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자기한 기암들 조화가 아름다운 수락산
서울 노원구 상계동과 경기도 의정부시·남양주시 별내면에 걸쳐 있는 수락산(水落山·640.6m)은 아기자기한 기암들이 빚어내는 조화가 아름다운 산이다. 이웃한 불암산과 함께 서울에 고개를 돌린 형국이어서 조선 건국 당시 이성계는 ‘반역의 산’으로 부르기도 했다. 예전에는 근처의 북한산과 도봉산의 그늘에 가려 빛을 보지 못했으나 최근에는 세미 리지를 즐기는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완만한 슬랩 지대가 많아 초보자도 부담 없이 바위맛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수락이란 이름은 주능선상의 암봉이 장수가 목이 잘린 것처럼 보인다 해서 수락(首落)으로 했다는 설과 산 동쪽 내원암 일대 계곡에 바위가 벽을 둘러치고 있어 물이 굴러떨어지므로 수락(水落)이 되었다는 설이 전해진다. 한자 표기는 달라도 수려한 계곡과 기암의 모습에서 그 이름이 유래한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수락산 서쪽 석림사 계곡은 일찍이 삼각산 중흥사에서 공부하던 매월당 김시습(1435~1493년)이 1455년 수양대군이 단종을 내쫓고 왕위를 찬탈했다는 소식을 듣고 책을 모두 불살라 버린 후 정처 없는 유랑의 길을 떠나 첫 번째로 숨어들었던 곳이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서계 박세당(1629~1703년)은 김시습의 뜻을 따르고자 이곳에 청절사를 짓고 실학 연구와 후학을 가르치며 일생을 보냈다. 박세당의 너그럽고 후덕한 장자(長子)의 모습은 장자동·장재울이라는 지명으로 남아 전해지고 있다.
수락산 남서쪽에는 수락골(벽운동계곡)이 절경을 이룬다. 영조 때 영의정을 지낸 홍봉한이 이곳에 우우당(友于堂)을 짓고 당대의 석학들과 더불어 정치와 충효를 논했다. 남쪽 기슭에는 선조의 생부인 덕흥대원군의 묘역이 자리 잡고 있어 일명 덕릉이라 불린다. 그 원찰로 흥국사가 있고 서울 상계동에서 남양주시 별내면 덕송리로 넘어가는 고개를 덕릉고개라 부른다.
수락산 동쪽의 내원암은 정조의 적극적인 후원 아래 크게 번성했으며, 왕세자인 순조의 탄생 설화를 간직하고 있다. 또 남쪽 도솔봉 아래의 용굴암은 1882년 임오군란 당시 명성황후 민씨가 여주 지방으로 피신하면서 이곳에 들러 치성을 드린 것으로 유명하다.
현대에 들어와서는 천진무구한 천상병 시인이 의정부 방향의 수락산 하변에 살았다. 그는 계곡 언저리를 떠돌며 허구한 날 막걸리를 마셨다고 한다. 천상병의 무욕의 삶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귀천) 등의 주옥같은 절창을 낳았다.
수락골~정상~노원골 8.8km, 5시간
▲ 주능선에서 가장 특이한 모습을 자랑하는 하강바위. 일명 계란바위라고도 한다.
수락산은 7호선 마들역, 수락산역, 장암역, 4호선 당고개역에서 접근할 수 있다. 그 중 가장 많은 사람이 찾는 등산로는 수락산역을 기점으로 한 원점회귀 코스다. 이 길은 수락산에서 가장 암석미가 좋다는 깔딱고개~정상, 주능선 일대를 모두 둘러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또한 장암역을 들머리로 정상에 올랐다가 시원하게 주능선을 타고 용굴암과 학림사를 거쳐 당고개역으로 내려오는 길도 인기 코스다. 당고개역과 마들역은 등산로 입구까지 거리가 멀어 주로 하산 코스로 이용한다.
수락산역 일대는 우이동이나 도봉동처럼 일주일 내내 등산객이 북적거리고 이들을 위한 장비점과 음식점들이 가득하다. 1번 출구는 수락골, 3번 출구는 노원골로 이어진다. 1번 출구로 나와 100m쯤 가면 ‘염불사 1000m→’라고 쓴 이정표가 보인다. 그 오른쪽 골목길은 등산객들에게 김밥과 족발 등을 파는 노점과 포장마차들이 들어서 난전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이 길을 통과하면 수락골 입구다.
