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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추천 테마여행

기억이 숨은 보물섬 헌책방

by 구석구석 2009. 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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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 싸구려가 아니라 소장품이다

 

친구가 올해 초 생일선물로 준 책 '특집! 한창기'를 읽으며 회사원 이정규(29)씨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혁신적인 가로쓰기 잡지를 만들고 숨어 사는 장인들의 이야기를 사투리로 적은 '민중 자서전'과 이중환의 '택리지'를 본뜬 '한국의 발견'을 펴낸 굉장한 출판사가 있었다는 게 놀라웠다. 이 책들이 나오지 않는다고 생각하자 한편으론 마음이 쓰렸다.

 

▲ '이 많은 책 중에 나와 인연이 닿는 책은 어디 있을까.' 헌책을 사랑하는 이들은 낡은 책 사이에서 '내 짝'을 발견하는 짜릿함에 중독된다고 말한다. 서울 종로구 숭인동 동묘 부근 '영광서점'서 책을 고르고 있는 잡지사(Weekly Chosun) 편집 디자이너 한재연씨/유창우기자

 

"다른 시대에 태어나 '운명의 그녀'를 놓친 기분이랄까요. 제 취향에 꼭 맞는 책을 더 이상 만날 수 없다고 생각하자 너무 속상했죠. 그러다 결심했습니다. 책이 복간되기를 기다리느니 직접 찾아 나서자고요."

 

이씨는 올해 여름부터 헌책방을 돌며 '뿌리깊은 나무'에서 나온 책을 모으는 중이다. 잡지 63권 중 34권을 구했고 지난 달에는 동묘역 부근 한 헌책방에서 4만원을 주고 '한국의 발견' 한 벌(11권)을 샀다. "인기가 많아서 들어오자마자 나간다"는 '민중 자서전'을 구하기 위해선 다니는 서점마다 명함을 주며 "들어오는 대로 연락 달라"고 부탁도 한다.

 


주부 정은아(33)씨는 어린 시절 자신의 별명이었던 '도날드덕'이 나온 동화책만 사서 모은다. 한국은 물론 세계 어느 곳을 여행할 때도 반드시 벼룩시장이나 헌책방에 들러 도날드덕을 사온다. 정씨는 "어릴 때 기억이 나서 하나 둘 사 모으기 시작한 게 벌써 30권이 넘는다"며 "지난 주말 청계천 길가에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파는 동화책 사이에서 1988년 미국서 나온 12쪽짜리 그림책을 1000원에 파는 걸 발견했을 때 너무 신이 났다"고 했다. 이씨와 정씨는 요즘 늘고 있는 '책 사냥꾼' 중 하나다.

 

'저렴한 책'으로만 여겨졌던 헌책을 애장품, 혹은 수집품으로 여기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자신이 찾는 책을 '보물'이라고 부르면서 전국을 떠돌기를 불사한다. 시대적 가치나 희귀성에 의해 시장 가격이 매겨지는 골동품과 달리 헌책 마니아가 찾는 책의 가치는 100% 마음가짐에 의해 결정된다. 어느 집에서 이사가면서 저울로 무게를 달아 고물상에 헐값에 팔아버린 책이 누군가에겐 보물로 여겨지기도 한다.

 

▲ 인천 배다리 헌책 골목 '삼성서림'.

 

'클로버 문고'에서 나온 책을 열심히 찾아 다니는 동호회 '클로버 문고의 향수(클향)'에선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도와가며 책을 모은다. 7000명이 넘는 회원들은 공통 관심사인 '어린이 책'에 관한 정보를 날마다 빼곡하게 올린다.

 

전국 헌책방 일주와 고서(古書) 경매 참가도 마다하지 않는다. 김형배의 '똘이 장군' '로보트 태권브이 수중특공대', 신문수 '도깨비 감투', 허영만 '변칙 복서'…. 카페 이름에 들어간 '클로버 문고'는 어린이 잡지 '새소년' 100호 기념 '유리의 성'을 시작으로 어문각에서 1972~1982년 냈던 만화책들로 429권에 달한다. 이 카페의 한 회원은 고영준씨는 눈에 불을 켜고 헌책을 찾는 까닭을 '기억을 수집하는 즐거움 때문'이라고 표현했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께서 사주셨던 고우영의 '만화 삼국지'를 충남 공주의 한 헌책방에서 발견했을 때 돌아가신 할아버지께서 옆에 계신 것 같은 떨림을 느꼈어요. 새벽마다 할아버지와 커피 포트에 폭폭폭폭 물을 끓여 인삼차를 타 먹은 다음 삼국지를 함께 읽었거든요. 잊은 줄 알았던 기억들이 헌책방 책장 사이에서 부활하길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아 오래된 책 모으기를 멈출 수가 없네요."  조선닷컴 김신영기자

 

꼭꼭 숨어라, 그래도 찾아낸다

 

▲ (왼쪽부터)공주에서 찾은‘은빛 날개의 비밀’, 파주 아름다운 가게 헌책방 방명록, 부산 우리글방의‘요 요코믹스’단편집.'클향' 제공

 

'위 사람은 전기과 3개년의 전과정을 이수하였기로 본 졸업장을 수여함. 1990년 2월 14일. 성동기계공업고등학교장 최영식.'

