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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경기한강유역

여주 37번국도-명성황후생가 여주향교 잠사민속박물관

by 구석구석 2008. 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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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부고속도로 신갈분기점에서 영동고속도로 진입, 중부고속도로 호법분기점을 통과하여 여주교차로(신갈기점 54.5km)를 벗어나 톨게이트를 나간다. 37번국도로 우회전하면 교리를 거쳐 여주읍내와 신륵사로 이어진다.

 

영동고속도로 여주에서나와 37번 국도로 200m 가면 명성황후생가표지판이 보이고, LG 톨게이트주유소를 끼고, 다시 한번 우회전하여 1km 만 들어가면 명성황후생가 주차장에 이른다.  

 

양지바른 곳에 위치한 명성황후생가

 

 


역사와 문화의 고장 여주는 오래 전인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군사적 요충지로 여흥군이라 불렸다. 이곳 여주읍 능현리에는 대한제국 고종황제의 황후로 개화기 국정에 참여하였지만, 을미사변으로 일인에 의해 시해되어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친 명성황후의 출생 생가가 조용히 서 있다.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46호인 이 건물은 조선 고종황제의 비 명성황후가 태어나 황후로 책봉되던 16세까지 살던 집으로 이 집은 1687년 숙종의 장인 민유중의 묘막으로 건립되었다.

지금은 비록 당시 건물로서의 보존은 안채뿐이지만, 건립 당시에는 행랑채, 사랑채가 있었으나 없어졌고, 현재 남아 있는 안채는 1975년과 1976년에 중수한 것이다.


 역사적 재조명과 함께 그의 생가는 1996년에 안채가 재 수리되었고 행랑채와 사랑채, 별당채 등이 복원됨으로써 면모가 일신되었다.

 

 

생가는 넓은 바깥마당에 면하여 솟을대문을 가진 一자형 행랑채가 서고, 그 뒤에 중문과 사랑이 붙은 ㄱ자형 문간채와 안채가 안마당을 둘러싸서, 터진 ㅁ자형 배치를 이루고 있으며, 그 옆으로 一자형 별당채가 독립된 영역을 형성하고 있다.

 

 

 

 

안채에 걸린 명성황후와 고종 영정 
민비는 1851년(철종 2년)에 여성부원군 민치록(閔致祿)의 딸로 태어났다. 9세 때 고아가 되어 본가에서 가난하게 자라다가, 흥선대원군의 부인인 부대부인 민씨의 추천으로 16세 때 왕비에 간택, 고종의 비로 책봉되어 대한제국 고종의 황후가 되었다. 한 때는 권력의 정상에 군림하기도 했지만 안타깝게도 유일하게 천수를 다하지 못하고 타살되었다.


명성황후는 역대의 여걸 못지 않게 총명했으며 정치적 수완 또한 따를 자가 없었다. 고종이 아버지와 대립하며 정치적 의욕을 보이면서 명성황후는 일가친척들을 속속 등장시켜 정권을 장악하게 이르자, 시아버지인 흥선대원군과는 심한 갈등관계를 빚었다.


옛 건물로 남아있는 안채의 모습 
역사적 재조명과 함께 그의 생가는 1996년에 안채가 재 수리되었고 행랑채와 사랑채, 별당채 등이 복원됨으로써 면모가 일신되었다.

 

생가는 넓은 바깥마당에 면하여 솟을대문을 가진 一자형 행랑채가 서고, 그 뒤에 중문과 사랑이 붙은 ㄱ자형 문간채와 안채가 안마당을 둘러싸서, 터진 ㅁ자형 배치를 이루고 있으며, 그 옆으로 一자형 별당채가 독립된 영역을 형성하고 있다.


본 채는 전면에 퇴칸(退間)이 있는 오량구조로 2칸 안방과 4칸 대청, 1칸 반의 건넌방과 2칸 부엌이 일렬로 배치되어 있고, 날개 채는 3량 구조로 안방 앞쪽에서 꺾이어, 1칸 반 온돌방과 3칸 부엌, 그리고 1칸 반되는 광이 위치하고 있다. 한편 이곳에는 1904년 건립된 명성황후탄강구리비가 있는데 비의 글씨는 고종의 친필이라고 한다. 또 이 비가 서 있는 자리는 바로 명성황후가 글공부하던 방이 있었던 자리라고 전해진다.


 

 

앞으로 나가려는 여인의 선구자 조각상 
명성황후 명성황후 생가를 복원한 여주군에서는 지난 2000년 별도의 새로운 기념관을 건립하고 동시에 관광단지로 조성함으로써 지금까지는 물론 앞으로도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역사를 더듬어볼 수 있는 또 하나의 명소로 자리잡을 것으로 기대된다.