계곡 길을 따라 100m쯤 가면 덕성여대 생활관이 보이고 그 앞에 우우당을 알리는 간판이 서 있다. 우우당은 조선 영조 때 영의정을 지낸 홍봉한이 이곳 계곡 절경에 지은 별장이지만, 지금은 담장 너머로 쇠락한 건물만 볼 수 있다. 수락골의 옛 이름은 벽운동계곡으로 서울 근교에서 알아주는 명소였다. 홍봉한의 맏딸인 정조의 생모 혜경궁 홍씨도 어린 시절 이곳에서 서정성을 키워 훗날 <한중록>과 같은 문장을 남겼다고 한다.
우우당을 지나면 염불사가 나오는데, 등산로는 절 아래로 이어지며 본격적으로 계곡이 펼쳐진다. ‘쏴~’ 제법 물소리가 크다. 수락산은 바위산이라 나무가 많지 않지만, 계곡이 깊어 수량이 풍부한 편이다. 계곡 주변의 크고 넓은 너럭바위들에 산꾼들이 옹기종기 앉아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보기 좋다.
마지막 매점을 지나 신선교 목계단을 건너면 제법 길이 가팔라진다. 20분쯤 거친 돌길을 오르면 넓은 공터인 새광장이다. 이곳에서 길이 갈리는데, 깔딱고개로 가려면 왼쪽 길을 잡아야 한다. 오른쪽 길은 절터샘을 지나 도솔봉 근처 주능선으로 올라붙는다. 새광장은 주말 오후 1~4시쯤 나이 지긋한 아저씨의 주도로 노래자랑이 열린다. 누구나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를 수 있다.
새광장에서 깔딱고개까지는 20분쯤 걸리는데, 이름처럼 숨이 꼴딱 넘어가는 된비알이다. 이 길은 수락산 정상으로 가는 가장 짧은 길이라 오르내리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관절에 무리가 갈 수 있기에 하산길로는 추천하고 싶지 않다.
깔딱고개에서 정상까지는 철로프를 잡고 오르기에 스틱은 배낭에 넣는 것이 안전하다. 길은 험하지만 본격적으로 수락산의 아기자기한 암릉이 시작된다. 15분쯤 낑낑거리고 오르면 사람 크기의 손가락바위(독수리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손가락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보는 각도에 따라 남성의 상징처럼 보이기도 한다. 지나는 사람마다 기념사진을 찍고 바위를 만지며 즐거워한다.
다시 로프를 잡고 능선을 기어오르면 커다란 바위가 나온다. 생김새가 북한산 사모바위와 비슷한데, 능선에서 보면 마치 배낭처럼 보인다고 해서 배낭바위라고도 불린다. 바위 옆으로 난 목계단을 따라 오르면 철모바위가 있는 주능선 삼거리에 올라붙게 된다. 이곳은 수락산에서 가장 통행이 많은 곳으로 라면과 막걸리를 파는 간이매점이 있다. 여기에서 산길은 정상까지 갔다가 다시 삼거리로 돌아와 남쪽으로 이어진 주능선으로 따르게 된다. 순한 능선을 따르다 좁은 암릉 길을 오르면 곧바로 정상이다.
정상에는 약 3m 높이의 둥근 기암이 서 있고, 그 위에 태극기가 걸려 있다. 그 밑에 ‘수락산 주봉 637m’라고 새겨진 조그만 표지석이 있다. 수락산의 높이는 2005년 발행된 지형도부터 ‘640.6m’로 바뀌었다. 조망은 상상을 초월한다. 우선 동쪽으로 북한산에서 도봉산으로 이어진 능선이 거대한 장벽을 이룬다. 그리고 북쪽 의정부 방향과 북동쪽 가평의 산들이 그리는 첩첩 산세가 장관이다.
다시 삼거리로 돌아와 철모바위 앞에서 주능선을 따른다. 여기서 도솔봉까지 약 1.4km, 수락산이 자랑하는 아기자기한 암릉 길이다. 20분쯤 내려오면 거대한 바위 군락지를 만나는데, 이곳에 수락산 명물 바위들이 모여 있다. 코끼리바위 위에는 아기 코끼리가 올라앉아 있고, 그 앞에는 거대한 계란 모양의 하강바위가 우뚝하다. 리지를 즐기는 산꾼들이 여기에서 하강연습을 한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이어 치마바위를 지나면 수락골로 내려가는 길이 보인다. 이 길로 하산하면 올라오면서 보았던 새광장에 닿는다. 수락골 갈림길에서 100m쯤 능선을 따르면 다시 갈림길이 나온다. 수락산 주능선은 도솔봉을 기점으로 세 줄기로 갈라진다. 동쪽 지릉은 덕릉고개, 남쪽 지맥은 당고개역, 남서쪽 지맥은 수락산역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갈림길에서 그대로 능선을 따르면 도솔봉과 덕릉고개로 이어지고, 노원골로 내려가려면 오른쪽 도솔봉을 우회하는 길을 따른다. 이정표가 없기에 주의하지 않으면 그대로 오른쪽 길을 따르게 된다.
