맞배지붕이다.
1982년부터 헛제삿밥으로 명성을 쌓아온 집 헛제사밥 <까치구멍집>
주인이 직접 집에서 만들어 오는 청포묵을 비롯, 굴비.각종나물 무침.돔배기라 불리는 상어고기.쇠고기 산적.안동간고등어.각종 전요리를 선보이는 곳! 헛제삿밥은 옛 양반들이 밤참을 해먹을 때 기름 냄새 풍기는 게 미안해 '제사를 지낸다'는 핑계를 대고 상을 차려낸 게 시초라고 한다. 까치구멍집은 1982년부터 헛제삿밥으로 명성을 쌓아온 집이다.
주인 서정애(52)씨는 시어머니에게서 솜씨를 전수받았다. 제삿상 차림인 만큼 상에 오르는 요리 수만 20여가지. 주인 이씨가 직접 집에서 만들어 오는 청포묵을 비롯, 굴비.각종나물 무침.돔배기라 불리는 상어고기.쇠고기 산적.안동간고등어.각종 전요리. 명태로 우려낸 무태국 등 일일이 헤아리기도 쉽지 않다. 시내 법흥교차로에서 좌회전, 안동댐 가는 길에서 월령교 못미쳐 왼쪽에 있다.
상아동 513-2 맛50년헛제사밥 054)821-2944
유교의 고장인 안동에서 제사를 지내지 않고도 제삿밥을 먹는다는 뜻의 ‘헛제사밥’ 음식점은 매우 많다. 그중에서도 ‘맛 50년 헛제사밥’은 3대째 안동에서 헛제삿밥으로 가업을 잇고 있는 안동의 맛집이다.
아삭아삭하고 신선한 나물 반찬과 전체적으로 고춧가루가 들어가지 않은 반찬들은 담백한 맛을 자랑한다. 특히 반찬 하나하나에 정성을 기울인 흔적이 엿보여 나물 하나라도 쉽사리 지나칠 수 없다.
꼬들꼬들한 간고등어구이 또한 안동을 방문한 사람이라면 꼭 한 번 먹어봐야 하는 메뉴다.
- 안동에서 잘 만 한 곳
안동 시내에 들어오면 모텔이나 여관이 깨끗한 곳이 꽤 많이 있다. 안동파크관광호텔(054-859-1500), 하 회파크모텔(054-853-4006) 등이 있고, 고택체험을 원한다면 지례예술촌(054-822-2590)이나 수애당(054- 822-6661), 농암종택(054-843-1202) 등에 신청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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