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 서북산(738.5m)
고산준령 언저리에 있는 명산의 이름은 대개 유래가 있다. 하지만 서북산은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의 서북쪽에 있어서 이름이 붙었다. 작명치곤 심심하다. 헌데 서북산의 역사를 살펴보면 평범한 이름 이외에 기막힌 사연이 있다. 한국전쟁과 관련된 것인데 정상 부근에 가면 알 수 있다.
산행은 대평리 정류장~야반산(342m)~수리봉(561m)~서북산~편백숲~학동마을 회관 순서이다. 산행 기점과 종점이 다르지만, 종점에서 기점까지 도보로 40~50분 정도 걷겠다고 마음만 먹는다면 원점회귀 산행을 시도해도 괜찮겠다.
기점은 대평리 초등학교-대평마을을 발아래에 두고 오르막길을 탔다. 매서운 바람이 댓잎 속에 스며들었는지 대나무밭은 지날 때 사위가 푸근했다. 잠시 뒤 송전탑이 나오자 오른쪽으로 돌았다. 경사가 가파르고, 구비는 날랬다. 경사도가 45도는 넘는 듯했다. 이럴 땐 보폭을 줄이고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첫 번째 만나는 송전철탑부터 야반산까지의 경사는 아까보다 더 심하다. 좀 더 주의해야 한다. 한참을 경사와 씨름했다. 어느새 '
야반산
(夜半山)'에 올랐다. 산꼭대기에 올라도 어디가 정상인지 찾을 수가 없어 붙은 이름이란다. '야반도주'의 '야반(한밤중)'과 한자어가 같지만 뜻풀이는 달랐다.
야반산에서 400m 정도 평평한 등산로를 걸었다. 군데군데 깊게 파인 구덩이가 나타났다. 이 산 일대가 한국전쟁의 격전지라서 참호인 줄 알았다. 조금 뒤 '유해발굴장소'라는 게시판을 만났다. 한국전쟁 때 이곳에서 군인, 학도병들이 마산을 지키려다 수백 명이 전사했다. 유해는 50여 년 동안 땅에 묻혀 있었다. 지난 2007년 3월 제39보병사단이 20여 일간 유해 40구와 유품 1천여 점을 찾아냈다. 유해는 국립묘지에 안장됐다. 아직도 빛을 보지 못한 유해가 수두룩하다. 발굴작업은 사실상 중단됐다. 이 산 어딘가에 묻혀 있을 유해들을 위해 묵념하고 산행을 재촉했다.
평평한 능선을 따라 주변을 둘러봤다. 오른쪽에 평지산(491m), 베틀산(449m)이 둔중하게 서 있었다. 1㎞ 정도 걷자 수리봉 앞바위를 만났다. 건조할 때 가지가 오그라지고 습하면 다시 벌어지는 여러해살이풀인 '부처손'이 바위에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다. 바위가 앙칼져 조심해서 우회했다. 이 바위에서 광암해변과 진동면, 고성군을 쳐다봤다. 날이 좋아 거제도까지 시원하게 한눈에 들어왔다.
몇 개의 바위 봉우리를 오른 뒤 수리봉에 올랐다. 수리봉은 앞서 오른 다른 바위보다 전망이 별로라 그냥 지나쳤다. 수리봉에서 내려와 임도를 만났다. 임도를 타고 20여 분 정도 걸었다. 나무 정자가 나타났는데 주변이 쓰레기투성이였다. 등산객의 소행인 듯한데 눈살이 찌푸려졌다. 정자에서 오른쪽으로 틀었다. 송전철탑을 지나 부재(고개)를 넘었다. 예전에 영학리와 평암리, 백암마을을 연결하는 고개였다. 요즘은 사용하지 않는지 폐쇄되다시피 했다.