도솔봉을 오른쪽으로 우회하면 왼쪽으로 탱크바위가 보이면서 길은 흙길로 바뀐다. 이제부터는 휘파람이 절로 나는 완만한 능선길이다. 15분쯤 내려오면 큰 철탑이 보이고, 그 왼쪽으로 용굴암 가는 길이 갈린다. 학림사를 거쳐 당고개역으로 하산하려면 용굴암 방향을 따르면 된다.
10여 분 더 능선을 타고 내려오면 노원골로 내려서는 길이 나온다. 이정표에는 ‘바위샘 경유 수락산역 1.7km’라고 쓰여 있다. 이곳에서 계속 능선을 따라 2.9km 가면 마들역이다. 능선에서 내려서면 곧바로 바위샘을 만난다. 움푹 팬 바위에 고인 시원한 약수를 한 잔 들이켜고 40분 가량 노원골을 따르면 노원골약수터, ‘천상병 길’을 차례로 만난다.
‘천상병 길’에는 시인의 여러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수락산은 불쾌하게 돌아앉았다/등산객은 일요일의 군중/수목은 지상의 평화/초가는 농가의 상징/서울 중심가는 약 한 시간/여기는 그저 태평천하다……’라는 <수락산 하변> 시를 읊조리면서 산행의 마침표를 찍는다. 음식점들이 늘어선 길을 따르면 수락산역 3번 출구를 만난다.
/ 월간산 2009.4 진우석 산악전문작가
당고개코스
당고개역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수락산 입구에서 등반을 시작했다. 이곳은 서울 노원구 상계 3동과 4동에 속한, 마지막 서울 달동네로 알려진 곳이다. 최근 뉴타운으로 지정돼 구역마다 경축을 알리는 재개발 건축조합 현수막이 여기 저기 나부꼈다. 이곳 수락산 입구는 다른 입구에 비해 등산객들 움직임이 한산했다.
입구에 들어서자 불교 현수막이 나왔다. '살아 있을 때 선행을 행하지 않으면 죽음의 문턱에 이르러 노자가 없어 고생한다'고 쓴 글 밑에 대한불교조계종 수락산 학림사라고 써있었다. 조금 지나자 부대 공고문이 나온다. 빨간 글씨에 '거수자 및 간첩용의자' 신고 안내 표지판이었다. 간첩신고 포상금 최고 1억원, 좌익사범 포상금 최고 3천만원, 밑에 육군 제1039 부대장이라고 적시했다. 그러나 간첩신고 포상금과 좌익사범 포상금 문구가 왠지 신경이 쓰였다. 역사 과제인 민족화합과 민족통일을 저해하는 문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 현수막에서 800m 정도 걸어가니 학림사라는 절이 나왔다. 학림사(鶴林寺)는 마치 학이 알을 품고 있는 학지포란(鶴之抱卵)에서 유래됐다. 학림사는 1300년전 신라문무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한 사찰로서, 고려 공민왕 때 나옹화상이 일신 중수해, 기도와 수도도량으로 혜명을 이어왔던 곳이다. 조선 선조 때인 1597년 정유병화로 소실돼 인조 때인 1624년 무공화상이 중수했다. 그 후 여러 차례 부수가 이루어졌고, 현재 주석하고 있는 도원 스님과 덕오 스님이 일신 중수 불사한 곳으로 알려졌다.
경사진 계단 입구 건물에 '수락산 학림사'라고 쓴 한자 글귀가 선명하게 들어왔다. 경내에 들어서자 대웅전이 나왔다. 청학루, 오백나한전, 선불장, 약사전, 선불각 등을 둘러봤다. 경내에는 스님과 불공을 드리려온 불자들이 여기 저기 보였다. 울긋불긋한 절 주변의 운치가 마음에 와 닿았다. 특히 사찰 내 진열된 노란 국화꽃 꽃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경내에서 사진도 몇 장 찍었다.
숲 풀림 한 가운데 '접근금지'라고 쓴 특고압 전선로인 철탑이 나왔다. 자연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철탑은 흉물로 보였다. 철탑을 지나 얼마 정도 갔을까. 용굴암 입구가 나타났다. 이곳에도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무자년 동안거 백일기도 입재'라고 쓴 문구 밑을 보니 2008년 11월 12일부터 2009년 2월 9일까지 대한불교조계종 용굴암에서 100일 기도가 열린다는 의미였다. 용굴암은 1878년 고종 15년 창간된 사찰이다.