 

영광서점 한 쪽에서 찾은 한 졸업앨범 책갈피에서 튀어나온 이 졸업장은 어쩌다 주인을 잃고 여기까지 흘러 들게 됐을까. 헌책방의 먼지 쌓인 책갈피 사이엔 책보다 더 귀한 생활 속 흔적이 가득해 책의 과거를 살포시 드러낸다.

 

'이 책(성문기본영어)으로 공부해 대성하여라''추운날…우리와 관계 하는 작은 것에서…'. 가장 흔히 발견되는 건 책 표지 안쪽에 쓰인 '격려의 글'이다. 학급문고 같은 학교 도서관에서 나온 책들엔 도서 카드가 끼어있을 때도 있다.

 

한 헌책방에서 발견한 윤동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엔 '독서윤독상황표' 카드가 붙어 있었다. '1학년 4반 59번', '5반 59번' '7반 59번'이라고 쓰인 카드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이 책을 돌려가며 읽었던 여고 '59번'들이 떠오른다. 동네 책방 알록달록한 책갈피, 책 사이에 껴 넣은 은행잎, 성경책에 정성스레 쳐놓은 형광펜 자국…. 책 속에 숨은 '사람의 흔적'이 느리게 걷는 헌책 사냥꾼들의 마음을 축여준다. 

 

 인천 배다리 헌책방골목

"고등학교 때 독어 참고서 사려고 배다리 헌책 골목을 처음 찾았다가 헌책의 매력에 빠졌어요. 사람들이 헌책을 외면해 헌책방이 하나 둘 사라지고, 심지어 거리를 잘라내는 산업도로까지 들어선다니 마음이 아프네요."


전국 헌책방을 돌며 책 '헌책방에서 보낸 1년' '모든 책은 헌책이다'를 낸 최종규(32)씨는 인천 배다리 헌책 골목과 함께 자라고 어른이 된 '배다리 사람' 중 하나다. 최씨는 "개발 논리에만 초점을 맞춰 인천 문화의 상징인 배다리 골목을 절반으로 뚝 자르다겠다는 정부를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인천시가 추진 중인 '신흥동 삼익아파트~동국제강 간 도로'는 지난 5월 주민대책위가 감사원에 '산업도로의 타당서에 대한 감사 청구'를 내며 잠시 공사가 중단된 상태다.

한때 헌책방 수십 개가 늘어서 있던 동인천역 부근 배다리 골목에 남아 있는 헌책방은 이제 여섯 개. 책방서 만난 손님들은 "30년 넘는 역사 덕에 책의 양과 질이 어디에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랑이 대단했다.

훌라후프사러 왔다가 문득 생각이나서 헌책방들 몇카트 찍어 봅니다


아벨서점(032-766-9523)은 배다리 헌책 골목의 '심장' 격이다. 서점 앞 게시판엔 배다리 골목에 관한 기사들이 촘촘히 붙어 있고 지난해 11월부턴 매월 한 번씩 시인을 초대해 무료로 '배다리 시 낭송회'를 갖는 사랑방 역할도 한다. 73년부터 배다리에서 책방을 운영해왔다는 주인 곽현숙(59)씨는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난 것 같은 흐뭇한 표정으로 달게 책을 사가는 이들을 볼 때 제일 기쁘다"고 했다. 일일이 깨끗이 닦아 책장에 장르별로 꽂은 책들이 단정하다.


한국전쟁 당시 함경도에서 내려와 책방을 차렸다는 삼성서림(032-762-1424) 이진규(79)씨는 '배다리 1세대'다. 약주 한잔 걸치고 있을 때도 많지만, 원하는 책을 말하면 산더미 같은 책 사이에서 3분도 안 걸려 정확히 책을 찾아준다. 그 옆 한미서적(032-773-8448)은 아버지로부터 책방을 물려 받은 '배다리 2세대'가 주인. 책방에 책이 없으면 인터넷을 검색해서라도 찾아주는 '친절 서비스'를 자랑한다. 최종규씨의 사진책 도서관 '함께살기 2(032-763-4636 ·10월 중순까지 임시 휴관)', 양조장을 개조한 문화 공간 '스페이스 빔(032-422-8630)' 등 배다리를 아끼는 젊은이들이 만든 작은 문화 공간들이 쇠락한 듯 보이는 골목에 생기를 더한다. 