 

 

명성황후 생가 앞에 기념관이 건립되어 각종 자료, 유품 등이 전시되어 있으며, 공연장(문예관이 있어 명성황후에 대한 영상물을 상영하여 왜곡된 역사를 바로 세워 올바른 역사관을 정립하는데 도움을 준다.

 

명성황후의 개화사상과 민족자주정신을 오늘에 계승하기 위하여 전국의 청년작가 공모작품 555점 중 52점을 선정, 테마 공원으로 조성하여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시간이 있다면 주변 명소인 여주 도예촌, 신륵사, 이완대장 묘, 영릉 등을 둘러보는 일도 뜻 있는 일일 것이다. 한지호 / 자동차여행가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3호(1983.9.19) 여주향교

향교는 서당에서 공부한 15세 이상의 양반 자제를 교육하던 시설이다. 원래 여주향교는 여주읍 상리 마암(馬巖) 근처에 건립되었으나 임진왜란때에 타버린 후 1685년 여주읍 홍문리의 잣나무 고개에 다시 건립하였다. 그런데 그후부터 부락 주민이 자주 괴질에 희생되고 풍수 학상 불길하다 하여 교리(校里) 현 위치로 이건되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5칸의 대성전, 8칸의 명륜당, 내삼문(內三門), 각 8칸의 동무와 서무 등이 있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10철(十哲), 송조6현(宋朝六賢),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동·서무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익공계 맞배집인데 대성전의 옆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익공계의 형태와 가구 수법으로 미루어 대성전과 함께 18세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하며, 초하루·보름에 분향하고 있다.
여주 향교는 강학(講學)공간이 명륜당으로만 축소되어 규모가 크지 않으나 건물들은 부재의 형태나 결구법에서 지역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현재 향교의 운영은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6, 7 명이 담당하고 있다.

 

여주군 여주읍 여주읍 교1리 299-5  잠사민속박물관 031-886-1144

여주 잠사민속박물관은 양잠에 관한 민속품과 자료 1천여점이 전 시되어 있는데, 누에치는 과정과 명주실 뽑기, 명주짜기 등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아 비단이 되기까지의 과정 등을 실물과 자료를 전시하고 있어, 우리나라의 양잠에 대한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으며, 학생들에겐 자연 학습장으로 활용되고, 어른들에겐 추억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여주잠사민속박물관은 1997년 4월 여주읍 교리 언덕말에 건립되었는데, 30평 남짓한 아담한 전시관에 4000천여년의 유구한 역사를 지닌 우리 민족의 전통산업인 양잠의 역사와 발달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하여 여주의 명물로 자리매김 했다.


잠사박물관은 총 500여점의 양잠 관련 유물을 전시하여 유구한 양잠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하였다. 옛 양잠민속화 및 사진, 누에칠 때 쓰이는 각종 연모와 민속품, 그리고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아 비단이 되는 모든 과정을 실물과 자료로 전시하고 있다. 
 
우리나라 양잠의 역사는 단군 조선때(4300여년전)부터 누에치기를 시작해 전통산업으로 이어오다가
조선시대부터 종상지법과 왕비 친잠예법의 제정, 잠실도회를 설치하는 등 누에치기를 적극 장려했다.
1960년대 들어 수출전략산업으로 외화를 크게 벌여들이는 농촌 소득작목으로 인기를 독차지 한적도 있었으나, 1980년대 들어 양잠산업의 사양화로 보존되지 못하고 사라질 위기에 처하였다.

이에 한국양잠연합회 상무로 있는 박재명관장은 여주잠사민속박물관을 개관하여 누에에 관한 자료를 한데 모아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한편 기성세대에게는 추억을, 자라나는 어린이에게는 배움의 자연과학 학습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잠사박물관이 들어선 여주는 예로부터 산천이 수려해 1976년도에는 5백여톤의 누에고치를 생산해 도내에서 제일 규모가 컸던 양잠지역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으며 현재 잠사박물관은 전국에서 여주와 청주 두곳뿐이다.

 

○ 개관일 : 1999년 4월
○ 규모 : 26평
○ 소장품현황 : 누에알, 실을 뽑는 각종도구, 베틀 및 기구, 잠사관련
○ 개관시간 : 11:00 ∼ 17:00
○ 기타사항
- 예약시에는 시간을 맞출 수 있음
- 관람소요시간 : 박물관장의 설명을 들으며 20 ∼ 30분 정도 소요
○ 요금 :  무료

 

찾아가는 길

 

1) 여주 I.C → 여주읍내 진입 후 첫 한전사거리에서 좌회전 → 소교량 건너 신호등에서 시내버스 터미널 방향으로 좌회전한 후 직진하면 800m 지점에 있음
2) 이천 → 원주방향으로 직진 → 도장교 사거리를 지나 500m 지점에서 우회전한 후 시내버스 터미널 방향으로 직진하면 800m 지점에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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