648봉에 올랐다. 여기서 서북산 정상까지는 320여m. 파편처럼 땅에 박힌 암석들을 쳐다봤다. 쓰러진 고목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정상을 눈앞에 뒀다. 낙엽길에 발이 푹푹 빠졌다. 등산로가 두서없이 나 있었는데, 흡사 공격을 위해 돌진하는 전투대형을 닮았다.
정상에서 만난 하늘은 짙은 푸른색이었다. 해가 서쪽으로 지는 형국이라 땅 빛은 황금색이었다. 정상에서 마산 앞바다와 진해만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내 고향 남쪽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로 시작하는 '가고파'가 생각났다.
'완물상지'에 빠질 무렵 정상 한쪽에 서 있는 '서북산 전적비'가 눈에 들어왔다. 서북산은 1950년 8월 낙동강 방어전투가 한창일 때 미 제25사단 제5연대가 주둔했다. 미군과 인민군은 19번의 고지를 빼앗고 뺏기는 격전을 치렀다. 결국 5연대는 마산을 거쳐 부산으로 가려던 인민군 6사단을 격퇴했고, 이로써 유엔군은 총반격 작전을 감행할 수 있었다.
이 전투에서 중대장 로버트 티몬스 대위와 장병 100여 명이 산화했다. 지난 1995년 12월 주한 미8군사령관 리처드 티몬스 중장과 국군 제39사단 장병과 주민들이 이 비를 세웠다. 티몬스 중장은 티몬스 대위의 아들이다. 죽은 아버지와 그를 만나러 온 아들. 티몬스 중장은 아버지가 바라봤을 서북산의 하늘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정상의 기쁨과 애도의 마음을 간직하며 하산길에 올랐다. 하산길은 마을 뒷산 약수터길처럼 푸근하고 평탄했다. 뒤를 돌아 서북산 정상을 쳐다보니 암담했다. 바위쉼터와 묘지를 통과해 아래로 내려갔다. 서북산-미천-봉화산 이정표를 만나 우회했다.
임도를 따라 1㎞를 걸었다. 울창한 편백 숲에 접어들었다. 이 산을 서너 차례 올랐다는 산행대장도 이 숲은 처음 본다고 했다. 산행대장은 '전남 장성의 축령산(620.5m) 편백 숲을 닮았다'고 놀라워했다. 편백은 피부병에 효과가 있고 심신을 안정시키는 '피톤치드'를 대량으로 발산한다. 30여 분 정도 편백 숲을 걸었다. 기분이 상쾌해 하산길 재미가 더해졌다.
편백 숲이 끝나자 다시 소나무 숲으로 들어섰다. 숲이 끝나는 지점에 잘 다듬어진 비석들이 대오를 갖추고 서 있었다. 청송 심 씨 정랑공파의 선영인 '숭조원'이었다. 숭조원 조성기 비문에는 '흩어진 영령을 이 숭조원에 봉안하였다. 조상님께서도 기뻐하실 것이요, 후손들에게도 많은 복록을 내릴 것'이라고 쓰여 있다. 숭조원에서 10분 정도 걸어 포장된 농로를 만났다. 오른쪽으로 걸어 학동마을 회관에 도착했다. 산행 종점이다. 모두 13.2㎞, 7시간 정도 걸렸다.
문의: 라이프레저부 051-461-4164. 홍성혁 산행대장 010-2242-6608. 글·사진=전대식 기자
영동마을 일대에는 먹을 데가 마땅치 않다. 시내버스나 자가용 승용차로 20여 분 정도 가면 진북면사무소 주변에 맛있는 집이 꽤 있다.
옥경이촌국수
(055-271-7005)는 여행객들이 자주 들르는 맛집으로 유명하다. 국물이 매콤하다. '보통' 2천500원에서 '특대' 3천500원까지 양껏 먹을 수 있다.
통큰순대
(055-271-9838)의 순대국밥(6천원)과 순대전골(8천원)도 추천한다.
공우정
(055-271-5133)의 메기탕(1인분 9천원) 제맛이다. 여럿이라면 메기찜(3만원)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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