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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대구광역시

대구 수성-만촌동 독무재 대구읍성

by 구석구석 2010.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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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촌동188-1 독무재

효목교에서 망우공원방향으로 고가도로 못가서 우측에 위치  

 

 

 

 

조선시대 선비 하시찬을 추모하기 위해 그의 제자들과 유림들이 세운 것이다. 하시찬은 정조 13년에 자신의 고향인 효목동에 독무암루란 재실을 지어 기거하면서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다. 


정면 3칸 측면 1.5칸 규모의 홑처마 맞배지붕 기와집으로 박공 양쪽에 태극을 그린 풍판을 설치하였다. 중앙에는 마루를 두고 그 좌우에 대칭으로 2칸 통칸의 온돌방을 배치하였다. 앞쪽에는 반 칸의 툇간을 두었고, 기둥머리 부분은 봉두고임으로 되어 있다.

 

만촌동 산50 화랑교옆 대구읍성 영남제일관문

대구와 영남의 대표적인 성문으로 영조 때 대구에 석성을 쌓으면서 만들어진 남문에 해당한다. 최초의 성은 선조때 평지에 토성을 쌓았으나 임진왜란 때 파괴되고 다시 140년이 지난 영조 때 새로이 석성을 축조한 것이다.

 


이 성에는 동은 진동문, 서는 달서문, 북은 흥북문이라 남문에는 영남 제일관의 편액을 달았다.
기존의 남문은 성벽의 일부인 석축기대를 세웠으며 규모는 하층의 정면 측면이 모두 세칸짜리이다. 현재의 영남제일관은 지난 1980년 기존의 남문을 수성구 만촌동 금호강변에 옛 모습을 그대로 살려 중건 한 것이다.

만촌동 산90 영영축성비

경상도 관찰사 겸 대구 도호부사인 민응수가 임진왜란으로 무너졌던 토성인 대구 읍성을 석성으로 축성하고 그 기념으로 세운 조선시대 영조 때에 석비이다.

 


비석덮개는 원래 없으며 비신(碑身)은 높이 259㎝, 폭 90㎝, 두께 44㎝이다. 읍성의 규모와 축성 상황을 기록하고 있다. 비문은 민응수가 짓고 글씨는 백상휘가 써서 1737년 2월에 대구 남문 밖 관덕정 터에 세웠는데 광무 10년 대구 읍성을 헐면서 옛 달성 군청 부근으로 옮겼는데, 1932년 대구 향교로 이전하여 보관해오다가 1980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만촌동 화랑공원  

 

 만촌동에 있는 도심 근린공원이다. 나무들이 많이 심어져 있어서 숲이 좋은 도심 공원이다. 테니스장, 배드민턴장, 게이트볼 장등의 다양한 운동시설도 있어서 체육공원 역할도 하고 있다. 지역 주민들의 휴식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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