조선닷컴 김신영기자

 

▲ ①인천 배다리 헌책 골목 아벨서점. 조선영상미디어 유창우 기자 canyou@chosun.com ②공주 동양서림의 정겨운 안내판. '클향' 제공 ③부산 보수동 헌책거리 풍경. 조선영상미디어 유창우 기자 ④동양서림에서 찾은 책‘소년의 마을’. '클향' 제공

 

충남 공주 동양서림 | 문 앞에서 여러 어르신과 장기판을 벌이던 60대 주인 아저씨의 모습이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주인이 빨간 잉크로 직접 써서 책꽂이에 붙인 '어린이 동화책 싸게 팝니다'라는 문구도 정겹다. 허영만 '야구타령', 51년도에 발간된 '아동문고' 등이 발걸음을 잡는다. 공주시 중학동 143-10(공주고교 앞), (041)855-5048

 

강원도 춘천 경춘서점 | 2층으로 된 헌책방은 얼핏 보면 '구조가 복잡하다'고 여겨질 정도로 빽빽하다. 비집고 들여다보면 탄성이 나오는 '보물'들이 눈에 띈다. 계몽사 '컬러학습대백과', 박수동 '오성과 한음' 등 전집류가 풍부하다. 강원도 춘천시 낙원동 30-8, (033)254-7234

 

대구 제일서점 | 동대구역 태평상가 맞은편, 남산동 남문시장 네거리 주변, 대구역 지하도 부근에 50년 넘은 헌책방이 약 20곳 남아 있다. 이 중 '동인 로터리' 부근 '제일서점'은 책이 굉장히 많아 계획한 시간을 훌쩍 넘겨 세 시간이나 둘러보았던 곳. 대구시 중구 동인동 86, (053)425-9470

 

부산 우리글방 | 부산 보수동 헌책 거리에 있는 '우리글방'은 부산에 세 개 매장을 가지고 있는 대형 서점. 30년 가까이 책방을 운영하고 있어 좋은 책 구하는 비법도 만만치 않다고. 창고에도 책이 많기 때문에 구하는 책이 있으면 주인에게 물어보자. 부산시 중구 보수동 책방골목, (051)241-3753

 

헌책방골목축제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헌책방들이 몰려 있는 부산 중구 보수동 책방골목에서 책을 주제로 한 축제가 책방골목번형회주최로 열린다.

축제에서는 특별전시행사로 고서전시회가 열리고 단돈 500원으로 책을 살 수 있는 ’500원 데이’, 7행시 짓기, 북아트 전시, 책방골목 사생대회, 퓨전 국악연주, 예술 독립영화 무료상영, 설치미술전, ’책과 스탬프와의 만남’ 등 다양한 행사가 진행된다.

 

부산 중구청 관계자는 “보수동 책방골목은 단순하게 책을 사고파는 상업적 공간이 아니라 책과 문화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곳”이라며 “책방골목을 동아대 부민 캠퍼스와 연계해 젊음과 낭만이 넘치는 문화예술의 거리로 조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은 1955년 책방골목번영회가 설립되면서부터 유명세를 탔으며 현재 50여개의 책방이 남아 있다.

 

 

충북 단양 새한서점 | 고생스런 여정이 전혀 아깝지 않은 독특한 헌책방. 서울 고려대 앞에 있었는데 주인이 "시골 공기 마시고 싶다"며 폐교가 된 한 초등학교를 헌책방으로 개조했다. 인터넷 책방(www.shbo ok.co.kr)도 운영한다. 충북 단양군 적성면 하리 59, (043)423-8444

 

서울 고구마 헌책방 | 지난해 6월 동호회가 정모를 가진 장소이기도 한, 서울에서 가장 큰 헌책방. 책 정보를 일일이 입력해가며 '헌책방의 인터넷화'를 주도한 책방으로도 꼽힌다. 서울시 성동구 금호2가 10-2, (02)2232-0406, www.goguma.co.kr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대양서점 | 부자(父子) 헌책방이다. 1매장은 아버지가, 2매장은 아들이 운영한다. 길창덕 화백이 즐겨 쓰던 '왕자파스'와 '파일럿 잉크'를 전시하는 등 예전의 문화를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박물관 분위기. 서울시 홍제동 330-116, 1매장 (02)394-2511·2매장 (02)394-4853, http://cafe.naver.com/daeyangbook

 

파주출판단지, 아름다운 가게 헌책방 '보물섬' | '아름다운 가게'에서 운영하는 헌책방. 기증받은 책들을 주로 팔아 가격이 저렴하다. 바깥에 있는 공원 '책이 있는 풍경'에서 책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어 좋다. 출판단지 안에 있는 덕에 각 출판사에서 기증한 깨끗한 책도 종종 만날 수 있다. 중고 LP도 판다. 경기도 파주시 교하읍 문발리 파주출판도시 524-3 아시아출판정보문화센터, (031)955-0077

 

대전 청양서점 | 동구청 주변 원동네거리 부근에 헌책방이 모여 있다. 청양서점 1층은 일반 서점, 2층은 근현대사 자료다. 2층은 항상 개방하지 않고 주인에게 얘기해야 하는데 "제자리에 갖다 놓지 않는 사람들 때문"이라고. 부탁해서 올라간 2층선 만화가 이현세의 대본소판 만화 '억세게 재수 없는 녀석들'이 눈에 번쩍 띄었다. 대전시 동구 원동 중앙시장 B동 40-1, (042)252-7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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