수행납자 스님들이 자연동굴 나한전에 16불상 기도 정진을 하는 자그만 토굴로 내려오다가 구한말 1882년 고종 15년 임오년에 대원군의 섭정에 밀려난 명성황후가 칠일 기도 치성을 드리고 가 다시 집정을 하자 그 공덕을 기리기 위해 조정에서 하사한 하사금으로 현재 대웅전 자리에 법당을 지었다. 6.25 동란을 겪고 나 폐사 위기에 있다가 최근에야 사찰 면모를 갖추게 됐다. 현재 주지 석각연에 의해 노원구 전통 사찰로 인정받았다.
여자 치마 모양을 닮았다고 붙인 치마바위를 지나자 서울소방재난본부 119 특수구조대의 비상구급 약품함이 눈에 들어 왔다. 혹시 등산을 하다가 부상이나 다친 사람들을 위한 간단한 응급조치 약이 들어 있는 약품함이었다. 얼마 걸었을까. 하강바위가 나온다. 하강바위는 참 신기하게도 남자 성기를 고스란히 닮았다. 그곳을 배경으로 많은 등산객들이 사진을 촬영하기도 했다.
한참 걷다보니 코끼리 모양을 하고 있는 코끼리 바위가 나왔다. 잠시 이곳에서 휴식을 취했다. 첫 휴식이었다. 의정부 장암지구가 보였다. 이곳에서 바라본 주봉은 절경이었다.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함께 동행한 후배가 친구와 수락산 주봉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했기 때문이었다. 후배는 촬영을 하면서 쉬엄쉬엄 여유 있게 걸어가는 나에게 빨리 걸으라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 군인 철모를 닮은 철모바위를 지나 남양주시에서 만든 안내 표지판이 나왔다. 남양주 청학리 4.13km, 정상 0.51km 등이 적힌 표시판이었다. 목판 안내판에는 김용택 시인의 '방창'이란 시가 걸려 있었다.
이곳을 지나 수락산 최고봉인 주봉(637m)에 도착했다. 주봉 바위 맨 위에 태극기가 휘날렸다. 발 디딜 틈 하나 없이 등반객으로 북새통을 이뤘다.
이곳 주봉에서는 맥주와 막걸리, 각종 음료수 등을 파는 사람도 있었다. 출발할 때 음료수를 가지고 오지 않아 그곳에서 2000원(일반 수퍼에서 500원 하는)을 주고 물 한 병을 샀다. 그리고 꿀꺽꿀꺽 마셨다. 등반을 하는 동안 1시간여 물을 마시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타는 목 깊숙이 들어간 물은 오아시스도 없는 사막에서 마시는 꿀맛이었다.
의정부 장암지역을 향해 내려갔다. 남양주시가 마련한 표지판이 나왔다. 정상 소요시간 20분, 기차바위(흠통방위) 2시간 20분 산지정화 감시초소 1시간이라고 써 있었다. 그곳에도 한편의 시를 걸어 놓았다. 정약용 선생의 '백운대에 올라'였다.
백운대에 올라
어느 누가 세모꼴로 교묘히 깎아 / 우뚝하게 이대를 세워 놓았나흰 구름바다처럼 깔려 있는데 / 가을빛은 하늘에 충만하구나천지사방은 둥글어 가을 아침 없건만 / 천년세월은 넓고 멀어 아니 돌아오네바람을 쏘이면서 휘바람 불며 / 하을 땅을 둘러보니 유유하다오
기차바위는 경사가 급하여 등반시 각종 안전사고 위험이 있으므로 가급적 우회로(신설로)를 이용하라는 안내문이 보였다. 경사진 바위에서 밧줄 하나에 의지해 내려가야 하는 기차바위. 기차바위에서 밑을 내려다보니 아찔했다. 그곳에서 본 먼 풍경은 아름다웠다. 하지만 우회로인 신설로를 이용할 수 없었다.
언제 이곳에 또 와 체험할 수 있을 지는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결심을 했다. 후배가 먼저 밧줄을 탔다. 곧바로 나도 따라 출발했다. 밧줄을 가랑이에 끼고 내려오는 도중 다리가 떨렸다. 군인 시절 유격훈련이 생각났다. 하지만 아무 사고 없이 성공했다. 기차바위를 등지고 얼마 갔을까 무속인들이 제를 올리는 성황당 나무를 발견했다. 나무에는 오색 무늬가 펄럭였다. 그곳을 지나 얼마 동안 걸었을까 만나자고 했던 친구가 한 등반객과 기다리고 있었다.
/ 오마이뉴스 2008 김철관
송암사 / 도선사 진입로를 지나 조금 올라가면 우측에 위치
도안사
당고개역에서 현대농장 도선사방향으로 가면 외곽순환도로 몾미쳐 수락산 등산로가 시작되고 송암사지나서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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