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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경기도

안성 금산리-자연체험학교 망이산성

by 구석구석 2008.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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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일농원 - SK주유소 앞 사거리 좌회전 - 2.5km직진 - 아구마을 - 경기제과앞 - 좌측 오솔길 

금산리 232-1  금다래 산머루 자연체험학교 031-673-4474 / 010-3212-2363

3천여평의 운동장과 교사동, 4천여평의 숲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놀이터로 늘 새로운 프로그램과 연구하는 마음으로 다양한 체험을 준비하고 있으며, 어른들을 위한 전문적인 천연염색 강습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체험프로그램은 10,000~18,000원이며 다양한체험활동이 있다.

천연염색+마술배우기+숲체험+제기만들기
짚풀놀이+마술배우기+숲체험+제기만들기

천연염색+북난타+마술배우기 또는 숲체험+제기만들기

천연염색+비누만들기+마술배우기 또는 숲체험+제기만들기

꽃한지부채(한지뜨기)+민화그리기+마술배우기 또는 숲체험+제기만들기

칠보공예+한지공예(한지뜨기)+마술배우기 또는 숲체험+제기만들기
천연염색+북난타+꽃한지부채(한지뜨기)+마술배우기 또는 숲체험+제기만들기

 

중부고속로를 이용하여 일죽IC로 빠져나가 좌회전→2.5㎞ 직진하면 서일농원 사거리 → 우회전하여 3.8㎞직진하면 보릿고개가든 왼쪽에 등산로 입간판. 주차는 호텔컴인하우스 부근이 적당

 

해발 471.9미터의 망이산은 도심에서 찾기가 수월하고 망이산성봉수대터가 남아있으며, 정상에서의 주변 전망이 시원스러워 가볍게 찾을 만하다. 산행은 북쪽 청풍쉼터나 서쪽 매산사 입구, 남쪽 대야리 등에서 시작되며 어느 코스든 길이 분명하다. 한참동안 매산사를 둘러보고 난 후 망이산성 발굴터 안내판이 있는 곳의 등산로를 이용해 주능선에 올랐다.

  
망이산성의 안내판이 있으나 산성의 흔적은 분명치 않다. 북쪽으로 3분을 가니 벤치가 여럿 있어 휴식하기 좋은 장소로 여겨진다. 북릉으로 2분거리에는 팔송쉼터가 있고 그 뒤쪽으로는 청풍쉼터로 내려서는 능선길이 이어진다.

 
하산길을 잡을 때는 왔던 길로 20여 미터를 가다가 좌측 숲으로 이어지는 길로 들어서니 전망이 확 트이면서 도치골로 내려가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는 삼거리를 만난다. 이곳에서 우측길로 가는데 이길이 망이산성 위를 걷는 길이다. 산성약수를 지나고 2~3분을 더 가면 헬기장을 지나 삼거리봉에 도착하고 이곳에서 좌측 숲터널을 따라 20분 정도를 내려서면 차현고개에 도착한다.


매산사 입간판  → 매산사 → 삼거리봉 → 헬기장 → 정상 → 헬기장 → 삼거리봉 → 차현고개 → 매산사 입간판 (약2시간 소요, 원점회귀산행)

 

기념물 제138호 망이산성

삼국시대에 축조된 산성으로, 해발 472m의 망이산 정상에서 북쪽으로 낮은 능선을 따라 성벽을 쌓았다. 남쪽으로는 음성군 삼성면과 멀리 진천군 일대의 들판이 내려다보이는 군사요충지. 산정상 주변에 흙으로 내성을 쌓고 능선에는 길이 약 2㎞에 걸쳐 돌을 사용하여 외성을 쌓았다.

 

내성 안에는 정방형의 봉수대를 세웠다. 이 성은 중부지역을 가로지르는 차령산맥 중간 부분의 3개의 봉우리를 감싸고, 동서로 뻗은 계곡부를 막아서 쌓은 표곡식의 산성으로 내성과 외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성벽부분은 지대가 높지만 성 안쪽은 지대가 낮고 평지가 넓으며 물이 풍부하다.

 

산성 정상에서는 산성, 이천, 음성지역은 물론 용인, 진천까지 바라볼 수 있어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이다. 망이산성의 내성은 토성으로 백제에 의하여 쌓여졌으며 석성은 통일신라시대에 쌓은 것이다. 토성은 가장 높은 남쪽의 봉우리를 에워싸고 있으며, 현재 밝여진 길이는 250m쯤 되고 북쪽에 문 터도 짐작되는 곳이 있다. 석성은 능선과 봉우리의 지세를 이용하여 쌓았다. 전체 둘레는 약 2080m이며, 남북 340m, 동서 500m의 장방형 산성이다.

 

토성안의 높은 곳에는 봉수터가 있는데 생김새는 직사각형이고 자기와 기와조각이 흩어져 있다. 이봉수는 동래ㆍ충주 등을 거쳐 올라오는 직봉(直捧)과 남해ㆍ진주등에서 올라오는 간봉(間烽)을 서울 남산에 전달하는 역할을 하였다. 성내에는 청동기 시대 후기부터 백제ㆍ통일신라ㆍ고려ㆍ조선시대에 걸치는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어, 특히 기와중에는 `준풍(埈豊) 4년` 명(963년)기와가 출토되어 통일신라 말기와 고려시대 초기에 제작된 기와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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